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첫사랑이었다
현현
동그랗게 뜬 눈이 시선을 맞대 왔을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을까?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은 당황한 것 같기도 한 그 애의 눈은 들여다보았을 때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지현호는 자신과 완전히 정반대의 그 빛깔을 볼 때마다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반대인 색은 아니었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반대인 게 맞았다. 애초에 지현호와는 사는 방식부터 다르지 않았는가?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염색은커녕 단정하기 짝이 없는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교과서를 펼쳐 놓고 다니는 것이다. 화장기도 별로 없이 연한 얼굴을 덧그리고 있으면, 확실히 얘 같은 애랑은 다닌 적도 다닐 이유도 없지 싶어지는 것이다.
아니, 뭐 늘 그랬잖아. 이제 와 변명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친구들 모여 다니는 꼴만 봐도 저런 타입은 없었다. 애당초 저런 애들은 지현호 쪽을 별로 기꺼워하지 않지 않나? 솔직히 그는 한 것도 없는데, 뭐 삥을 뜯고 다녔나 아니면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나, 처음 불렀을 때 얼어붙은 듯이 눈을 굴리던 꼴을 생각하니 기분이 또 별로였다.
지현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였다. 사진 제멋대로 갖다 쓴 건 지면서. 아니, 사진 갖다 쓰든 말든, 물론 그놈의 사진 때문에 더럽게 귀찮아지긴 했지만, 아무튼 그게 뭐라고, 그보다 걔가 뭐라고 이딴 생각을 계속 이어 가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상념을 반복하면서 그는 손톱으로 탁탁 책상을 두드렸다. 그리고.
“지현호? 뭐 해?”
책을 한아름 안고 오던 권소현이 의아하게 말을 꺼낸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이 흔들렸다. 이상한 짓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책을 제 자리에 두더니 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아무것도 아니야.”
지현호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불퉁한 목소리는 처음 관계만 됐더라도 권소현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아니었고, 고개를 기울이는가 싶었던 권소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현호에 비해 한참 작은 그 여자애는 책상에 손을 올리고 무릎을 굽혔다. 반쯤 앉은 자세로 고개만 틀어 눈을 깜박이며, 왜? 하고 태연하게 묻는 얼굴이 책상에 반쯤 가려졌다. 하필 창가 자리라서 햇살이 쏟아졌다. 새하얀 얼굴 새로 빛이 고였다. 어른어른.
짜증나게 귀여웠다.
지현호는 그냥 책상을 박차고 일어날 뻔했다. 진정한 건 그 상황에서 일어나면 권소현이 콧잔등을 모서리에 박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젠장. 아. 젠장. 젠장! 나 진짜 왜 이래. 또 욕했냐며 힐난의 눈빛이 돌아올까 봐 속으로만 비속어를 몇 번 쏟아낸 지현호가 그대로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권소현이 일어선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안절부절 못하는 소리를 듣고 또, 기분이 좋아지는 게 열받아서.
별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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