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대만] 11번 유니폼을 입은 고양이를 주웠는데 혹시 이거 서태웅이냐?

태웅대만 전력 : 유니폼

태웅대만 by 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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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믿기 좋은 날씨가 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몽글거리고, 바람은 상쾌한 그런 날. 대만은 그런 날, 까만 고양이 하나와 마주쳤다. 그것도 북산 농구부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등 번호 11번을 단 고양이를.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그 고양이는 대만의 귀갓길 도로변 한복판을 떡 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큰 소리로 울었다.

웨옭-.

유니폼을 입은 고양이라니, 별 희한한 일이 다 있네. 그렇게 웃고 넘길 수도 있으나 대만은 어쩐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고양이가 서태웅을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고양이가 사람을 닮을 수 있냐 하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길쭉한 다리에 보통 고양이보다 큰 덩치. 유난히 길어 보이는 속눈썹. 무심한 표정 같은 게 영락없는 서태웅 판박이였다. 게다가 오늘 서태웅은 결석했다. 결석 이유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서태웅이 왜 결석했는지 아는 사람? 하고 물으니 ‘여우 자식,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니야? 원래 바보는 감기에 잘 걸린다잖아.’라고 가장 바보 같은 녀석이 대답했다. 대만은 강백호에게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겠지. 그럼 서태웅도 감기는 아니겠다.’라고 받아쳤지만, 내심 태웅을 걱정하던 참이었다.

“너….”

고양이가 유리처럼 반질거리는 노란 눈으로 대만을 응시했다.

“혹시 서태웅이냐?”

와옭!

마치 정답이라는 듯 고양이가 크게 울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선 대만에게 다가왔다. 이거 대답한 거 맞지? 진짜야? 진짜 서태웅이야? 고양이가 되어버려서 학교 못 나온 거야? 대만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양이를 쳐다봤다. 대만이 그러건 말건 까만 고양이는 대만의 발치로 다가와 부드러운 털을 비볐다.

“이거 어쩌냐….”

병원? 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나? 그런데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지? 사람 병원? 아니면 동물 병원?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고양이가 놀랐는지 꼬리를 펑 부풀리고 대만의 다리 사이로 숨었다. 이 고양이가 서태웅이든 아니든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는 건 위험했다. 일단 집으로 데려가서 차분히 생각해보자, 대만이 고양이를 답싹 안아 들었다. 품에 안긴 고양이는 따뜻했고, 말랑했으며, 뼈가 있는 건가 싶게 흐물거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의도 없이 고양이를 데려온 것이라 부모님께 혼날까 내심 걱정하던 대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얼른 제 방으로 향했다. 고양이는 폭신한 침대에 올려두고 본인은 바닥에 앉아 침대에 턱을 올리고 고양이를 관찰했다.

이게 정말 서태웅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고양이가 되겠는가. 하지만 세상에 어디 상식적인 일만 있던가. 어쩌면 태웅이 어떤 신의 미움을 산 건지도 몰랐다. 신에게 감히 원온원하자고 들이댄 거 아냐? 풋, 대만이 소리 내어 웃었다. 참고로 대만은 열세 살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다.

“서태웅?”

웨옹.

고양이가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서도 대답했다. 대만이 그런 고양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귀찮다는 얼굴은 여전한데, 쓰다듬을 받는 건 좋은지 머리가 손을 따라 움직인다. 대만이 한참 동안 고양이의 머리를 만졌다.

“너 배는 안 고프냐? 먹을 것 좀 찾아볼게. 얌전히 있어라.”

하지만 일단 고양이든 서태웅이든 손님은 손님이다. 먹을 걸 내어줘야지. 대만이 으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귀를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대만의 이불이 마음에 든 것인지, 고양이는 침대 위에서 얌전히 몸을 말았다.

부엌으로 간 대만이 부엌 찬장과 냉장고를 뒤졌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무얼 주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혹시라도 잘못된 걸 먹여서 탈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대만이 꺼낸 것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소고기였다.

그의 모친이 큰맘 먹고 산 비싼 고기였으나 대만에겐 그게 100g당 얼마쯤 하는 고기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고양이가 먹을 수 있나 없나가 중요할 뿐. 배포가 큰 남자, 정대만은 소고기 한 팩을 통째로 꺼내 죄다 잘게 썰어서 방으로 가져갔다.

그 사이에 침대 위에 올려두었던 고양이가 바닥으로 내려와, 방 안에 있던 농구공을 껴안고 놀고 있었다. 태웅이, 너 이 녀석 고양이가 되어서도 농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잊지 않았구나. 괜히 코끝이 찡해진 대만이 손가락으로 코를 문질렀다. 그리고는 고양이의 앞에 가지고 온 접시를 놓았다.

고양이는 대만이 들이미는 자기 얼굴보다 큰 접시를 흘깃 보더니 찹찹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긴 했는지 아예 접시에 들어갈 기세였다. 그런데 어느 정도 먹더니 먹으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한 입 먹고 꾸벅, 다시 고개를 들어 한 입 먹고 꾸벅.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만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얌마, 너 진짜 서태웅이구나!”

대만이 졸고 있는 고양이의 볼을 콕 찔렀다. 바로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는 것까지 서태웅 판박이였다. 하지만 졸음은 이기지 못하겠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더니 그대로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었다.

이거 봐봐, 먹고 바로 자는 것도 서태웅이지!

대만이 잠든 고양이, 아니 태웅의 털을 살살 쓰다듬었다. 태웅은 눈을 뜨지 않았다. 대만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아까 전부터 만져보고 싶은 곳은 따로 있었다. 까만 털과 대비되는 분홍분홍한 젤리. 만지면 무슨 느낌일까. 대만이 대범하게, 하지만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태웅의 젤리를 꾹 눌렀다.

말랑말랑. 쫀득쫀득. 따끈따끈. 말랑말랑말랑….

진짜 젤리를 만지는 것처럼 탄력 있으면서도 따끈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대만은 무아지경으로 태웅의 젤리를 만지작거렸다.

웨오오오옥!

너무 만진 건지 태웅이 귀찮다는 듯, 짜증을 냈다. 동시에 대만이 주무르던 앞발이 쏙 빠져나갔다.

“미안….”

얼결에 사과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너무하다 싶었다.

“야, 그래도 내가 너 집에 데려오고 밥도 줬는데 좀 만졌다고 짜증 내는 건 치사하지 않냐.”

대만이 뒤늦게 항의했지만, 태웅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다시 잠이 들 태세였다. 이 건방진 녀석. 너 다시 사람 되기만 해 봐, 내가 아주 그냥 혼 내줄 거야. 대만이 고양이를 앞에 두고 짐짓 엄한 어조로 소리쳤다. 물론 고양이 태웅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근데 너 어떻게 해야 사람으로 돌아오냐?”

계속 이렇게 고양이면 네가 좋아하는 원온원도 못하잖아. 잠든 태웅을 보던 대만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정말 신의 저주를 받았거나 마법에 걸린 거라면 푸는 방법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진 전통적인 방법.

“역시 저주를 푸는 건 키스지.”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대만이 조심스럽게 제 입술을 고양이에게 들이밀었다. 곧 고양이의 부드러운 콧잔등에 대만의 입술이 쪽, 부딪혔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대만은 열셋, 그러니까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다.

“될 리가 없나.”

대만이 한숨을 내쉬고 고양이의 옆에 드러누웠다. 머리를 쓰다듬자 젤리를 만질 때처럼 짜증은 내지 않는다. 부드러운 털을 만지는 건 기분 좋았다. 인간 서태웅의 머리를 쓰다듬어도 딱 이런 느낌이 날까. 둘 다 까맣고, 윤기 나고, 부들거리니까 비슷하겠지. 털을 쓰다듬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대만도 고양이의 곁에서 함께 잠이 들었다.

 

“태웅아?”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깬 대만은 눈을 비비며 서태웅부터 찾았다. 하지만 제 곁에서 자고 있어야 할 태웅이 보이질 않았다. 설마 태웅이 고양이가 되었던 것도 꿈이었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태웅이 먹다 남긴 소고기 접시가 바닥에 뎅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태웅아? 서태웅?”

대만이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가 태웅을 불렀다. 하지만 집 안 어디에서도 고양이는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해서 냉장고 안과 변기 안까지 뒤지던 대만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활짝 열어놓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태웅아!”

대만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태웅을 불렀다. 하지만 그곳에도 태웅은 보이질 않았다. 아니, 이 자식이 그런 고양이 같은 몸으로 어딜 간 거야! 위험하게! 대만이 다급하게 집 밖으로 달려나갔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나가서는 지나가는 사람을 무작정 붙잡고 묻기 시작했다.

“고양이 못 보셨어요? 털은 까맣고,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요!”

“그 고양이가 사실 사람인데 없어졌거든요!”

“유니폼 입은 까만 고양이, 제 후배인데 못 보셨어요?”

고양이가 사람이라느니, 후배라느니 횡설수설하는 대만을,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갔다. 애가 타는 건 정대만 혼자였다.

우리 태웅이 누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해. 내가 찾아서 인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래야 윈터컵도 나가고, 윈터컵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 나도 대학엘 가고…. 아니,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정대만!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달리던 대만의 눈에 까맣고 빨간 것이 휙 스쳐 지나갔다. 담 위로 훌쩍 뛰어올라 이쪽을 내려다보는 고양이는 11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태웅아!”

대만이 고양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런 대만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고양이는 반대편으로 훽 뛰어내렸다. 그 모습에 대만이 서둘러 따라 담을 탔다. 반대편으로 돌아서 가기엔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 사이에 태웅이 또 사라질 수도 있으니 담을 넘어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윽!”

거칠한 벽에 다리가 쓸려 반바지 아래 허벅지에 가벼운 생채기가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긴 바지 입고 올 걸, 뒤늦게 후회해 봤자였다. 애초에 담을 탈 일이 있을 줄 알고 긴 바지를 미리 입고 나오는 사람은 도둑밖에 없을 거다.

대만이 끝내 담을 타 넘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태웅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반대편에서 얌전히 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만은 담을 넘자마자 달려와 고양이를 품으로 확 끌어안았다.

“잡았다, 이놈!”

태웅을 품에 안고 나자 갑자기 안도감이 몰려들어 눈물이 났다. 진짜 태웅을 찾는 동안 오만 생각이 다 났다. 사람도 아닌데 함부로 집을 나가다니. 혹시나 나쁜 사람을 만나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나, 사람이 고양이가 된 게 밝혀져서 어디 연구시설로 끌려가면 어쩌나, 다시는 함께 농구를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고양이가 되어서도 농구공을 가지고 놀던 모습이 떠오르자 대만은 이제 거의 대성통곡을 했다. 그 좋아하는 원온원, 하자고 할 때 자주 해 줄걸.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일들이 떠오르니 태웅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서태웅, 내가 꼭 너 사람 만들어줄게. 뽀뽀 한 번으로 안 되는 거면 하루에 백 번씩 해줄게. 빨리 사람 되어서 농구 하자.”

그런데 고양이를 끌어안고 애처럼 엉엉 우는 대만의 귀에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요, 선배.”

서태웅 목소리?

“너 이제 사람 목소리 나오는구나!”

놀란 대만이 고개를 확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웅과 눈이 마주쳤다. 그건 진짜 서태웅이었다. 품에 쏙 안기는 작은 고양이가 아니라 듬직한 덩치에 기가 막히게 잘 생기고 농구도 잘하는 서태웅.

웨옭.

품 안의 고양이가 울었다. 대만은 아직 눈물이 남은 얼굴로 제 품의 태웅과 제 앞의 태웅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설마 둘로 분열한 건가? 아니면 저건 태웅이의 영혼?

그때 저 멀리서 ‘태웅아!’ 하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만의 품에 안긴 태웅과 앞에 선 태웅이 동시에 그쪽을 쳐다봤다.

웨오오오오옥!

고양이 태웅이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에 가장 큰 울음소리를 내더니 대만의 품에서 뛰쳐나와 그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자애의 품에 덥석 안겼다. 여자애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울면서 ‘다행이다’라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얼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보던 대만이 눈을 갸름하게 좁혔다. 여자애의 얼굴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그때 여자애가 고개를 들어 ‘진짜’ 서태웅을 쳐다봤다.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대만은 그제야 여자애를 알아봤다. 경기 때는 물론이고, 평소 체육관에서 연습할 때도 응원하러 오는 여자애였다. 일명 서태웅 친위대 중 한 명인 것이다. 여자애는 대만과 태웅에게 허리를 푹 숙여 꾸벅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고양이는 여자애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었다. 아마 그도 진짜 집으로 가는 거겠지.

대만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저 까만 고양이가 유난히 태웅이를 닮은 것도. 유니폼을 입고 있던 것도. 서태웅이라 부르면 쳐다보는 것도.

“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고양이를 두고 태웅이니 뭐니 하며 사람으로 꼭 되돌려주겠다고 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한참을 허허, 웃던 대만이 제 앞에 서 있는 진짜 서태웅을 쳐다봤다. 방금 여자애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간 고양이와 역시나 닮았다. 까만 머리를 북북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불쑥 들었다. 그 짧은 사이에 고양이에게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너 오늘 학교는 왜 안 나왔냐.”

대만의 질문에 태웅이 평소답지 않게 조금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잤어요.”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깨워줄 사람이 없어서. 말을 덧붙이면서 머리를 가볍게 긁적인다. 그 모습에 대만이 피식 웃었다. 진짜 고양이와 별반 다를 게 없네. 넌 고양이가 되어도 잘 살겠다, 진짜. 그때 갑자기 서태웅의 얼굴이 불쑥 코앞으로 다가와, 대만이 당황해서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왜 그러냐.”

하지만 서태웅은 그 잘생긴 얼굴을 여전히 대만의 코앞에 두고 대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고양이를 찾아 뛰어다니느라 엉망이 된 머리와 눈물로 얼룩덜룩해진 뺨. 대만도 뒤늦게 제 얼굴 상태가 걱정스러웠는지 손등으로 뺨을 벅벅 문지르며 시선을 피했다.

“아까 태웅이한테 뽀뽀 백 번씩 해준다면서요.”

“그건….”

아까 했던 말을 다 들었구나. 설마 자기에게 해준다는 말로 알아들었나? 그럼 지금 뽀뽀해주길 바라는 건가? 대만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까 그 고양이가 너인 줄 알고 뽀뽀해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고양이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뽀뽀 백 번씩 하려고 한 사람이 나을까. 그냥 후배에게 뽀뽀 백 번 하는 사람이 나을까. 나름 속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던 대만의 입술에 고양이의 젤리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그와 함께 귓가에 울리는 쪽, 소리.

“아직 99번 남았어요.”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황한 대만이 어버버하며 서 있는 사이 태웅이 저만치 걸어갔다. 자신이 지금 두 살 어린 후배에게 키스 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대만의 얼굴이 뒤늦게 확 붉어졌다.

“야, 너 이거 뭔데? 무슨 의미인데?”

서둘러 태웅의 뒤를 쫓아가며 소리쳤지만, 무뚝뚝한 후배는 답이 없었다. 구름은 몽실하고, 바람은 산뜻하다. 서서히 지기 시작한 해가 파란 하늘 구석을 예쁘게 물들였다. 마법과 사랑에 빠지기에 좋은 날씨였다.

 

 

 

 

 

 

 

 

 

 

 

 

 

 

 

 

 

 

 

 

 


 

 

“정대만! 이놈의 자식이 어디서 뭐 하다가 들어와? 그리고 소고기는 왜 죄다 썰어서 방에 가져갔어? 다 먹기라도 했으면 아깝지라도 않지!”

집으로 돌아온 대만을 기다리는 건 화가 난 어머니의 잔소리였다. 저녁 준비를 하려고 열어본 냉장고에 소고기가 사라져서 그 행방을 물으러 대만의 방으로 갔더니 세상에 사라진 고기가 죄다 잘게 썰려 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다. 상온에 얼마나 두었는지 몰라서 아까운 고기를 전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만 했던 어머니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시고 매서운 손길로 대만의 등을 때렸다.

퍽!

학창시절 부 활동으로 배구를 하셨다던 어머니의 손에 얻어맞은 등짝에서는 짝 소리가 아닌 퍽 소리가 났다. 대만은 닿지도 않은 자리에서 올라오는 아픔에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방으로 향했다.

“뭔가 허전하네.”

고양이가 이 방에 머물렀던 시간은 고작해야 한 시간 남짓. 그런데도 녀석이 사라진 공간이 휑하게 느껴졌다.

“정말 닮았었는데.”

대만이 저녁거리로 쓸 소고기를 고양이에게 주어버린 탓에, 그날 저녁 대만의 반찬은 달걀 프라이 세 개가 전부였다. 군말 없이 달걀 프라이에 케첩을 뿌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대만은 고양이를 찾아 뛰어다니느라 기력을 소진한 탓에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날 밤 대만은 유니폼을 입은 고양이가 나오는 꿈을 꿨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반질거리는 눈동자의 고양이가 저 멀리서 애오오옥-하고 길게 울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양이가 점점 더 커지더니, 이내 대만을 내려다보았다. 더는 고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를 보며 대만은 입을 떡 벌렸다.

그때 고양이가 혀를 내밀어 대만의 얼굴을 핥았다. 까끌까끌한 혀가 뺨과 입술을 핥는 감촉에 대만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의 혀가 입술을 파고드는 게 아닌가. 놀란 대만이 눈을 번쩍 떴는데 보이는 건 거대한 고양이가 아니라 서태웅이었다.

고양이의 털처럼 까맣고 윤기 나는 까만 머리카락과 유리알처럼 반질거리는 눈. 그가 다시 입을 맞추고 혀를 집어넣었다. 입안으로 들어온 혀는 고양이처럼 까끌거면서도 말캉하고 따뜻했다. 학교 가야지…, 학교?

“학교 가야지. 일어나. 아들. 알아서 잘 일어나다가 웬 늦잠이야.”

“헉!”

이불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나는 대만을 보며 모친이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대만이 자다 깨어 부스스한 얼굴로 서태웅, 아니 고양이, 아니 고양이 이름도 서태웅이니까 어쨌든 서태웅을 찾으려는 듯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얘가 어제부터 영 이상해. 얼른 나와서 밥 먹고 학교 가.”

꿈이다. 그것도 개꿈. 아니 고양이가 나왔으니 고양이 꿈? 대만이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아직 잠이 덜 깬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진짜 서태웅 혀도 고양이처럼 까끌까끌한가.

 

 

늦잠을 잤으니 빨리 준비하라는 모친의 엄명에 따라 서둘러 씻고 옷을 입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입에 욱여넣고 나왔더니 오히려 평소보다 30분이라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여유롭게 학교를 향해 걷던 대만은 문득 서태웅을 떠올렸다.

‘오늘은 제대로 일어났을까?’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깨워줄 사람이 없어, 늦잠을 자다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니. 정말 서태웅다운 결석 사유였다. 뭐, 하루 결석했으니 오늘은 알아서 잘 오겠지. 설마 이틀 연속 결석을 하겠어.

“아니, 서태웅이면….”

이틀 연속 자다가 결석하기, 충분히 가능하다. 몸은 학교를 향해 걷고 있는데도 자꾸만 정신은 태웅의 쪽으로 쏠렸다. 어제 서태웅이 마음대로 내 입술에 뽀뽀해서 신경 쓰는 게 아니야. 그런 꿈을 꿔서도 아니야. 이건 전부 결석 일수 때문에 부 활동에 지장 생길까 봐 그러는 거니까! 대만은 자신에게 변명하며 방향을 틀어 태웅의 집 쪽으로 향했다.

그간 농구부 애들과 몇 번 오간 적이 있었기에 태웅의 집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태웅의 집 앞에 도착한 대만은 마당에 놓여 있는 태웅의 자전거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정말 아직도 자는 모양이었다.

먼저 벨을 눌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하긴 벨 정도로 깰 녀석이면 어제 학교를 제대로 나왔겠지. 대만은 허리 밖에 오지 않는 낮은 담을 훌쩍 타 넘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태웅이 부모님께 무단 침입을 해서 죄송하다며 마음속으로 사과하면서.

‘이게 전부 아드님을 위해서니까요….’

대만은 크게 난 거실 창문을 통해 마당에서 집 안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거실에 태웅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어쩐다, 고민하며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현관 앞으로 돌아온 대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 고리를 잡아 당겨봤다.

그리고 대만은 스르륵 열리는 문에 경악했다. 아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무방비하냐고. 문단속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니냐! 아무리 건장한 체격의 남고생이라고 해도 위험한 건 위험한 거다. 게다가 얼굴 보고 꼬이는 변태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만은 잔소리를 꾹꾹 눌러 담은 채 태웅을 찾아 집 안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괜히 발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걷던 대만은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 태웅의 방을 찾아냈다. 문을 살짝 열자마자 보이는 조던 포스터에 대만은 안심하고 문을 확 열어젖혔다. 예상대로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서태웅이 보였다. 아침 햇빛이 얼굴 위로 들이치는데도 눈도 부시지 않는지 깊게도 잔다. 이거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따로 없구만. 대만이 혀를 쯧 차며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태웅은 누가 제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대만이 그 무방비한 얼굴을 보다가 감탄을 내뱉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속눈썹이 더 길어 보인다. 한 번 팔랑일 때마다 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다. 얘는 어떻게 자는 얼굴도 잘생길 수가 있냐. 침 자국 좀 흘러 있고 그래야 사람다운 맛이 있지.

서태웅이 잘 생겼다는 건 주변에서 떠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얼굴을 감상하니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고 얼굴 구경하다가 지각하겠네. 대만이 문득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하곤 태웅을 깨우기 위해 그의 어깨에 손을 댔다.

“읏?”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래로 확 끌려갔다.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어 버텼지만, 결국 대만은 침대 위 조금 더 정확히는 태웅의 몸 위에 엎어졌다.

쪽.

쪽? 대만은 제 이마에 말캉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가 떨어져 나가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98번….”

그리고 태웅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도. 방금까지 자고 있던 놈 같지 않게 말짱한 목소리다. 대만은 그제야 제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항의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입술에서 쪽 소리가 났다. 그것도 세 번 연달아서.

“그래도 아직 95번 남았어요.”

“이 자식이!”

좋은 마음으로 후배를 깨워 함께 학교에 가려고 했더니 웬 봉변인가. 대만이 태웅을 밀쳐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태웅이한테 뽀뽀 백 번 해주기로 했잖아요.”

태웅은 뻔뻔했다. 집에서 나가려다가 거실 창으로 대만이 집 앞을 기웃거리는 걸 보고 도로 방으로 돌아와 자는 척을 할 때부터 뻔뻔했다. 그 와중에 일부러 현관문을 열어놓을 정도로 주도면밀하기도 했고.

대만은 고양이를 보고 태웅이가 고양이가 되었니, 키스로 저주를 푸니 마니 했던 부끄러운 행동을 태웅이 자꾸만 굳이 끄집어내자 짜증이 났다. 태웅이 제게 자꾸 뽀뽀하는 것도 저를 놀리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야! 너 그거 언제까지 할 거냐. 너 사람 괴롭히는 것도 정도껏 해라. 내가 우습냐?”

“괴롭히는 거 아닌데요.”

“그럼 뭔데.”

“선배 좋아해서 그러는 건데요.”

“이 자식이 아무리 선배를 좋아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어?”

“좋아합니다.”

태웅의 손이 대만의 뒤통수를 잡고 끌어당겼다. 꿈에서처럼 얼굴이 가까웠다. 대만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키스 한 번으로 남은 뽀뽀 95번 없애줄 수도 있는데요.”

침이 꿀꺽 넘어갔다. 태웅의 얼굴이 진지한 탓인지, 아니면 뽀뽀 95번을 한 번에 탕감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 때문인지 대만은 점점 가까워지는 태웅의 입술을 피하지 않았다.

서태웅의 혀는 정말 꿈에서처럼, 고양이처럼 까끌거릴까.

정답은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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