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공식 설정 주워 먹고 헐레벌떡 쓰러 온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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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안식처는 나무가 많아 그런지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화창한 날이 없는 것은 아니나 드물 정도였으니. 며칠 내내 쨍쨍한 햇빛이 내리쬐는 날은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모처럼 휴식 일정이 잡혀 꿉꿉함을 날려보내기 위해 젖은 빨랫감들을 마당에 곱게 널어놨다. 생각해보니 그 날도 이렇게 연이은 화창한 나날 중 얻은 휴일이었던 것 같았다. 곧 일 년이던가. 햇빛을 중화시키기라도 하듯 부는 순풍에 그늘 진 가림막 아래에 놓여진 티 테이블 위에 진저 쿠키와 차 한잔을 올려두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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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빛의 전사 산하의 모험가 소대에 속해있지만 빛의 전사, 그러니까 리니아가 자리를 오래 비웠을 적 다른 모험가들과 합을 맞춘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 만난 사람을 이렇게까지 소중하게 여길 줄은 그녀도 몰랐으리라. 새로이 함께 합을 맞춘 모험가들은 말이 많은 편인 사람도 없었고 딱 좋아하는 분위기의 팀이기도 했다. 짐이 되는 사람이 없던 것도 사실이지만 플로라는 스스로가 일반 모험가들 보다는 강한 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다른 모험가들과 합을 맞추면 의식하지 않더라도 앞장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다른 모험가들도 저를 의지하게 되어 그녀가 무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번 모험가들은 꽤 마음에 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하루는 다음 날의 임무를 브리핑하며 모인 자리에서 각자 자기가 준비할 것을 하는 와중 스스로의 무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퍽 신기해 옆을 기웃거렸다. 플로라가 옆을 기웃거리는게 신경쓰이는지 힐끔 곁눈질하던 연보라빛 눈을 가진 사내, 리암은 어색해 하는 듯 하면서도 플로라를 밀어내진 않았다. 그 이후로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 신기한지 이해가 안 갈 법 하면서도 늘 총기를 손질하고 있으면 옆으로 와 구경하는 모습이 익숙해질 정도였다. 오히려, 그녀가 옆에 있을 때에 맞춰 무기손질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다른 모험가들과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유달리 리암과 플로라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서로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선. 아니 오히려 어딘지 모르게 서로가 편해져서. 쉬는 날은 종종 따로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하고, 둘이서 별개로 간단한 임무를 받아 처리하기도 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날에는 차를 마시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놓고 읽거나 서로가 무기손질 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단조로운 일상에 서로가 물들어가기 시작한 것을 자각한 것은 플로라가 본래의 모험가 소대와 합을 맞추러 잠시 자리를 비운 때였다. 빛의 전사와 함께 나가는 임무였기에 플로라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위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일반 모험가들의 눈에는 다르게 비춰졌으리라. "그 빛의 전사"와 함께 하는 일이라니! 무척 위험할 것 같은 분위기지 않은가. 그렇지만 리암은 오랜만에 원래의 동료들과 일을 하러 간다며 좋아하는 플로라를 보며 조심히 다녀오라는 덤덤한 말만 건넬 뿐 차마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플로라가 그리다니아로 돌아온 것은 일주일이나 지난 뒤 이른 오전이었다. 소대 모두가 에테라이트 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할 수 있었다. 빛의 전사 일행이 귀환하는 날이었기 때문일까. 그리다니아의 날씨는 꽤 화창했다. 소대 일원들이 신시가지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신시가지로 나온 리암은 멀리서 오고있는 일행 중 한 사람을 단박에 알아봤다. 그가 알아봄과 동시에 눈이 마주친 듯 화사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플로라를 보며 리암은 새삼 느꼈다. 너는 벌써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구나.

"마중 나와 줬네요?"

"오랜만이니까. 다친 곳은?"

"없어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소대원분들도 리니아님도 함께 하셨으니 다칠 일은 없었는걸요? 그래도-. 혹시 제 친구가 걱정할까봐 조심 또 조심했으니까요."

친구, 라는 단어가 꽤 이질적이게 들렸다. 내뱉는 플로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시력이 꽤 좋은 편인 플로라는 리암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 부터 그를 발견했다. 먼저 다가갈까 고민하던 와중 눈이 별로 좋지 않음에도 꽤 먼 거리에서 자신을 발견해준 것이 어딘지모르게 가슴 벅차서 한 달음에 그의 앞으로 뛰어가게 만들었다. 서리 내린 곳에 피어난 제비꽃은 하얀 도화지에 검은 점을 찍어낸 것 마냥 존재감을 드러냈다. 일주일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사실 요 근래에는 매일같이 보긴 했던 것 같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자신에게 이제 일상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다른 소대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리암의 앞에 섰을 때는 어느덧 해가 하늘 높이 떠 있어 꽤 더워지기 시작했다.  피곤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를 만난 것이 기분 좋은 양 플로라는 평소보다 들뜬 듯 했다. 미세한 차이였기에 알아보는 이는 드물었겠지만서도.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에 라벤더 안식처 역시 햇빛이 따사롭게 비췄다. 칼라인 카페로 향할까 하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날일 것 같아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플로라의 자택으로 향했다.

"거기 테라스에 앉아있어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작은 동물 친구들을 한 켠에 풀어주고서 아이들의 마실 것을 챙겨준 뒤 나온 플로라의 손에는 은 쟁반이 올려져있었다. 그 위에는 귀여운 모양의 진저쿠키와 초코칩이 박힌 달아보이는 쿠키, 그리고 함께 마실만한 차가 두 잔 올려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서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꺼내야 어색하지 않을까 싶어 입술만 달싹였다. 그러던 중 리암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플로라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였다. 이전에 회중시계 말고 손목에 착용할 만한게 없냐는 말에 간이식이나마 자신이 만들어 주었던 것.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님에도 워낙 하는 일이 험해서 그런지 벌써 낡은 시계마냥 스트랩 색이 바래있었다.

"아. 관리한다고 하는데, 매일 하고 다니니까 금새 이렇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새로 만들어줄게."

"매번 받기만 하니까 미안한걸요."

"... 받기만?"

"네."

늘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준 것은 왜 기억을 못하는 건지. 사실 그녀 덕분에 부상자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은 다른 모험가들도 자각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플로라가 자신들과는 일시적으로 합을 맞추는 사람임에도 꼭 그녀가 대장인 것 처럼 의지하고 있으니. 말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라며 웃어 넘기겠지.

"그래도 그대로 두면 시계도 못 쓰게 될거야. 스트랩 정도는 금방 만드니까 받아."

"리암에게 별 거 아닌 일이라면 감사히 받을게요.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그쵸?"

리암이 고개를 끄덕이자 플로라는 웃으며 진저쿠키를 들어 한 입 깨물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쿠키는 소리가 경쾌한 만큼 맛이 꽤 괜찮았다. 맛있네요. 하며 권하는 플로라를 보며 리암 역시 쿠키를 입에 물었다. 쿠키 몇 개를 더 먹어 삼켰을까.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흐트러트리고 지나갔다. 바람결에 머리칼이 날리는 모습은 꼭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상대방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마법.

"플로라."

리암의 나지막한 부름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하던 플로라의 푸른 눈이 연보라빛 눈을 마주했다. 늘 소란스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진중해보이는 목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어느 순간 부터였을까. 그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이 듣기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네, 리암."

"좋아해."

덤덤하게 이어진 말에 플로라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푸른 빛을 머금은 눈동자를 더욱 크게 뜨며 리암을 바라 볼 뿐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아니라는 듯 리암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고작 일주일을 못 본건데 네 생각이 많이 났어. 너는 어느 틈엔가 내 삶에 일부가 된거야. 네가 없으면 당연하게 손질해야하는 무기들이 뒷전이 돼. 너와 함께 했던 일들이 혼자 하니까 지루하더라. 고작. 고작 일주일인데. 너를 생각하는게 당연해지고 네가 없으면 아쉬워서 한 번을, 두 번을 돌아보게 돼. 네 공백을 내가 견딜 수가 없게 됐어."

커다랗게 떠진 두 눈에는 분명,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리암은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했다. 눈만 연신 깜박이던 플로라는 오전에 눈을 마주쳤을 때 보다 더욱 환하게 웃더니 입을 열어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게도 당신은 삶의 일부가 되었어요. 리암, 그거 알아요? 저는 사실 누군가를 더 이상 사랑하게 될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그저 편한 팀이었고, 그 이후엔 친구였죠.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 여러 시간을 공유하더니 당신은 내게 더 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렸지 뭐예요."

리암은 플로라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고 확신하진 못했다. 플로라의 말대로 그저 편한 친구 사이로 생각 할 수도 있었기에 마음을 받아달라는게 아닌 그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행위였는데도 그녀는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화답했다. 그제서야 현실감이 들었다. 너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구나. 서로의 삶에 유의미한 존재가 되었구나.

포근한 미소와 함께 테이블 위로 올려진 손을 겹쳐 맞잡았다. 친구로서가 아닌, 제 연인의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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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반응이 없을까."

그랬었지. 하는 과거의 기억에서 자신을 끌어올린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리암이 가까이 오는 것도 무려 제 앞에 앉은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작게 웃음짓던 플로라는 그 날 처럼 화사하게 미소지어 웃었다.

"음.. 리암 생각 했어요."

"그건 기분 좋은데. 그래도 이제 생각 속의 나 말고 현실의 나한테 집중하는게 어때."

"어머, 물론이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과거에서 이어진 미래를 향한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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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하지만 마무리가 젤 ..... 이상한듯 우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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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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