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겔펠 춤을춰
집밥겔탑
게일X펠
레몬차님이 말아준 썰 기반 감사합니다 쪽.
어둑한 밤사이로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아무도 없는 연회장 안에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어두운 조명이 켜져 있었고, 한편에는 마법으로 연주되고 있는 피아노가, 그리고 반대쪽에는 각 맞추어 정리되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게일과 펠은 경쾌한 곡조에 맞춰 춤을 추는 중이었다. 게일이 능숙하게 춤을 리드하면, 펠이 허둥지둥 그를 따라 어색한 몸짓을 계속했다. 희미한 빛 아래서 어색하게 스텝을 밟던 펠이 다섯 번째로 발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아, 못해! 못 하겠어! 왜 이렇게 어려워, 이거!”
게일이 주저앉은 펠 앞에 비스듬히 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이상하군. 금방 배울 줄 알았는데…….”
“뭐야, 시비 거는 거야?”
펠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말하자, 게일이 하하 소리를 내며 웃더니 몸을 굽혀 펠의 찌푸린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내 사랑. 으음, 너는 발도 빠르고, 처음 해 보는 운동도 곧잘 따라 하고, 몸 쓰는 거에도 자신 있어 하니 춤도 금방 배울 거라고 생각했거든. 노래도 꽤 잘 부르잖아. 당연히 박자도 잘 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들어할 줄은 나도 예상 못 했어.”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아, 머리로는 진짜 알겠는데.”
펠이 자존심이 상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 이렇게 해 볼까.”
게일이 잡으라는 듯 오른쪽 팔을 내밀었다. 펠은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잡고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펠이 의욕없는 표정으로 게일의 손을 잡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춤 연습은 벌써 두 시간째 제자리걸음이었다.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바쁜 게일과 춤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 자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뿐이었다. 펠은 머릿속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인생에 단 한 번 뿐일 결혼식에서 보일 춤이었다. 티플링인 자신을 탐탁지 않게 볼 데카리오스 혈족들은 물론이고(게일과 모레나는 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펠은 자신의 직감을 믿는 편이었다.), 가족과도 다름없는 스승님들과 친구들 앞에서도 완벽하게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정상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게일을 졸라 춤을 배우겠다고 한 것이었는데……. 내가 춤을 못 출 줄이야. 내가? 몸으로 하는 것 중에 내가 못 하는 건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는데. 말도 안 돼, 요즘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아무리 그래도 두 시간 동안 아무 발전도 없는 건 좀……. 게일이 마법으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자, 펠은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잘 해내야지, 정말로. 결혼식에 온 모든 사람에게 게일이 나를 선택한 일이 잘한 것이었다는 걸 보여 줄 거야.
“펠, 자. 내 발 위에 네 발을 얹어 봐.”
느려진 피아노 선율 사이로 게일의 속삭임이 들렸다. 조금 전까지 연습하던 경쾌한 춤곡과는 다른, 느린 박자의 여유로운 선율의 음악. 펠은 의아한 눈빛으로 게일을 올려다보았다.
“피로연 때 이걸 출 일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네가 박자를 익히기 위해서는 이런 춤으로 연습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 자, 얼른 발 올려.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면 돼. 한두 번 해 보고 나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펠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게일의 발등에 발을 올리자, 게일은 세 박자를 세고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꼭 달라붙어 추는 춤이었다. 게일이 펠을 더 단단히 끌어안았고, 펠은 자연스럽게 얼굴을 게일의 목 쪽으로 가까이했다. 게일의 숨결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감각에, 펠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몸을 움찔거렸다. 게일이 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사랑, 집중해야지……. 자, 박자를 느껴 봐. 몸 기대고.”
게일이 박자에 맞추어 스텝을 이어 나갔다. 펠은 경악한 채로 게일의 리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박자를 느끼긴 무슨, 귓가에는 심장 소리만이 크게 울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이거 내 심장 소리야? 아니지? 게일인가? 우리 요즘 침대에서 기절하듯이 잘 때 제외하고 이렇게 가까이 있던 적이 있었나? 갑자기 왜 이렇게 덥지? 지금이 더울 계절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오늘 아침에도 두꺼운 이불에 꽁꽁 싸매진 채로 일어났는데.
펠은 시선만 살짝 올려 게일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훔쳐보다니? 왜?) 평온해 보이는 게일의 얼굴은 조금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그럼, 이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나한테서 난다는 거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집중하고 있는 듯 살짝 찌푸려진 미간, 그리고 피곤한지 살짝 퀭해 보이는 눈 정도. 흐린 조명 때문인지 오늘따라 더 깊어 보이는 눈매에 걸린 그림자가 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
펠은 잡생각을 떨쳐 내려는 듯 머리를 크게 흔들었고, 게일은 ……. 펠의 왼쪽 뿔에 턱을 얻어맞고는 으앗. 하는 소리를 냈다.
춤 연습이 다시 중단되었다.
“아직도 아파? 미안해…….”
“괜찮다니깐. 더 연습해도 되는데, 미안. 내가 시간을 더 못 빼서.”
펠이 게일의 턱을 다시 한번 이리저리 살핀 후 게일의 옆자리로 쏙 들어갔다.
“아니야, 내일 모레나가 소개해 주신 강사분한테 부탁하면 되니까. 결혼식 준비에 다음 학기 준비까지 다 하느라 바쁜 거 뻔히 아는데 뭘 미안해해?”
게일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한껏 끌어내리더니 그대로 몸을 숙여 펠을 끌어안고는 애교부리는 강아지처럼 펠의 품에 얼굴을 부벼대며 투덜댔다.
“바로 그게 문제야, 새신부의 춤 강습을 신랑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다니. 네가 춤에 이렇게 열정적일 줄 알았으면 학기 준비고 뭐고, 다 미루고 너와 하루 종일 춤을 추고 있었을 거라고.”
펠은 게일의 투정을 받아주며 그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다 잠시 자신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였다. 심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히 뛰고 있었다. 펠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까보다 더 붙어 있잖아. 지금은 왜 이렇게 평온해?
“됐어. 이렇게 된 거 내일 열심히 연습해서 당일에 너 놀라게 해 주지 뭐. 자, 이제 자야지. 내일 아침부터 또 바쁘잖아.”
펠이 게일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어 주고는 품에서 살짝 밀어냈다. 게일이 얌전히 밀려나 자신의 자리에 몸을 눕히고는 펠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자기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지 고민하던 펠이 게일의 시선을 느끼고는 왜 그러냐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펠, 나한테 뭐 말 안 한 거 있지.”
“뭐, 뭐래……. 빨리 자기나 해.”
당황한 펠이 손을 뻗어 게일의 눈을 덮었다. 눈을 깜빡이는지 팔락이는 속눈썹이 펠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게일이 길게 흐음-. 소리를 내더니 펠의 손을 끌어내려 입 맞추고는 말을 이었다.
“있는 것 같은데……. 내일 듣지 뭐. 잘 자. 내 사랑.”
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닌 자신의 연인은 유독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누구보다도 눈치가 빨랐다. 이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었으면 게일이 뿔에 받힌 이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탈탈 털렸을 것이다. 곧 결혼하는 사이에 비밀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울망한 표정을 지었다면 패배를 선언하고 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겠지. 자신은 게일의 그런 표정에 약하니까.
자신도 내일 일정이 꽤 빡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펠은 조심스레 몸을 누이고는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다 이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펠은 모레나가 소개해 준 강사와의 춤 수업을 단 삼십 분 만에 끝냈다. 자신이 가르쳐 본 학생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춤을 익혔다는 극찬을 받은 것은 덤이었다. 강습을 끝내고 연습용 홀을 나오며 펠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역시 자신이 춤을 못 출 리가 없었다는 뿌듯함 조금, 자신감 조금, 그리고 어제 춤을 익히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심란함……. 어제는 몇 시간 동안 연습해도 안 되던 것이 오늘은 30분 만에 끝났다. 차이점이라고는 같이 춤을 춘 사람 뿐. 펠은 눈을 질끈 감고 죽을 때까지 게일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다짐했다.
진짜 별 ………. ……………
펠이 약간 푼수가 되 …….
결혼식 직전이니까 이해해 줍시다…….
사랑은 원래 사람을 바보로 만들자나요…….
진짜근데
작작해라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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