[태웅대만] 아빠,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시범용

暴浪 by 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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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바야흐로 기원후 20nn. 신앙은 미신이 되었고, 과학이 그 신앙을 차지한 지 오래인 시대. 비과학적인 것들을 헛된 것이나 음모론으로만 취급되는 시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갑작스러운 일은 시기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대만은 실제로 눈앞에 생겨난 비과학적인 일로 인해 불안했다.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대체 왜? 의문을 표하지만,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과학적이고 설명할 수 없었으며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었다.

대만이 품에 안긴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증거물’을 바라봤다. 이제야 생후 이 개월이 겨우 된 듯한 아이는 아기용 담요에 얌전히 감싸인 채 안긴 채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감긴 눈의 속눈썹이 길다. 새카만 머리칼에 직모, 하얗고 보송보송한 뺨. 침대 위, 자신의 옆에 얌전히 눕혀져 있던 아이의 얼굴은 단번에 누군가를 상기시키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연쇄작용처럼 얼마전 벌어졌던 ‘사고’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설마…. 설마….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잠든 아이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못했다. 아기는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대만이 사촌 조카들을 돌보는데 익숙한 탓에 아이를 안는 법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태웅 자식이라서 잠이 많은 거야?”

아니, 애초에 앞뒤가 안 맞잖아. 자신은 남자다. 설령, 정말로, 많이 양보해서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 게 맞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벌어진 건 한두 달 전의 이야기였다.

잠깐. 한두 달 전? 대만이 멈칫한다. 쉬는 시기 당연하게 사촌 조카를 돌봐온 결과, 눈앞의 아이는 이 개월 전후다. 그리고 사고를 친 날도 이 개월 전이잖아. 놓인 아이는 태웅을 꼭 빼닮은 데다가 심지어 잠까지 많아 보였다.

대만이 순간적으로 숨을 멈춘다. 아니, 정말?

아니아니, 그렇지만 나는 남자인데?

임신 징후라던가 있었나? 그럴 리가?

순식간에 몰아친 생각으로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때, 품에 안긴 아이의 눈이 뜨였다. 끔벅거리는 눈에 졸음이 묻어났다. 긴 속눈썹, 새카만 직모, 하얀 뺨까지. 눈을 감았을 때 그렇게 서태웅을 닮았던 아이의 눈은 자신을 닮아 있었다.

대만이 가속화되던 생각을 멈췄다. 원래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생각 회로를 스스로 망가트리는 법이다. 순하게 눈을 깜박이는 아기는 대만 스스로 머릿속의 정상적인 사고 회로를 잡아 뜯어 가동을 멈추도록 만들었다.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황새가 물어다 준 거든, 아니면 뭐, 외계인의 농간이든 간에 이 아이는 자신과 태웅의 아이임이 분명했다.

저출산 시대에 인구수를 늘리라는 정부의 계략인가? 아 몰라.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에 방긋, 웃음이 어렸다. 그 웃음을 본 순간 대만은 품에 안긴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안은 채 몸을 벌떡 일으킨 대만이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불가사의한 아이지만, 이대로 방치하고 있을 수는 없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장착한 대만이 담요에 감싸인 아이를 단단히 품에 안고, 그 위를 그나마 두꺼운 가디건으로 덮었다.

‘그날’ 이후 서태웅을 피하기 시작한 지 벌써 두 달. 눈앞에 나타난 아이는 자신과 서태웅의 책임이다. 열련의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대만은 절대로 무책임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 * *

 

그러니까 불가사의한 일은 하루아침,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법이었다. 태웅이 멍하니 잠이 덜 깬 얼굴로 현관에 몸을 기댔다. 수상할 정도로 꾹 눌러 쓴 모자, 얼굴을 가린 마스크. 그 사이로 비치는 눈. 팔짱을 낀 태웅이 대만에게 조용하게 묻는다.

“선배가 무슨 일이에요.”

‘그날’ 이후 자신을 본체만체하다가 대놓고 피하기까지 하다가 이렇게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다고? 태웅의 시선이 꾹 눌러쓴 모자 캡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만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화났나? 그야 화났겠지. 모자를 눌러 쓴 탓에 어차피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할 것을 앎에도 대만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야, 그날 상황은 말 그대로…. 자신이 그를 ‘먹버’한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사실 너무 술에 취해있던 터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터라 제대로 된 사건의 청취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보이던 풍경, 필름이 끊기기 전 자신이 부려대던 주정의 정황상 그러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관계이지 않은가!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 식은땀이 배어 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대만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제 이건 자신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주친 눈동자에서는 엄청난 결의가 느껴졌다. 묘하게 차가운 태웅의 반응이 의아함으로 바뀔 정도로.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들어가도 되냐?”

“제가 왜요?”

“…….”

“우리가 무…….”

……슨 사이길래요. 말은 전부 이어지지 못했다. 태웅의 시선이 대만이 걷어낸 아이보리색 가디건 안쪽에 꽂혔다. 아이는 어느새 다시 잠들어 있었다. 할말을 잃고 새근새근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태웅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들어와요.”

대만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색하다. 아무래도 그 일이 발생한 뒤, 자신 쪽에서 그를 대놓고 피했으니 이런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삐질삐질 땀을 흘리면서 대만이 소파에 앉은 채 태웅을 기다렸다.

“커피는 몸에 안 좋을 테니까. 물이면 돼요?”

“어. 어어?”

뭔가 이상한데? 대만의 반응을 일종의 대답으로 받아들인 건지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소리가 났다. 커피가 몸에 안 좋다니. 저게 무슨 소리야.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은 대만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빽 높였다.

“아니, 젖은 안 나와!”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놀란 것처럼 품에 안긴 아기가 움찔거렸다. 곧이어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대만이 당황한 얼굴로 품에 아이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울기 직전의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괜찮아, 어어, 미안해. 미안해. 들리는 소리에 태웅이 대놓고 대만을 응시한다.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결혼하지도 않아 미혼인 사람이. 당황한 상태에서도 침착하게 아이를 달래는 모습에 태웅이 말을 던졌다.

“모자랑 마스크나 벗는 게 어때요.”

“아, 아아.”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우는 걸지도 몰랐다. 대만이 한 손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벗는다. 그 아래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자 대만을 알아보는 듯이 작은 얼굴을 찡그린 채 칭얼거리던 아기의 얼굴이 펴지더니 방긋, 웃는다.

“호오….”

“뭐, 뭐야.”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태웅이 아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눈을 감았을 때는 자신을 빼다 박았더니만, 눈을 뜨니 자신의 것보다 색이 조금 엷은 눈동자와 눈매는 대만을 닮아 있었다.

“이래서 씨도둑질은 못 한다더니….”

“너, 너…! 애 앞에서 할 말이야, 그게?”

“왜 그런 반응인데요. 애는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부루퉁한 얼굴의 태웅이 그렇게 말하자 대만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슬그머니 품에 아이를 숨겼다. 아니, 맞긴 한 데. 아니지, 얘는 갑자기 생겨났으니까. 그런데, 너무 닮았잖아. 내가 뭐 착각한 거 아냐?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무엇 하나 쉬이 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의 말에 ‘내 아이가 아니야!’라고 답한다면, 아이를 부정하게 되는 일이었고, 또 그렇다고 ‘그래! 이건 너와 내 애야!’라고 말하면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더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일 테니까.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이미….”

“그 입 안 다물래?”

급한 대로 대만이 태웅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못마땅한 눈이 대만을 응시한다. 그 시선에 흠칫한 대만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물러서서는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일단. 뭐가 어떻게 됐든. 애를 키우기는 해야 할 텐데. 이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 해두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다. 다른 이유는 없고.”

“……통보네요.”

“어. 네 의사는 필요 없고. 알고만 있으라고.”

“그런 게 어딨어요.”

부루퉁한 답이 돌아왔다. 태웅이 대만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평소에는 졸음으로 나른하던 눈이 새삼 앙칼지게 대만을 노려다본다. 태웅의 반응에 대만 또한 얼굴을 찌푸린 채 태웅을 바라봤다.

“너는 선배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보통 선후배가 몸을 섞고 그래요?”

“아니, 나 혼자 키워도 된다고. 왜 의무감에 이러는 거냐고.”

대만은 속이 답답했다. 서태웅은 미국에 진출했다가, 얼마 전 국내로 들어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농구의 유망주였다. 그런 놈 앞길을 자신이 망치라고? 말이 될 리가 있냐. 자신이야 여태 휴식기 없이 달린 데다가 마침 계약 갱신 기간이었으니, 어떻게 구단에 이야기해서 휴식기를 가져도 되는 것이고.

“의무감 때문이 아닌데요.”

만약 아이가 세간에 발각된다고 하더라도 서태웅보다 자신이 타격을 받는 게 나았다. 그야 그건 자신에 의해 벌어졌을 사고였으니까. 대만이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그러면 뭔데. 서태웅아, 이러지 말자. 너 계약기간도 남았잖냐.”

“아빠니까 당연한 거죠.”

저, 저, 저. 뻔뻔한 답을 봐라. 물론 아빠인 게 맞기는 했다. 대만이 눈을 치켜뜨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대만은 옛날부터 그랬다. 이상하게 서태웅에게는 더한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이건 아마 자신이 그보다 어른이기 때문일 테다.

“됐으니까. 옷이나 입어라. 언제까지 웃통 벗고 있을 건데.”

그렇기에 대만의 생각은 확고했다.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도, 애는 애다. 애 앞길을 ‘사생아 이슈’로 막을 수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문다.

“입고 와. 그러고 나서 얘기해.”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믿을게요.”

“……어. 알겠으니까. 입고 오기나 해.”

태웅이 가만히 대만을 응시하다가 눈을 떨어트렸다. 순순히 대만의 말을 믿겠다는 건지, 아니면 두고 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그가 옷방으로 멀어지자 얌전히 앉아있던 대만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일단, 통보는 했으니 사촌 누나네 집으로 가는 거다. 내려놓았던 모자와 마스크를 신속하게 착용한 대만이 발소리를 죽였다. 조카가 아직 어렸으니, 아직 웬만한 육아 물품도 그곳에 있을 테고. 단순히 놀아주기만 하는 것과 본격적인 육아는 다를 테니 누나의 조언도 필요했다.

태웅이 옷방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잰걸음으로 집을 빠져나간 대만이 정신없이 아파트를 뛰쳐나갔다. 쾅, 하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등 뒤로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유독 요란하게 울렸다.

 

* * *

 

여태 자신이 보아온 정대만은 그러했다. 올곧은 주제에 너무 올곧아서 그런지 엉뚱한 부분을 지레짐작하고는 말을 듣기도 전에 도망가기 마련이었다.

“…….”

실제로 저번에도 그러했고. 이번에도 그렇다. 옷방에서 나온 태웅이 조용히 대만이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저번의 경우는 정대만이었다면 절대 상상하지도 못했을 일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

애초에 그러니 얌전히 그가 다시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린 것이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미 한 번 기회를 줬음에도 대만은 도망쳤다. 이제 대만에게 있어 정상참작의 기회는 없다.

정대만은 늘 서태웅을 사람 손을 탄 순한 고양이 정도로 보는 면이 있었다. 둔하기 짝이 없다. 자신을 고양이 취급하는 건 정대만밖에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침착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든 태웅이 전화를 걸었다.

바라본 시간이 긴 만큼, 자신보다 정대만의 주위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 * *

 

”예. 수고하세요.“

태웅의 집 앞에서 바로 잡은 택시는 순식간에 대만을 사촌 누나의 집으로 데려갔다. 낯선 공간, 낯선 소음들 사이에서도 아이는 이상하리만치 순했다.

서태웅을 닮아서 둔한 건가? 아니, 명확히 따르면 태웅이 녀석은 둔한 편이라기보다는……. 에너지를 아끼는 편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나? 여태 수집한 경기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두고서도 서태웅처럼 코트의 위에서 기민하게 반응하는 선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막상 도움을 요청할 곳이 사촌 누나의 집뿐이었기에, 여기로 오기는 했지만. 대만은 정작 이 광경을 볼 누나에게 늘어놓을 변명거리를 생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냥 솔직하게 자기 아이라고 그래? 누가 낳았는지만 숨기면 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서태웅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설마 서태웅과 자신의 아이라고는 추호도 생각 못하지 않을까?

그래. 차라리 그게 났다. 애초에 태웅의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이유도 이것이지 않았는가. 대만은 품에 안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대만이 물씬 넘쳐흐르는 애틋함에 울 것 같은 얼굴로 품 안에 안긴 아이를 바라봤다.

그는 왜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먼저 태웅의 집에서 뛰쳐나왔으면서, 지금 와 비련의 주인공처럼 구는 건 또 무슨 심경의 변화란 말인가.

”어? 뭐야. 정대만. 네가 웬일이냐?“

”누나….“

이런 이유로 자신이 의지할 수 있을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대만이 자신도 모르게 울먹거리는 소리를 냈다. 뒤늦은 막막함이 밀려들었다.

”뭐, 뭔데. 잠깐.“

우뚝 시선이 품 안에 안긴 아이를 향했다. 서, 서, 서, 설마. 잠들었던 아이는 어느새 눈을 또렷하게 뜬 채 새로운 등장인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뜨인 눈매며 눈썹이 정대만 판박이다. 벌어지는 입을 그는 굳이 다물지 않았다.

”너, 너. 사고 쳤냐?“

”그게….“

”어쩌려고 이래. 어쩌려고. 어쩌려고!“

매서운 손바닥이 대만의 등짝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분명히 옷을 입었음에도 찰싹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등짝에 내려앉은 아픔과 당황한 표정으로 제 등짝을 두들기는 사촌 누나의 모습에 대만은 울음이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와. 이모랑 이모부는 알고 있어?“

”아니….“

”아오. 그럼, 왜. 하아…. 됐다. 일단 들어와.“

사정이 있겠거니, 하는 시선. 대만이 조용히 조용한 개인주택 안으로 따라 들어섰다. 대만이 품에 안긴 아이를 고쳐 안는다. 이제야 이 개월 된 아기는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대만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어린다.

아니 근데. 서태웅의 집에서도 이러지 않았나? 대만이 무의식적인 데자뷔를 느끼면서 소파에 앉았다. 대만을 힐끗 바라보던 사촌 누나가 물었다.

”커피는 몸에 안 좋을 테니까. 물이면 돼?“

”대체 누나까지 왜 그러는 거냐고…!“

게다가 서태웅과 똑같은 반응. 아니. 보통 남자인 사촌 동생이 아이를 안고 나타났으면, 자신이 아니라 사고를 친 당사자가 낳았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 아닌가? 왜 하나 같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반응인 거지? 황당함으로 가득한 얼굴이 사촌 누나를 향했다.

”그야. 그냥 직감 상? 딱히 이유는 없고.“

유경험자의 감이라는 건 대단한 거구나. 문득 생각하던 대만이 고개를 퍼특 저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잖아. 애초에 내가 안 낳았다고. 아주 상식적인 사고는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근데 정말로 내가 안 낳은 게 맞나? 아이는 너무 서태웅과 자신을 빼다박아 있었다. 그런데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당연시 여겨오던 상식이 서태웅과 눈앞의 사촌 누나에 의해 붕괴되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대만이 조용히 입을 다문다.

”알았어. 뭔지 안 물을 테니까. 어떻게 할 건데.“

”키워야지. 당연히 그럴 거야.“

예리한 시선이 대만을 향했다. 결심이 굳은 얼굴은 진심으로 보였다. 솔직히, 그는 모든 일이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여태 대만에게 애인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농구에 진심인 정대만이 불필요한 스캔들을 일으킬 리가 없었다.

애초에 농구만 알고 살아온 놈이기도 했고. 과거에 한 번 삐끗한 이후부터 온통 농구, 농구, 농구만 하던 놈에게 아이라고? 대체 어떤 사람이야? 물끄러미 대만을 바라본다.

대만은 정확한 사정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집요한 시선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굳게 다물린 입술은 변명하나 내지 않는다. 이게 바로 정대만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도 답답한 면이었다. 쯧,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찬 누나가 품안에 안긴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범인이 누군지는 알 것도 같았다.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마른 진동을 내뱉는다. 양반은 못 된다더니.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당장 받을 전화는 아니었다.

”대만아. 당연하게 말해두는 건데 혼자서 애 키우는 거 힘들다.“

”알아. 그러니까 누나도 나한테 자주 맡겼던 거잖아.“

”그때보다 더 힘들 걸.“

잠시 멎었던 진동음이 다시 요란하게 울려댄다. 결국 소음을 이겨내지 못한 누나 정 씨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손가락이 향하는 건 부재중 메세지란이었다. 버튼 몇 개를 누르자 울리던 진동이 끊기며 상대에게 짧은 문자가 들어간다.

회의 중입니다. 나중에 전화드리겠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한 이기였다. 휴대전화의 전원까지 꺼버린 정 씨가 어리둥절한 대만을 바라봤다.

”뭐야. 누군데?“

”어. 몰라도 돼.“

저 둔한 놈. 저러다가 코 꿰이지. 실제로 이미 코가 꿰인 걸지도 몰랐다. 강제로 종료한 휴대전화를 탁자에 둔 뒤 털썩, 소파에 주저 앉는다. 애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턱을 괸 정 씨가 대만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래서 계획은?“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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