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크우드

미제 (6)

더스크우드 / 제이크 * MC(f)

에서 계속됩니다.

 

  • 에피10 이후 시점

  • 후속 게임(MOONVALE)의 설정과 충돌이 있습니다.

  • 모바일 뷰어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 천천히...연재합니다.


6화 - 잘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1

 

 

* 화재 및 목이 졸리는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댄과 영화관으로 향했다.

더스크우드에 있는 영화관의 로비는 한국의 대형 영화관 브랜드와는 다르게 상영관보다는 펍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보다 카페테리아에 죽치고 앉아 떠드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상영할 영화를 라디오에 곡 신청하듯이 요청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댄이 포스기 앞에 선 직원에게 말했다.

"'댄 앤더슨'으로 두 명 예약했어요."

"'살인마에게 찔려 죽었더니 친구들을 만나기 하루 전으로 회귀했습니다.' 예약하신 것 맞으시죠?"

나는 영화 제목을 듣고는 귀를 의심하며 그에게 물었다.

"진짜 저걸 보겠다고?"

"왜. 겁나냐?"

"아니 네 취향이랑 안 어울려서."

"그렇지만 네 취향은 맞지 않아?"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댄의 대답을 들은 나는 놀라 그에게 물었다. 댄은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네가 남의 취향을 신경 써주는 타입인 줄은 몰랐네."

나는 댄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보며 씩 웃었다. 어느새 서로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2개월이란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댄을 따라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레 어두워지는 환경에 시야가 적응되고 나자, 안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보였다.

앞쪽에 앉은 커플, 할 일이 없어 찾아온 것 같은 청년, 다 같이 놀러 와 나란히 앉은 10대 소녀들, 그리고 우리 뒤에 들어온 정장 차림의 어른을 더해도 스무 명을 넘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는 주변이 빈자리인 채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댄이 내게 말했다.

 

"그때 하기로 했던 내기 할래? 누가 더 무서워하는지."

"이걸 보고 무서워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누가 먼저 깜짝 놀라는 지로 하는 건?"

나는 댄이 제안하는 내기에 그리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 속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래, 뭘 걸까?"

댄은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소원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면 굳이 내기까지 걸 필요는 없는데. 나는 이곳에 입장하기 전에 샀던 음료를 빨대로 마시며 뜸을 들였다. 왠지 그가 바라는 것이 뭔지 감이 왔다. 분명 내가 언급했던 친구 관계를 어물쩍 넘겨버렸던 태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짐작하는 것을 소원으로 건다면 퍽 난감해질 것이다. 하지만 난 댄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래, 그러자."

내 대답에 댄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나도 댄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내 소원도 댄에게 난감할 만한 일이라 이 기회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길 자신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될 시간이 되자 상영관의 불이 꺼졌다. 광고 없이 시작된 영화는 내가 잘 모르는 투자사를 보여주고는 전작의 줄거리를 짧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내가 본 적 있는 전편의 후속작이다. 밤마다 나타나 친구를 한 명씩 살해하는 살인범에게 주인공이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범인에게 패배해 칼을 맞고 죽어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심리전과 주변 환경을 훌륭하게 활용하는 전략이 재밌었다. 결말도 나쁘지 않았다. 살인범이 주인공의 생각보다 더 앞선 것이 패배의 요인이었고, 패배는 곧 죽음이다.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끝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몇 달 전, 주인공의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된다는 멘트와 함께 후속작이 개봉되었다. 나는 이미 끝난 게임을 되풀이하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전작과는 내용이 전혀 다르고, 연출도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나는 살인범보다 먼저 친구에게 찾아와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며 그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팝콘과 함께 지켜봤다.

'이제 살인범이 나올 때가 됐는데…….'

부디 이 영화가 진행을 질질 끌지 않길 바라며 팝콘에 손을 더 넣었다.

 

그때, 주인공과 그의 친구 뒤로 흐릿하게 잡힌 배경이 내 시선을 끌었다. 눈썰미가 좋지 않다면 쉽게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등진 집의 창으로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언뜻 그것이 얼굴 없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 집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며 창문이 깨지고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한 화재로는 불가능할 만큼 빠르게 불길이 치솟았다. 마치 휘발유를 끼얹은 나무 위에 방화를 저지른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입안으로 넣으며 이로 꾹꾹 눌렀다.

아, 역시 오늘은 영화를 보러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날이 좋지 않았다.

 

카메라는 점점 불타는 집을 가까이 찍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인공들을 무시하고 집으로 접근하는 카메라는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카메라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몸이 시체가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문 앞까지 온 나는 현관문의 깨진 유리창으로 거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실 한가운데에 불타는 허수아비가 있었다.

아니, 리치가 불 속에 있었다.

 

나는 숨이 조이는 것을 느꼈다. 숨을 찾는 머리가 저절로 뒤로 젖혀지며 입이 열렸다. 하지만 억눌린 기도로 들어가는 공기는 없어 거위 같은 소리만 뱉었다.

뒤에서 누군가 팔을 뻗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는 버둥대며 나를 죽이려 하는 손을 손톱으로 긁어내렸다.

 

댄이 나를 불렀다. 많이 놀란 것이 어둡고 흐릿한 시야에서도 잘 보였다. 그가 내 양손을 목에서 떼어냈다. 나는 그에게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산소가 부족해 점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댄이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폐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잠이 왔다.

 

* * *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제시였다. 그것도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불어 있는 눈두덩이를 하고 있었다.

'제시가 왜 내 아파트에 있지?'

라고 생각하던 때에, 나와 눈이 마주친 제시는 아랫집에서 올라올 법한 성량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MC---!!!"

울음에 잔뜩 잠긴 목과 막힌 코로 나를 부르니 맹맹한 이름이 나왔다. 나를 꽉 안고 어깨에 눈물 콧물을 뭍이고 있어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등을 토닥여줬다.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 귀를 찔렀다.

크허허헝.

나는 좀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곳이 내 아파트가 아니라 병실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영화관에서 기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해, 제시……."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다고 사과해!"

"음……, 놀래킨 거?"

내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인 것을 알자, 제시는 파묻고 있던 어깨에서 고개를 빼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제시의 짓무른 피부를 문질렀다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건드리기만 하며 그의 눈물을 훔쳤다.

"난 괜찮아. 그만 울어, 그러다가 병나겠어."

"병상 위에 있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조금 진정이 된 제시는 침대 옆 협탁에 손을 뻗어 휴지를 뽑아 얼굴을 정돈했다. 그 행동은 꽤 익숙해 보여 아무래도 누군가 제시가 쓰도록 가져다 둔 것 같았다.

 

전보다 훨씬 말끔해진 제시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말을 시작했다.

"댄에게 연락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도대체 무슨 일이었던 거야?"

"나도 갑작스러워서 잘 기억나질 않아. 댄이 뭐랬는데?"

제시를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댄의 입장에서 나는 숨을 쉬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내 목에 팝콘이 걸렸거나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생각해 구급차를 부르고 내가 목을 긁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다고. 하지만 내가 정신을 잃은 직후부터는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잠에 빠졌다고 했다.

 

나 혼자 발작을 일으켰다는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분명 누가 내 목을 조르는 것을 느꼈는데. 하지만 영화 속에서 얼굴 없는 남자를 본 것부터 정상이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제시에게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제시는 그런 내 태도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피곤해 보이는 나를 더 캐묻지는 않았다.

 

제시는 흘러내린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내 오른쪽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댄이 네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말할 때, 이대로 널 잃는 줄만 알았어."

"댄도 참, 상황을 애매하게 전달했네."

"자꾸 웃어넘기려고 하지 마, 난 진지해 MC."

내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제시가 내 양팔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리치도 그랬어. 자기가 겪는 큰일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여겼어. 그러다가 갑자기 그렇게 떠나버렸잖아. 그 많은 비밀을 숨기고, 우리를 두고……."

제시는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아랫입술을 잘근대다 다시 입을 열었다.

 

"리치의 비밀을 아는 것은 우리 둘뿐이잖아. 내가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널 보면 내가 한 잘못이 생각나서 힘들었어. 그래서 널 피했어. 그러면 안 되는데……."

"네 마음 이해해, 제시.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제시의 뺨을 잡아 눈을 마주쳤다. 그새 그 큰 눈에 다시 물기가 한가득 고여 있었다.

 

"참, 그만 울라니까. 내가 다 미안해 제시. 그러니까 뚝 해."

"널 리치처럼 잃을 수 없어. 아직 네게 못한 말이 너무도 많아……."

정이 많은 제시. 햇살 같은 제시. 예쁜 제시.

그는 내가 더스크우드에 드리운 먹구름을 쫓아낸다고 했지만, 정작 나를 구원하는 쪽은 오히려 제시였다. 그리고 그에게 먹구름을 씌우는 것이 바로 나였다. 지금도 이렇게 나 때문에 눈물을 쏟아내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시의 축축한 뺨을 엄지로 쓸어 살살 닦았다. 하도 울어 빨개진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가 전부 빨갰다. 코도, 볼도, 입술도, 내리뜬 눈의 깃털처럼 달린 속눈썹도.

그것을 지켜보다 나는 제시가 지금 내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위험하다.

 

"제시. 있잖아……."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지만, MC. 네가 더스크우드에 오면 꼭 하려던 말이 있어. 있지……."

분명 제시의 말을 듣는다면 내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저 말은 들으면 안 된다. 수도 없이 모른척한 많은 일들과 함께 덮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내가 끊어낼 수는 없었다. 제시에게 그럴 힘도, 그럴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쩌면 아쉽게도 제시의 말은 결국 듣지 못했다. 제시가 하려던 이야기는 친구들이 내 병실로 들이닥치며 종료되었다.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와 제시가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애가 기절하고는 아직까지도 잔다니까?!"

"병원에선 목소리 좀 낮춰."

 

댄을 선두로 친구들이 함께 몰려 들어왔다. 보아하니 댄이 모두를 불러 모은 것 같았다. 이렇게 모두 찾아올 필요는 없지 않았나. 괜히 그들을 번거롭게 한 것 같아 나는 화끈해진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찾아와줘서 고마워. 난 정말 괜찮아. 다들 근무 중이었던 거 아냐?"

"오늘은 주말이야. 너, 하루 내내 잤거든."

 

나와 클레오의 대화를 듣던 제시가 친구들 사이를 살피며 물었다.

"한나는?"

"자기가 자취한 집에 급히 볼일이 있다고 빠졌어. MC 병문안은 나중에 따로 오겠대."

나는 한나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마치 폭탄의 제한 시간을 연장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제시에게 한나가 리치에 대해 눈치챈 것 같다는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 * *

 

MC가 몇 가지 검사를 빠르게 마치고 퇴원 수속을 밟고 나서, 제시는 한나의 집으로 향했다. MC와 사이가 다시 좋아진 것을 눈치챈 클레오와 댄이 이것저것을 찔러보듯 물었지만, 제시와 MC는 그저 둘만의 비밀이라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콜빌에서 더스크우드로 돌아온 모두는 주말이라도 각자의 일정이 있는지 바로 헤어졌고, 제시는 개인적으로 다짐한 일을 시도할 수 있었다. 바로 리치가 바랐던 의지를 자신이 이뤄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시는 지금 한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한나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둘이 조용한 곳에서 비밀스럽게 대화하기엔 지금이 제 적기였으니.

 

제시는 한나의 집으로 걸어가며 로저 카센터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울타리 너머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제시는 자신이 잘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귀를 울타리 위쪽으로 향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리치가 죽고 나서 로저 카센터는 문을 닫았다. 리치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마음 아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채 문만 잠겨 있을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시 소란이 들려왔다. 제시는 그것이 리치의 아버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치의 아버지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리치가 살아있을 동안엔 그가 아버지의 버릇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제시는 리치와 그의 아버지가 싸우는 것을 몇 번 목격했으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치가 없는 지금은…….

문득 클레오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시는 더 고민하지 않고 로저 카센터의 담을 넘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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