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짧막한 연성 주제로 조각글 쓰기 ─ 세이아이 편 (2024.03.12)

당신은 세이지 셰이어드(으)로 「어설픈 고백」(을/를) 주제로 한 420자의 글 or 1페이지의 그림을 연성합니다.

당신은 아이든 아르비드(으)로 「꽃다발」(을/를) 주제로 한 420자의 글 or 1페이지의 그림을 연성합니다.

 

왜 늬들 세트로 이런 진단이 나오는데

재밌겠다(?)

 




『…당신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박사님을 만나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아아, 이건 존경 이상의 감정임이 분명합니다! 셰이어드 박사님, 저는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잘도 이런 편지를 보내네.”

받는 이와 읽는 사람이 달라서 유감이었다. 아이든은 스스로의 감정에 심취한 듯 갈수록 격양된 필체와 거친 단어를 나열하는 편지를 눈으로 훑어 내렸다. 편지지는 고급인 것이 티가 났고 무슨 처리를 한 건진 몰라도 좋은 향기가 났다. 정성이네. 고백은 어설프지만. 아니 잠깐. 이거 피인가? 편지 하단, 검갈색 잉크로 손수 그린 듯한 장미꽃에서 말라붙은 피 특유의 질감을 느낀 아이든이 눈썹 사이를 좁히다 편지를 툭 내려놓았다.

“너는 안 그럴 것 같은데 인기가 많더라.”

“나를 추앙하는 인간들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사적인 공간에 둘뿐인데도 드물게 계속 방독면을 쓰고 있는 세이지가 별로 으스대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영혼의 존재를 완벽하게 증명하고 과학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을 해명해낸 세계 굴지의 심령학자에게 팬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편지의 주인처럼 제정신이 아닌 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그들의 선망을 받는 세이지 본인도 딱히 정상은 아니었으므로 아이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거 다 어떻게 할 건데?”

아이든은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는 선물 상자와 꽃다발을 다리로 슥 밀어내며 물었다. 평소에도 팬들로부터 물건이 드문드문 오곤 했지만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는 세이지의 거주지로 알려진 이 저택에 그야말로 ‘폭풍’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선물의 세례가 쏟아졌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색색의 팬레터, 크기부터 모양까지 다양한 선물 상자, 꽃집 하나를 다 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많은 꽃다발. 처치가 곤란한 이것들을 아무렇게나 놔둘 수는 없어서 일단 방 하나에 몰아넣어 놨는데 그 결과가 이랬다. 천장까지 쌓인 선물의 산과 언덕을 이루는 종이,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꽃의 홍수. 여러 종류의 꽃이 뒤섞여 자아내는 어지러운 향기 탓에 세이지는 방독면도 벗지 않고 있었다.

“불태울 건데.”

“또냐.”

부족함 없이, 아니, 풍족하게 자라서 그런지 세이지 셰이어드는 재물이나 물건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의 눈에 진실로 차는 것은 얼마 없었을 뿐더러 마음에 드는 것은 얼마나 정교한 대체품이든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예민한 기질에 까다로운 성미였다. 조금 아깝지 않나. 아이든은 불을 붙이지 않은 채 물고 있던 담배를 까딱였다.

“셰이어드 부부께라도 보내지 그래? 좋아하실 텐데.”

“쓸데없어.”

“네가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아니다. 이만한 양을 다 보존하신다면 골치 아프겠네.”

두 셰이어드 씨는 딸이 보냈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눈물을 엉엉 흘리며 모든 것을 처음 상태 그대로 보존하려 들 것이었다. 지금 이 방의 풍경이 셰이어드 저택에 그대로 재현되는 건 그가 생각하기에도 별로였다.

아이든이 담배를 반대쪽 어금니로 굴려 씹고 있는 동안 세이지는 아이든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렌즈 너머의 눈은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불쑥. 시답잖은 생각에 빠져 있던 아이든에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꽃잎이 몇 점 우수수 떨어지며 꽃다발이 들이 밀어졌다.

“갖고 싶어?”

“별로?”

“가져.”

“왜지?”

아이든은 억지로 떠넘겨진 꽃다발을 쥐고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녀석과 20여년 정도를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행동 원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별 이유도 없을 것이었다. ‘부모님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내심 이게 갖고 싶나 보군. 나는 마음이 넓으니 부탁하면 그냥 줄 텐데. 한심하긴.’ 이 정도의 사고 회로겠지. 아이든은 받아버린 꽃다발을 제 어깨에 걸친 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이 직접 준 이상 버렸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되지 않으니.

토비에게나 줘야겠다. 그가 만들었으며 그를 따르는 –그러나 그로 인해 완성된 것은 아닌- 장난감 깡통 로봇을 떠올리며 아이든은 담배 끝을 씹었다. 자신이 궁리하는 것보다도 그 편이 더 꽃다발이 유용하게 쓰이겠거니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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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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