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크우드

미제 (4)

더스크우드 / 제이크 * MC(f)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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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연재합니다.


4화 - 일이 아직 끝나지 아니함. 4

 

 

3개월 전.

 

[MC……. 리치가……, 리치가…….]

“……미안해. 그냥……, 내가 다…미안해.”

 

제시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혹시 몰라 예매해 두었던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들고 한국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제시는 리치가 그럴 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그를 위로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속 한구석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한나가 돌아왔고, 리치가 살아있다. 나를 짓누르던 죄책감이 날아가며 몸도 함께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온전히 홀가분하지 않았다. 물론 사건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지금 내 마음에 끝까지 남아있는 무거움의 정체는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찝찝함.

나는 리치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거슬려 그 대화를 계속 떠올렸다.

 

- 난 더 이상 달아나지 않아.

- 그게 무슨 뜻이야?

 

리치의 계획은 틀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달아나지 않겠다고 했다.

왜 나에게 정체를 드러냈을까.

리치는 자수할까?

아니면…….

 

나는 제시와의 통화를 끊고 메시지 앱을 들어갔다. 리치의 답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메시지 함에는 리치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자가 알림을 보이고 있었다.

알란이었다.

 

- 광산에 폭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광산의 입구가 무너져 현재 진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범인은 아직 검거하지 못했고, 리차드 씨는…….

-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 최 씨의 친구분께서도 광장에 있다고 하셨죠. 그분께선 빠져나오셨습니까?

 

폭발. 화재.

저 두 메시지가 나의 피를 차게 식혔다. 생각을 새카맣게 태워버린 메시지는 내 불안에 확신을 끼얹었다.

리치는 죽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안돼.”

 

나는 휴대폰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늘어뜨렸다. 휴대폰의 모서리가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불안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리치가 죽은 줄 알았던 그날도, 리치가 별장에 찾아왔던 그날도.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이런 직감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 *

 

"MC?"

"아, 응."

 

릴리의 부름에 상념에서 벗어난 나는 대화에 집중한 척,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제이크 이야기라면 좀 더 자리를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테라스로 갈까?"

"좋아. 나도 복도는 조금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릴리는 내 말에 대답하고는 먼저 떠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만큼 빠른 발걸음으로 테라스에 도착한 릴리는 문을 닫자마자 내게 질문했다.

 

"나한테 숨기는 것 없이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제이크한테 연락 온 거 있어?"

 

이 질문에는 답변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릴리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때 그 광산에서 연락을 한 것이 다야."

 

내 대답을 들은 릴리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내가 한 대답이 그가 원하는 것과 달랐음을 짐작했다.

"정말이야. 내가 뭐 하러 제이크의 연락을 너희들에게 숨기겠어."

"숨길 수 있지.……언니 때문에 제이크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아.

제이크와 릴리, 한나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걸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내게 문제가 너무 많다는 사실과,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릴리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너라면 제이크를 찾으려고 노력할 거라고 생각 했어.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

그렇다면 이미 제이크와 연락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어. 미안해."

"아니야, 그렇게 보일 수 있지. 이해해. 하지만……나도 제이크가 어디 있는지 몰라.

내가 제이크를 찾지 않는 이유는, 내가 움직이면 제이크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나는 해가 거의 저물어 서늘한 빛을 띠기 시작하는 숲의 너머를 보았다. 그 어딘가에 제이크가 있을 것만 같아 그리움이 샘솟았다.

"내가 함부로 제이크를 찾으려고 시도하면 서로에게 위험할 거야. 그 추격자들은 내 존재도 인지하고 있으니까.

내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더스크우드에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해."

"제이크의 추격자들이 아직도 너를 쫓고 있어?!"

 

이번 질문에는 조금 생각이 필요했다. 추격자에 대한 것은 어디까지나 심증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이크를 잡지 못했다면 나를 노리러 올 거야.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가 날 찾으려 한다면 그건 제이크나 추격자들이겠지. 어느 쪽이든 제이크가 살아있다는 뜻이 될 거야."

 

그래서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가 무사하다는 증거가 내 앞에 나타나기를. 제이크가 겪고 있을 고난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은 무척 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릴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러운 투로 내게 물었다.

 

"미끼가 되겠다는 거잖아. 너무 위험한 일 아니야?"

"추격자들도 정체를 숨겨야 하는 입장이야. 내 카메라를 해킹하려 시도했을 때 얼굴을 숨겼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그러니까 함부로 날 잡을 순 없을 거야.

그리고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릴리."

 

내 답을 들은 릴리는 자신이 가진 의문이 다 해결되었다며 식당에 다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궁금한 것이 없어져 시원한 얼굴이기보다는 더욱 근심이 깊어진 모양새긴 했지만, 어찌 됐든 내게 더 할 말은 없어 보였다.

 

* * *

 

식당으로 돌아가니 댄이 열혈한 몸짓으로 연설을 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들어보니, 한나에게 우리들이 한나를 찾아냈던 과정을 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수염 난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후문으로 돌진했지."

"휠체어로 얼마나 돌진했다는 거야?"

"조용히 해! 지금 중요한 순간이라고."

 

저 섬세하지 못한 바보가 한나에게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오로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무용담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니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였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흘러 댄의 무용담은 어느새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는 전보다 더 커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불이 팍! 꺼지는 거야. 제시는 비명을 무슨 별장 무너뜨릴 것처럼 지르고……."

"그렇게 시끄럽게는 안 질렀어!"

 

나는 제시의 얼굴이 발갛게 물드는 것을 보고 웃으며 대꾸했다.

"그치. 딱 내가 있던 나라까지 들릴 정도였어."

"MC 너는 전화 중이었으니까 들린 거잖아! 그만 놀려, 참……자꾸 댄한테 나쁜 것만 배워."

 

우리는 한바탕 작은 웃음을 터뜨렸고, 댄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우리는 마이클이 곧 우리 별장으로 오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 왜 그랬댔지? 그건 기억이 안 나는데, MC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지."

"음……."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듯 상체를 뒤로 물리며 말을 아꼈다. 한나의 휴대폰을 뒤지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숨기는 것이 나았으니까.

댄은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숨기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를 제외한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이클과 맞서 싸워서 이 친구들을 지키기로 결심했지. 그놈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놈이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총을 꺼내……타-앙!"

"뭐?! 총?!"

 

댄은 마치 그 자리에 다시 있는 것처럼 그때의 일을 몸소 시연하며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총 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한나는 댄이 멋짐을 뽐낸 것이 무색하게도 그가 총을 쐈다는 것에 집중하며 기겁했다.

"총을 가져왔어?!"

"아. 내 거 아니야!"

 

예상치 못한 지적을 받은 댄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한나는 전혀 믿지 못하는 듯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총을 가져온 거야? 정말 마이클을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었어?!"

"정말 내가 아니라니까! 클레오가 총을 찾았어."

"뭐? 클레오?! 네가 총을 가져왔다고?"

 

댄이 다급하게 뱉은 말에 한나의 화살은 클레오를 향하게 됐다. 하지만 댄과 달리 찔리는 구석이 없던 클레오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침착하게 말했다.

"난 발견한 사람이지, 가져온 사람이 아니야. 내가 가져왔다면 그렇게 모두를 불러서 이게 누구 거냐고 총을 보여주진 않았겠지."

 

지금에 와서 총의 주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에 못다 한 추리를 끝내려는 듯, 친구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댄이 클레오의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총의 주인은 토마스야. 자기가 쓰게 해달라고 나한테 얘기했거든."

"댄! 나 아니라고 했잖아!"

 

댄의 모두의 시선이 토마스를 향했다.

토마스는 억울하다는 듯 식식댔지만, 자신이 아니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쏠리는 의심을 털기 위해선 릴리를 걸고넘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릴리가 먼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털어놓았다.

 

"됐어. 그만해. 내가 가져왔어. 아버지가 다락방에 숨겨둔 걸 알고 있었거든."

"릴리!"

 

릴리의 말에는 모두가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릴리일 거라고 추측했던 토마스도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한나는 댄에게 했던 것보다 더 새된 소리를 질렀다.

"제정신이야?!"

"쏠 생각은 없었어! 우릴 지킬 수단이 필요했다고!"

 

한나에게 맞서 버럭 소리를 지른 릴리는 한층 힘 빠진 소리로 말을 이었다.

"위협만 할 생각이었어. 마이클은 너무 위험했고, 우린 이미 리치를 잃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릴리의 사정이 이해가 된 우리는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흩뜨렸다. 그 중 가장 안색이 좋지 못한 한나는 마른세수하며 릴리에게 물었다.

"그 총은 어떻게 했어?"

"……숲에 묻었어. 탄피까지 전부."

 

릴리는 총을 쏘고 난 후부터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지러운 별장을 뒷정리할 목적으로 탄피를 모으고 피와 화약 자국을 지웠다. 하지만 현장을 치우고 뒤늦게 도착한 경찰에게 마이클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일을 은폐하기로 암묵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저 총과 탄피를 없애 버리면 끝날 일이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고.

 

그 말을 들은 한나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 것처럼 다시 물었다.

"피……? 마이클이 맞았어?"

 

이것에는 댄이 대답했다.

"한발. 오른팔에. 나머지는 빗나갔어."

 

나는 귀를 막는 대신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눈을 감으면 옷 위로 붕대를 투박하게 감은 채로 벽에 미끄러지듯 주저앉던 누군가의 CCTV 영상이 아른거릴 것 같았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죽지 않았을지도, 다른 누군가와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분기점을 되뇌고 싶지 않았다.

그때, 던포트 부부가 식당에 찾아오며 내 바람은 이루어졌다.

 

"대화 방해한 건 아니지? 시간이 많이 늦어서, 다들 자고 갈 건지 물어보려고 왔단다."

한나의 어머니께서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는 그제야 시계를 확인하며 자리를 파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전 자고 갈게요. 내일 근무도 없으니까."

"저도. 이 몸으로는 이동하기 좀 힘들어서."

 

한나는 이미 전부터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 같았고, 클레오와 댄은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 외의 친구들은 모두 지금 돌아가겠다고 했다.

집을 떠나는 사람에 릴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 의아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며 던포트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한나가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MC. 자고 가지 않을래? 감사할 일이 많았잖아.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그래, 미아 씨. 방도 넉넉히 있으니 편하게 있다가 가요."

 

한나는 붙잡고 있는 팔을 놓지 않았다. 던포트 부부까지 합세해 설득하는 통에 집에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아 나는 결국 던포트 가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며 친구들을 배웅했다.

 

* * *

 

나는 MC와 할 말이 있어 잠을 자지 않고 방에서 기다렸다.

들뜬 분위기를 틈타 기어코 술을 마셔댄 댄과,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내내 긴장 상태였던 클레오는 금방 잠에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방을 조심스럽게 지나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에 머문 손님이 잠들어 있지 않길 바라며 노크했다.

 

"MC, 자?"

"……한나?"

 

다행히 MC는 문을 열어 나를 맞이했다. 나는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을 사과하며 손님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애들이 있으면 물어보기 힘들 것 같아서 지금 왔어. 그리고 문자로 얘기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라……."

"그렇구나. 괜찮아, 얘기해 봐."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나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MC를 살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그는 눈빛에 피곤함이 내려앉아 내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것은 토마스와 싸웠을 때 나를 표현했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MC도 뭔가 들켜선 안될 위험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죄와 연관되어 있을까?

그건 지금 자신이 그에게 해야만 하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다.

 

"오른팔의……붕대."

내 말을 들은 MC는 눈에 띄게 놀라며 몸을 들썩였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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