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2)
더스크우드 / 제이크 * MC(f)
에서 계속됩니다.
에피10 이후 시점
후속 게임(MOONVALE)의 설정과 충돌이 있습니다.
모바일 뷰어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천천히...연재합니다.
2화 - 일이 아직 끝나지 아니함. 2
“헉!”
나는 꽉 막혀 있던 숨을 터뜨리듯이 들이마시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침대가 크게 출렁거렸고, 그 반동은 나의 울렁이는 속까지 뒤흔들었다.
“우욱!”
나는 침샘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억눌러 참으며 몇 번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입을 틀어막았던 손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한참 시간이 흘러 토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벌써 며칠째 이렇게 갑작스러운 아침을 맞고 있었다. 무언가에 잡아먹힌 것처럼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끔찍한 절망과 분노가 감정을 지배했다.
그중 가장 불쾌한 점은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러가며 입에 칫솔을 물고 양치를 시작했다.
호텔에서 지낸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넘었다. 기력이 쇠한 것이라는 사장님의 말처럼, 호텔 방보다 안정적인 거처를 구하고 휴식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딩동.
내가 양칫물을 뱉고 세수를 끝마쳤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은 뒤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릴리가 서 있었다.
“릴리? 너 다시 일 시작한 거야?”
“네가 맞았구나, MC. 방을 관리하려고 보니까 네 이름이 보여서 찾아와봤어.”
“응, 여기서 계속 머물고 있었어.”
“그렇구나…….”
릴리는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아무 말 없이 눈동자만 굴렸다. 무언가 말하기를 망설일 때 나오는 버릇인 것 같았다.
나는 먼저 릴리에게 말을 걸었다.
“한나는 많이 괜찮아진 거지? 다행이다.”
“응. 한나도 곧 다시 일을 시작할 것 같아. 그것보다……미안해. 널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더스크우드는 처음이잖아.”
“아냐, 무슨. 네 언니도 챙겼어야 했잖아. 난 괜찮아.”
릴리와 짧은 안부 인사를 건네던 나는 걸음을 뒤로 물리며 그에게 방 안으로 들어오겠냐는 몸짓을 보였다. 하지만 릴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쉬는 바람에 일이 많이 쌓였어. 바빠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저런, 힘내.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아냐, 내가 해야지. 넌 뭐 하고 지냈어? 더스크우드 구경은 좀 해봤어?”
“아니, 나도 아르바이트하느라 바빴어. 곧 집 구하려고 돌아볼 텐데, 그때 구경해볼 것 같아.”
“그래? 잘됐다. 내가 도울게, 같이 가도 될까?”
“좋아! 네가 도와준다면야 나는 고맙지.”
릴리와 토요일에 모텔 앞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고 나는 출근 준비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한나가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이제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였다.
이젠 벗어날 것이다. 이 안개가 자욱한 지옥에서.
* * *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은 어리석었다. 지옥은 여전히 내 근처에 있었다.
알바생의 지옥은 진상 고객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분명 주문했다니까요?”
“다른 곳이랑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주문을 받은 기록이 없는데요.”
“더스크우드에 꽃집이 여기 말고 어디에 있어요? 전 여기에 주문한 게 맞아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내 앞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눈을 가릴 만큼 앞머리가 덮인 곱슬머리의 남자가 나를 보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정말 답답한 것은 난데.
물론 어느 정도의 꽃은 가게에 있으니 꼭 사전에 주문을 받아야만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손님은 지금 꽃집에 없는 것들로만 골라서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내게 무척 난감했다.
사실 주문을 받은 적이 없다면 딱 잘라 거절하고 끝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틀 전에 받았던 이상한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만약 전화주문을 받았는데 제가 기억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주문하신 꽃들은 현재 매장에 없어서요…….”
“그럼, 지금이라도 갔다 오면 안 됩니까? 내일 당장 필요한데. 지금 콜빌에 다녀오면 준비할 수 있겠네요.”
그쪽이 다녀오면 되지, 왜 날 시키냔 말이야.
나는 부글대는 속을 꽉꽉 누르며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얼굴근육 탓에 눈과 입이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게를 비우는 것은 어렵습니다, 손님.”
“가게 지킬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제가 대신 봐주면 되지 않을까요.”
뭐야, 가게를 지킬 시간이 있는 거면 바쁜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그쪽이 콜빌에 다녀오던가, 왜 나한테 그래?
“혼자 다녀오기 싫은 거면 제가 같이…….”
“미쳤어요?!”
나는 결국 황당함을 찾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손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뒤통수를 긁었다. 역시 주문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인 게 틀림없다.
“하하하. 역시 안 되겠죠?”
“나가세요! 영업 더 방해하시면 사장님 부를 거예요.”
나는 그의 등을 떠밀며 가게 밖으로 내보냈다. 그는 나가면서까지도 ‘꽃 꼭 받아야 하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급하면 본인이 알아서 찾겠지.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 * *
“……어서 오세요.”
나는 모로 뜬 눈으로 방금 온 손님을 흘겨봤다. 어제 찾아왔던 진상은 오늘 저녁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를 경계하며 인사만 하고는 다시 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흐느적거리듯이 들어온 그는 꽃들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다가와 내게 물었다.
“어제 그건 주문했어요?”
“네?”
설마 그거?
나는 구겨진 얼굴을 피지 못한 채로 그 사람이 선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앞머리 때문에 하관밖에 안 보이는 탓에 그 웃음은 더욱 얄밉게 느껴졌다. 나는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의무도 잊고 삐딱하게 대답했다.
“아뇨.”
“아~ 괜찮아요. 주문할 필요 없다고 말하려고 했거든요. 알아서 구했으니까.”
남자는 자랑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어쩌라는 거죠?”
“예?”
“……헉.”
내가 방금 소리 내서 말했나?
나는 잽싸게 아무 말도 안 한 척하며 손을 바쁘게 놀렸다. 손님은 김새는 웃음을 흘리고는 그제야 가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의 관심을 잡은 꽃이 있는지, 그가 한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건 뭐예요?”
나는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에는 파스텔 빛의 노란색 꽃잎이 풍성하게 겹쳐 있는 동그란 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늘게 뜨며 기억을 되짚었다.
저건 많이 팔리는 종류의 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뭔가 이유가 있어 내가 주문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풉!”
“?”
나는 손님의 질문에 대답 대신 폭소를 했다. 그가 저것을 콕 집어 물은 것이 절묘해 웃겼던 탓이다. 차마 크게 터질 수는 없어 끅끅대며 웃는 나를, 남자는 팔짱을 끼며 바라보았다. 아마 눈빛도 언짢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살짝 삐져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대답했다.
“흐……. Sonnenschirm.”
“양산이요?”
“네.”
“근데 왜 그렇게 웃은 거에요? 양산이 웃긴가?”
나 혼자 웃어 제긴 것이 기분이 언짢았는지, 남자의 말투는 능글능글함이 빠져있었다. 나는 그걸 눈치챘지만 웃음을 멈추기 힘들었다. 저 꽃의 이름이 ‘존나싫음’인 것을 나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꽃말은 거절이에요.”
“아…….”
남자는 멋쩍어진 마음에 눈알을 다시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저건요?”
“몰라요.”
“에?”
난 무심하게 조넨쉬름을 몇 송이 가져와 다듬기 시작했다. 난 정말 몰랐다.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여기에 있는 꽃말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저것은 내가 흥미를 느끼고 주문한 꽃이기에 꽃말을 알았을 뿐, 그 외 꽃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많이 팔리는 종류 위주로 이름만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꽃 이름 정도는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이름표가 있고.
“흠……. 저기…….”
남자는 꽃을 다듬는 나를 보며 말을 계속 걸어왔다. 뭔가 용건이 있었나 보다. 뭘 원하길래.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예뻐 보이는 노란 꽃을 반투명한 비닐 포장지로 감쌌다.
“그……. 꽃집은 다른 곳으로 출장 간다거나 그런 일은 없나요?”
“…….”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눈만 치켜뜨며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냐’라는 대답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없어요?”
전달되지 않았나. 눈앞에 커튼을 쳐놔서 그런가, 안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보다.
“무슨 용건이세요?”
“아니,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필요한 도움이라든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서로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요?”
“갑자기 무슨 개소리세요.”
“저기, 아까부터 계속 속마음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데요.”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척, 꽃다발을 리본으로 감쌌다. 잘 쓰이지 않아 재고가 잘 남는 포장지와 리본으로 만들었다.
“저 이미 만나는 사람 있어요. 어제 주문이 진짜 있긴 했는지 의심이 되긴 하지만……대충 있었다고 치고, 누락된 주문 건의 양해는 이걸로 구하겠습니다. 그만 가세요.”
“에?”
나는 오늘 남자가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던 꽃들을 한 송이씩 가져와 만든 꽃다발을 건넸다. 사심을 담아 조낸쉬름은 두 송이 더 넣어 만든 꽃다발이다.
“허!”
남자는 당황한 듯 허탈한 웃음을 토했다. 당황한 것인지, 황당한 것인지는 몰랐다. 하관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라 표정을 잘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누가 당신한테 관심 있대요? 오해예요! 아니거든요?”
남자는 놀란 목소리로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네, 네. 그렇겠지.
나는 건성으로 끄덕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가게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것 좀 이제 그만하고, 주문하지도 않은 걸 주문했다면서 당장 만들어오라는 진상 그만 부리고, 오늘처럼 꽃도 안 살 거면서 자꾸 말 거는 것도 그만하세요.”
“어…….”
내가 다 알고 있을 줄 몰랐나. 아무리 사람이 많이 붐비는 광장이라도, 매일 이쪽을 염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특히 저놈은 더 허술했다.
남자는 자신의 행동을 들킨 것에 민망해하며 혀를 찼다. 그러고는 가게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돌리다 말고 다시 말을 걸었다.
“쳇. 알겠어요. ……근데,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거 진짜예요?”
“네.”
“……그러면 안 되는데.”
“만나는 사람 없어도 그쪽은 아니에요.”
“허.”
아니 내가 뭐 어때서……,
나는 남자의 중얼거림을 흘려들으며 꽃다발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빨리 받고 가, 이제.
그는 포기했다는 듯 순순히 가게를 떠났다.
*
슥. 스윽. 스윽.
사박. 사박. 사박.
나는 무언가가 계속 등을 스치는 느낌에 눈을 떴다. 분명 퇴근 후에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던 것 같은데, 눈앞에는 모텔방의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보였다.
내 등을 쓸고 지나가는 것은 바닥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바닥을 쓸며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게 뭐지?
정신을 새하얗게 잃어버렸다.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의문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모든 운동신경이 끊겨버린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남아있는 감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양 발목이 잡힌 채로 끌려가고 있었다. 내 머리가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팔과 양 귀가 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내 시야도 어지럽게 흔들렸다.
하늘만 보이던 시야에서 점점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푹신한 감각과 딱딱한 감각이 등으로 느껴졌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쳐 지나가는 나뭇가지들이 얼굴과 팔을 베었다.
그리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턱.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내 발이 떨어지면서 발뒤꿈치가 바닥과 부딪혔다. 곧 내 시야 안으로 나를 끌던 존재가 보였다.
그 존재는 자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친 바느질이 두드러지고, 눈부분이 시커멓게 칠해져 있는 자루였다. 그 안에는 남자의 흐느낌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구토감이 올라오는 이것은 시체 냄새라는 것을.
나는 에이미가 되어 숲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얼굴 없는 남자는……리치다.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를 내려다보던 리치는 자신이 쓰고 있는 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벗었다.
리치의 얼굴은 흉측하게 녹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 * *
“아아악!”
나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리치의 얼굴은 꿈에서 벗어나도 잊히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속을 전부 게워 냈다. 토사물의 시큼한 냄새는 시체 냄새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한참을 토하고 위액까지 뱉어내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밑에 흙바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축축한 냄새. 서늘한 공기. 새벽의 바람 소리.
그것들은 내가 여전히 숲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칠었던 숨은 더욱 흔들리고 떨렸다.
나는 담력 테스트 집 앞에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