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봄과 함께 7. 새해 소원
시간: 현재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오르골이 마침 마지막 멜로디를 연주하던 순간이었다.
시계 바늘은 이미 멈추었고, 춤을 추던 소녀도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3년 전 그날 밤을 보냈지만, 그 사이 현실 세계에서는 불과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인생을 영화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이야기 뿐이다. 타인의 관점은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뜻밖에도 제 3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영화의 한 장면이 겹쳐지는 순간을, 운 좋게 목격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삶이 있을테고, 그 어딘가에서 길이 교차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그 가능성을 알아차렸다면 좋았을텐데.
어쩌면 그들은 한때 나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혹은, 같은 노래를 듣고 있었다거나.
또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가로등 아래를 걸어본 적도 있을 것이다.
모든 시간과 사건은 항상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때로 이 차가운 세상도 불같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비: 먀~
이불 위에 잠들었던 나비가 혀를 내밀고 코를 찡긋거리며 애교 섞인 소리로 울었다.
넌 그 세계에 없었네
올해도 계속 곁에 있어줘 [선택]
나는 손을 뻗어 나비의 육구를 톡톡 두드렸다. 나비는, 마치 무언가를 헤아리기라도 한 마냥 고개를 살짝 들고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소화가: 올해도 함께 해줄거지, 나비?
나비는 고개를 숙이고 앞발을 들어 내 손 위에 발바닥을 올려놓았다. 이건 우리가 약속을 할 때의 버릇이었다.
ㅡ우리는 첫만남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밤이 깊어진 시각. 내 품에 안긴 나비가 커다란 하품을 했다.
베개 옆에 놓아둔 스마트폰이 울린 것은 그 시점이었다. 예의 그 채팅 앱에서 뭔가 메시지가 도착한 것 같았다.
메시지의 발신인은…… ‘666’.
▶ 666: 후배님, 채팅 앱 어땠어? 써봤지?
연이어 도착하는 메시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소화가: 재한 선배, 평가를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에요?
▶ 666: 그거야 내가 기획한 앱이니까! 회장이 3년도 못버틸 거라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어땠어? 후배님의 소감을 말해줘!
▶ 소화가: 네네, 알겠어요. 그럼 다시 사용해볼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봐요.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까지의 내 감상도 카이로스와 비슷했다. 하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않았는데 바로 그렇게 말하는 건 조금…….
그러니까 제대로 공정하게 채팅 앱을 평가해보자.
오르골 소리가 멎은 방은 고요에 잠겨있었다. 따스한 오렌지 빛 아래, 나는 다시 한 번 채팅 어플을 열었다.
친구 검색창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9999’를 입력해보았다.
그리고 검색 버튼을 눌렀을 때, 어쩐지 나는 무척이나 긴장해있었다. 조심스레 숨을 내쉬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이 느껴졌다.
스마트폰 화면 중앙에 띄워진 모래시계 아이콘이 시간의 흐름을 알리듯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똑같은 프사를 하고있는 누군가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해당 아이콘을 누르자 채팅 화면으로 들어가진다. 나는 채팅창에 몇 번이나 글자를 적었다 지웠다 반복하다, 결국 아주 간단한 메시지를 적어보냈다.
내 예상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맞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오르골의 디자인을 알고,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은ㅡㅡ
‘나’밖에 없었다.
▶ 소화가: 선물, 고마워.
그 짧은 한 마디를 보내고 조금 기다려본다. 긴장으로 자꾸만 숨이 가빠졌다. 채팅 화면에 ‘입력 중……’ 이라는 문자가 표시되었다.
‘띠링’ 하는 알람음과 함께, 상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9999: 천만에.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야.
조금 생각한 나는 다시 간단한 한마디를 보냈다.
▶ 소화가: 요즘, 어때?
▶ 9999: 좋아.
▶ 9999: 사실, 네게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 9999: 앞으로 3년 간은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조용히 할게.
▶ 소화가: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
▶ 9999: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도 멋진 소원 빌기를.
▶ 9999: 아, 그래. 또 한 가지 선물을 줄게.
그러면서 스마트폰으로 한 장의 사진이 보내져왔다. 그것은 지금 내 옆에서 누워있는 것과 같은 자세로 푹 잠들어있는 나비의 사진이었다.
3년이 지난 뒤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비를 보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는 빙긋 웃었다.
재한 선배에게는 내일 말해야겠다.
이 어플은 정말로 훌륭하고, 모두가 계속 사용하게 될 것 같다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바깥은 온통 은빛으로 뒤덮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얼른 겉옷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눈은 이미 그쳤고, 이른 아침의 셀레인 섬은 온화한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다.
이곳이 나에게 있어 돌아와야할 ‘집’이었다. 그 마음은 이 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낼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집’이란 건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온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곳이니까.
나무 아래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새해의 소망을 담았다.
그건은 아주 단순한 소원이었다.
‘모든 기적을 만날 그 날까지 웃으며 지낼 수 있기를’
나는 이미 운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더이상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새로운 한 해와 앞으로의 인생에서 가장 어린 나의 길이었다.
그곳에서 만나야할 사람은, 설령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어디에서든 길이 교차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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