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下
당면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은 오늘 오전 9시 반에, 자신의 가게-이 동네의 유일한 서점-에서 도진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서점의 재고 정리를 하는데, 그럴 때면 단골 손님이자 이웃 사촌이자 베스트셀러 복면 작가인 도진을 가게에 불러 책을 헐값으로 내어주곤 했다. 팔리지 않는 책은 어차피 출판사로 반품되어 창고에 평생을 갇히게 될 테니까. 그럴 바에는 그나마 책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에게 내어주는 게 책에게도 출판사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차액에 대한 손해는 서점 사장인 현이 고스란히 물게 되지만, 그것이 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뼈아픈 손해는 아니었으므로, 현은 순전히 재고 소진과 친교의 의미로 도진을 주기적으로 가게에 불러내고 있었다(실상, 이렇게 불러내지 않아도 매일 같이 얼굴을 보는 두 사람이긴 했으나).
그런데 약속된 시간에 도진이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매일 같이 서점에 드나드는 도진은 점심 즈음에 얼굴을 보이곤 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약속을 잡았음은 현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은 우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말풍선 옆의 읽지 않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 분을 기다렸다.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을 한참을 듣고 있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일단 끊고 다시 한 번 걸었다. 받지 않았다.
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른 시긴이긴 하지만 일어나지 못할 법한 시간은 또 아니다. 게다가, 늦잠을 자고 있다고 해도, 그는 의외로 잠귀가 밝은 편이라 전화벨소리가 들리면 쉬이 깨어난다. 두 번 씩이나 전화벨을 울려주었는데 응답이 없는 건 기이한 일이다.
아무도 없는 서점 카운터에 앉아 고민에 빠져 있으니 유리문 너머로 또다른 이웃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서 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섰다. 또다른 이웃, 그리고 수상해 마지 않은 인물, 도화를 붙잡았다. 그는 아침부터 러닝을 하고 돌아가는 길인 듯했다.
도화는 도진과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서점에서 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까지는 외길이 나 있다. 아스팔트길 하나로 인도와 차도를 겸하는 위험천만한 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차량의 통행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다. 현과 도화는 이 길을 아파트 방면으로 십 분 정도 걸었다. 그 십 분 동안,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파트까지 당도한 두 사람은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는 집 앞에서 고심하다가, 결국 집주인 몰래 문을 따고 가내로 잠입했다. 도진이 침실에서 달콤한 잠에 취해있었다면 두 사람은 분명 현관문이 열려있었다는 되도 않는 변명을 하며 도진을 깨웠을 것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는 도진이 없었던 것이다.
도진은 면허가 없다. 물론 차도 없다. 하다못해 친환경 이동수단인 자전거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아파트 근처에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가 있는가 하면, 일단 길이 깔린 곳은 서점 방면의 외길 뿐이다. 그 외의 삼면, 즉 정문 방면을 제외한 삼면은 언덕인지 산인지 모를 둔덕으로 감싸여 있다. 그야말로 도시의 외곽이라고 부를만 하다.
그렇다고 둔덕을 넘을 수 없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흙이 쌓여있기만 하면 어디든 오르고 싶어하는 등산객들이 저 너머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파트 뒤쪽 둔덕에는 오솔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수준의 다져진 흙길이 하나 나 있다. 아마, 반대편에서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은 등산객들이 산 속에 서 있는 아파트를 보고 도심으로 착각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다져진 것 같다, 라는 의견을 도화가 제시했다.
“뒷산을 넘어 보셨어요?”
현이 침실 문가에 기댄 채 물었다.
“길이 있으니까 한번 따라가 봤지. 이십 분 쯤 올라가니까 제대로 된 등산로랑 합쳐지더라. 거기서 길 따라 내려가면 저쪽 동네까지 갈 수는 있는데…… 도합 한 시간 반은 걸려. 산을 탈 바엔 차라리 시내로 내려가서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게 더 빠를 걸.”
도화가 실종자의 휴대전화를 마구 뒤지며 대답했다.
아무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캘린더 앱과 (비단 이번 달에만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건 아니었으므로 애시당초 캘린더 앱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인터넷 서점의 신간 광고 문자가 가장 위에 있는 메시지 함과 (사람과의 연락은 그리 자주 하지 않는 듯하다) 메시지와 처지가 많이 다르지 않은 메신저 앱 (그래도 이쪽에는 현과의 채팅방이 가장 위에 있다) 그리고 지극히 단순화되어 있는 통화 기록 (요즘은 전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심하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검색 기록까지를 (유명 포털 사이트의 웹소설 플랫폼을 검색했다) 전부 확인했지만 뾰족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작가라는 인종은 원래 이렇게까지 일정이 없는 건가?
일정을 찾을 수 없다면 오늘의 행적을 뒤쫓는 수밖에 없다. 배터리 사용 내역을 확인한다. 배터리가 소모된 내역이 그래프로 보기 쉽게 그려져 있다. 오늘 하루의 휴대전화 사용 내역이 두 시간 단위로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이런 중요한 내역은 최소한 삼십 분 단위로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도화다.
그래프 천장에 달라붙어 고공행진을 하던 배터리가 우하향하기 시작한 시간을 눈대중한다. 아홉 시 조금 이전에 휴대전화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도진은 이 쯤에 일어난 거다. 아니, 혹시 모르지. 나처럼 아침마다 인터넷 알림을 확인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보다 한참 전에 일어났을 수도 있고.
아홉 시 즈음을 시작으로 하여 가파르게 줄어들던 배터리 잔량은 열 시에 닿지 못하고 완만한 수평선을 그린다. 가상의 사 등분 선을 그어본다. 대략, 아홉 시 반 이전에, 배터리 사용이 멎었다.
이 아파트에서 약속 장소인 서점까지는 걸어서 십 분. 도진은 이 때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섰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외출에 구태여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
남의 휴대전화의 액정을 노려보고 있으니 어느새 현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화는 그제야 남의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선다. 침실 밖으로 나서니, 현이 부엌 쪽에서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베란다의 문이 열려 있다.
“쓰레기 봉투가 없어요.”
의미 없는 배회를 계속하던 현이 걸음을 멈췄다. 이쪽을 바라본다.
“종량제 봉투가 안 보여요. 아무래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신 거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기엔, 우리가 여기 들어온 지 십 분이 넘었지? 쓰레기를 직접 태우고 오는 것도 아닐 텐데.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휴대전화라면 집에 놓고 오시는 날이 좀 있었어요.”
“뭐? 아까는 그런 말 안 했잖아.”
“저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어서. 이제야 좀 가닥이 잡히네요. 그러니까, 작가님은 아마도.”
“서점 가려고 나가는 김에 쓰레기도 버리려고 들고 나갔다. 그런데, 쓰레기는 들고 나갔는데 정작 중요한 휴대폰은 안 들고 나갔다.”
현은 미묘하게 뚱한 얼굴로 도화를 바라봤다.
“거기서 뭐가 나왔어요?”
“폰? 뭐 나온 건 없고. 폰을 말이야, 아홉 시 전에 쓰기 시작해서 이십 분 정도를 켜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
“패턴 모르시면 알려드리려 했는데. 알아서 잘 푸시네요.”
“뭐야? 알면 얘기를 좀 하지.”
“그 정도는 할 줄 아실 것 같았거든요. 별로 어려운 패턴도 아니고.”
도화는 잠시 그를 노려본다. 현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이며 주방을 한 번 빙 둘러보다가, 가벼운 한숨을 툭 내뱉었다.
“가능성이 두 가지가 있어요.”
“말해 봐.”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휴대폰을 두고 온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집으로 올라오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멀쩡했잖아.”
“계단을 오르다가 구르셨다던가.”
“그 사람이 여기까지 계단을 걸어올라올 것 같지는 않은데……”
도진의 집은 9층이다.
“애초에, 휴대폰 자주 놓고 다닌다며. 그럼 구태여 가지러 올라오지도 않겠지. 이런, 까먹었네, 하고. 쿨하게 서점으로 가지 않았겠어?”
“그럼, 두 번째 가능성. 쓰레기까지 처리하고나서 서점으로 오시는 길에 모종의 이유로 실종되었다.”
“그게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네, 저도요.”
도화는 남몰래 세 번째 가능성을 생각한다.
도진이, 자신의 의지로 사라졌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사라질 사람이 굳이 쓰레기를 처리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니, 어쩌면 사라질 사람이기에 자신이 머문 자리를 정돈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겠어. 일단 나가지.”
두 사람은 신발 네 켤레가 퍼지하게 놓인 현관으로 향했다.
아파트 현관 계단 인근에는 공용 재떨이가 놓여있다. 모두가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날은 현관 계단 두 번째 단에, 어느 날은 흙바닥 어딘가에, 또 어느 날은 근처 석재 조형물 위에 놓여있곤 한다. 오늘은 얌전하게 계단에 놓여있었다.
도화는 마지막으로 담배를 태웠던 때를 떠올린다. 불과 오늘 새벽, 방송을 마치고 딱 한 대만 피울까 싶어 1층까지 내려왔었다. 그 때도 재떨이는 계단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런 기억이 있다.
“작가 양반, 전자 담배 피우지?”
“네. 재떨이는 안 쓰시죠.”
“쓰레기 버리고 한 대 피웠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는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 감각은 모르겠네요.”
이 아파트의 쓰레기 배출 장소는 현관 오른편 저 멀리에 설치되어 있다. 한 동짜리라고 해도 일단 아파트는 아파트라, 간단한 분리수거장과 함께 온갖 생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수거통이 한 켠에 줄지어 있다. 실상 입주자는 네 명 뿐이니 공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긴 한데……
쓰레기장을 얼쩡댄다. 어디에서 담배를 피웠을지 고민한다. 그렇게 멀리 나가진 않았을 텐데. 고개를 숙여 바닥의 모양새를 훑는다. 신발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의 덮개가 둔탁하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턱을 당겨 소리의 근원지를 살피니 현이 새파란 일반쓰레기 수거통을 열어보고 있다.
“설마 쓰레기까지 뒤질 생각이야?”
“안에 뭐가 있나 싶어서요.”
“쓰레기통에 그럼 쓰레기가 있겠지.”
이상한 면에서 종잡을 수 없는 남자다. 도화는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녀석에게 오동현이 휘둘렸다니 납득이 갈 듯 말 듯 하다. 확실히 누군가의 아래에서 부려질 타입은 아니라는 판단이 서긴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특출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닌 듯한데.
현이 수거통의 덮개를 닫았다. 쓰레기를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살펴보기는 한 모양이다.
“작가님 집 쓰레기가 있어요.”
쓰레기 봉투 겉면의 어떤 걸 보고 쓰레기의 주인을 특정해냈는가에 대해서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캐물어봤자 속이 좋지 않아질 뿐이다.
“지금 몇 시지?”
현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열 시 십 삼 분.”
“사라진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가네.”
“고양이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고양이도 한 시간만에는 못 찾거든?”
“잘 찾는 사람은 삼십 분만 있어도 찾던데.”
“난 짐승 전문이 아니야.”
“그러면요?”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돈도 안 주는 돌발 의뢰에 휘말려 땀에 젖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있으니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종합게임 전문 스트리머.”
아파트의 외벽을 따라 걷는다. 정면의 모퉁이를 돌면 아파트의 뒤편으로 향할 수 있다. 산인지 언덕인지 모를 흙더미가 높다랗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긴 하지만, 오솔길 아닌 오솔길이 나 있어 일단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한 장소다.
언덕의 외곽을 따라 완만하게 나 있는 오솔길.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에는 편하지만, 그만큼 길이 길어져 언덕 꼭대기까지 오르기엔 시간이 걸린다. 즉, 언덕 너머의 정식 등산로에 합류하기까지 한세월이다. 등산 목적으로도 좋은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아파트의 모퉁이를 돈다.
꾸며지지 않은, 오솔길의 입구가 보인다.
입구라는 표식도 무엇도 없다. 그곳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애당초 입구라는 인식도 하지 못하리라.
아마, 밖에 잘 나오지 않는 이웃인 성훈이라면, 분명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도화는 생각한다.
그리고 인식한다.
오솔길의 입구를.
그 앞에 점점이 늘어선, 검붉은 핏방울을.
“추측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현이 오솔길 앞에 쭈그려 앉은 채 말했다. 입구에서 시작된 혈흔은 오솔길을 따라 차례차례 떨어져 있다. 숲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묘책을 쓴 어린아이들의 빵조각처럼. 확실히, 표지의 목적이라면 빵조각보다는 혈흔이 좀 더 낫다. 피를 먹는 동물은 없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오간 길을 표시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이상했다. 핏방울은 명백하게도 두 갈래 길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오솔길 저 너머에서 시작된 혈흔이 입구까지 와서 조금을 망설이다가 다시 뒤를 돌아 언덕으로 향한 모양새다. 입구를 정점으로 해 오솔길로 뻗어나가는 길다란 U자를 그리고 있다는 설명이 된다.
오솔길에서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다가 치료를 위해 아파트로 향했다. 그런데 어떤 사정이 있어서 다시 오솔길로 돌아갔다? 어째서.
도화는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흘러가던 화제를 되돌린다.
“앉아서 뭐 해? 따라가 봐야 될 거 아니야.”
“사람이 흘린 것치곤 양이 너무 적어요.”
“조금 다쳤나 보지.”
“양도 적고,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퍼져 있지도 않고.”
현은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혈흔의 모양에 대해서는, 도화 역시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으나, 눈에 띄는 흔적이 있는 이상 그걸 추적하는 게 성공률이 더 높지 않은가.
질린 얼굴로 자리를 뜨려던 도화를 향해 현이 고개를 든다.
“별 일 아닐 거 같네요.”
“무슨 소리야? 또.”
“먼저 가 보세요. 저는 좀 더 미적대다가 갈게요.”
“궁금해서 묻는 건데, 항상 그런 스탠스야?”
“무슨 스탠스요?”
“제멋대로 결론 내려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거.”
“협동심이 길러질 정도로 협업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오동현하고는?”
“걔가 따라다녀서 좀 놀아준 거예요.”
놀아준 거다, 라는 구절을 뱉는 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려는 낌새를 보였다. 자제심이 높은 건지, 결국 미간에 주름 하나 잡지 않고 넘겼지만.
“가 보세요. 결론이 궁금하시잖아요.”
현은 바닥에 쭈그려 앉은 무릎을 펴지 않았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폭이 넓지 않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걸어가면 조금 답답할 수준의 폭이다. 길 양 옆에 늘어선 덤불들과 나무들과 돌덩이들은 사람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흩어져 있다. 이런 곳에 길이 나 있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인 광경이다.
그리고, 그 좁다란 길을 따라서 핏방울은 떨어져 있었다. 확실히 사람의 것이라기엔 양이 적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그 점이 이상하다. 사람의 피가 이렇게 적은 양으로 꾸준히 나올 수가 있나.
사람의 피가 아니라면, 동물의 피인가?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이 도시는, 특히나 이 외곽은 산이라는 자연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지나치게 좋은 환경이다. 얼마 전에는 고라니가 빽빽 울어대는 소리에 잠에서 깬 적도 있다. 설마 군대가 아닌 곳에서 고라니 울음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혈흔을 따라 걷는다. 오솔길과 진행 방향이 일치되어 있어 사실상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 분 정도 걸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오솔길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커브를 돈 탓이다.
그리고 혈흔은 열 발자국 앞에서 왼쪽의 덤불로 뻗어 있었다.
사람의 기척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 불길해진다.
덤불로 다가간다. 그에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아니, 풀벌레들이 집을 짓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산새가 열매를 주워먹는 소리일지도. 아니면 엎어져서 자고 있던 고라니가 깨어나는 소리인 건 아닌가.
발 아래에서 모래가 짓이겨지는 소리. 자신의 호흡 소리. 신원 미상의 부스럭대는 소리. 덤불 바로 앞까지 이동했다. 특별히 보이는 건 없다. 덤불 너머에 있는 굵직한 나무 정도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덤불을 헤치고 지나간다.
무언가를 밟았다.
물컹하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검은 색의 포대기?
아니, 아니다.
이건……
시체다.
죽은 고양이의, 시체다.
그럼에도 부스럭거린다.
죽은 녀석은 움직일 수 없는데도.
천천히 발을 뗀다. 조금 앞에 발을 내려놓는다. 순간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어라, 땅에 단차가 있잖아……
근처의 두툼한 나무를 팔로 감싸안는다. 발치를 보니, 웬 바위가 보인다. 땅에 묻힌 바위가 땅의 역할을 대신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무 뿌리가 바위를 뚫고도 자라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신기한 구조다.
그리고 도화는 보았다.
바위 밑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람의 다리를.
현은 도화가 바위 아래로 내려간 와중에 오솔길을 따라 올라왔다. 그의 인기척이 느껴지긴 했지만, 일단은 쓰러진 사람을 구출하는 게 먼저였으므로, 도화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바위 아래에 뻗어있던 도진에게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출혈도 없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와중에 머리라도 부딪힌 거겠지. 코피는 나지 않으니 그렇게 중대한 부상은 아니어 보인다.
바위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드니, 현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업고 올라오실 수 있으세요?”
“아무리 나라도 그건 안 돼.”
“그럼 어떡해요?”
“깨우든가, 업고 길 없는 곳으로 내려가든가.”
현은 대충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도진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업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단차가 더 없으면 좋겠건만. 별로 높지 않은 곳이니 구덩이 같은 위험 요소만 없으면 빠르게 내려갈 수 있다.
“이거 보셨어요?”
머리 위에서 현이 물었다.
“뭘?”
“고양이요.”
“봤지. 밟기도 했고.”
“이걸요?”
“그걸.”
“죽이셨어요?”
“무슨 소리야. 원래부터 죽어있었어.”
“아, 그거 말고요.”
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무 쪽으로 몸을 옮긴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얘네들이요.”
눈을 뜨지도 못하고 네 발을 열심히 꼬물대는 새끼 고양이가 그 손에 쥐여져 있었다. 미약하게 입을 뻐끔대면서, 앵앵대는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다.
“어? 뭐야. 난 못 본 애들인데. 어디 있었어?”
“이 나무 밑동, 구멍에요.”
“구멍?”
“구멍이라기보단, 바위 때문에 뿌리가 들려서 공간을 만든 거긴 한데요.”
“그럼, 거기 죽어있는 고양이는……”
“새끼의 어미겠죠.”
다시 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뭘하고 있는지, 연신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출산 후에 힘이 다 해서 죽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들리는 소리로 미루어보아 고양이의 사체를 뒤적거리고 있는 게 명백했으므로, 도화는 미묘하게 상태가 좋지 않아진 위장을 자각하며 도진을 업어들었다.
현은 서점의 문을 잠그고 아파트로 돌아오기로 했다. 아직 하루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가게 문을 닫아도 되냐고 물으니, 어차피 평일 오전에는 손님이 없어서 괜찮단다. 오늘은 물류가 올 일도 없어서 더더욱 프리하다고.
그 사이 도화는 정신을 잃은 도진을 아파트로 옮겼다. 도진의 집에 가야 하나 자신의 집에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집에 무단 침입을 했다고 대뜸 털어놓는 것보다는 제 집 침대에 눕혀두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주거침입죄냐, 간통죄냐의 차이다. 게다가 간통죄는 몇 년 전에 폐지되었으니 이쪽이 훨씬 안전하다.
환자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을 짬이 났다. 공교롭게도 옷장이 침대 옆에 있었으므로, 도화는 또다시 고민하다가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커튼을 쳐 두지 않아도 창문 너머로 엿볼 사람이 없다는 건 크나큰 장점이다.
평상복으로 환복 후 도진을 살피고 있으니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으로 현의 얼굴을 확인한다. 양 손으로 무언가를 들고 있는 거 같다.
현관문을 여니 예상도 못한 소리가 명치 부근에서 들려왔다.
“뭐야, 이거.”
어째 오늘 뭐야, 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도화는 생각한다. 아무래도 같이 행동한 상대가 규격 외의 인간이기 때문일까.
눈도 못 뜬 새끼고양이 여럿이 종이 박스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포근해 보이는 수건이 박스 바닥에 깔려있다.
“새끼요.”
맞는 말이지만 어감이 안 좋다.
“몇 마리야, 이게.”
“여섯 마리요.”
“어쩌려고 주워왔어?”
“그대로 놔두면 죽을 거 아니에요.”
“키우려고?”
“동네 카페에 글이라도 올려보려고요. 한 마리 키우실래요?“
“나 하나 살기도 바빠.”
“바쁘시겠죠.“
현은 소파에 고양이 박스를 내려뒀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녀석들이라, 박스를 넘어 대탐험을 벌일 일은 없어 보인다. 도화는 잠시 집 안의 온도를 확인한다. 그렇게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저렇게 하루 정도를 내버려 둬도, 적어도 추워서 죽지는 않겠지.
침실로 들어가니 도진이 끙끙대며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타이밍이 좋다.
“약속 시간에 너무 늦었잖아, 도진 씨.“
조금 충혈된 눈이 도화를 보고 번쩍 뜨이다가, 두통이 이는지 미간을 푹 찡그렸다가, 천천히 눈꺼풀을 든다. 도진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현이 입을 연다.
“괜찮으세요?”
“으음, 어……”
“도화 씨 집이에요. 뒷산에서 쓰러져 계시길래 모셔왔어요.”
“아, 으음……”
아직 멀쩡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말에 대한 반응인지 단순한 신음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도진이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기 시작한 건 장장 삼십 분이 지나서였다. 그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이 무얼 했냐 하면. 도화는 침대 옆 자리에 걸터앉아 오늘의 일정을 되짚었다. 메일함을 확인했다. 오늘 올라갈 유튜브 영상의 검토를 했다. 현은 벽에 기대어 앉아 전자책을 읽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도화가 그의 액정을 흘긋였지만, 소설이라는 정보 외에는 무엇 하나 알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선 눈을 천천히 껌뻑이던 도진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여기… 어디예요?”
아무래도 아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옆 자리에 걸터앉아있던 도화가 다시 대답해 주었다.
“우리 집. 작가님, 뒷산에서 굴러서 기절해 있었다니깐.”
“아, 음……”
“기억 안 나? 머리를 세게 부딪혔나?”
“아니, 기억은……”
반응으로 보아 기억은 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작가님?”
도진은 미간을 찡그린 채 십 초 이상을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겨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진의 말은 시점이 선형되지 않고 불규칙하여 현 사건에 깊게 관여하지 않은 이들에게 들려준다면 광인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될 만한 이야기였다. 다행스럽게도, 현 사건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던 현과 도화에게는 그나마 배경지식이라고 할 만한 게 존재하여 이해하기 쉬웠다. 도화는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찬찬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도진은 아홉 시 이십 분 쯤에 집을 나섰다. 현과의 약속을 위해서였다. 집에서 나가는 김에 잔뜩 쌓인 쓰레기도 처리할까 싶어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텅 빈 쓰레기 적재 장소에 봉투를 던져놓고, 문득 니코틴 욕구가 들어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 여느 때와 같은 담배의 맛이 구강을 가득 채웠다. 뒤통수를 때리는 만족감에 멍하니 있으니 아파트 뒤쪽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길을 잃은 등산객이 이곳까지 도달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리의 주체는, 뜻밖에도 길고양이었다. 하반신에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고양이가 오솔길의 입구를 넘어 자신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었다. 이변을 느낀 도진은 담배를 끄고 고양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고양이는 뒤를 돌아 오솔길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뒤를 돈 고양이의 하반신에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고 도진은 말했다.
도진은 고양이를 따라간 곳에서 밑동에 구멍이 뚫린 나무를 마주한다. 그 구멍에, 새끼 고양이가 몇 마리나 있었다고 한다. 인기척을 느끼고 구멍에서 기어나오려 하는 모습을 보고, 도진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단차가 있는 땅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대로 추락했다. 머리에 둔탁한 통증을 느끼고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겨우 세 문단으로 정리될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였다.
“와, 현 씨랑 약속이라도 안 잡았으면 영원히 발견 못 할 뻔 했네. 위험했어, 작가님.”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은 현이 의견을 표출했다.
“아니요. 어차피 작가님은 매일 같이 우리 서점에 오시니까. 연락이 안 된다면 제가 찾으러 나섰었겠죠.”
“아, 그래……”
도화는 슬슬 질린다는 얼굴로 대충 대답했다.
“아무튼 다행이네요. 작가님을 꾀어낸 게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서.”
“음, 놀랐어…… 갑자기 미끄러져서……”
“사람보다 무서운 게 없다잖아요. 요즘 세상에는. 아, 맞다.”
“으응?”
“그 새끼 고양이들을 데려왔어요. 작가님은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어미 고양이가 죽어있었거든요,”
“아, 어쩐지 몸이 안 좋아 보이긴 했는데……”
그래서, 부러 언덕을 내려와 사람을 찾은 게 아닐까. 도화는 추측했다. 자신이 죽으면 새끼들을 돌볼 수 없어진다. 그러니 인간을 꾀어내 자신의 아이를 돌보게 한다. 고양이에게 그 정도의 지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방면에는 아는 게 없어 영 대답할 수 없는 도화이지만.
“어…… 고양이들을 어떻게 하려고?”
도진이 여전히 외간남자의 침대에 누운 채 물었다.
“지역 카페에 입양글을 올려보려고요. 별 반응이 없으면, 제가 뒷마당에서 키우다가 방사해야죠.”
“방사?”
“고양이가 있는 서점은 이목을 끌기 좋을 것 같지 않나요?”
혹시나 했는데, 결국 마케팅을 위한 선택이었나.
“책에…… 털 같은 거 묻으면 어떡해?”
도진이 마른 세수를 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가게 밖에서만 키운다니까요. 이제 봄이라 날씨가 춥지도 않은걸요.”
“으음…… 입양을… 잘 가야 할 텐데……”
“한 마리 키우실래요?”
“아, 음…… 아니……”
“왜요?”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도진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썼다. 그것이 도화의 것이라는 자각이 없는 듯하다. 삼 초가 지나서야, 자신의 익숙한 이불이 아님을 깨닫곤 이불을 쇄골 아래까지 끌어내린다.
“……재고 정리는?”
“내일 하려고요. 작가님이 안 오셨는걸요.”
도화는 문득 이런 아름다운 재회를 왜 자신의 집에서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미안.”
침대를 빌려준 건 난데?
“괜찮아요. 어차피 평일에는 손님도 얼마 없어요. 내일이나 모레에 하면 되죠.“
“그래도 돼?”
“네. 괜찮아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고 있으니 도화는 어쩐지 제 집인데도 불편함을 느낀다.
도진은 그렇게 삼십 분 정도를 도화의 침대에 누워있다가 자리를 떴다. 물론, 침대를 내어준 도화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긴 했으나, 그것이 현에 대한 사죄의 어투와는 차원이 달라서, 도화는 말없이 웃어보이기나 했다.
“혹시 모르니까 꼭 병원에서 검사 받아보세요.”
호적이 두 개인 자신보다야 검사 절차가 쉬울 것 아닌가. 도진은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도화에게 친근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새끼 고양이가 여섯 마리나 든 상자를 든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서점으로 향할 모양이었다.
도화는 다시 홀로 남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 두 시도 지나지를 않았다. 어쩐지 배가 고프지 않더라.
도화는 현에게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받아올까 생각하다가, 동물은 아무래도 쉽게 죽어버린다, 어쩌면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쉽게 정을 준 나만 힘들겠지, 등등의 추론을 이어가다가,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교류를 좋아하는 인격인 걸까, 하며 태생을 조금 후회하다가, 결국 점심밥을 차리는 것으로 결착을 맺었다.
일어난 지 다섯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겪은 일이 많군.
도화는 멍한 얼굴의 도진을 생각한다.
따지자면 귀여운 축에 든다고 생각한다…… 이미 임자가 있지만.
그 이후로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도화는 또다시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고양이들을 떠올리다가, 자신에게는 벅찬 생명들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얌전히 무정란을 깨어 달궈진 프라이팬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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