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회랑

새해 봄과 함께 6. 불꽃놀이와 달

시간: 3년 전

버스는 사람이 붐비는 광장에 정차했다. 광장에서는 곧 불꽃놀이가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와 예신은 버스에서 내려 시야가 탁 트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불꽃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사이에도, 인파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흘러가기를 반복했다.

첫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순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밝게 비춰졌다.

옅은 금발의 소년은 주머니에 넣어놓은 만화경에 손을 뻗다,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미소 지었다.

헤드폰을 목에 건 소년은 입안에 남아있는 사탕의 달콤함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변에 낯이 익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손에 들고있던 막대기에 남아있는 사탕 조각을 떼어냈다.

안경을 쓴 소년은 손에 들고있던 불꽃놀이 막대가 전부 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한숨에 일순 안경이 부옇게 흐려졌으나, 이내 차가운 바람이 불어 선명함을 되찾았다.

주머니에서 운세카드를 꺼내든 청년은, 달빛에 의지해 종이에 적힌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ㅡㅡ‘운명은 오직 자신의 손으로만 만들어진다.’

그는 그대로 다른 손에 들고있던 꽃등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잘 보였다.

하지만 16살의 나는, 앞으로 만나게될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한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자리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보며 가슴이 떨려왔다.

설마ㅡㅡ

휘이익ㅡ, 펑! 퍼엉!

설마 모두가, 3년 전에 이렇게 가까이 있었을 줄은.

같은 장소에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니.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니.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다시 혼잡한 사이에서 달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고있는 과거의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날 ‘내’가 무엇을 바랐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이제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에 무력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 날의 ‘나’와 지금의 나.

그 틈에 그려진 운명의 길은, 무척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을 꿈꾸는 16살의 ‘나’는,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했다. 두려움도 당황스러움도,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나는 조금 더 ‘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에게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이 말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소화가: 있지, 알고 있어? 네가 원하는 건 이미 네 곁 가까이에 있어.

소화가: 그러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넌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거고, 원하는 사람이 될 거니까.

이제서야, 왜 내가 이 날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때의 ‘내’가 달에 빌고 그대로 잊어버린 소원. 지금은 이루어진 그 소원.

그것이 나와 그들을 이어준 것이었다. 마치 운명을 이어주는 붉은 실처럼.

이 교차로가 모든 것의 시작은 아닐 것이다. 세인트 세실 아카데미에 입학한 날에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 속, 나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엇갈려왔을까. 저 멀리 펼쳐진 인파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과 시선을 주고받았을까.

우연히 마주친 사람 중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조금 전 느꼈던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감각…… 그것은 ‘운명’의 감각이었다.

똑, 딱ㅡㅡ

똑, 딱, 똑, 딱ㅡㅡ

귓가에 울려퍼지는 초침이 똑딱이는 소리. 똑, 딱, 똑, 딱…….

조금씩 다가오는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깨달았다. 이 ‘과거 여행’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때, 사람들의 발 아래 거대한 시계가 등장했다.

그 시계의 바늘은 마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눈부신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느끼기라도 했을까, 시계가 보이지 않을 16살의 ‘내’가 문득 발 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희미한 하얀 빛이 천에 번진 물의 흔적처럼 퍼져 나간다.

16살의 ‘내’가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든다. 어느새 주변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관광객A: 봐, 눈이야!

관광객B: …이런 날 눈을 보다니, 정말 운이 좋네.

혼잡한 인파 사이에 환희가 퍼져나간다. 곳곳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띄운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새해 첫 눈을 손바닥으로 받아내려 들었다.

내 기억 속 이 날 밤은 눈과 달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설마 ‘미래의 내’가 찾아올 줄은, ‘나’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이 날의 작은 나.

7. 새해 소원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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