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크우드

미제 (12)

더스크우드 / 제이크 * MC(f)

에서 계속됩니다.

 

  • 에피10 이후 시점

  • 후속 게임(MOONVALE)의 설정과 충돌이 있습니다.

  • 모바일 뷰어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 현생이 바빠져 문장이나 문맥을 다듬지 못하고 올리고 있습니다.

  • 천천히 연재합니다.


12화 - 지어지지 못한 이름 1

 

 

모텔. 점심 휴식 시간을 빌려 통화를 건 릴리는 상대에게 말했다.

 

“어디야?”

-가고 있어. 5분 거리 정도?

 

MC가 모텔에 장기 투숙을 하다 집을 구해 나갔던 날, 그는 몇 가지의 물건을 잃어버렸다. 그중엔 MC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있었고, 릴리는 나중에라도 찾으면 연락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어제 그 물건 중 하나가 벽장 밑에서 발견됐다. 마침 오늘은 MC의 아르바이트 근무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그것을 가지러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릴리는 카운터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녹음 기능이 달린 만년필. 그것은 꽤 고가의 제품으로 보여 릴리는 MC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만하다고 생각했다.

 

-릴리. 한나랑은 좀 어때?

“언니? 아, 그게…….”

 

릴리는 MC에게 대답하는 것을 미루고 자신의 옆을 흘긋 바라봤다. 그 자리엔 미스 윌터가 앉아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걸어오는 중이지?”

-응.

“나도 그쪽으로 갈게, 중간에서 만나자. 여기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여서.”

 

금방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말로 통화를 종료한 릴리는 미스 윌터에게 말했다.

 

“윌터. 저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그래,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돌아와.”

 

 

히터의 온기를 따갑게 느끼던 건물에서 벗어나자 시린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릴리는 안에서 목도리를 챙겨 나올 것을 아쉬워하며 휴대전화를 들고 MC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텔에 다시 들어가 목도리를 가지고 나오기엔 마음이 급했다.

릴리는 MC가 전화를 받은 소리를 듣자마자 서두를 열었다.

 

“나한텐 언니만 문제가 아니야. 엄마가 자꾸 본가로 돌아오라고 하셔.”

-응? 자세히 얘기해 봐.

 

릴리는 전화 너머로 MC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자신이 대답을 두서없이 뱉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이 갑갑한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러다 불평할 기회가 생기니 성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안. 그러니까 엄마가 뭐라고 하셨냐면, 언니가 지금 본가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나도 와서 오랜만에 가족이 다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자는 거야. 언니가 큰일을 겪었으니 내가 언니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도 있으시겠지.”

 

릴리는 MC가 올 방향으로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MC에게만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비밀이었다.

 

“근데 MC 너도 알겠지만, 난 지금 가족들이 전부 다 불편해.”

 

이복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30년 가까이 되도록 한 번도 알리지 않은 아버지.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은폐까지 했으면서 10년이나 숨긴 언니. 그 모든 비밀을 껴안고 있는 자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탄을 제한 시간만 겨우 늘리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그 사람들 앞으로 가란 말인가.

 

“같이 식사만 하는 것도 체할 것 같은데, 집에서 살다가 마주치기까지 하면 분명 미쳐버릴 거야.”

 

릴리는 MC에게 말하다 드는 상상에 진저리 쳤다. 그리고 며칠 전 새해를 맞이하며 가졌던 가족 만찬을 떠올렸다. 그 자리에서 토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끔찍했던 경험을.

릴리는 휴대전화를 고쳐잡고 가로수길을 따라 걸으며 MC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 * *

 

12월 31일 저녁. 더스크우드는 새해를 맞이할 분위기를 띄우며 폭죽을 터뜨렸다. 밖은 늦은 저녁인데도 대낮처럼 반짝이고, 활기가 넘쳤다. 매해 그랬듯 이 폭죽 소리는 밤새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

 

지금 릴리에게는 그 태양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식사가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았다.

포크질 한 번이 힘겹고, 이 테이블에 블랙홀이 들어앉은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그렇게 큰 질량의 분위기를 끌고 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가족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편함은 오직 릴리만 느끼고 있었다.

 

“오랜만에 함께 모이니 참 좋네요. 크리스마스 땐 한나도 릴리도 바빴잖아, 그렇지?”

“대신 둘이 데이트할 수 있었잖아요. 난 오히려 더 좋았어.”

“당신도 참."

 

릴리의 아버지를 보며 다정한 미소를 띄는 어머니는 와인잔을 흔들며 수줍게 말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했던가? 너희 아빠를 처음 만났던 때도 이렇게 폭죽이 터졌단다.”

“정말요?”

“응. 더스크우드는 아니었지만, 그곳도 새해 자정에 불꽃을 터뜨렸지. 엄마는 친구들과 광장에 놀러왔는데, 정말 사람이 많았어. 그런데도 너희 아버지가 너무 눈에 띄더라. 한눈에 반한 거지.”

“로맨틱해라.”

 

어머니는 그날을 회상하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에게 기대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한 팔로 둘러 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오글거린다며 놀리면서도 화목하게 웃는 한나를 보니, 릴리는 자신이 이 가족에서 떨어져 나온 기분이 들었다. 샐러드에서 종이 맛이 났다.

 

“그래서 나는 모른 척 그이에게 다가갔어. 그리고 카운트 다운이 끝났을 때, 키스를 했지.”

“어머나!”

 

릴리는 종이를 씹고, 또 씹었다. 이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먹어 치울 기세로. 릴리는 거칠게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난도질했다.

 

“사실 혼날 각오로 벌인 일이었어. 이렇게 매력적인 남자인데, 임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거든.”

“아니었어요?”

“하하. 임자는 무슨, 네 엄마가 내 첫사랑이란다. 당신을 만나려고 그동한 혼자였던 거지.”

 

끼익.

고기를 썰던 칼에 힘이 과하게 실려 접시를 긁었다. 그 날카로운 소리가 릴리의 신경을 갈랐다.

그가 너덜너덜한 정신을 다시 이어 붙여 식사에 집중했을 땐 어느새 대화의 주제가 바뀌어있었다.

 

“요즘 하는 일은 어때, 한나?”

“많이 늘었어요. 이젠 칭찬도 받아요.”

“그래? 대단하구나. 뿌리를 다 끊어먹지 않았냐고 꾸중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버지와 한나가 하하 웃는 동안 릴리는 잘게 썰린 고기를 포크로 찍었다. 그러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일을 하는 중인데?”

“아, 클레오에게 못 들었나 보네. 요즘엔 꽃과 나무를 심는 봉사를 하고 있어. 도로 갓길을 따라서 화단이 만들어지는 중이야.”

“그래서 집에 계속 흙투성이로 들어오고 있단다. 꽃을 심는 건지, 본인을 심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아, 엄마!”

 

테이블엔 다시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폭죽 소리와 어우러졌다. 그 사이에서 함께 웃을 수 없는 릴리는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입과 코에서 피 맛이 났다. 역한 느낌에 눈을 감으니 폭죽 아래에서 고기를 땅에 심는 언니가 그려졌다. 그리고 등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첫사랑이라니까!’

 

콰당.

릴리가 다급히 일어선 탓에 넘어진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깜짝 놀라 멈춘 분위기를 향해 릴리가 말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먼저 일어날게요.”

 

대답을 듣지 않고 빠르게 도망치는 그를 몇몇 목소리가 붙잡았다. 걱정일까, 질책일까, 그건 확인할 수 없었다. 그의 뒤는 여전히 첫사랑과 꽃을 심었다는 목소리가 따라다녔다.

 

* * *

 

모든 일과 감상을 털어놓은 릴리는 후련한 마음으로 숨을 뱉었다.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기분이 훨씬 나아진 것 같아.”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면 참 다행이야.

“그런데 어디야? 지금쯤이면 만나야 하지 않나?”

-……아, 이야기가 심각해서 잠시 서있었어. 너는 어딘데?

“나?”

 

MC의 질문에 릴리는 모텔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말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모텔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나도 거의 안 갔네……. 빨리 갈게.”

 

릴리는 걸음을 재촉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그는 아까 돌아봤던 자신의 시야에 걸린 한 사람을 다시 떠올리고 위화감을 느꼈다.

 

“MC, 있잖아……좀 이상한 게 있어.”

-무슨 일이야?

“내가 모텔에서 나갈 때 마주쳤던 사람이 있거든? 그리고 아까 모텔을 볼 때 그 사람이 보였던 것 같아. 나는 너랑 얘기하느라 거의 안 움직였는데……왜 아직도 그 사람이 내 뒤에서 걷고 있을까?”

 

MC는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대답하는 목소리엔 경악과 공포가 느껴졌다.

 

-당장 뛰어. 빨리!

 

릴리는 휴대폰을 놓치지 않게 꽉 잡으며 달렸다. 뒤에서도 누군가가 뛰는 듯 다닥다닥 붙는 발소리가 자신의 발걸음에 섞여 들어갔다.

미친, 미친!

릴리는 울 것 같은 눈에 힘을 주고 참았다. 여기서 눈물이 났다간 시야가 가려져 넘어질지도 모르니.

 

릴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MC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도 자신을 향해 달려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때, 뒤를 따라오던 그 사람이 릴리의 어깨를 치고 앞으로 나갔다. 거칠게 떠밀려 휘청이는 시야에 그가 MC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MC의 배에 칼이 들어갔다 뽑혔다.

 

“MC!”

 

* * *

 

구급차가 도착해 MC를 실어 나를 동안 구급대원은 그의 복부에 거즈를 여러 개 겹쳐 배를 뚫을 듯이 꽉 눌렀다. 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누르는데도 흰 천은 금방 붉게 변해 모서리에 물이 맺혔다.

 

릴리는 그것을 보며 자신의 손가락 틈으로 스멀스멀 빠져나와 흐르던 피를 떠올렸다.

피가, 피가 너무 흘렀다. 그만큼 MC는 색을 뺏기는 것처럼 허옇게 질려갔다.

 

“친구분 계속 불러주세요. 깨어계셔야 합니다.”

“MC, 제발 잠들면 안 돼. 정신 좀 차려봐. MC! 최미아! 최미아!!”

 

릴리는 MC의 머리맡에서 소리쳤다. 추위를 느끼는 것처럼 덜덜 떨리는 MC의 낯에서는 땀이 떨어졌다. 그는 릴리의 목소리를 듣고 감기려는 눈을 뜨려 애쓰면서 힘없이 말했다.

 

“이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심폐 기계에서 위험한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MC의 눈꺼풀이 닫혔다.

구급대원이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동안, 릴리는 목이 쉴 듯이 비명을 질렀다.

 

* * *

 

차가 병원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MC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의사 몇몇이 튀어나왔고 구급대원과 알 수 없는 말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릴리의 앞을 가로막고 MC에게 다가가려는 것을 막았다.

 

“보호자 분은 다른 곳에서 대기해 주세요.”

 

릴리는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MC에게서 멀어질 수도 눈을 돌릴 수도 없었다. 발을 땅에 굳게 붙어 그를 내보내려는 사람들에게서 저항했다. 그리고 입은 구급차에서부터 계속 지르던 비명을 반복했다.

 

“MC, MC! 일어나. 눈 좀 떠봐!”

 

릴리는 떠밀리는 힘에 헤엄치듯 몸을 눌렀다. 그런데, 안에서 의사가 릴리를 들이라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MC의 주변을 막고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주는 것을 보며, 릴리는 이것이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의사가 한 말은 릴리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대신 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환자분이 칼에 찔리셨다고요.”

“네.”

“그게 정확히 어디였죠?”

 

갑자기 그건 왜 묻는단 말인가. MC가 어디를 다쳤냐는 것은 누군가에게 물을 것 없이 한눈에 찾을 수 있을…….

MC의 배를 보고 대답을 하려던 릴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숨을 멈췄다.

 

피가 터져 나와야 할 배가 깨끗했다. 그럴 리가 없다. 릴리는 분명 봤었다. 반 뼘 길이의 상처가 벌어져 뜨뜻한 생명을 토하는 것을. MC의 피가 릴리의 손과 소매를 물들였었다. 그 축축한 감각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릴리는 자신의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은 거짓말처럼 깨끗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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