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량무현] 시켜줘 명예공청기 - 2
“거기, 그… 들으셨겠지만 제가 치과의사입니다. 이빨 잘 주워서 치과로 따라오십시오.”
“선생님.”
“제… 업무입니다.”
박무현은 소심하게 반항했다. 한 대 맞을 각오를 했는데, 미남은 묵묵히 박무현의 손을 놓아 주었다. 박무현은 얼른 꾸벅 목례를 하고 환자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뒤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 일만 10년을 했단 말야.
“치… 치과? 싫어!”
“지금 이빨이 빠지셨어요. 이빨 없이 사실 거예요?”
맞은 놈… 아니 환자도 치과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타입인 듯 했다. 상대는 이빨이 빠졌다고 짚어주자 입 안에서 혀를 굴려보더니 터덜터덜 이빨을 주워 돌아왔다.
“입에 물고 오세요. 혀 아래에 넣으시고, 삼키지 않게 조심하시고.”
신해량은 환자(데이브라고 했던 것 같다)가 치료를 다 받을 때까지 보호자인 양 박무현의 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치과에 오면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박무현은 어릴 적 갔던 동물원에서 들었던 호랑이 우는 소리를 떠올렸다. 호랑이와 한 우리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눈 앞의 환자에 집중해야지. 박무현은 바삐 손을 놀려 긴급공사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빨리 발견해서 쓰시던 이빨을 그대로 썼어요. 고정된 상태 봐야 하니까 꾸준히 내원하셔야 합니다. 당분간 단단한 거 드시지 마시고요.”
박무현은 환자가 뭐라 웅얼거리는 것을 웃는 얼굴로 무시하며 멋대로 데… 뭐시기의 예약일을 잡아두었다. 안 오진 않을 것이다. 분명 멋대로 단단한 걸 드시다가 볼을 부여잡고 다시 오겠지. 임플란트… 혼자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환자를 보내고 사용한 기구를 정리하려 돌아오다가 신해량과 다시 마주쳤다. 아, 맞다….
“저,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그러고 보면 왜 따라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감시를 하려는 건가? 무엇을? 본인 험담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방금 나간 직원은 아시아인만 보면 시비를 걸곤 합니다. 우려가 되어 따라왔습니다.”
“어어, 네.”
“해저기지에는…” 청년이 말을 늘였다. “이런 식으로 인사 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해저기지는 이성적인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선생님께도 위협적인 일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거 네가 반쯤 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 치과에 온 환자 중 절반은 네 이름을 찾던데. 박무현은 애써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셨던 일보다 더한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아무튼, 신변에 위협을 느끼실 땐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제가 대답이 없으면 저희 팀의 서지혁이나 백애영에게 연락 주셔도 됩니다.”
“네? 어… 엔지니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해저기지 내에서 처벌 관련해서 겸직 같은걸 하시는 건가요?”
“정식은 아닙니다.”
사적 제재를 한다는 소리 아니냐… 그 전에 엔지니어가 아니었냐고.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자 신해량이 재차 대답했다.
“물론 고장이 난 기자재가 있다거나 할 때도 연락 주십시오. 일정을 조율해서 방문해 드릴 겁니다.”
“아… 네….”
“업무가 끝나셨다면, 숙소까지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제 숙소도 백호동에 있습니다.”
혹시 전부 주먹으로 패서 고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신해량이 불쑥 TMI를 뱉었다. 신기하네. 하긴, 양치질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본 거니까 같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정말 엄청나게 잘 생겼다. 공기가 다르다는 말은 이런 얘기였구나. 신해량과 함께 백호동으로 걸어가며 박무현은 어느 때인가 여름밤 바닷가에서 맡았던 것만 같은 고요하고도 맑은 기분에 휩싸였다. 신해량은 생각보다 대화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박무현은 신참내기가 물어볼만한 시설이나 생활 환경에 대한 것을 이것 저것 물어보았고, 엔지니어 팀장은 대답이 좀 짧긴 해도 질문에 대한 핵심은 곧잘 답해주었다.
어느새 다다른 제 숙소 앞에서 짧게 감사인사를 하고 익숙한 공간에 돌아온 박무현은 문득 생각했다.
‘나… 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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