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량무현] 미래진행완료 2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신해량의 근육에 바짝 힘이 몰렸다. 두툼한 팔뚝만이 아니라 방 안에서 문을 바라보고 선 몸 전체가 어떠한 습격에도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였다.
신해량의 스위치가 켜진 건 조금 전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부터였다. 발신인은 2개월 전 해저기지에 입사한 한국 국적의 치과의사 박무현. 내용은 밑도 끝도 없이 ‘지금 잠깐 가도 되냐’는 한 마디.
대체 왜?
오며 가며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한 적은 있지만,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치과에 간 적도 없고. 자신에게 맞은 멍청이들이 치과에 많이 가긴 했겠지. 그걸 따지려는 건가? 그런 거라면 아까 저녁 시간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박무현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거나.
한국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협박해두었으니, 역으로 한국인의 이름을 쓰면 신해량을 방심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패드를 훔치거나 빼앗아서 메시지를 보내고 박무현인 척 쳐들어올 수도 있고, 박무현을 협박해서 방패로 앞세울 수도 있다. 뒤에 따라오는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을 공격하도록 무기를 쥐여주었을 수도 있고. 속여서 어딘가로 데려오라고 시켰을 수도…….
패드를 쥔 채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리던 신해량은 일단 긍정의 답신을 보냈다. 뭐가 됐든 어차피 만나면 바로 알게 될 것들이었다. 문자로는 파악할 수 없는 말투나 목소리의 높낮이, 호흡, 표정, 근육의 미세한 떨림, 공기 중에 흐르는 불온한 감각까지도 느낄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지금. 이 벽 너머의 복도, 박무현의 방이 위치한 쪽에서부터 발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긴장이나 머뭇거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여러 번 가본 곳을 향하듯 익숙하게. ……익숙하게? 남의 방에 갈 일이 많지는 않았을 텐데.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던 신해량은 문 너머에 도착한 사람이 노크도 하기 전에 먼저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박무현, 그 혼자 서있었다. 손에는 주황색 고래 인형뿐이고, 뒤나 주변에 숨어있는 그림자는……없다.
문을 두드리려고 가슴 높이로 올라왔던 손이 머쓱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방금 씻었는지 살짝 젖어있는 머리카락 밑에는 두려움이나 긴장 대신, 호감을 가득 품고 있는 부드러운 눈빛과 자연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왜 나를 보면서 그런 얼굴을 하지? 신해량이 답지 않게 잠시 굳은 사이, 박무현은 인사도 없이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
당연하다는 듯 걸음을 옮기던 박무현은 길을 비켜주지 않는 커다란 가슴팍에 그대로 코를 박을 뻔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멈춰섰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가슴 앞에 서서 신해량을 올려다보았다.
“…….”
“…….”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바로 가슴 앞이고, 바로 턱밑이었다. 웬만큼 아는 사이라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불편해하기 마련일 텐데, 박무현은 조금 놀란 눈치기는 해도 턱밑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일을 어색해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에 조금만 더하면 입술이 스치는 사고라도 날 법한 위치인데도.
왜지? 치과의사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지만 신해량은 그 눈동자 안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아니, 읽어낸 것이 있기는 한데,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나보다 당신이 더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거지?
“어……음.”
먼저 물러난 건 박무현 쪽이었다.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약간의 거리를 둔 그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좌우로 한 번 살피고는 다시 신해량을 보았다.
“안에 누구 있습니까? 저 돌아갈까요?”
협박당해 자신을 속이거나 해치려고 하는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조심스러운 속삭임이었다. 오히려……자신을 배려하기라도 하는 듯이.
“…아닙니다. 들어오시죠.”
옆으로 비켜 길을 내주자 의아해하면서도 들어오는 발걸음이 자연스럽다. 처음 온 공간을 살피듯 안을 둘러보지도 않았다. 마치, 말도 안 되지만, 정말로 여러 번 드나든 공간인 것처럼.
“찾아오신 용건은 무엇입니까.”
그래도 신해량은 긴장을 완전히 풀지 않았다. 당장 꼬리를 붙이고 온 게 아니라도, 수상한 사람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거나 협박당하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일지도 모르니까. 박무현은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내더니 민망한 얼굴로 옆구리에 끼고 온 인형을 슬쩍 내밀었다.
“어제 노을이가…그, 터져서 꿰매줬었잖아요. 근데 오늘 치과에서 그 옆이 좀 더 찢어져서…….”
꿰매줬다니.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무언가 착각하는 건가? 날 속이려는 거라면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가져왔을 텐데. 신해량은 넘겨받은 인형 안에 나이프 따위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며 손끝에 힘을 주었다.
2개월보다는 훨씬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주황색 고래는 푹신하기만 했고, 찢어진 틈을 꿰맨 형태가……어딘가 익숙하다. 그래, 자신이 바늘을 들었다면 이렇게 해놓았을 터다.
“이걸 제가 꿰맸습니까?”
질문을 들은 박무현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 됐다. 저 표정이 연기로 빚어낸 거라면 박무현은 치과의사가 아니라 스파이를 해도 될 것이다.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이 짜야겠지만. 신해량은 안에 솜만 든 고래 인형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네?”
처음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웃는 낯이었지만, 신해량이 계속 저를 가만 보고만 있으니 박무현의 얼굴에도 서서히 당혹감이 드리웠다.
“어, 기억이……안 납니까?”
“?”
이걸 기억이 안 난다고 표현해도 되나. 기억 속에 존재하지도, 존재할 일도 없는 일인데. 신해량의 반응을 살피던 박무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디 아픕니까? 열은요?”
서슴없이 다가온 손이 신해량의 이마를 짚었다. 다정하고도 친근한 손길이었다. 열은 없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 역시도.
“혹시 오늘 누구랑 싸웠습니까? 어디 부딪치거나 맞은 데는…….”
자신에게 맞은 놈들이 겨우 얻은 치과 진료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갔을 테니 자신과 주먹질을 연결짓는 건 이해한다. 자신을 실제로 보고도 맞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건 조금 이해가 안 되지만. 치과에 간 서지혁이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 아니면 애영이가…….
“해량 씨?”
친근한 호칭과 걱정 어린 눈빛에 순간 말문이 막힌 신해량은 박무현이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잡는 것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진짜 이상하네. 같이 병원 갈까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이 치과의사에게 붙들려 대한도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주인을 깨웠다. 신해량은 뒤늦게 자신의 뺨을 감싼 두 손목을 잡아 떼어냈다.
“전 멀쩡합니다.”
그렇게 말해도 박무현의 표정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아프지 않다고 우기는 환자를 많이 보긴 했겠지만, 그래도 자신은 정말 멀쩡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자기 인형을 꿰매줬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 쪽이 더 이상한 것 같습니다만.”
문 닫힌 남의 방에서, 근접한 거리에서 저보다 머리 하나는 큰 거구의 남자에게 두 손목을 붙들린 채로 겁을 내거나 꺼리는 태도가 아닌 것도 이상하고. 신해량은 자신의 그림자에 덮인 박무현을 내려다보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은 자신의 말을 들은 박무현이 제 귀를 의심하는 듯한 눈으로 뱉은 말이었다.
“무슨 소립니까, 그게?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요?”
“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좋은 저녁입니다.”
백호동 복도를 힘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던 박무현이 녹슨 기계처럼 삐걱대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엔지니어 나팀의 팀장이 언제나처럼 꾸며낸 듯한 미소를 뽐내며 서 있었다.
“아, 예…….”
박무현은 대강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그리 좋은 저녁이 아니었다. 친절하게 인사를 돌려줄 기력도 없었다. 사귄 지 6개월이나 된 애인에게 '우리는 사귄 적이 없다'는 날벼락 같은 말에, ‘그러니 다른 용건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 달라’는 소리까지 듣고 나온 참이었으니까.
아니 분명 우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봅시다, 그럽시다, 했던 것 같은데. 이런 짓도 저런 짓도 다 했었는데! 사귀는 게 아니라니? 내가 뭐 잘못했나? 요즘 애들은 이별 통보를 이렇게 하나? 아니면 설마, 요즘 애들은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면서도 사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응?
사토를 지나쳐 바닥으로 눈을 돌리던 박무현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방금 사토에게서 있으면 안 되는 것이 보이지 않았나?
“저기, 사토 씨?”
“예, 선생님?”
박무현은 다시 웃으며 돌아선 사토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실례라는 생각보다 혼란이 앞섰다.
“……그, 교정은.”
운을 떼는 말에 사토가 활짝 웃었다. 덕분에 박무현이 보고자 하는 것이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교정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직접 힘들게 발치한 치아가 사토의 입안에,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 연락이 왔습니까? 언제 시작할 수 있지요?”
“……그, 확인해 보고……연락드리겠습니다.”
순간 사토의 미간에 그럴 거면 왜 불렀냐, 는 감정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미 등을 돌린 박무현이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도에 멀뚱히 선 사토를 내버려 두고 방에 돌아온 박무현은 옆구리에 낀 노을이를 내려놓자마자 패드부터 찾아 쥐었다. 딥 블루의 예약 목록으로 시작해서 어제 식당에서 나온 아침, 점심, 저녁 메뉴까지 뒤지던 손이 얼마 안 가서 당혹감으로 뻣뻣해졌다.
치과에 왔던 환자들도, 진료 내용도, 식당에서 먹은 메뉴도. 무엇하나 자신이 기억하는 어제와 같은 것이 없었다. 엊그제 저녁 메뉴가 뭐였는지 가끔 헷갈릴 때는 있지만, 바로 어제 치료한 환자까지 기억이 안 나는 일은 없었는데…….
아니다. 기억 문제가 아니지. 박무현은 고개를 털어냈다. 단순히 자신의 건망증을 의심할 상황이 아니다. 기억이야 다소 오락가락할 수도 있는 거지만 이미 시작한 교정을, 발치한 치아까지 원 상태로 되돌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당황한 와중에도 열심히 화면을 올리며 딥블루 예약 내역을 되짚어가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스크롤이 끝나고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딥 블루의 첫 환자, 해저에서 가장 용감한 연구원, 유금이. 방문 사유 충치.
치과가 직원들에게 인기 많은 장소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1년 넘게 쌓인 기록이 이것밖에 안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보고 또 봐도 첫날부터 2개월 치의 기록이 전부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 뒤의 1년은 어디로 갔나. 1년이나 되는 기나긴 꿈을 꾸기라도 한 걸까. 내 상상력이 그렇게 뛰어났나…….
박무현의 눈은 더이상 패드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어젯밤 자신과 코끝을 맞대왔던 이의 눈빛과 조금 전 자신의 손을 잡아 떼어놓고 거리를 벌리던 이의 눈빛을 나란히 떠올리고 있었다.
“…….”
그리고 노을이를, 그 옆구리에 남은 꿰맨 흉터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양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실밥은 이리도 선명한데. 뭐가 잘못된 걸까. 방향도 모르고 속절없이 밀려오는 서운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
신해량은 손에 들고 있던 편물을 결국 내려놓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뼘쯤은 눈감고도 거뜬한 것을 한참이나 쥐고 있었으나, 처음과 비교해서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늘어나지 않은 채였다.
박무현이 돌아간 지는 한참이었지만 머릿속에는 아직도 박무현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가 내민 인형에 남은 자신의 흔적 같은 것으로 시작해서 이마를 짚어보던 손의 온도가, 시선을 곧게 맞춰오던 색이 다른 눈동자가, 두 손목을 잡히고도 조금도 긴장하지 않던 순진하기 짝이 없던 표정이…….
무엇보다, ‘그럼 우리가 그동안 한 건 뭔데?’라고 두 눈을 타고 빠르게 흘러간 의문이.
타인의 표정이나 몸짓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내고 속내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유용하게 쓰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이번만큼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뻔했다.
박무현은 ‘우리가 사귀는 게 아니라고? 무슨 소리지? 그럼 우리가 한 건 뭔데?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했으면서?’라고 온몸으로 말했고, 또 거기에 거짓이라고는 한 톨도 없어 보였다. 물론 스스로 진짜라고 철썩같이 믿는 경우에는 거짓말탐지기에도 진실이라고 나온다고는 하지만……. 대체 왜, 하필이면 나를 상대로?
물론 얼굴이 이 모양이라 불필요한 관심을 받은 적이야 수없이 많았다. 이번도 그런 경험 중 하나로 치부해버리면 쉽게 끝날 일이었지만,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혀 쉽지가 않았다.
신해량은 생각을 가라앉히기 위해 들었던 뜨개질 거리를 내려놓고 백애영이 요청한 CCTV 삭제를 하기 위해 패드를 들었다. 업무에나 집중하자. 하지만 영상 속에서 애영이의 주먹에 어느 멍청한 놈의 앞니가 날아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또 그 얼굴이 떠오르고 말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패드를 끄기 직전, 신해량의 손가락이 한 화면 앞에서 멈칫했다. 이번엔 머릿속이 아니라 기지 내 이곳저곳을 비추는 CCTV 중 백호동의 복도를 담는 화면에 박무현이 들어왔다. 또 이쪽으로 오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부터 들었지만, 박무현의 발길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쪽은…….”
박무현이 걷는 길을 따라 카메라를 바꾸던 신해량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박무현이 향하는 곳은 앞으로 해저기지에 올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과 수족관이 개장할 예정인 장소였다. 예정이라 함은, 다시 말해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어딘지는 알고 가는 건가. 더이상 박무현이 보이지 않는 화면 구석을 빤히 들여다보던 신해량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한구석에서는 이게 지금 필요한 일이냐고 묻고 있었지만, 그보다 앞자리를 차지한 파랗고 검은 눈이 자신을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으므로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 해파리 수족관이 있었고…….”
학명이 뭐고, 특징이 어떻고 하는 설명을 분명 들었지만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헤엄치는 것이 귀여웠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 해피리가 가득 든 수족관이었다. 지금은 두꺼운 유리가 설치될 자리만 잡혀있고 물도 해파리도 아무것도 없지만.
“여기는 식당이었는데…….”
테이블이나 의자는커녕 간판조차 없이 휑한 이곳은 며칠 전 신해량과 식사를 한 곳이기도 했다. 아직 점심시간인데 메뉴판의 반 이상이 매진인 걸 보고 인기가 많은 곳인가 봅니다, 했다가 해저기지에서 수확한 재료를 쓰는데 어제 엔지니어 몇이 밭을 털어먹었다더군요, 하는 귓속말을 들은 게 생각났다. 저희 팀은 아닙니다. 그렇게 덧붙이면서 씨익 웃던 잘생긴 얼굴도.
“식당‘이었던’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그 얼굴이 지금 눈앞에 나타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박무현은 언제나처럼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남자를 돌아보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이상한 놈처럼 보였을 텐데, 이런 곳에서 어슬렁대고 있으니 더 수상하게 보이겠지? 어쩐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군.’
신해량은 박무현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그의 어깨에 들어찬 긴장을 손쉽게 읽어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약간의 기대와 희망도. 박무현과 적당한 거리를 남겨둔 채로 신해량이 가볍게 턱짓했다.
“여긴 기념품 매장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예?”
내가 아는 거랑 다른데? 박무현의 고개가 휙 돌아가 빈 매장을 쳐다보았다. 벽을 대신하는 전면 유리창에는 두 명이 비치고 있었다. 당혹스러운 기색의 박무현과, 그런 박무현을 바라보는 신해량의 옆얼굴이.
“직원들에게는 그렇게 알려져 있죠. 식당으로 계획이 바뀌긴 했지만, 오늘 오전에 결정된 거라 아직 공표되지는 않았습니다.”
“……?”
“……선생님께서 알 수 없는 정보라는 뜻입니다.”
신해량은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어버렸다.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는 안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 수상한 사람인데. 나는 굳이 올 필요도 없는 곳에 와서 할 필요도 없는 얘기를 하면서까지 이 사람에 대해…….
“그, 안 믿기시겠지만, 해량 씨. 아니 신해량 팀장님. 제가 기밀 정보를 해킹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거로군. 그래. 신해량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신해량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미래의 치과의사는 환자들이 쏟아낸 욕설 섞인 생생한 경험담과 기지에 퍼진 온갖 소문과 신해량 본인이 직접 말해줬던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부분 과장이거나 와전된 거지만 기지 내 한국인들의 안전을 위해 불안요소는 확실히 확인하고, 처리…한다고 했었지.
박무현은 신해량의 큼지막한 손을 보다가 어깨를 무겁게 늘어뜨렸다.
“저……이제 심문당하는 겁니까?”
“…….”
내가 당신 애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난 그런 취향이 없는데. 잠시 멈췄던 신해량은 박무현의 얼굴을 가만 내려다보며 고민한 끝에 역시 그런 취향은 없는…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애인을 자처하는 사람을 향해 크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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