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언약 한 이후를 생각하고 주절주절~

원작자 a의 날조가 섞여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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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새벽빛을 머금은 방 안에는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침대 위에서 이불을 잘 덮고 있었음에도 한기를 느껴 눈을 뜬 플로라는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본래라면 손 끝에 닿았어야 할 온기는 없고 차가운 이불만 만져지자 느껴지는 빈 자리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다. 절로 찌푸려진 미간을 애써 피며 이른 새벽에 달아나버린 잠의 뜻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난로에 불을 켰다.

드물게 리암이 장기 임무를 받게 되어 자리를 비운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에테르가 불안정한 곳이기에 매 주 도착하는 한 통의 편지를 제외하면 그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더욱 멀리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금새 온기가 감도는 방 안을 둘러보다 난로 앞 소파에 자리잡고 앉아 이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펼쳐보았다. 몇 번을 펼쳐 읽어보았던 편지는 이제 내용을 외울 지경이었다. 플로라. 제 이름 으로 시작하는 편지는 언제나 보던 그의 글씨체보단 조금 더 정돈된 글씨체였다. 분명,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기에 신경써서 한 글자 한 글자 적었을테지. 편지지를 펼칠 때 마다 드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보고싶다. 당연스럽게 드는 생각에 읽던 편지에 이마를 대고서 눈을 감았다. 사람이 참 신기하게도 분명 없을 땐 몰랐는데 한 번 곁을 내어 주고 난 뒤로는 잠깐의 빈 자리도 이다지 크게 자리잡는 것은 불필요하다 생각했는데 또 막상 겪어보니 이 기다림이 이후의 만남을 더욱 벅차게 만들어 줄 거라 믿고 기다리는 시간 마저도 기꺼워진다는 점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실 없는 웃음을 흘려보내고서 다시금 편지지를 만지작거렸다. 늘 묻는 안부, 자신의 상태라던가 일의 진행도 같은 뻔한 편지임에도 편지를 읽고 있을때면 꼭 그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네 목소리가 다시금 제 귀에 들리기를 바라며, 마침표가 쳐진 편지를 다시 접어 고이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추억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한참을 앉아서 창 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감정을 녹여내다 문득 든 생각에 편지지를 꺼내 다시 자리잡고 앉았다. 한 글자 한 글자, 혹여나 리암이 걱정할까 글씨체를 갈무리하고 차분하게 글자를 적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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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잘 지내고 있어요?

이 편지가 전해질 때 즈음이면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 궁금하네요. 가끔은 제가 배달부 모그리의 일을 대신 해 주고 싶을 정도예요. 그럼 당신을 볼 시간이 생길텐데 말이에요. 지금 있는 지역은 날이 많이 춥죠? 당신이 느끼는 추위를 저도 같이 느끼라는 것  마냥 여기도 제법 쌀쌀해졌어요. 당신이 더욱 그리운 계절이네요. 무리하고 있지는 않죠? 보급 문제라던가, 휴식이라던가. .. 분명 당신이 편지로 전해준 정보들인데도 다시 물어보게 되네요. 날이 추워지니 따뜻하게 잘 챙기고 있기를 바라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이 집을 떠난 상태라 괜스레 장기 임무를 나가기 싫어지더라구요. 당신이 집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반겨줘야 하니까요. 오랜만의 휴가라고 생각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리니아가 전해준 묘목이 벌써 꽃잎을 피울 때가 된 것 같아요. 당신이 돌아올 때 즈음엔 만개한 꽃잎이 꽤 볼만 할 거라고 해요. 리암, 당신 눈동자를 닮아 분명 아주 예쁘겠죠? 요즘들어 당신의 눈동자 색을 닮은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곤 해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등나무나, 라벤더가 괜스레 좋아졌어요. 당신을 닮은 건 아닌데 꼭 보고 있으면 당신이 생각나서.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여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제 옆으로 돌아와야 해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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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자 안 적은 거 같은데 어느새 편지지 한 장을 가득 채운 글들을 내려다보던 플로라는 이러다 하루 종일 편지를 쓰며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자신의 마음이 한 가득 담기기를 바라며 편지지 끝에 가볍게 입술을 눌러 찍고서 푸스스 웃었다. 예전이었더라면 이런 행동은 전혀 안 했을텐데. 편지지는 하늘색을 썼으니, 편지지를 담는 봉투는 보라색으로 할까. 싶어 뒤적거리다 발견한 편지봉투 안에 편지지를 잘 접어 넣고 적당한 리본을 묶어 매만진 뒤 집 밖으로 나가 배달부 모그리를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 모그리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마당을 잠시 서성였다. 왜 이렇게 불안한건지. 마당을 뛰어놀고 있던 치즈 빛의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 두고 쓰다듬자 조금 진정되는 기분에 작게 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크게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들었으니 별 일 없을텐데도. 쌀쌀하게 느껴질 법 한 서늘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어느정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플로라!"

"비안?"

언덕 아래에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빛의 전사의 영향인지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은 꽤 높다는 말을 들었는데 자신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었을까. 새벽부터 느껴지던 불안감이 현실이 되어 성큼 눈 앞으로 다가왔다. 단숨에 언덕을 뛰어 올라온 제 파트너의 모습은 여태까지 봤던 모습 중 가장 어두웠다. 플로라의 손을 잡자 비안에게서 전해져오는 떨림과 감정은 그녀가 전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 링크펄은 왜 꺼둔거야? 네 연인이 북쪽으로 임무를 나갔다는게 생각나서 마침 근처에 일이 있던 리니아님이 들렀다 온다고 연락이 왔던게 일주일 전이고 방금 연락이 다시 왔는데 그리다니아 쪽에서 온 모험가가 부상을 입었데, 근데 인상착의가 아무래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분명, 그도 자신도 모험가이기에 부상을 당할 수 있으리란 것은 언제나 염두해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임무에 나가고 있고, 오죽하면 서로 다른 임무를 나갈 때는 늘 조심히 돌아오라는 말을 했을까. 자신의 부상이 아닌 제 연인의 부상 소식을 전해듣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숨이 막히고 괴로운 일이었다. 아니겠지, 아닐 수도 있을거란 희망을 붙잡고 에테르를 갈무리 한 뒤, 플로라는 반지를 낀 손을 꽉 움켜잡았다. 에테르가 움직이나 싶더니 옆에서 덥썩 제 팔을 잡고 그대로 북쪽으로 가면 너부터 얼어죽는다며 비안이 이것저것 챙겨 입힌 뒤에야 떨림이 멈추는 듯 했다. 설령 부상을 입었더라 하더라도 정말 큰 부상이었다면 리니아가 자신에게 직접 찾아왔으리라. 중요한 일이니만큼 타인을 통해 전달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조금은 덥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얼른 반지에 에테르를 주입해 제 연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스겟소리로 전투 임무를 나가거나 부상당했을지 모를 자신의 언약자들에게 직통으로 향하는 텔레포를 사용하는걸 금기시 여기곤 한다. 사실 플로라 스스로도 그랬으니 오죽할까. 그럼에도 제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에테르를 사용해 이동하자 멀미로 인해 눈이 떠지질 않았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멀미가 나는 마당에 이렇게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것은 사실 부상을 입는 것 보다 꺼려하는 일이기도 했다. 호흡을 진정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제 하나뿐인 연인과 평소엔 안대를 하고 다니는 눈 쪽에 감겨진 흰 붕대였다. 숨을 쉬느라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체가 아니었더라면 끔찍한 생각을 들게 만들 것 같은 병실의 분위기는 지독하리만큼 싫었다. 혹여나 다른 곳에 부상을 입은 걸까, 손도 못 대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기를 한참이었다. 텔레포의 후유증과 더해져 숨이 막혀오는 것을 애써 갈무리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침대 위에 놓여진 리암의 손을 잡았다. 손 끝으로 퍼져오는 온기는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듯 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 플로라?"

평소에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보다 버석하게 마른 목소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의문을 건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침상 위를 올려다보자 반쯤 잠에 취해있는 듯한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플로라의 손 아래에 있던 그의 손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힘 주어 손을 맞잡았다. 그러곤 정말 여기에 있는게 네가 맞냐는 듯 꿈이 아닌가 하며 손을 주물거리는 모습에 플로라는 실소를 내뱉었다.

"제 속도 모르고 아주."

"어떻게 왔어. 그렇게 큰 부상도 아닌데 이렇게 놀라서."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한 리암의 눈이 생기를 띄더니 상체를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사실 그렇게 크게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녀에게 연락이 갈 줄도 몰랐으니. 안 그래도 에테르 멀미가 있어 텔레포를 사용하는게 달갑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걱정이 들었다. 원래부터 불편했던 눈을 다친거라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었는데. 하는 말이 입에 맴돌았다. 말하면 분명 혼나겠지. 리암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보인다는 양 플로라는 다른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간지럽히듯 쓰다듬고서 꾹 눌렀다. 못 됐어. 걱정이나 시키고 말예요. 하고 중얼거리며 손을 옮겨 짧아진 머리칼을 살살 빗어주는 플로라를 향해 리암은 옅게 웃고서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살살 부볐다. 상처가 욱신거리긴 했으나 진통제로 견딜 수 있는 정도였고 플로라를 보니 고통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이유도 한 몫 했으리라.

"안 아파요?"

"안 아파."

"정말?"

"응."

".. 그런데 왜 부상 입었다고 전달을 안 해줘요?"

"큰 부상도 아니고 걱정할까 봐."

"... 눈을 다친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 부상이 아니라고?"

"원래 시력이 나빴잖아. 상처는 남긴 하겠지만 최근엔 거의 안 보이는 정도였으니까 큰 부상은 아니지."

"그걸 말이라고.."

괜찮아. 하고 다정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버석하고 메마른 것이 아닌 플로라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랫입술을 잘근 물어뜯었다. 그걸 본 리암은 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입술을 툭 건드렸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플로라는 맞잡은 한 손을 꼼질거렸다.

"임무는 다 끝난거예요?"

"응. 다른 사람들은 먼저 귀환했어. 나도 곧 돌아갈거였고."

".. 얼른 낫고, 같이 돌아가요. 우리 집으로."

"그래. 같이 돌아가자."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몰려오는 피로감에 목소리가 늘어지는 플로라를 침대 위로 끌어 눕히고서 제 품에 안고 토닥였다. 안 그런 것 같으면서 누군가가 다치는 것을 퍽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지 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모험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정도 부상이 그래도 나름 봐줄만한 것이라는 것도 알 테고. 그럼에도 큰 부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놀랐다는 이야기겠지. 사실상 어느정도 회복 된 상태이니 내일은 일어나면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임무를 나온 이 곳은 새하얀 눈이 덮인 풍경은 이슈가르드의 것과는 비슷했으나 그 곳 보단 살아있는 땅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온 세상이 흰 색이라 어디에 시선을 둬도 플로라가 생각났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눌러 맞추고서 눈을 감았다. 단숨에 제 곁으로 날아온 북쪽의 계절을 닮은 사랑스러운 제 연인을 좁은 시야에나마 가득 담고 나니 장기 임무를 나온 이후 가장 편안하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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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땅은... 정확히 어딘지는 정하지 몬햇다고 합니다 초토지대라기엔 거긴 벌레가 너무 많아잇. 사실 이건.. 리암이가 눈 내린 땅에서 장기임무하다가 눈 다쳤을거같다~ 라는걸 듣자마자 켜서 적어보기 시작했던건데 진도가 너므너무너므 안 나가서 이제야 완성해버렸습니다.. 

 ㅋㅋ 참고로 중간의 편지는.. 임무지에 있을 때 리암한테 안 가고 두 사람이 귀환한 뒤에 반송된걸 리암이 받았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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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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