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다 (1)
독고유진이라는 남자는 의외로 저돌적인 면이 있어서 전화 한 통으로 당장 내일모레의 약속을 잡고는 했다. 약속 상대가 가용 시간이 자유로운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도진은 글을 팔아먹는 소설가였다. 급한 일도 없고 선약도 없는 느긋한 생활을 이어나가던 참에 걸려온 전화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안양으로 취재를 나갈 건데, 같이 갈래?“
묘하게 익숙한 지명이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 같은데 왜 기시감이 드는 걸까.
“폐건물을 좀 둘러볼까 싶어.”
“폐건물이요?”
“예전에는 무슨 기도원이었다나. 나도 슬슬 차기작 준비를 하려고. 배경 조사랄까.”
기도원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머리를 쿡쿡 쑤시는 감이 있었다. 도진은 이물감의 원인을 잠시 생각했으나 달리 떠오르는 건 없었다. 실상 그에게 있어 과거의 기억이랄 것은 대부분이 흐릿해서, 떠오르지 않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요, 그럼.”
소설가라는 인종은 대체로 한가해서 유진은 출퇴근 노동자라면 꿈에도 꾸지 못할 시간에 약속을 잡았다. 천안에 사는 유진이 안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도진을 픽업하는 루트였다. 모레 열한 시 쯤 갈 테니까 안양에 도착해서 같이 점심을 먹을까. 어떠해도 상관이 없는 도진은 그래요 그럼이라는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동거인 윤필규는 그를 아니꼬워하는 듯보였다. 몇 년 전 유진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았던 장미꽃다발이 문제였다. 튀지 않는 채도의 붉은 꽃잎을 한아름 들쳐맨 장미를 도진은 며칠이고 꽃병에 장식해두었다. 필규는 당장이라도 내다버리고 싶은 눈치였지만 안타깝게도 도진은 남의 시선을 모른 체 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선물로 받은 장미는 아주 아름다웠고 심미안이 덜한 그의 눈에도 장식으로 알맞았으며 겨우 그런 걸 거실 한구석에 둔다고 유진의 어떠한 청혼을 받아들이는 게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필규는 상식을 저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시간을 이기지 못해 꽃잎이 하나하나 시들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미상의 상쾌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안양을 가신다고요?”
언제나처럼 밤이 다 되어서야 귀가한 필규가 식탁 앞에서 젓가락을 들고 물었다. 일과 중에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남성용 향수의 잔향이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좋은 향이었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반찬의 향과 어우러지지는 못했다.
“멀리 가시네요. 차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지 않나?”
평소의 도진의 생활 반경을 고려한 말이었다. 면허가 없는 도진은 근처 도시까지 나가기 위해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 시내까지 나간 후 배차 간격이 좁지는 않은 버스를 골라 타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수요가 없는 택시는 저 멀리 지하철역 근처까지나 가야 근근이 잡히는 수준이었다.
“그런 거 같아.”
“안양에 뭐가 있죠? 청계산?”
“무슨 산이랬더라…… 잘 모르겠어. 무슨 산에 있는 폐건물이래. 예전에는 기도원이었다는데.”
폐건물이라는 말에 필규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뒤이은 기도원이라는 말에는 둥그렇던 눈을 반쯤 감아 가늘게 만들었다. 호러 소설 작가와 추리소설 작가의 답사라고는 하지만 장소가 참 기이하다는 자각은 도진 스스로에게도 있었다.
“폐건물은 대부분 사유지에 있을 텐데요. 출입 허가는 받으신 거 맞아요?”
사유지에 허가 없이 들어가면 원칙적으로는 무단 침입이 된다. 과연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그가 신경쓸 만한 부분이다 싶었다. 물론 도진은 그런 걸 유진에게 물은 기억은 없다.
“그렇지 않으려나……”
하고 말해두는 게 유진의 명예와 필규의 안심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 최선이었다는 뜻이지, 말을 뱉은 후의 결과가 긍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필규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듣고 무심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조심히.”
하지만 그가 좋다는데 초를 칠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진 사람 또한 되지 못했다.
백도화는 정오가 되기 전부터 집 밖으로 나와 특유의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는 이웃사촌을 보고 적잖이 놀란 얼굴을 숨길 생각도 않았다. 언제나처럼 입술 사이에 꽂혀 연기를 풀풀 피워내는 던힐 육미리는 특유의 묵직한 향을 풍기며 도진에게로 다가왔다.
“어디 가?”
그는 언젠가부터 스스럼없이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도진은 어쩐지 그를 마주하고 있으면 편한 말이 입에 붙지 않아 반말로 돌려주지는 못하고 있다.
“야, 약속이 있어서요.”
"서점에 가는 게 아닌가 보다?“
“네?! 네…….”
도진은 어느새 귀 밑까지 길어버린 새카만 머리칼을 괜히 만지작거리다가 되물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서점에는 매일 같이 가잖아. 약속이라기보단 일과지.”
치켜올라간 두 눈이 테가 두꺼운 안경 뒤에서 사람 좋게 휘었다.
“뭐, 어디 출판사 미팅 가나? 태워줄까? 나 오늘은 시간 많아.”
대답도 듣지 않고 그는 필터 바로 앞까지 알뜰하게 빨아들인 꽁초를 근처 재떨이에 툭 털어넣었다. 그는 차가 없으니 이대로 아파트를 나가 언덕길을 걸어내려간 다음 저 아래 시내에서 버스나 택시를 잡아타지 않을까 하는 추론 끝에 나온 행동이었으리라.
“아뇨… 아는 분이 데리러 오신다고 해서요.”
“와, 진짜? 누구?”
“동료 작가님이…….”
“작가도 동료가 있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이, 있죠. 책을 같이 쓰기도 하고…….”
눈을 가늘게 뜬 이웃사촌은 표정으로 보아 책을 같이 쓴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좋은 점 하나는 대화의 흐름을 능숙하게 조절한다는 것으로,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기세를 이어갔다.
“잘 다녀 와. 오늘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들었는데……. 조심하고.”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남을 걱정하는 건 상냥에서 우러나는 것일지 단순히 못미덥다는 평가에서 기인하는 것일지 고민하면서 도진은 아파트 정문으로 발을 옮겼다. 우산은 결국 챙기지 않았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면 되겠다 싶었다. 이런 사고의 패턴으로 집에는 늘 싸구려 비닐 우산이 쌓여 있었고 지금도 그러했다.
네비게이션 앞 거치대에서 종일 검은 액정만을 보이고 있던 스마트폰이 밝게 빛났다. 교수님이라는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가 잠시 화면에 떠오른다. 반투명한 메신저의 알림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고양이는 새까만 털이 반지르르하다. 애정을 받고 자란 동물 특유의 나른함이 배경화면을 느슨하게 채우고 있었다.
교수님 「도착했니?」
운전석에 앉아 전방을 주시하던 유진이 밝아진 액정을 흘끔였다. 도진의 시선 역시 액정에 머무는 것을 확인하곤 다소 머쓱한 얼굴이 된다.
“대학 은사님이셔. 저 분도 이래저래 관심이 많으셔서…….”
은사님이라면 그도 민속학과인 걸까, 하고 조수석의 도진은 생각했다.
유진은 민속학과를 나왔다는 사실을 호러 작가로서의 셀링 포인트로 잡고는 했다. 많은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조각보처럼 엮어 만든 앤솔로지의 작가 소개란에는 학력을 명시한 작가도 그렇지 않은 작가도 (혹은 그럴 수 없었던 작가도) 있었는데, 유진은 언제나 민속학과 출신이라는 소개를 첨부했다. 그 소개문이 그의 무속적인 성향의 글에 어떤 근거를 가져다 주는 건 분명했다.
“버려진 기도원에 취재를 나간다고 얘기드리니깐 답사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시더라고.”
“답사요…….”
“민속학에서도 종교를 특히 연구하시는 분이거든.”
민속학에서 종교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도진은 알지 못한다. 유진은 다시 까맣게 돌아간 액정에서 시선을 뗐다. 차를 몰며 메시지에 답장을 하는 기예는 보이지 않을 모양이었다.
잠깐의 간극이 스며들었다. 자동차가 주행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양이…… 키우시는 거죠?”
“응? 어어, 그렇지. 두 마리 키워.”
“검은 고양이랑…….”
“노란색 고양이. 둘이서 얼마나 잘 노는지 몰라.”
“고양이는 원래 두 마리씩 키워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영역 동물이니까…… 두 마리 키우는 사람이 또 있어?”
“집 근처 서점에서 두 마리를 키우더라고요…….”
유진은 그 서점에서 도진에게 새빨간 장미 꽃다발을 건넸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건 유진도 같았는지, 잘 정리된 턱수염을 슬슬 쓰다듬으며 곧장 서점의 외관과 사장의 모습을 떠올려냈다.
“거기서 고양이를 풀어놓고 기른다는 말이지. 넓으니까 상관 없을 거 같긴 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들은 곤란하겠네.”
서점에 앉아있으면 다가와서 머리를 비비곤 하는 고양이들은 옷깃에 꼭 털을 남기고 갔다. 유진의 말이 틀리진 않을 것이었다.
그 뒤로 평범한 대화가 오갔다. 유진은 요즘 TV에서 유행인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TV를 잘 보지 않는 수준을 넘어 전원을 켜는 일도 드문 도진은 마치 별세계의 소식을 듣듯 유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픽션에서의 로맨스와 논픽션에서의 로맨스. 아무래도 만들어진 이야기보다는 만들어지지 않은 이야기가 좀 더 신선하게 비치는가봐. PD들의 입김이 닿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서도.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은가 봐…….
“그러고 보면 강 작가님도 보시는 것 같더라.”
“강 작가님……? 아, SF 쓰시던?”
“응. 인스타에 댓글도 달아주셔. 저도 요즘 이거 보는데 재밌더라고요~ 하시면서.”
강 작가의 사람 좋게 생긴 처진 눈을 생각한다. 상냥한 얼굴로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플롯과 그 안에서 고깃조각으로 흩날리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쓰임새에 대해 해설해 주곤 했다. SF와 슬래셔의 결합은 아이러니하게도 각각의 특성을 상쇄시켜 차라리 호러에 가까운 작품이 나오곤 했는데, 강 작가의 소수의 팬들은 그런 초월적인 면을 사랑했다.
“되게 취향이 넓으신 분 같아.”
유진은 신기하다는 듯 웃으면서 왼눈 위로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한쪽 눈이 반쯤 가려진 상태에서도 운전을 잘만 한다.
“취향이 넓어야 좀 더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거겠지, 역시……. 그래,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같은 건 어때?”
일단은 추리소설가로 분류되는 도진은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동료 작가의 제안을 흘려보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의 울렁임이 심해졌다. 안양에 도착해 점심으로 먹은 우동이 도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단순 멀미와는 이상하게 결이 다른, 기분 나쁜 일렁임이 머릿속에서 세 바퀴를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다음에는 왼쪽으로 한 바퀴 그리고는 방향을 바꿔 앞쪽으로 두 바퀴를 돌았다.
끔찍한 어지럼증은 뇌리 한구석에 숨죽이고 있던 기시감을 계속해서 꺼내왔다. 포장된 듯 되지 않은 듯 덜컹이는 산기슭의 도로는 언젠가 분명 지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도진은 조수석에 앉아 가벼운 멀미를 느꼈고, 운전석에 앉은 동행인에게 창문을 열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 열어도 된다며 상냥한 말투로 돌려주었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필규도 아니었고, 서점 주인인 현도 아니었고 유진도 아니었다. 도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속 안 좋아?”
조수석을 흘끔이던 유진이 물었다. 걱정스러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조, 조금…….”
“거의 다 왔어. 오 분만 참을 수 있어? 세워줄까?”
“아뇨, 괜찮아요…….”
잊고 있었던 기억이 어지럼증에 휘말려 아지랑이처럼 눈앞에서 일렁였다. 순간순간의 장면이 두서없이 떠오르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천장이 아주 높았던 건물.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바라보고 있으면 위험하다며 손목을 잡아 끌었던 동행인. 이게 이곳의 신이라는 거야. 예수를 닮았지. 하지만 그것은 예수가 아니라는 듯했다. 이건 예수가 아니라 그의 화신이야. 예수가 아닌 예수의 화신을 믿는 거야. 예수의 화신이 곧 예수인데 뭐가 다르냐고? 다르지. 예수는 하느님의 화신인데 그러면 이건 하느님의 화신의 화신이 되는 거니까. 아웃소싱도 이 정도면 심하지. 결국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거야.
“다 왔어, 다 왔어. 저기 보여? 저 5층짜리 건물.”
유진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들었다. 나무와 풀만이 즐비한 산비탈에 오도카니 세워진 직사각형의 건물이 보였다. 원래는 베이지색에 가까웠을 외벽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먼지와 나무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층마다 난 창문 안으로는 컴컴한 어둠만이 보였다. 슬슬 먹구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이 배경이 되어 상당히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 음…….”
도진이 말을 고르고 있으니 차는 어느새 건물 앞 공터에 멈춰섰다.
십자가는 물론이고 기도원이라는 간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본래 문이 있었을 장소에는 깨진 유리조각만이 산산이 널려있었다. 갈 곳 없는 누군가가 침입을 위해 문을 깨부순 걸까. 유진은 도진의 상태를 살피는 듯 싶다가, 이젠 괜찮다는 도진의 대답을 듣고는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켰다.
“조심히 들어와.”
유리조각을 밟지 않도록 노력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최고층까지 뻥 뚫린 천장이다. 각 층을 잇는 계단이 건물의 양쪽에 하나씩 있고, 계단에서 이어지는 복도는 건물의 가장자리를 둘러싸듯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 도넛 모양의 복도가 2층부터 5층까지 층층이 쌓였다.
최상층에서 이쪽을 굽어보는 게 있었다. 양 팔을 벌린 커다란 예수상이다. 어린양을 끌어안기라도 하려는 듯 팔을 가볍게 벌린 그것은 대략 3미터 정도의 석재상으로, 그 뒤에 난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덕에 손전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건물의 내부는 밝았다.
예수상 바로 밑, 4층 난간 앞에는 계단 모양의 단상이 있었다.
이곳의 교주는 단상에 서서 아침마다 설교를 하곤 했다.
동행인과 함께 1층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그의 설교를 들으며 예수상을 등에 업고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을 도진은 구경하곤 했다.
그는 끝내 5층 난간에 목을 매고 오줌을 지리면서 죽었다.
아침에 방을 나왔을 때 단상에 선 교주의 뒷모습을 보고 도진은 자신이 설교에 늦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교주는 서 있지 않았다. 서 있을 수 없었다. 그저 목이 윗층 난간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아직도 매달려 있다. 선연하게 보인다.
난간이 한두개 떨어지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지금도 저 위에서 예수를 등지고 매달려 있다.
그런 환상이 뚜렷하게 망막에 새겨진다.
“도진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진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좋은 것도 아닌데.”
어깨가 흔들렸다. 시야가 흔들렸다. 한순간 시야와 함께 흔들리던 시신은 초점이 맞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숨을 짧게 들이켰다. 환상으로 먹먹하던 머리에 산소가 돈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5층 난간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
“저, 저…….”
나가 있어도 될까요, 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급하게 삼켰다. 유진은 물론 혼자서도 폐건물을 잘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건물 밖에 혼자 남겨진 자신이 어떤 상태에 빠질지 도진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유진과 함께하는 편이 낫다.
유진은 이상하게도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크게 뜨인 두 눈이 이쪽을 응시한다. 그 얼굴이 왠지 웃음이 나오는 데가 있어서 도진은 입가를 비틀었다. 뺨의 근육이 경련하는 게 스스로에게도 느껴졌다. 이 사람은 왜 무서워하고 있는걸까.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와 본 적이…… 있어?”
“기도원에, 잠깐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저도 모르게 다리가 움직였다. 무언가에 홀리면 이렇게 되겠거니 싶었다. 철근이 튀어나온 계단을 오르면 피어오르는 흙먼지는 침입자가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유진은 당황스러운 발걸음으로 도진을 뒤따른다. 그의 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휴대폰의 손전등이 앞길을 반쯤 비췄다.
“여기가, 기도실이었는데…….”
2층은 전부 기도실이었다. 지나쳐 온 1층에는 신도 상담용으로 쓰이는 응접실과 데스크, 그리고 식당이 있었다. 기억을 떠올리고 나니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게 어쩌면 정말이지 현실 감각이 마비된 게 아닐까 싶었다. 3층부터 최상층인 5층까지는 숙박할 수 있는 객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들어 둔 작은 소파 세트가 있었는데 근처의 벽에는 늘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걸려 신도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도진아, 잠깐만. 도진아.”
뒤에서 덥석 팔을 잡혔다.
“도진아, 혹시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네?”
신도도 교주도 화신도 없는 텅 빈 기도원에 퍼지는 거라곤 신을 믿지 않는 두 사람의 목소리 뿐이라니.
잡힌 팔에 힘이 실렸다. 어딘가 절박한 맛이 있는 손길이었다. 기세에 밀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등에 벽이 닿았다고 생각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밀려나는 이건 벽이 아니라 문이었다. 인기척 하나 없는 기도실 안쪽으로 도진은 밀려난다.
“너…… 그런 거 봐?”
“예?”
“좀 이상한 거 있잖아. 원래 이런 말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거 보여?”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방금 난간에…….”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
유진은 캐묻던 입을 급하게 다물었다. 도진도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내지 않을 눈치 정도는 있었다.
숨소리를 죽여도 폐를 오가는 숨결만은 피부로 느껴진다.
간지러웠다.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하는, 구둣발 소리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하나 이상의 발소리가 섞여 조화롭지 못한 화음을 만들고 있었다.
“폐건물도 참 토지 낭비인데 말이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유진은 팔을 뻗어 열려있던 기도실의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조금의 틈을 두고 멈춘 문에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게 들어올만한 곳도 아닌데요, 뭘.”
또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적당히 낮고 귀에 잘 들어오는 톤이다.
도진은 참을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유진으로 가득 찬 시야가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상이 두 개로 맺힌다. 놀란 유진의 눈동자 네 알이 이쪽을 향한다. 환각이 어른거리는 끔찍한 세계로 떨어진다. 역시 아까 난간에 그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게 맞았잖아. 그 사건은 아직 끝나질 않았구나.
그럼 여태까지 내가 겪어왔던 현실은?
그걸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건가?
그런 게 현실일 리 없었는데도…….
자아가 의식의 해구 저 아래로 수없이 가라앉는 걸 느끼면서 도진은 도로 길어버린 머리칼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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