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봄과 함께_아인의 새해(1)
똑똑, 노크 소리에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에는 아직 자잘한 눈이 춤을 추듯 흩날리고 있었다.
겨울의 태양은 퇴근 시간이 일렀다. 석양의 하늘은 이미 밤하늘의 짙푸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셀레인 섬에,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전야가 찾아왔다. 섬은 평소보다 더 고요했다.
똑똑.
다시 한 번, 느긋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늘 그렇듯, 이 광경이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면 아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이 광경에 조금의 위화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인: …오늘, 재워 줘.
소화가: 조금 더 귀엽게 부탁해봐요.
아인: 안녕, 내 사랑. 재워주지 않을래?
아인의 옆에는 커다란 여행가방이 놓여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카데미를 떠날 때는 분명 이렇게 큰 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소화가: 남자친구 씨, 그 짐은 이사짐인가요?
아인: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잘 생각해서 싸왔어. 네 방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을테니까.
소화가: 감사합니다.
아인: 천만에요.
소화가: 설마 다른 짐은 더 없겠죠?
나는 불안한 마음에 문 밖을 두리번 거렸다. 언제나와 같은 그 커다란 2인조가 나오면 큰일이다.
아인: 걱정 마. 그 녀석들은 집에 보초를 세워뒀으니까.
소화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아인: 맞아.
아인: 이상하지? 나도 뭔가 사기를 당한 건 아닐지 의심스럽지만…
아인: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까…… 앞으로 며칠간 ‘아인’은 네 거야.
소화가: 우리집 문이 튼튼해서 다행이네요. 강도가 들어도 아인을 훔쳐갈 순 없을테니까요.
아인: 그나저나 소화가…… 밖에 아직 눈 내리고 있는데.
아인: 빨리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이대로 감기 걸릴지도 몰라.
아인과 시선을 맞추고 미소 지은 나는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줬다.
캐리어 바퀴에 눈이 묻어 가방이 지나가는 자리에 선명한 두 선이 만들어졌다. 그러고보면 아인이 올 때면 매번 날씨가 나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인: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올게.
섣달 그믐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아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셀레인 섬에 머물고 있었다.
바로요?
연말을 같이 보내려고요? [선택]
소화가: 셀레인 섬에 남아서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인: 그래. 싫어?
소화가: 설마요!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인: 우리집은 그런 관습 없어.
아인: 이상해?
아인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요즘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솔직해져, 이런 이야기를 가감없이 나누고는 했다.
소화가: 음, 조금 이상할지도.
소화가: 하지만 올해는 나랑 함께네요. 기대할게요, 아인. 우리 둘이 연말 보내는 거.
내 말에 아인은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에 새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인: 알았어.
아인이 셀레인 섬을 나간 이후, 섬을 오가는 선박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나는 산책을 핑계로 곧잘 항구에 가보고는 했다.
매표소 직원에게 선박 운항이 완전히 중단되는 건 아닌지도 몇 번이나 물어봤다.
그런 식으로 지난 며칠을 보냈기 때문일까, 막상 아인이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나자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져 자꾸 그를 흘긋거리게 되었다.
아인: 잠깐 사이에 내 얼굴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소화가: 그건 아니지만, 만약에 아인이 가짜면 어떡해요.
아인: 그럼 확인해볼래? 뭐든지 해도 되는데.
나비: 먀앜!!
나비가 갑작스레 방문객에게 달려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소파에서 자고 있었는데… 뭔가 냄새라도 맡은 모양이었다.
소화가: …확인할 필요 없는 것 같네요.
아인: 아쉽게 됐네. 마음의 준비는 끝났는데.
제 할 일을 마친 나비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인이 주저없이 나비가 가장 좋아하는 쿠션을 차지하며 소파에 앉았다.
소화가: 둘 다, 이상한 경쟁 좀 하지 말아요.
이렇게 되면 내가 끼어들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아인은 여행 가방에 들어있던 물건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 악보, 그리고 세안 용품, 칫솔ㅡㅡ
옷은 옷장에, 악보는 책장에, 세안용품은 세면대에…….
무척 자연스럽게 짐을 정리하는 아인을 보면서, 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쁨을 느꼈다.
정리를 끝낸 아인은 마지막으로 가방 안에서 밀가루 한 봉지를 꺼내 내밀었다.
소화가: …밀가루?
아인: 오늘은 섣달 그믐이잖아.
아인: 설날에는 만두를 직접 빚는 풍습¹이 있다던데.
아인: 그래서 오는 길에 밀가루랑 고기를 사왔어.
가방 안에서 식재료를 꺼내드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어졌다.
아인은…… 도전 정신이 너무 강하다고 해야하나…….
적어도 만두피랑 다진 고기를 사왔으면 나았을텐데, 이런 재료로는 추우니까 뗄감을 모으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아인: …소화가, 표정이 왜 그래?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화가: 뭐랄까, 우리가 연인이 된 이후로 아인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요.
아인은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인: 그건 속물적으로 변했다는 뜻인가?
소화가: 아뇨, 그냥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아인: …그래서 싫어?
아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리를 굽히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의 얼굴에서는 먼 곳에서 온 여행자 특유의 피로가 엿보였다.
그럼에도 아인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나는 아인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그대로 그의 뺨에 쪽, 입을 맞추었다.
소화가: 사랑하죠.
소화가: 다만…….
내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자 아인이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아인: 다만?
소화가: 밀가루로 만두를 만들려면 밀대가 필요해요.
소화가: 그런데 아인이 가져온 재료 중에 밀대 비슷한 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한 곳을 가리켰다.
아인: 그럼 저건 어때?
아인의 손가락 끝에는, 몸을 길게 누인 나비가 누군가 본인을 이용하려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기분 좋은 듯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아인의 새해(2) 에서 계속…
1. 중국에서는 섣달그믐 밤 교자를 빚어두었다가, 자정이 되면 삶아먹는 풍습이 있다. 만두를 뜻하는 교자(餃子)와 한 해를 넘기는 교자(交子)의 발음이 같아 생긴 언어 유희. 낡은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갱세교자(更歲交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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