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하는 이]래요!"
"제가…,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생각보다도 대답이 먼저 나갔다. 제목에 혹한 것이겠지. 바로 직전에 그림 속 낚싯줄에 묶여 고초를 겪은 것은 금세 잊은 뒤였다. 붉은 커튼을 젖히고, 그 안의 것을 확인하려 시선을 두자 그림 속엔 나의 사랑해 마지않는 이가 있었다. 붉은 머리칼, 쾌활한 주근깨, 명확한 목표를 향해 빛나는 밝은 녹색의 눈. 서양에서야 불길하다는 녹색이지만, 동양에선 자연에 가까워 오히려 포근한 색이라는 당신의 눈은 나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머리색과 닮은 새빨간 장미꽃을 들고 있는 당신이 어딘가에서 나와 같이 시험을 당하고 있다면 어떡할까, 문득 이전에 들었던 질문이 떠올라 삽시간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런 나의 불안함을 당신은 느낀 듯, 그 장미꽃의 꽃잎을 떨구며 내게서 멀어졌다. 누군가 고의로 새까만 물감을 부어버린 듯했다. 그 검은 물감 사이로 다시 드러난 당신의 모습은 얼굴이 사라져, 어디에도 존재할 법한 흔한, 익명의 사람이 되었다. 매번 '사람은 각자 고유하게 유일함으로 가치가 있다' 말하는 나이지만 당신만은 유달리 아픈 손가락, 정도로 남겨도 괜찮지 않았을까. 곁에 두었다고 생각한 것을 어느새 손에 쥐었나 보다. 그러니 다시 놓게 되었나 보다.
내심 이곳에 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그것은 나로 괜찮겠다 생각했다. 이제껏 이뤄본 것도 적지 않고, 이제껏 소중한 것도 많이 마주해보았다. 그 기억을 되짚으며 산다면, 그리 길지 않을 여생 따분하지만은 않겠다고. 이곳엔 시작하는 이가 많으니, 선뜻 손뼉쳐 응원하는 이야기도 나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참 나쁘지 않은 결말이겠노라고. 그러나 마침내 날 받아들여 준 유일한 이를 잊는다면, 이곳에서 나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두를.
조사를 마치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계단을 올랐다. 시작만 좋고 끝은 나쁜, 나와 비슷한 것을 보았겠지. 공감이 가 그 어깨를 힘있게 받치다, 2층을 걸으며 무심코 공예품 전시관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곤 한 작품과 눈이 마주쳤다.
[탐욕]: 빨간 구두.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기면 망가지기 마련.
"… …."
그대로 무리로 합류했다. 고작 피곤해진 나와 달리 발목을 다치거나, 손을 다치거나, 팔뚝을 잡히거나 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을 걱정하고 주제넘은 오지랖을 부리다 보니 당신 얼굴을 잊게 되었단 사실도 잊어버리게 되어서, 퍼즐을 풀다 빈 객실에 눕고서야 실감이 났다. 고개를 돌려 머리맡에 자리한 장미꽃을 바라보았다. 몇 잎 떨어진 잿빛의 심심한 장미. 그림인데도 생기 넘치던 당신의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떨어진 꽃잎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장미꽃이란 게 다 떨어지면 잊힌다는 건 알게 되었군요. 좋은 수확입니다."
그래도 믿는다. 당신은 나를 잊을지언정 나의 뜻만큼은 잊지 않겠지. 내가 부탁한 일들을 빠짐없이 진행해주겠지. 당신은 글만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 내 눈에 든, 나를 받아준, 나의 친구니까. 그러니 당신의 얼굴 하나 잊는다 해도 견딜 수 있다. 얼굴은 잊을지언정 당신의 꿈, 그 빛, 반짝이던 글을 한 톨도 잊지 않았으니. 그래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당신의 책. 그것 하나만은 짐에 챙길 걸 했다, 하는 미련뿐이다.
"좋은 수확…."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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