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다 (2)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깐. 내가 여태 네 생일 까먹은 적이 언제 있었어. 어제는 진짜 바빠서 연락을…… 아니, 박 교수. 박 교수~?”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전화의 참여자가 아닌 대림에게도 들릴 정도니 언성이 여간 높았던 게 아니다. 운전석의 상호는 이십 분 가량 귓가에 대고 있던 스마트폰을 겨우 좌석 사이 수납 공간에 내려두고는 동행자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일을 까먹으셨나 봅니다……?”
대림이 눈치도 모르고 올라가는 입가를 가리며 물었다.
“그제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죠. 근데 어제 사건이 정말 물밀듯이 들어와서 깜빡 잊어버렸지 뭡니까. 달력 볼 시간도 없었어요.”
“다음부턴 휴대폰 달력에 저장해 두시는 건 어때요.”
“아아, 정말이지 그래야겠어요. 내년에도 이 꼴을 볼 순 없으니…….”
부부의 연을 끊어서도 지독하게 얽히는 관계에 대해 대림은 생각했다. 상호와 그의 전처는 아주 특수한 상황의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금슬도 좋고 둘 사이에 악감정도 없지만 부부로서는 도저히 성립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에 의해.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범주의 이유였고, 보편성에서 조금 벗어난 인생을 살고 있는 대림은 그것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팀장 강상호는 풀기 힘든 퍼즐을 푸는 데에 열중하고는 했다. 사람의 목숨을 조각으로 삼아 만든 완전 범죄라는 퍼즐은 흔해빠진 범죄로 무료해진 그의 두뇌에 번쩍이는 섬광과 같은 자극을 선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 사이에서 그 정도의 자극을 줄 수 있을 만한 부류는 아주 희소했고, 때문에 그는 그와 비슷한 무료한 인간들을 모아 고난이도의 퍼즐을 만들어내라며 부추겼다.
죄 없는 사람들이 퍼즐의 조각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상호는 시신으로 완성된 문제를 푸는 데에 푹 빠져 그것이 한때 살아 숨쉬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야 말았다. 인간의 목숨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그저 단기적인 즐거움만이 남았을 즈음 상호는 당시의 아내였던 박 교수에게 취미를 들키게 된다.
평균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장 신고라도 했을 테지만 박 교수는 그러지 않았다. 상호의 기괴한 지적 취미를 이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녀는 자신이 상호의 곁에 남았다간 자신조차 문제의 구성 요소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 즉시 이혼 서류를 디밀었다. 이혼과 감방의 이지선다에서 상호는 아무래도 후자를 선택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잘 지내시네요, 여전히.”
“우리요? 우리야 잘 지내죠. 새해에는 같이 해돋이도 보고 왔고요.”
참으로 중년 부부의 스테레오타입이군.
“그보다 이대림 씨 얘기나 좀 더 해 봐요. 기도원에서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고요?”
상호의 두껍고 짧은 눈썹이 브이 자 모양을 만들었다. 설렘을 주체하지 못해 얼굴을 찌푸리고야 마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닮은 표정이었다. 대림은 창에 팔을 괴고 온통 산 뿐인 바깥을 구경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사이비 교주가, 예수님의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들이닥치면 인간은 흔히들 도피로를 찾으려 든다. 도피하는 인간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정직한 회피의 모습으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며 또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맡길 수 있는 거대한 인지적 존재를 찾아 자아를 위탁하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는 후자의 인간들을 흡수하는 데에 열심이었다. 또한 대림은 후자의 인간들이 어떤 집단을 이루어 존재하지 않는 정상성의 궤도에 올라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관람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영성을 믿으면 축복이 내려 네게 닥친 슬픔과 고난을 모두 사하실지니. 말도 안 되는 교주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면면들이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당시 몸담고 있던 사이비 종교의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동행하던 도진은 조수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도 한 번으로 몸이 낫는다면 병원은 아무 필요도 없어질 텐데…….”
교주가 입이 닳도록 말하던 고난에는 개인의 병리적 문제가 포함되곤 했다. 눈이 보이지 않던 사람이 교주를 따라 기도를 올렸더니 눈이 뜨이고, 걸을 수 없던 사람이 헌금으로 신앙을 보였더니 다리가 움직이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기임을 바로 알 수 있을만한 연극이지만 사지로 몰린 이단자들에게는 마치 신성의 현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진은 일반적인 사람과 이단자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머물던 신자였다. 그에게도 인생에 닥친 고난이랄 것은 있지만 그것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다. 그저 고난에 짓눌려 숨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차에 가짜 신을 믿는 이들이 다가와 작은 숨구멍을 뚫어주었기에 관성적으로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는 척을 하는, 사이비 종교에서 종교의 선한 점만을 잘 취하여 활용하고 있던 이상한 부류였다.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니 어쩔 수 없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대림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무의식 중에는 다들 눈속임인 걸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자기한테는 삶을 이어갈 희망이 전혀 없게 되잖아. 인생에 있어 실날 같은 희망을 찾으려고 종교까지 찾아온 사람들인데, 정작 희망을 부정해버리면 의미가 전혀 없게 되지. 그런 자가당착인 게 아닐까.”
새카만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던 도진은 우물쭈물하는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네 하고 작게 호응했다.
“오히려 정말로 사람을, 고칠 수 있는 분이라면…… 나을 텐데…….”
“도진이 너도 고쳐지고 싶어서 그래?”
조수석의 만성 정신증 환자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의 우울한 옆얼굴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가려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조차 보이질 않는다. 50미터만큼의 시간을 두고 도진은 아니요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잠깐!”
“왜요, 갑자기.”
“그거 언젯적 얘기예요? 이대림 씨가 그 사람이랑 사귀었던 건 한참 전 아닌가?”
“뭐, 그렇죠. 만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니 아마 오 년도 전인가…….”
비도덕한 목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이들은 서로의 치부를 공유하여 결속력을 강화하고는 하는 법이다. 대림이 상호의 이혼 사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상호 역시 대림의 난잡한 연애사를 제 것마냥 낱낱이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 쪽의 손해가 더 많은가에 대해서는 대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가고 있는 데는 폐업한 기도원이라 하지 않았어요? 당신 말을 듣자 하니, 교주가 목 매고 죽어서 폐업한 거죠?”
“그렇게 되죠.”
대림은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 폐기도원, 철거 안 되고 아직 남아있는 거 맞아요?”
오 년도 전에 폐업한 건물이라면 그런 의문을 갖는 것도 이상치는 않았다.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서울시 경계를 지나기 전엔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요.”
“거 참. 이대림 씨가 사랑놀음에 빠져있을 때 사건에 휘말렸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그렇게 따지자면 제 인생에서 사랑놀음이라는 요소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대림은 코웃음을 한 번 치는 것으로 반응을 갈음했다.
“아직 있어요. 사이비가 사용하던 건물에 사고 매물이라는 딱지까지 붙었으니 팔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철거를 하자니 그건 그것대로 또 돈이랑 시간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관리도 안 되는 상태로 그냥 방치된 모양이에요.”
“그걸 이대림 씨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나름 추억이 각별한 장소라. 어떻게 알음알음.”
알음알음 알게 된 부동산 업자에게도 왜 그렇게 그 건물에 집착하냐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 대림이었다. 건물의 소유주였던 교주가 죽고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교주의 친인척에게로 넘어갔는데, 그는 손에 들어온 건물을 아주 불길하게 여기며 상관도 하지 않으려고 든다는 이야기를 몇 년에 걸쳐 확인했다. 방치되다 못해 버려졌다고 해도 무방한 폐허다.
차선을 바꾸던 운전자는 이상하게도 즐거워 보이는 눈으로 동행인을 흘겼다.
“기도원의 살인이라. 계속해 봐요.”
사이비 종교는 생각보다 큰 건물을 갖고 있었다. 지상 5층으로 이루어진 기도원은 세워진 장소가 산간 벽지임을 고려해도 건설에 적은 돈을 들이지는 않았을 듯했다. 깔끔한 동시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옅은 난색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대림에게는 어쩐지 프랜차이즈 카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2박3일의 기도회는 단순한 일정으로 꾸려졌다. 오전의 단체 기도와 오후의 개인 기도 시간 외에는 자유 시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널널한 일정이었다. 기도회 장소가 자가용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산중에 있는만큼, 차 열쇠만 맡아둔다면 참가자들의 돌발 행동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게 아니었을까.
차 열쇠를 1층의 프론트에 맡기자 상냥한 미소의 직원이 객실 열쇠를 두 개 내 주었다. 기도원의 객실은 모두 1인실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도진은 시선을 불안하게 떨구다가도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이며 열쇠를 손에 들었다.
“객실은 3층부터 5층까지 있다는데.”
1층 구석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대림이 말을 꺼냈다. 1층에는 프론트 외에 응접실과 식당 등이 있었고, 2층은 전부 기도실인 것 같았다.
“저, 전 4층… 이네요.”
“난 5층이네. 같이 왔는데 같은 층 좀 쓰게 해 주지.”
굳이 동행인을 멀리 떨어뜨려놔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의지할 대상을 눈앞에서 없애두는 게 세뇌의 기본이긴 하다. 하지만 이 종교에서 개인 상담과 같은 일대일 세뇌 방식을 채택한 일은 대림이 알기로 없었다. 세뇌는 언제나 개인보다 집단에서 보다 뛰어난 효과를 발하는 법이다.
4층의 객실에서 도진이 짐을 푸는 걸 도와주고 대림은 자신의 객실로 향했다. 주위에는 이미 도착한 기도회 참석자들이 복도를 어슬렁거리거나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단 교회에서 틈만 나면 얼굴을 보았던 이들이 대림을 보고 아는 체를 해 왔다.
5층에는 예수님이 계시네요. 예수님하고 가까운 곳에서 머물 수 있어 영광이에요.
대림은 한순간 이들이 드디어 미친 건가 싶었으나 주위를 둘러보고 그 까닭을 이해했다. 5층의 복도에는 다른 층에선 보이지 않았던 특이한 장식품이 하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선 거대한 예수상이었다. 익숙한 사람들이 예수상 앞에 구름처럼 모여 양손을 맞잡고 무릎을 꿇거나 절을 올리거나 하는 광경이, 이곳이 사이비 종교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양팔을 벌린 예수상 앞에서 빠져나왔다. 계단을 타고 4층으로 내려가자 도진이 웬일로 남과 말을 섞고 있었다. 표정에 불편함이 드러나는 걸 보아 원해서 섞은 건 아닌 듯했다.
“이 산은 영기가 아주 깨끗해서 산책만 해도 몸이 깨끗해집니다. 신자 분도 기도 전에 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보시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교주와 독대하고 있으니 부담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한 올도 빠짐없이 이마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교주는 쉰이 좀 넘었을까. 피부는 영적 체험으로 충만해진 삶의 의지를 과시라도 하듯 반질반질했고 부리부리한 눈에는 생기가 가득했으며 목소리는 얼마나 또 우렁찬지. 아주 많은 면에서 도진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4층의 출입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문 너머로 짧은 석재 다리가 산길과 이어졌다. 산 비탈에 지어진 기도원이니 높은 층이 산의 높은 지점과 연결될 수 있었던 듯했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길이지만 기도원 외엔 그 아무 것도 없는 이 위쪽까지 차를 끌고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정상까지 멀지 않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정상은 상승하는 수많은 직선이 만나 영성의 흐름이 실로 충만해지는 곳이지요. 신자 분도 어떻게 영성과 좋은 조우를 해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러다간 도착하기 전에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겠어. 이대림 씨가 전남친한테 마음이 아직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이대림 씨도 알고 있으니깐 잡다한 얘기는 치우고 본론으로 넘어가자고요.”
고속도로에서 빠져 산길로 접어들자 급커브 구간이라는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몸의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향했다를 반복하는 와중 그들의 뒤를 따라 산길로 빠졌던 차는 다음 갈림길에서 고속도로로 돌아갔다. 이쪽에 길이 있던가 하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따라왔을 터였다.
“왜 이러십니까. 전 필요한 얘기만 골라서 하고 있는 건데. 자꾸 이러시면 기도회 때 교주가 무슨 말을 했고 신자들이 어떻게 몸을 흔들면서 반응했는지까지 전부 말해드릴 거예요.”
“한참 전 일을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하는 거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사건이었던가 보죠?”
보통 사람에게 살인이란 충격적인 사건이다, 라는 말을 대림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자신이 그러한 보통의 길에서 한참 전에 이탈했다는 사실은 상호의 말마따나 그 자신도 알고 상호도 알고 있으니.
“시각적인 충격이 좀 있었죠.”
예수상 아래에서 목을 매단 시체. 그 뒤에서 아침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오색빛깔로 물든 기도원에서 시신이 매달린 부근만이 예수의 그림자에 가려 거뭇했다. 아아, 그렇구나. 거짓된 예수의 품 안은 아늑할지언정 어떠한 색조도 닿지 않아 그저 새카맣구나.
“형사님이 그렇게 원하는 사건 파트로 들어가기 전에 용의자들을 좀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의자들이라고 하기에도 뭐한게, 실상 한 명 뿐이었거든요.”
네비게이션에 등록되지 않아 위도와 경도로 표현된 목적지까지는 십 분이 채 남지 않았다.
기도회뿐만 아니라 일반 기도에서도 교주는 자신에게 영험한 능력이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비의 신자라도 사람은 제 눈으로 증거를 확인하지 않으면 비과학을 쉽사리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런 반신반의한 신도들에게 쐐기를 꽂기 위해 교주는 퍼포먼스를 벌이곤 했다.
예수의 화신으로써 상당한 영성을 지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축복을 나누어준다는 명목으로, 기도회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치유’를 한다. ‘치유’로 앞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되었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발을 땅에 딛을 수 있게 되었으며,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이 건물이 떠나가듯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치유’를 받은 이들이 정말로 몸에 불편을 겪고 있었던 건지는 의문이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신자가 지네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대림은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신자들은 자신도 ‘치유’를 받겠다며 연신 손을 들었다. 오늘은 베풀 영성을 다 베풀었다며 아쉬운 표정으로 한 발 물러나던 교주는 덤이다.
그리고 대림은 그 날도 손을 들었던 여자를 기억한다.
그녀는 적어도 대림이 입교했을 때부터 이곳의 신자였는데, 단상에 선 교주가 ‘치유’의 대상을 모집하기 위해 손을 들라고 하면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손을 들었다. 하지만 교주는 마치 그녀가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했다. 그녀는 교주가 심어둔 배우가 아닌, 정말로 ‘치유’할 수 없는 환자였기에 교주가 그리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교주에게 선택받지 못한 그녀는 손을 도로 내릴 때마다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녀의 이름이 가영이며 무릎 관절에 큰 문제가 있어 다리를 절며 다니고 있다는 걸 대림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마 병원에서도 차도가 없어 유사의학을 전전하다가 영성이니 축복이니 하는 수상한 종교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걸 테다. 안타깝지만 흔한 사연이기도 했다.
산속에서 열린 기도회의 단체 기도 시간에도 가영은 손을 들었다. 여지없이 교주는 다른 사람을 단상 위로 올렸다. 대림은 곁눈질로 가영을 보고 있었고, 가영은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얼굴을 있는대로 구겼다. 여태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반응이었다.
신자들에게서 얻어낸 소문에 따르면 가영은 헌금을 제법 낸 듯했다. 그 정도의 돈을 종교에 낼 수 있다면 차라리 병원을 알아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현대의 의술이라는 것도 의외로 만능은 아니라 현상 유지가 아닌 완치를 위해서라면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고는 하는 실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녀의 판단은 차라리 심리적으로는 유용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돈과 맹목으로 만들어졌던 절묘한 균형에 금이 가고 있다.
대림은 단상 위에서 일어나는 마법과 같은 ‘치유’를 구경하며 그녀가 앞으로 취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소극적으로는 종교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교주의 사기 행각을 밝혀 지금까지 냈던 헌금을 다시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종교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낼 것은 분명했다.
“눈이, 내 눈이…….”
단상에서 눈을 뜬 배우가 외쳤다. 바로 곁의 도진은 어깨를 움츠리고 대림에게로 몸을 붙였다. 언제나 상태가 좋질 않았지만 오늘따라 더욱 상태가 좋지 않다. 안심되지 않는 장소에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교주에게 당연하지만 남을 치유하는 능력은 없었고, 치유받은 사람들은 죄다 교주가 장애를 연기시킨 치들이라 이거죠?”
“그렇죠.”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높은 산중턱에 있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때 왔던 길이랑 다른 쪽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건 상호니 어떻게 돌아가자고 하기도 뭐하다.
“흔한 수법이네요. 절박한 사람한테는 그게 또 현실로 보이는 게 인간의 취약성이긴 하지만서도. 그보다 정말 여기가 맞아요? 건물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실은 저도 여기가 맞나 긴가민가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대림 씨…….”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높게 올라왔다. 고도 탓에 귀가 약간 먹먹해질 즈음, 산길 옆으로 웬 건물의 정수리가 쑥하니 드러났다. 상호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인다. 건물 옆으로 완전히 다가가자 건물의 상층과 이어진 짧은 석재 다리가 보였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따지자면 온 건 건물이 아니라 우리들 아닌가? 쓸모없는 트집을 대림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산길에 적당히 차를 세워두고 두 사람은 내렸다. 산길과 건물을 잇는 다리는 다소 세월감이 느껴졌지만 성인 남성 둘의 무게 정도는 가뿐히 견딜 수 있을 듯했다. 다리 아래에는 건물 4층 높이의 협곡이 깊게 나 있었다. 이 다리 너머가 건물 4층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직한 높이다.
“문이 박살 나 있네요. 노숙자들이 이 깊은 산속까지 올 것 같진 않은데. 곰이라도 사나?”
상호의 말대로였다. 한때 쇠사슬로 잠겨있었던 유리문 두 짝은 산산조각이 난 채 방치되어 있었다. 대림은 구두 밑창에 유리조각이 박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폐건물 안으로 발을 옮긴다. 박살난 경계를 지나자마자, 오래되고 관리되지 않은 건물 특유의 텁텁한 흙먼지 냄새가 우선 콧잔등을 스쳤다.
“폐건물도 참 토지 낭비인데 말이죠.”
뒤따른 상호가 툴툴댔다.
“어차피 다른 게 들어올만한 곳도 아닌데요, 뭘.”
대림은 4층의 툭 튀어나온 전망대에 서서 대충 대답했다.
그래……. 바로 이곳에서 교주는 목이 매달려 죽었다.
위층의 난간에 밧줄을 묶고 목을 매었다.
대림은 고개를 들어 밧줄이 묶여있던 난간을 올려다보았다. 먼지가 잔뜩 서렸지만 난간의 역할은 아직 하고 있다.
상호가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까, 사건 설명도 안 해 주시고, 하며 곁으로 다가왔을 때.
버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층에서, 들렸다.
끼익……. 하고 경첩이 열리는 소리도, 뒤이어 들렸다.
상호가 대림을 밀치고 툭 튀어나온 전망대에 선다. 1층까지 뻥 뚫린 형태의 기도원을 내려다보기 안성맞춤인 장소다. 그래서, 교주는 항상 이 위에서 예수 흉내를 내고는 했는데…….
“사람이 있네.”
상호가 속삭였다.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넌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스처였다.
“내려가 보겠습니다. 1층에도 입구가 있네요. 저기로 누가 도망가지 않는지 지켜보고 있어요.”
대림의 대답도 듣지 않고 상호는 재빠르게 건물 가장자리의 계단으로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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