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g (3)
더스크우드/제이크*MC(f)
에서 이어집니다.
에피9 이후 시점
에피10의 설정과 충돌이 있습니다 : 마이클 핸슨이 범인인 설정입니다.
죽음을 맞이한 MC가 회귀했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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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순회
3단 케이크같이 생긴 분수 꼭대기의 둥근 구체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바로 아래층의 물을 채웠고, 한계치를 넘은 물은 사각형으로 파여있는 홈을 통해 다음 층으로 떨어졌다.
작은 폭포수의 소리를 내는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제이크는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딱딱하게 굳은 채로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던 제이크는 분수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 풍경을 우에서 좌로 돌아보았다. 광장 입구에 서 있는 간판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더스크우드 광장’
그는 한숨을 내쉬며 벤치를 찾아 앉아 마스크를 내렸다.
습한 기운이 가시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셔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맑아진 정신이 그를 더욱 강하게 타박할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이곳엔 왜 온 거지?’
저 질문에 대한 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더스크우드를 향하는 차에 급히 몸을 실으며, 그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으려 했다.
첫째: 크루들 중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시점에서, 온라인으로 구할 수 없는 증거는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는 이 근거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적은 문서에 따르면 범인은 크루 안에 없었고, 그 문서의 주인은 한나의 친구들을 전부 믿길 원했으니까. 문서를 신뢰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크루들을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둘째: 그 사람이 크루들을 지켜달라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것 또한 제이크를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의 당부에는 ‘절대로 더스크우드에 오지 마라’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직접 더스크우드에 찾아올 만큼 크루를 지키려는 열정이 없었다.
하-.
양 팔꿈치를 무릎에 올린 제이크는 허리를 숙여 손에 머리를 기댔다. 진실을 외면하려는 듯 눈을 꽉 감았지만, 그의 현실은 눈앞이 아닌 심장에 있었다.
결국 남은 이유는 하나뿐이지 않은가. 그는 문서의 주인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 사람에게 끌려서, 그 사람이 걱정돼서. 이 간질거리는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기에 이 위험한 곳에 들른 것이다.
"미쳤군."
고작 몇 페이지밖에 안 된 글을 읽었다고 이렇게 이성을 잃을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만큼 그 사람이 내 머릿속을 흐려 놓았단 말인가?
자신이 미친 걸 알았다면 어서 이 짓을 그만두고 다시 더스크우드를 떠나야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여길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단단히 미친 거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니 제이크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휴대폰을 켜 지도를 열었다. 저쪽 길로 가면 도서관이 나온다. 이미 어제 도서관을 떠난 사람이 다시 그곳에 나타날 리가 만무했지만,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위태로운 모습으로 도서관을 뛰쳐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그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해야 만족이 될 것 같았다.
제이크는 도서관이 위치한 길목으로 발을 옮겼다. 따뜻한 색의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들은 이곳의 사람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주었다.
좋은 곳이지.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제이크는 벽에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물로 시선을 옮겼다. 간판은 벽만큼이나 화려한 필기체로 ‘Rainbow Cafe’라 적혀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채색인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분명 미운 오리 새끼마냥 툭 튀겠지. 그렇게 생각을 마친 그는 그곳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완전히 지나치기 전,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이다.
갈색 머리의 여자가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딸기 초콜릿케이크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오로지 케이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제이크는 저 사람이 그가 맞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이렇게 뛰게 할 사람이 두 사람이나 존재하진 않을 테니까.
제이크는 급히 그를 볼 수 있는 빈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저 가게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이미 휘발된 지 오래였다.
* * *
MC는 레인보우카페의 딸기 초콜릿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맛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맛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친구들과, 제이크와.
혼자 앉아 숨죽이고 먹는 자신이 처량했다. 그래도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누나는 비정상. 금방 수정돼서 사라져야 할 존재.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이곳으로 넘어왔어요. 이곳에 순응했다면 살아남았을지도 몰라요. 누난 그렇지 않았죠.’
……됐어. 생각하지 말자. 난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아.
MC는 시청에서 가져온 지도를 펼쳤다. 다음 목적지는 검은 호수였다.
.
.
.
카페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덴 시간이 다소 걸렸다. 밝은 낮임에도 호수는 빽빽한 숲의 그림자로 검게 빛났다.
아름답다. 사진으론 다 담을 수 없는 드넓음 이었다.
MC는 아래를 살피지도 않은 채 자기가 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무가 비치는 수면이 일렁이는 것에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과 푸른색과 흰색이 그러데이션을 이루는 광활한 하늘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흔들린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린 걸까?
물론 그때의 선택과 행동을 후회하진 않는다. 모두를 지키고 범인을 빠르게 잡을 수 있는 최선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윽.”
무서웠다. 내 미래를 결정할 수 없게 된 지금이 너무 무서웠다.
MC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얼굴이 빨개지며 눈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숨을 멈춰도 막히지 않는 울음이 덩어리져 터졌다.
이 넓은 호숫가에서 혼자란 외로움이 덮치자, 소리를 죽일 수도 없었다.
그 아이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난 그럼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한 채로 사라지고 마는 거야? 나 혼자만 진실을 가지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거야?
바보 같은 MC.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제이크에게만이라도 털어놓았을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야.
머물지 못하는 바람이 숲을 지나쳤다. 바람을 떠나보낸 숲은 쓸쓸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 * *
제시가 안내해 줬던 순서대로 짧은 투어를 마친 MC는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MC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아마 범인은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분명 이전의 그때처럼 누군가를 죽여 협박하겠지. 아니면 더 큰 일을 벌이던가.
MC는 탁자 아래에 놓여있는 검은 가방에 팔을 뻗어 그것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다소 묵직한 소리를 낸 하드케이스의 가방을 내려다보며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서 권총이 보였다. 그리고 총알까지.
범인을 확실하게 잡기 위한 방법이다.
좀 더 여유로웠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이었다. 내가 떠날 수밖에 없다면 얼굴 없는 남자와 함께 가겠다.
나를 죽이더라도, 내 소중한 사람들까지 해칠 수는 없을 거다.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끝까지 모든 것을 끝낼 것이다.
나 혼자 스스로 말이야.*
MC는 조심스럽게 탄환을 넣은 권총을 자신의 등 쪽 홀더에 넣었다. 제이크가 제대로 일을 마쳤다면 친구들은 그 별장에 있을 것이다. 한나의 휴대폰이 열릴 때까진 시간이 남았고, 자신에겐 약간의 여유가 남았다.
그럼 저번에 못 갔던 그곳에 가볼까? 마지막으로.
MC는 며칠간 머무르며 정이 생겨버린 방을 한번 돌아본 뒤 힘차게 걸어 나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가 MC의 뒤를 따랐다.
* * *
“처음 보는 아가씬데? 이런 시골까진 뭐 하러 온 걸까?”
단발의 머리를 반묶음 한 남자가 MC에게 잔을 건네며 물었다. MC는 남자를 보며 활짝 웃었다. 며칠 만에 처음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었기에.
MC의 웃음을 본 필은 고장 난 듯 몸을 굳히고는 곧 다시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이런, 깜짝이야. 난 미녀의 미소엔 약한데.”
“하하하! 여전히 느끼해, 필.”
MC가 소리 내며 꺄르르 웃었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다소 이상한 구석이 있었지만, MC가 웃는 모습에 집중한 필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귀 끝이 살짝 붉어진 필은 휴게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술은 서비스라는 말은 잊지 않았다.
MC는 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 자신의 잔을 내려다보았다. 새빨간 빛의 코스모폴리탄. 작게 한 모금을 맛보자 가벼운 통증이 화끈하게 목을 자극했다.
MC는 왼팔로 턱을 괴며 잔을 살살 돌렸다. 오늘 밤처럼 달달한 고통은 없을 것이다. 여자를 죽인다는 이 칵테일처럼 말이야.
“술이 입에 안 맞아? 다른 걸로 줄까?”
어느새 다시 다가온 필이 MC에게 말을 걸었다. 휴게실에서 몸가짐을 정돈하고 온 것인지 그의 머리가 새로 반듯하게 묶여 있었다. 향수도 뿌린 듯 아까와 다른 향이 훅 끼쳐왔다.
“아니, 맛있어. 마음에 들어.”
“다른 필요한 건 없어? 안주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네가 원하는 걸로 말이야.”
“그것도 서비스인 거야? 하하. 너무 후한데?”
“서비스를 후하게 주면, 그쪽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 싶어서.”
필의 눈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야릇하게 한쪽 입꼬리만 올리는 얼굴을 보니, 그가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크가 아니었다면 분명 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MC는 필에게 대답했다.
“그럼, 안주 서비스는 거절할게. 난 알려줄 수 있는 게 없거든.”
“이름도? 그 정돈 말해줘도 되잖아.”
“음…… 좋아. 이름이라면. 난 미아야.”
MC의 이름을 얻은 필은 MC의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리더니 만족스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미아, 미아……. 안녕, 미아.”
“안녕, 필.”
MC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눈 필은 자신을 부르는 고객을 발견하곤 MC에게 말했다.
“다음에도 올 거지? 그땐 전화번호를 기대해도 될까?”
“음……, 글쎄. 여유가 된다면.”
“좋아. 네게 여유가 생기도록 노력해 봐야겠네.”
그럼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 불러. 원하는 안주도 골라보고.
필은 MC에게 윙크를 남기고는 손님에게 떠났다. MC는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코스모폴리탄을 미련이 남은 눈빛으로 내려보다 슬쩍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열한 출항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 * *
필은 자신을 불렀던 손님을 향해 급히 걸었다. 빠르게 일을 마치고 다시 미아에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더스크우드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분명 그와 다시 만날 기회는 몇 번 없을 것이 뻔했다. 그 전에 번호만이라도 꼭 얻어야지.
누구일까? 처음 만난 사이임이 틀림없는데도,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였다.
위화감이 느껴질 만큼 그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자인가? 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미아는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도대체 그 사람의 무엇에 이렇게 끌리는 걸까?
뭐, 오래 만나다 보면 알게 되겠지.
필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님을 향해 다가갔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그는 자리에 처음 앉았을 때 가져다준 메뉴판과 물만 놓인 테이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이 제법 오래 걸렸네.
“네, 주문받겠…어어? 손님?”
필이 다가와도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후드의 남자는 필이 말을 걸자 벌떡 일어서더니 급히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야 이 미친놈?”
필은 그 뒷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는 빈 물잔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득 미아가 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린 그는 그 여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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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ll, I will figure this one out. On my own - Decode, Paramore
* 안예은 앨범 섬에서,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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