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등 2차

[해량무현] 시켜줘 명예공청기 - 1

가이드버스, 방수기지 / 4월 해량무현 쁘띠존 발간 목표

두시전에자자 by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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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무현은 허접 에스퍼다



상급 에스퍼로 각성하면 그야말로 인생역전을 하는 세상이다.

한 세기 전의 사람들이 ‘초능력’이라고 부르던 것들은 이젠 대중매체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장바구니가 공중에 떠서 가거나, 한겨울에 반소매를 입은 사람을 봐도 이능이려니, 하며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이다.

박무현도 한 때 인생역전을 상상한 적이 있다. 그건 반 세기 전의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는 것과 비슷했다. 무슨무슨 능력이 생기면… 무얼 하고… 어떻게 돈을 벌면… 따위의 상상을 누구나 했다. 그리고 한창 재활치료를 하던 10대 후반의 박무현에게도 각성열이 찾아왔다.

재활센터 바로 옆의 각성진단센터에서 측정을 받았다. 간호사는 인바디처럼 생긴 기계로 박무현의 에스퍼 에너지를 재고 난 뒤 능력의 종류를 물었다. “순간이동이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순간이동에 530e면… 8급이네요. 진단 끝나셨고요, 옆에 안정실 써있는곳 가셔서 가이드 받고 가시면 됩니다.”

8급. 박무현이 진로를 결정하는 순간이었다. 초능력이 다 무어냐. 공부해서 돈 잘 버는 직업 구해야지.



“뒤쪽은 개인정보보호 서약과 비밀유지서약서입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어, 에스퍼셨군요?”

영어의 쓰나미에서 허우적대던 박무현은 프리야 쿠마리의 말에 고개를 슬쩍 들었다.

“8급입니다. 아무 짝에 쓸모 없죠.”

“종류가?”

“순간이동입니다만… 한계거리가 한 발짝 정도라서요.”

“아하.”

지금 방금 웃음 참았지.

“흠, 그래도 해저기지 생활하시면서 위협을 느끼게 된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능력을 사용하세요.”

“위협이요?”

“굳이 에스퍼 능력을 이야기 하고 다니진 마시고요. 제 조언이 분명 언젠가 도움이 될 겁니다.”

황당한 소리였다. 위협이라니? 무슨 여기가 정글이라도 된다는 얘기인가? 직장에서 에스퍼 능력을 사용해야 할 정도의 위협이 발생한다면 신고를 하는게 옳지 않은가? 게다가 그의 에스퍼 능력으로는 고작 30cm 정도 순간이동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걸로 피할 수 있는 수준의 위협이라면 그냥 달려서 도망치는 게 나았다. 에스퍼 능력을 사용한 뒤 후폭풍처럼 찾아오는 역통은 그야말로 고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무현에게 당장 중요한 건 눈 앞의 영어문장 덩어리였다. 의문 제기보다는 입사 절차가 앞섰다. 그리고… 대략 72시간만에 박무현은 그 조언의 근거를 눈 앞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퍼억! 사람이 얻어맞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빨이 비산하는 것을 보는 것도 실제로는 처음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이빨이 무슨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너무 놀라서 복도에서 선 채 꼼짝을 못했는데, 벌벌 떨리는 손에 쥔 머그잔 안에서 칫솔이(양치질 하고 오는 길이었다) 덩달아 진동하며 때대대대대대댕! 소리를 냈다. 그 청아한 소리를 듣고 치던 놈과 맞던 놈이 동시에 박무현을 쳐다봤다. 너무 겁먹으면 헉 소리도 안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 치던 놈이 맞던 놈을 버리곤 박무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박무현은 겁에 질린 나머지 온 힘을 다해 뒷걸음질 치다가 꼴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 칫솔이 컵에서 솟구치더니 바닥에 퉁 튕겨나갔다. 다가오던 치던 놈이 멈칫 하더니 칫솔을 줍곤 박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새로 오신 치과 의사 선생님이십니까?”

“잘못했습니다! 네?”

뭐야? 눈 마주치고 보니 잘 생겼다. 하관의 생김새가 가히 세계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었다. 훤칠하니 잘생겨서 그런지 주변의 공기까지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생 한국말?

“예?”

“네? 어, 어, 맞습니다. 치과의사입니다. 박무현입니다.”

“엔지니어 가팀 신해량입니다. 방금 보신 것은…” 미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재차 손을 내밀었다. “일단 일어나시죠.”

“아, 네.”

박무현은 허공에서 흔들리는 상대방의… 신해량의 손을 얼른 잡았다. 신해량이 박무현을 쑥 당겨 일으켰다. 진짜 잘 생겼네. 청량함이 마치 비가 막 갠 직후의 맑은 공기 속에 있는 듯 했다. 와, 나 얼빠였나?

“방금은…” 신해량은 뜸을 들였다.

“저 놈이 제 주먹에 와서 부딪쳤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박무현은 빠르게 정신을 잡았다.

“아니, 그래도….”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이 있어도 사람을 치면….”

박무현의 목소리가 급속도로 졸아들었다. 자꾸 말하단 자신도 이 주먹에 부딪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박무현은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제일 급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거기, 그… 들으셨겠지만 제가 치과의사입니다. 이빨 잘 주워서 치과로 따라오십시오.”

“선생님.”

“제… 업무입니다.”

박무현은 소심하게 반항했다. 한 대 맞을 각오를 했는데, 미남은 묵묵히 박무현의 손을 놓아 주었다. 박무현은 얼른 꾸벅 목례를 하고 환자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뒤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 일만 10년을 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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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정교한 강아지

    벌써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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