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대만]墜落
https://youtu.be/Te11UaHOHMQ?si=HqgW5Pu8ngXIu0b1
*타 사이트에서 작성한 글을 옮겨왔습니다.
서태웅이 은퇴했다.
사유는 부상이랬다. 부상이라고 서태웅이 농구를 관둔다?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서태웅은 눈을 다쳐도 농구를 하던 놈이었고, 체력이 바닥이 나도 농구를 하던 놈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은퇴를 했다는 소식은 그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말이었다.
그런 그의 은퇴 전, 마지막 경기는 꼭 끝맺음 같았다. 그것마저 서태웅 같아서 그 누구도 붙잡지를 못했을 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날의 MVP는 같은 팀 팀원이었고, 서태웅의 기자회견은 깔끔했다. 오래 같이 뛰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더이상 타지에 있을 이유가 없어, 그는 국내로 돌아왔다. 북산 팀원들은 여전히 그와 연락을 취하려고 했으나, 서태웅은 그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이런 마음이었을까. 문득 그는 아직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슈팅 가드를 생각한다. 이상하게 답답했다.
집은 넓었고, 쓸쓸했다. 부모님과 누나는 너 그정도면 됐다고, 이제는 그만 하자고 했었다. 시력 저하는 물론이고, 라고 시작하는 의사의 말은 이제 외울 정도였다. 제 몫에 더한 몫으로 뛰던 몸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도 여전히 농구가 하고 싶었다.
서태웅은 농구를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농구계는 당연 난리도 아니었다. 돌연 은퇴한 서태웅 소식으로 뜨거웠다. 정대만은 그 소식에 만우절도 아니면서 그딴 말 내뱉지 말라고 성을 내었으나, 태섭이 보여준 기사에 입을 다물었다. 야, 웃기지 말라고 그래. 스산한 분노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서태웅이 남긴 열 한자리의 번호는 이제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들리는 얘기로는 풍전전 때 다친 눈도 그렇고……,"
태섭이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정대만은 당장 그를 봐야 할 것 같았다. 네가 포기하면 어떡해. 이 미친 새끼. 정대만은 여전히 농구를 한다. 해야지 살아있음을 느꼈으니까. 다음에 같은 리그에서 뛰어요. 팀이면 더 좋고. 그렇게 약속했던 날을 기다리며. 같은 리그에서 다시 뛰고 싶었으니까. 이제 그 약속은 거짓말이 되었다. 말갛고 깊은 눈으로 말하던 그날은.
"형."
"서태웅 집 아는 사람 있냐?"
정대만의 말에 있겠냐고 대꾸하려던 태섭의 말을 자른 건 권준호였다. 내가 알려줬다는 말은 하지 마. 권준호에게 서태웅이 연락한 건 의외였다. 준호는 나중에 놀러 오세요. 하면서 알려준 주소를 대만에게 가르쳐주었다. 네가 에이전시 들들달달 볶아서 알아냈다고 그래라. 권준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태웅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마 그가 알았다면 여전한 표정으로 알려주지 마시라니까. 할 테였지만.
"간다."
정대만은 옷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눈도, 무릎도……. 채 이어지지 못한 단어들이, 문장들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굴러다녔다. 도대체 왜 그랬어. 왜. 몇 년이 걸려도 금방 돌아올 수 있을 텐데. 차는 매끄럽고 속도감있게 도로를 내달렸다. 망할 서태웅.
쾅쾅. 두드리는 문소리에 서태웅은 한숨을 쉬었다. 강백호 아니면 송태섭이겠지. 조금은 싸가지 없는 생각하며 느릿하게 문을 열어준 그곳에는 아까까지 생각'만' 했던 사람이 눈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세요."
반발자국 비켜주자, 남자는 머뭇거림도 없이 그곳을 파고 들었다. 정대만은 무어라 해줘야지, 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입을 꾹 다물었다. 침전되어 있는 얼굴에 그늘진 그림자가, 꼭 제 모습 같아서. 멋대로 엇나가던 때 같아서.
"너 진짜 관뒀냐?"
"네."
서태웅은 괜찮아보였다. 정말 괜찮아 보였다. 다시 뒤를 돌아 얼굴을 확인했을 때, 침전된 낯에 얹어진 그림자는 없었다. 왜? 물음이 불쑥 튀었다. 서태웅은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며 답했다.
"몸이 안 좋아서요. 시력도, 무릎도……."
"야."
음, 이게 아니군. 서태웅은 단순하게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분노한 얼굴. 부상을 당하고 이겨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정대만은 그의 멱살을 잡았고, 서태웅은 순순히 멱살을 잡혀주었다. 언제는 같은 팀에서 뛰자며! 기어코 고함이 귓가를 때렸다. 서태웅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저도 뛰고 싶었어요. 이 문장은 나오질 못했다. 정대만의 분노에 묻혀.
"그런다고 포기를 해?!"
"림이 안 보여요."
하아. 내가 이것까지 꼭. 서태웅은 좀 짜증이 났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문장을 내뱉게 하는 게. 그 문장을 내뱉자마자, 뭐라하던 입이 급히 다물린다. 흔들리는 동공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태웅은 추가적인 문장을 덧붙인다.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에요."
"……."
"시력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랬던 거예요. 고칠 수 없다던데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더 나빠질 거라고 그러길래."
서태웅은 차마 울어요? 라는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이미 그러기도 전에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아서 엉엉, 울고 있었으니까. 서태웅은 따라 마주 앉으며 형, 하고 불렀다. 그제야 그는 제가 그에게 한 번도 형이라 부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울음이 메마른 바닥을 적신다. 서태웅은 그제야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치고 올라옴을 느꼈다. 몇 번이고 삭혔던 감정. 덤덤한 감정 속에서 차오르는 울음. 태웅아, 태웅아, 그는 울면서도 제 이름을 부르짖었고, 그 품에 저를 가두고 등을 쓸어주었다. 울음을 그렇게 내지르면서도. 서태웅은 그를 끌어안고 그제야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요."
그제서야 서태웅은 제가 추락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도 올게."
오지 마세요. 서태웅은 단호했다. 눈물로 붉어진 눈을 하고서도. 정대만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죽어버린 그의 핸드폰을 가르키며 연락 제때 받아라. 할 뿐이었다. 선배. 고집부리지마, 새꺄. 고집은 선배가 부리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부러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약 잘 챙겨 먹고."
"네."
"약속해."
서태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새끼손가락을 까딱이는 그를 보다가 순순히 손가락을 엮었다. 내일 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정대만은 그게 암묵적인대답인 걸 알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곳에 오롯하게 혼자 남은 서태웅은 멀쩡한 눈 한 쪽을 가리고 흐릿한 시야만 남은 우측 눈동자로 현관을 바라보았다. 어린 날에 두 눈을 감고 공을 던졌던 날을 떠올렸다.
찌릿한 통증에 서태웅은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
추락, 또 추락이다.
墜落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그날 가면서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닌지 정대만은 줄기차게도 연락을 해왔다. 서태웅은 뜀박질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메세지를 보냈다.
[없어요.]
[돈카츠 포장해 간다.]
이럴거면 왜 물어보는 거지. 서태웅은 그 말에 [네.] 하고 답을 보내고는 다시 뜀박질을 이어갔다. 농구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서태웅의 루틴이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정대만과 재회 이후, 밀려오는 연락을 건네주느라 꼬박 하루를 반납해야 했다. 같은 팀원들 연락 보다는 북산 팀의 연락이 먼저였다. 우는 이들과 잔소리 하는 이들에게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죠, 뭐. 네. 하는 말 뿐이었지만 서태웅은 조금 위로를 받았다.
[한 시간 뒤 도착.]
휴가 시즌인 건 알고 있지만, 할일도 없으신가. 어차피 비밀번호는 알고, 멋대로 들어가도 상관 없는 집이라 서태웅은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넣고 다시 뜀박질을 하다, 잠시 멈춰서서 답을 보내었다.
[집에 들어가 계세요.]
문장을 뒤로 하고 서태웅은 다시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달리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런닝?"
서태웅은 귓가에 흐르는 노래를 끄고,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 있어도 되는데요. 나도 방금 왔어. 정대만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도 서태웅은 별다른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은 괜찮은 거야? 다정한 말에 서태웅은 입을 다물었다.
"태웅아."
무릎이랑 어깨 재활 치료도 겸하고 있어요. 정대만은 길쭉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이 등을 보고 있자면 늘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굳건한 에이스. 여전히 곧은 등, 선수인 걸 티내는 몸. 그리고,
"선배?"
여전한 눈. 여전한 얼굴. 다정한 어조.
"응?"
"뭐해요."
아니야, 아무것도. 정대만은 고개를 내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서태웅은 제 옆에 서서, 묻지도 않은 근황을 늘어두는 그를 보았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모습이 좋았다. 농구를 하게 된 뒤로 그는 수도 없이 빛이 났다. 그래서 더 욕심을 냈을지도 몰랐다. 다시 같이 뛰고 싶어서.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그대로였으니까.
"태웅아."
"네."
너 아직도 나 좋아하냐? 접은 적도 없는 마음을 들쑤시는 건 늘 그의 몫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 뒤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하는 얼굴에 정대만은 눈을 깜빡이고, 관자놀이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그냥. 이유도 없이 그냥. 서태웅은 한숨을 쉬며 그가 가져온 봉투를 가로 채었다. 어, 야! 서태웅은 제 몫으로 보이는 일회용품을 집어 들고 봉투를 다시 그의 손에 쥐여주며 그랬다. 가세요. 뭐? 가시라고요.
"서태웅!"
제 마음 그만 들쑤시고 가시라고요. 서태웅의 말이 길어진다. 표정 하나 없던 눈에 분노가 시린다. 아, 다행이다. 정대만은 그가 덜컥, 죽어버릴까 겁이 났었다. 침전된 낯에 드러나는 감정들이 그가 살아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정대만은 가시라고요, 하면서도 밀어내지도 않는 그를 보며 그랬다. 밥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데, 좀 봐주라. 뻔뻔스럽다.
"하."
"응? 태웅아."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정대만은 안다. 그게 허락이라는 건. 그는 제게 약했으니까. 제가 그 한정으로 예민하듯이. 줘, 안에 넣게. 됐어요. 삐쳤냐? 형. ……어?
"적당히 해요."
"……."
"제 마음 헤집어 두시는 것도, 저 찾아오는 것도."
날카로운 말에 정대만의 발걸음이 멈춘다. 서태웅은 그때처럼 제가 추락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정대만을 욕심낸 대가가 이런 것인가. 서태웅은 멈춘 그를 애써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벌어진다. 서태웅은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탁, 탁탁.
탁.
서태웅이 벌린 거리만큼 좁혀진다. 등에 들러붙는 온기가 뜨거웠다. 서태웅은 바닥에 부딪쳐 부서지기 전에 누군가가 붙잡는 손길에 멈추어선다.
"발걸음도 빠른 새끼……."
등에 닿는 숨결에 서태웅은 고개를 숙이고 운동화 발끝을 바라본다. 반 걸음 뒤에 있는 그의 발끝도.
서태웅은 문득 울고 싶어진다.
―
"서태웅은 좀 어때요?"
오랜만에 만난 태섭은 그리 물었다. 정대만은 그가 괜찮은지에 대해 고찰해본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운동도 꼬박꼬박 하고, 재활도 꼬박꼬박 나간다. 약도, 밥도 잘 챙겨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괜찮은가? 정대만은 스스로 내린 질문에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 그는 안 괜찮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 알맹이는 아니야."
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놈들이 더 무서웠다. 차라리 제 앞에 있는 사람처럼 온 몸으로 티내는 게 낫지. 고요한 놈들은 가라앉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여전히 선배 좋대요? 태섭의 말에 정대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맞네."
"……."
"또 헤집은 건 아니죠?"
"……."
진짜 쓰레기네. 날선 말에도 정대만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서태웅은 연락을, 방문을, 모조리 거절했다. 정대만은 무서웠다. 내가 쟤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그 애의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수도 없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술기운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러운 마음처럼 빙글빙글. 살아 있었네. 태섭의 말에 그의 고개가 느릿하게 들린다. 여전히 잘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계속 제 머릿속을 헤집던.
"마실래?"
"선생님한테 혼나요."
안 그렇게 생겨서 바른 사나이라니까. 태섭의 말에 눈을 세모낳게 뜬 서태웅은 이제 본론을 말하라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건 아니고, 저 앞에 취한 아저씨나 좀 주워가라. 죽을래? 정대만은 웅얼거리며 여전히 바르게 서 있는 그를 보았다. 어, 서태웅이다.
"하아."
"왜애……."
길게 늘어지는 말이 꼭 오래 들은 테이프 같았다. 서태웅은 가볍게 정대만을 끌어당겨 팔을 제 어깨에 올려두었다. 다리에 힘 좀 주세요. 태섭은 가만 두 사람을 보며 그랬다. 네가 이해 좀 해라, 태웅아.
"네?"
"그 형이 겁이 많아서 그래."
서태웅은 뒤늦게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은 이거면 됐다고 생각하며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인사를 해보였다. 정대만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흔들림없이 꾸벅 인사를 해보인 서태웅을 그대로 자리를 떴다. 태섭은 거멓게 죽은 서태웅의 눈동자를 곱씹었다. 사실 그는 정대만이 거짓말을 치는 줄 알았다. 정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태섭은 마지막 남은 술을 털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야지, 이제. 여전히 그 눈동자가 둥둥 떠다녔으나, 태섭은 곧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알았다. 추락한다고 해서 무조건 죽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는 서태웅의 상태를 북산 팀에게 넘겨주며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아까 계산하고 가시던데요?"
"아."
태섭은 픽 웃으며 고개를 숙여 밖으로 나섰다. 서태웅은 필시 다시 도약하여 비상할 테였다.
옆에 정대만이 있으니까.
***
"태웅아아."
길게 늘어지는 말이 엉망이다. 그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그의 겉옷을 벗겨주고 침대를 내주었다. 취한 정대만은 무방비하다. 그런 무방비함을 서태웅은 싫어했다. 으음, 뒤척이는 몸에 맞춰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려던 찰나에. 손목이 붙잡혔다.
"가지 마……."
울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문장이 바닥을 나뒹군다. 흐윽, 왜 우냐고 해야 하는데. 묻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 왜 안 봐. 나 좀 봐봐. 태웅아, 제발…….
"선배."
"……."
형. 이것 좀 놔주세요. 싫어. 잠시만요. 싫어. 갈 거잖아. 안 갈게요. 싫어, 싫어. 잠깐이면 돼요.
손목에 닿은 체온이 뜨거웠다. 떼어버리고 싶은 걸 꾹 참으니 금세 떨어졌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 아래에 앉아 그를 마주보았다. 울고 싶은 건 나인데. 왜 자꾸 당신이 우는지. 그는 손을 뻗어 눈가를 닦아주었다. 아주 오랜만의 다정이었다.
"그만 울어요."
"……흐윽, 윽."
제가 뭐라고 이렇게 울어요. 차마 그 말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무너질 듯이 울 것 같아서. 그래서 그는 연신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말라는 말만 내뱉었다. 그가 너무 많이 울어, 제 눈물은 나오지도 않으니 울지 말라고. 그러니 그만 울라고.
눈물의 몫을 남겨 달라고.
"네가 죽을까 봐, 겁이 나."
우스운 소리. 서태웅은 죽지 않는다. 계속해서 추락할 뿐. 추락하다보면 부서지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서태웅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그러지 않기 위해 그는 움직였고, 귀찮은 연락들을 이어갔다. 그는 엇나가는 법을 모른다. 그렇기에 추락을 선택한 것이었다. 추락 또한 살아있기에 가능하니까.
"안 죽어요."
네가, 네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게 네 발목을 붙잡았으면 좋겠어. 울음이 점칠된 문장에 이미 그러하다는 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미웠기 때문이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서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이불을 더 끌어올려주며 속삭였다. 이제 자요.
"키스해 줘."
"……."
서태웅은 붉어진 눈만큼이나 붉은 입술로 속삭이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붙잡혀 그대로 주저앉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멱살이 잡힌 채로 끌려가 입술이 닿았다. 언제나 바라왔던 것인데. 서태웅은 가볍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그만큼 정대만이 다가왔다. 그는 그의 무릎이 다칠까, 몸을 침대로 밀며 그만큼 다가왔다. 여전히 입술은 그대로였다.
"사랑해."
"형."
진짜야. 진심이야. 한 번도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연신 터지는 고백에 서태웅은 눈을 감고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대며 속삭였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잔인하게 굴어요. 왜 나한테 이래요. 왜 자꾸…….
"사랑해. 사랑해."
서태웅은 다 젖은 그의 뺨을 쥐고 입술을 맞대었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가 섞였다. 숨을 나눠 마시는 동안에 그들은 더 붙을 틈도 없음에도 연신 몸을 붙였다.
오랜만에 나눈 키스는 짠 맛이었고,
서태웅은 더는 추락하지 않았다.
이윽고 비상飛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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