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上
백도화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 동짜리 아파트. 그 작달막한 정문을 지나 외길을 쭉 따라 내려가면 기이할 정도로 공실이 많은 소규모 상가들이 길을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지금 영업을 하는 가게라고는, 대체 어디서 손님이 모여드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미장원과 (도화는 한 달 전에 이곳에서 간단히 머리를 다듬었다) 그래도 주변의 거주민들이 가끔은 생필품을 사러 들르는 모양인 편의점 (이 주변의 유일한 담배 공급처다) 그리고 의외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서점이 전부였다.
서점과 편의점과 미장원을 차례로 지난다. 나름 새로이 개발된 도시니만큼 보도블럭은 깔끔하게 깔려있는 편이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벽돌을 구경하면서 십오 분 정도를 더 달리다 보면 교차로를 하나 만나게 된다. 십자로의 각 귀퉁이에 박힌 보행자용 신호등은 같은 시간에 일제히 점등한다.
이제부터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쉽게 구경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횡단보도를 건너 앞으로 향한다. 도시의 중심가에 들어선다. 길가에 선 건물들의 키가 다소 높아진 감이 있다. 인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꽤 많아진 느낌이 있다. 은근하게 늘어난 생활 소음에 귀가 간지러워진다. 이대로 쭉 세 블럭을 더 나아가서 오른편으로 꺾어지면 도심 공원이 있다. 그곳이 도화의 마지막 조깅 코스다.
공원이라고 해 봤자 우레탄으로 다져진 바닥과 적당히 꾸며진 나무와 풀과 운동 기구와 벤치가 있을 뿐이지만, 이 도시의 거주민들은 그것으로도 대강 만족하는 듯 보였다. 도화는 아직 탄성감이 남아 있는 우레탄 바닥 위에서 십오 분 정도를 뛰어다니다가 공원을 나섰다.
꽃 피는 3월이라지만 아직 날씨가 춥다. 꽃샘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걸까. 봄 따위에 뭐가 그렇게 샘이 나서 한기를 내뿜는단 말이냐. 땀이 식어 조금 싸늘해진 팔뚝을 운동복 위로 매만지며 도화는 생각한다.
시간은 오전 아홉 시. 여기까지 달려오는 데에 삼십 분이 조금 더 걸렸으니, 천천히 걸어간다면 어림잡아 한 시간이 조금 덜 걸릴 거다. 물론 그 자신은 성질이 급하니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할 테지만. 어쨌거나 열 시 전에는 집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잡스러운 생각을 하며 아까의 교차로에 다다르니 인적이 눈에 띄게 줄었다. 네 개의 신호등이 동시에 파란 빛을 내뿜어도, 교차로에 걸친 총합 여섯 개의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사람은 도화 뿐이다. 하여튼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동네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이제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기 어려워진다. 인간의 통행량도, 자동차의 통행량도 저조해진다. 어쩌면 인간과 자동차보다 산새들이 이 길목을 더 잘 드나들지도 모른다. 아래로 축 늘어진 전선 위에 살포시 앉은 까치가 도화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장원은 아직 열지 않았다. 편의점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담배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 외에 딱히 살 것도 없다. 편의점을 지나쳐 외길을 따라 더욱 더 걷는다. 실내 조명이 켜진 2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이 동네의 유일한 서점이다.
도화에게는 독서 취미가 없다. 따라서 책을 사는 취미도, 책을 구경하는 취미도 없다. 그런데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상점이 서점인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간을 확인한다. 아홉 시 사십 분을 막 지나고 있다. 이 서점에서 아파트까지는 도보로 십 분이 조금 덜 걸린다. 그런 계산을 하며 서점의 앞을 지난다.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건, 아직 손님 하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는 사장의 모습.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의 인기척을 느낀 듯했다. 눈이 마주친다. 갑자기 카운터에서 걸어나온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도화는 약간 당황한다.
문이 열렸다. 그보다 다섯 살이 어린 사장은 도화를 보고 미세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일찍 여네요. 서점을.”
“늦게 열어봤자 좋을 게 없거든요.”
눈꼬리가 얄쌍한 이 남자에게는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는 도화다.
이 도시는 거주민이 썩 많지 않다. 신도시로 계획되었지만 이런저런 차질이 생겨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인프라 구축에 멋지게 실패했고, 사람들은 실패한 도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건물의 공실은 사람들로 채워질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나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도화는 이곳을 거처로 삼았다.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 도시의 가장 외곽. 시내로 나갈 일이 없으면 사람 얼굴을 볼 일도 없는, 한적하다 못해 휑뎅그렁한 감상이 드는 동네. 사람과 부대낄 일이 없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마음 편한 곳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으므로, 외부인의 침입이 눈에 잘 띈다는 것도 은근한 장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도화만 느끼는 장점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몇 달 전 모종의 사유로 한참을 입원했던 도화다. 이 주 가량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는데, 그 때의 병문안 손님 중 하나가 눈앞의 사장이었다. 말도 몇 번 섞어보지 않은 사람이 대뜸 병실에 찾아왔기에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는데……
떠올려 봤자 뒷맛만 쓴 이야기다. 도화는 애써 입가의 근육을 끌어올린다.
“원체 건강해서요. 이젠 멀쩡해. 운동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죠.”
이상하다. 분명히 그 때 겁을 준 것 같았는데.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이유가 뭐지.
이변을 감지하고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으니 사장이 먼저 입을 연다.
“작가님 보신 적 있으세요?”
단숨에 말투가 싸늘해졌다. 방금 전까지의 사회적인 어조는 어디에 갖다 버린 걸까. 도화는 기껏 구축했던 방어선을 내려놓는다.
“그 사람이라면 담배 피울 때마다 마주치는데.”
도화의 몇 층 아래에 사는 작가의 이야기었다. 변호사와 함께 살지만 정작 서점 사장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하던 그 작가. 반쯤 스트리머인 도화와 생활 패턴이 이상하게 맞는지, 담배를 피우러 1층 현관에 내려갈 때면 높은 확률로 마주치곤 했다.
“오늘은 보셨어요?”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화를 바라본다.
“아니. 아침에는 만난 적이 없어.”
지독한 올빼미족이거나, 아침에는 담배가 영 당기지 않거나 할 거다.
대답을 들은 사장은 어떤 의문도 풀리지 않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상하네……”
“뭐가?”
“오늘은 아침에 보기로 했거든요.”
“왜요?”
“재고 정리 시즌이라 안 팔리는 책 좀 드리려고 했어요.”
“그걸 꼭 아침에 해야 하나?”
“손님 없을 때 해치우는 게 나으니까. 밤에는 저도 쉬어야죠.”
잠깐의 침묵. 대화가 엇나갔다는 걸 먼저 깨달은 사람은 도화였다.
“아, 그래서. 아침에 만나기로 했는데 작가님이 안 왔다?”
“네.”
“그 사람의 아침은 좀 늦는 게 아닐까? 작가 양반한테 지금은 새벽일 수도 있어.”
“문명인답게 오전 아홉 시 반에 만나기로 했어요.”
“문명인?”
“절대적인 시간을 따랐다는 거죠.”
휴대전화를 꺼내 액정을 켠다. 오전 열 시 십 분 전.
“이십 분밖에 안 늦었는데?”
“약속에 한 시간씩 늦는 스타일이세요?”
이렇게까지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 주면 불쾌함을 넘어 외려 유쾌하다.
“전화라든가, 메시지라든가 해 보면 되잖아. 지금이 뭐 삐삐 시대도 아닌데.”
“이십 분 전부터 해 봤죠. 그런데 전화는 받지도 않으시고, 문자도 안 보시고.”
“아직 자고 있는 거 아니야?”
“의외로 잠귀가 밝으세요. 예민하신 분이라.”
아니, 같이 자 본 건가?
“전화 벨소리 듣고 못 일어나실 분은 아닌데……”
사장은 하관을 손으로 감싸쥐고 고민에 빠졌다. 제삼자인 도화로서는, 솔직히 휴대전화를 거실에 두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뿐이지만, 어쨌든 얼마 없는 이웃사촌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라서.
“뭐어…… 집 올라가면서 초인종은 눌러볼게요.”
라고 말해두는 게 최선이었다. 술 마시러 갔을 때 몰래 봐 둔 비밀번호로 도어락을 따고 들어가서 침실에 어떤 자세로 누워있는지 확인할게요, 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솔직하지 않나.
그러자 턱을 매만지던 사장은 눈동자를 굴려 도화와 시선을 마주쳤다.
“같이 가죠.”
뜬금 없는 소리를 하는 데에는 도가 텄구만.
“예? 왜요?”
“나이를 먹었는지 별별 걱정이 다 들어서요.”
마흔 줄의 도화는 서른 줄의 사장을 잠시 노려보다가 아파트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아파트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까지 길었나 싶었다. 도화가 반 걸음을 앞장서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차라리 근처에 집을 짓고 사는 산새들이 부리를 더 많이 열었으리라. 피차 불편한 사이라는 자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건 어째서일까, 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도화는 재빠르게 두 개의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작가의 행방이 어지간히 걱정이 되거나, 자신의 행동이 어지간히 걱정이 되거나. 분명 둘 중 하나일 거다.
아파트의 자그마한 정문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위치에서 도화가 입을 뗐다.
“오동현하고는 무슨 사이야?”
현은 바람으로 엉망이 된 앞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답한다.
“친구요.”
“그냥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던데.“
“어디가요?”
“그 놈, 이상할 정도로 당신을 신뢰하고 있거든.”
피식 웃는 소리.
“왜 그럴 것 같아요?”
“부려먹었나?”
“한참 전에……”
“지금은 왜 업종을 바꿨고?”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바꾼 적 없어요. 생애 첫 직장이 서점이었고. 흥신소 같은 곳에 다닌 적도 없어요.”
도화는 현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 1층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안에서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그럼에도 인기척은 없다. 수없이 많은 건물의 초인종을 눌러 본 도화에게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정말로 손님을 맞으러 나오는 이가 없다는 의미다. 발소리를 숨겨봤자 옷깃이 스치는 미세한 소리따위로 발각되기 마련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현이 초인종을 누른다.
다시 한 번 차임벨. 귀를 기울인다. 숨소리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없어, 없어. 안 나와.”
“들어가야겠네요.”
“뭐?”
“뭐 알고 계신 거 없으세요?”
현이 무릎을 굽힌다. 도어락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열 가지 숫자가 가지런히 정렬된 번호판. 확실히 일부의 숫자들만이 생활감이 역력하긴 했으나……
“나보다는 당신이 작가님이랑 더 친하지 않아?”
이렇게 된 거 두 사람의 관계를 은근히 떠 보기나 하자고, 도화는 마음먹고 만 것이다. 현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어락을 살피고 있다. 네 자리 숫자를 누른다. 옳지 않은 번호라는 경보음이 세 번을 울리다가 멎었다.
“남의 집 비밀번호를 기억해두진 않아서요.”
“그래도, 친한 사람이잖아. 근처에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 것 같던데… 비상 시에 대비해서 말이야. 비밀번호 정도는 가르쳐 주지 않아?”
현의 얼굴 근육이 잠시 굳었다가 풀어지는 꼴을 확인한다.
“아뇨, 여태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요…… 작가님도 저도, 비밀번호를 공유할 필요까지는 못 느끼고 있었죠.”
그의 눈동자가 사선으로 굴러 도화를 향한다. 당신이라면 뭐라도 할 수 있잖아, 라는 암묵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도화는 그 신호를 모른 체 할까 하다가, 그래도 건드리는 맛이 있는 유약한 작가의 상태는 좀 걱정이 되었고, 눈 앞의 사장은 자신의 직업을 알고 있었으므로, 결국에는.
“……비상 시니까 열어주는 거야.”
간단한 손놀림으로 네 자리 수를 입력했다. 도어락은 경쾌한 전자음을 뱉으며 잠금을 풀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처음으로 발을 딛게 되는 곳은 당연하게도 현관. 오른편에 신발장이 있다. 두 사람이 사는 것치고는 신발이 많지 않다. 일단, 아웃도어 용도의 신발은 전무하다. 현관에 늘어서 있는, 실사용하는 듯한 신발은 고작 두 켤레. 운동화 두 켤레. 사이즈가 다르다. 사용자가 다르다는 거다.
어느 쪽이 변호사의 신발일까. 디자인의 결은 비슷한데. 신장 차이로 보아 사이즈가 큰 쪽이 변호사의 것일까.
“작가님, 있어?”
도화가 큰 소리로 외쳐보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애당초 사람의 기척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다. 등 뒤에서 현이 뒤따른다. 현관문이 닫힌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
“아무도 없는 것 같다니까. 벌써 서점으로 출발한 거 아냐? 우리랑 엇갈린 거 아니냐고.”
“그 외길에서 엇갈리는 사람을 못 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이 아파트에서 서점으로 향하는 길은 방금 지나왔던 외길뿐이다.
십 분 정도를 걸었지만,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마주친 적은 없다.
“……못 볼 수가 없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올라오면 거실. 그 옆으로 이어진 주방. 그 반대편에 거실과 이어진 창고방. 거실과 주방 사이의 짤막한 복도를 지나면 안방이 나온다. 화장실은 안방 맞은 편에 있다.
그런 구조를, 도화는 단숨에 떠올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같은 면적에 같은 구조이니 떠올리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
거실과 주방에는 아무도 없다. 꺼진 TV의 깜깜한 액정 따위가 불청객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벽시계가 규칙적으로 중얼대는 초침의 행방. 냉장고가 식재료를 식히는 은은한 소음. 난방은 돌아가지 않는다. 낮에 가까운 아침이고, 더군다나 봄이니까, 사용하지 않고 있는 걸까.
거실 안쪽으로 발을 옮긴다. TV와 거실 창문 사이의 작달막한 벽에 문이 하나 나 있다. 창고방이다. 외벽과 바로 맞닿은 방인데 난방조차 되지 않아서,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구조다. 아마 이 아파트의 거주자 모두가 창고로 쓰고 있을 거다.
지금은 문이 닫혀있다. 따뜻한 봄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저런 곳에 들어가 있을까 싶어, 도화는 굳이 창고방의 문을 열지 않았다.
짧은 복도를 지나 안방 문 앞까지 다가간다. 남의 침실, 그것도, 연인과 함께 사는 이의 침실을 엿본다는 배덕감에 도화는 아주 잠깐 방문 손잡이를 잡고 미는 것에 대한 도덕적 고뇌라는 녀석에 사로잡혔지만, 문 앞에 서자 고민은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이미 문이 활짝 열려있던 것이다.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건 2인용 침대. 그 옆에 베드사이드 테이블과 전등. 벽가에 늘어선 붙박이 옷장. 반대편 벽에 붙은 옷걸이. 침대의 이불은 정돈되어 있지 않다. 나란히 놓인 베개는 가운데의 솜이 약간 꺼져 있다. 물론, 침대 위에 사람은 없다. 창문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만이 매트리스 위를 수놓고 있을 뿐이다.
등 뒤에서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침실의 불은 켜지지 않았으니, 현이 화장실의 불을 켠 것이리라.
“안 계시네……”
현이 중얼거렸다.
“창고에서 뭐 찾고 있는 거 아냐?”
도화가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창고까지는 둘러보지 않았으니까. 이제 이 집 안에 사람이 있을 곳이라곤 그곳밖에 없다.
“창고요?”
“거실 쪽에 안 쓰는 방 있잖아.”
“아, 거긴 서재예요.”
“창고나 서재나.”
“달라요.”
현이 서재로 향한다. 도화는 구태여 따라가지 않고 침실을 어슬렁거렸다.
침실에도 화장실에도 없는 거면 이미 이 집안에는 없다는 거 아니겠어. 여기 사는 그 잘생긴 사람, 변호사랬지? 직장을 서울로 다닌다는 것 같았는데. 작가 양반도 서울에 뭐 일이 생겨서 아침부터 같이 나간 거 아니야? 출판 일로 얼굴 보고 대화할 일이 생겼다든가……
합리적인 추측을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생활감이 넘쳐나는 침실이다. 문득 이불에 시선이 갔다.
스마트폰이 이불에 파묻혀 있다.
손을 뻗어 집어든다. 화면을 켠다. 지문 인식으로 보안이 되어 있다. 액정을 한 번 슬라이드하니 이번에는 패턴을 입력하라고. 가로세로 세 개 씩 늘어선 아홉 개의 점.
청계천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패턴인식 그거 말이야. 언뜻 보면 되게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 실제로 그렇긴 해. 점 아홉 개로 만들 수 있는 패턴이 사십 만 개에 가까우니까. 그런데 맹점이 하나 있다. 인간들의 창의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는 맹점이. 그리고, 휴대전화를 켤 때마다 귀찮게 점을 복잡한 순서로 연결하지는 않을 거라는 또 다른 맹점이.
이 씨가 알려준 최다 빈출 패턴을 입력했다. 네 번 만에 잠금이 풀렸다.
뒤에서 현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액정을 끄고 몸을 돌린다.
“서재에도 안 계셔요.”
“그럴 것 같더라. 그보다, 이거 봐.”
스마트폰을 본 현의 눈이 잠시 둥글게 뜨였다.
“휴대폰을 집에 놔 두고 나가다니 말이야. 문명인답지 않네.”
“어디 잠깐 나가신 걸까요?“
“지금으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은, 당신이랑 한 약속은 까맣게 잊고 편의점에 담배라도 사러 나갔다, 라는 거.”
“작가님은 연초 안 피우세요.”
“담배가 아니면 술이라도 사러 갔겠지.”
“하지만, 여기서 편의점까지 가려면 저희 서점 앞을 지나야 하는데요? 작가님이 지나가셨으면 제가 못 봤을 리 없죠.”
“가게에서 일을 안 해?”
“오늘은 재고 정리를 하려고 했다니까요. 작가님한테 책을 드려야 하니까, 작가님이 오신 다음에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카운터에서 창 밖을 보면서.”
현이 서점을 나간 다음에 편의점으로 향했다는 가설은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서점으로 향하는 외길. 현과 도화가 함께 걸었던 그 외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없었으니까.
다소 머리가 복잡해진 도화는 침대에 걸터앉는다. 적당히 푹신한 매트리스가 엉덩이를 받쳐준다. 현은 앉을 생각이 없는지 문지방을 밟고 서 있다.
“아니, 뭐…… 작가 양반, 차도 없잖아. 어딘가에 걸어서 갔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좀 편해지네. 아마 고양이보다 이동 반경이 작을걸. 그래. 고양이처럼 산을 탈 수도 없고, 배수로에 들어갈 수도 없고. 찾는 거 자체는 훨씬 쉬워.”
주인을 잃은 스마트폰을 도로 켠다. 인기 패턴 탑 5에는 들 법한 수수한 패턴을 입력해 잠금을 풀어낸다.
“대단하시네요.”
현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온갖 메신저 앱에 접속한다. 놀라울 정도로 잠금이 걸려있지 않은 메신저들에 감탄하면서, 도화는 생각한다.
이 집에 들어와서 오 분이 넘었는데 작가 양반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건, 적어도 담배를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선 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휴대전화를 집에 내버려두고 나설 정도의 가볍고 짧은 생활 잡무를 위해 집을 나섰다는 가설과 상충된다.
뭔가 이상하다.
작가 양반은 왜 사라졌을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메신저를 탐독하면서, 도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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