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스티

단추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길, 인생이란 어린시절 발한 빛이 보잘것 없음을 깨닫고, 하루하루 퇴색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로 사람의 인생은 시간이 쌓여가는 것만으로도 빛이 난다. 사람의 가치란 빛나는 유일한 재능, 수려한 외모, 큰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몸에 새겨지는 이야기에 있다. 그러니 무채색으로 깜깜한 그가 투박하니 당당한 빛을 발하는 스콜세시 미스티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시간이 빠르단 그녀의 말을 듣고선 잠잠히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 본인의 숨을 깨닫긴 어렵겠다고. 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은 몇 분도 살 수 없으니 매순간 숨을 쉬고 있겠지만, 그것을 매순간 인지하는 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숨을 꾹 참고 단거리를 스퍼트내는 마음으로 매순간을 살다, 아주 가끔씩만 가쁜 숨을 내쉬는 사람의 삶이란 어떤 것일지. 처음엔 즐거웠던 달음박질이 당연한 것이 되고, 같은 곳을 돌고 있다 깨달은 사람에겐 또 어떤 의미일지.

'저는 예측 가능한 인생이 더 체질에 맞습니다.'

제 입으로 순순히 그리 말했음에도, 달음박질하며 사는 이는 힘들지언정 제임스는 그들을 향한 일종의 동경을 놓을 수는 없었다. 고유한 스스로의 빛을 내는 이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미련이라 부르겠지만 제임스만은 이것을 존경이라 부르고 싶었다. 존경하기에, 부러운 마음도 가지는 것이라고.

오랜만에 입에 댄 담배 탓일까, 머리가 무거워지며 시야가 느릿하게 돌았다. 독한 담배며 술을 참는 이유는 많은 것이 있으나, 강제로 긴장이 풀어지는 이 감각을 느끼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어느새 옷에 배인 담배냄새, 바싹 말라버린 혓바닥, 일렁이는 시야는 간단하게 저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단정한 셔츠 단추를 한 손으로 풀듯이 간단하게.

"언제까지고 잊지 않을 것 같아요."

"오늘 제임스씨와 싸구려 담배를 끝까지 피웠다는 것도요."

스콜세시의 '끝까지 피운다'는 의미를 모르는 제임스였지만, 왠지 그 말을 저도 잊고싶지 않아졌다. 작게 기침이 나올정도로 독했던 담배의 브랜드, 첫 모금의 알싸함, 잔 흉터가 가득했던 그의 손까지도. 그러나 가장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자리해 잊지 않을 것은, 첫 인사부터 그녀의 왼손에서 빛나던 은빛의 반지일 것이다. 저와 같은 곳, 같은 색으로 빛나는 반지. 그리고 그 반지가 상징하는 바를.

다시 열리는 일이 없으리라 장담은 어렵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잠그면 되리. 제 손에 쥐었던 많은 것을 놓을 때마다 반복한 생각이었다. 하프시코드를 그만 두었을 때, 대학을 진학할 때, 조교가 되었을 때. 몇 번이고 흐트러졌지만 몇 번이고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는 일은 이미 익숙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제임스는 무모한 예술가도, 무언갈 내뱉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정갈하게 채워진 단추를 매만지며 말했다.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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