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의 영화는 19살부터 24살 때 제철이란 글을 봤다. 틀린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로 스물네 살이 끝났고 예전만큼 그의 영화가 미친듯이 좋진 않다. 생각하건데 젊은 치기와 용기는 지금껏 몇 번 경험한 적 없기에 나오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인간관계가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해피투게더’ (원제, 춘광사설)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몇가지 항목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생일이나 이름 같은 것. 생일(탄생일)이 있기에 내 존재가 세상에 비춰지고, 이름이 있어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부정은 정말 중요한 사항이다. 생일이 너무 싫은 나머지 이상한 단어를 만들어 부르거나, 이름이 싫어 필명·가명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의 시작점
* 8차시 에세이 합평 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인간은 촘촘하게 변한다. 시간을 비껴가지 않는 한,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인생에 영원불멸은 없다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지금이 볼품없고 모자라더라도 훗날은 나아질 수 있겠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답이 나올 물음표는 <혁
* 2차시 합평에 낸 최종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지식과 경험에 빗대어서야 세상을 인지할 수 있다는 말일 테다.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는가. 물리적으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이고,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다른 경험의 총합일 텐데, 그렇다면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바라보는 동일한 세상은 과연 정말로 단일할까. 안톤 체
나 우연히 당신이랑 끝을 본 거길 다녀온 적 있어요. 삽시간에 쏟아지는 것은 의외로 감정보다는 생각이더군요. 아무리 시간이 약이라지만 전혀 아프지가 않던데요. 나는 깨진 사랑도 사랑일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봐요. 언제 또 그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사랑을 하게 될까요. 얼마나 더 큰 사랑을 해야 보다 더 산산이 부서질 수 있을까요. 그
엄마, 무슨 생각해? 친구가 그러는데 나 연초 피우는 폼이 엄마랑 같대. 겉이 닮으면 속도 닮은 거라는데 어쩌면 이 불건강한 연소 행위의 본질도 닮았을까? 그럴 리 없길 바라지만 속이 잔뜩 썩어 쑤실 때마다 담배를 찾아 피우는 걸까? 그렇게 몹시도 자주 아픈 걸까? 나도 엄마처럼 늙을까? 똑 닮은 삶을 가져갈까? 그런 우려를 할까? 나도 웃겨.
아, 예쁘다. 내가 웃는 모양을 감탄하며 뜯어본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습니다. 긴장과 부담에 푹 절여졌는데도 저렇게까지 함빡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봐요, 나.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해 보여요. 과해. 과분해. 감동이 심하잖아요. 내가 나를 질투하게 된다니까요. 이 순간이 이렇게 황홀하게 내 안에 남아버리면 나는 또 내가 사랑하는 여러분을 한데 모
나 그냥 철부지로 살래. 이렇게 아빠가 모는 트럭 조수석에 앉아서 아빠가 틀어주는 트로트와 뉴스를 흘려들으며 툭 툭 내던지는 실없는 농담과 수다에 정신 팔린 채 살래. 언제까지나 어리숙하고 순진한 애로 살래. 어느새 머리가 다 벗겨진 아빠를 놀리고 아빠 몰래 찍은 투 샷을 인스타에 올리고 아빠가 피우는 담배 연기에 눈살을 찌푸리고 겨우 그런 게
있지. 나는 훌쩍 떠나고 싶어진 바람에 일상이 시시해졌어. 달고 짜고 심지어는 떫은가 싶은 순간조차 곧잘 와닿지 않아.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고 하루하루를 심심하게 보내. 그래, 맞아. 괴롭지. 어쩐지 전부 다 까마득해. 나는 반짝반짝 충만한 기분만 거머쥐고 그 외 나머지 꾀죄죄한 것들은 모른 체하고 살고 싶은데. 이게 참 생각만 쉽지 막상 실천
나는 내 청춘을 무위에 투고하는 모든 행위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죠. 내 사랑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 사랑과는 결이 다른 것인데, 여기까지 와서 내 글을 읽을 정도라면 아마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아직은 모르더라도 조만간 깨닫게 될 테죠. 내가 남 사랑하기를 얼마나 즐기냐면요. 아주 유려한 세레나데를 지어다 매번 다른 사람에
이게 뭐시여라고 생각하시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벌어지고 말았는 걸요……“천장 누수”라는 사건이 말이죠. 현재 집주인분에게 이야기해서 공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데 저희 집 위의 옥상 부분을 방수처리하고, 이상이 없으면 제 방의 천장을 뜯어내서 마저 마무리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천장을 뜯어내면? 아무리 커버링 작업을 꼼꼼히 해도 가구며
포스타입에 올렸던 글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쓰고 그리고 만드는 이유가 되는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지금 와서 읽으면 조금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쓴 글이므로, 이곳에도 업로드해 둡니다. 걸작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절망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창작물을 싸구려라고 비하하는 것은 독자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니까 할 수 없다. 그렇지
포스타입에서 이벤트 참여를 위해 올렸던 작법 관련 글입니다. 이벤트를 참여하기 위해 올렸던 글을 또 이벤트를 참여하기 위해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펜슬 에디터가 편하기는 하네요. PC로 보니까…. (라고 쓰자마자,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다는 메시지가 3개나 왔는데요. 아마 문제 없겠죠?) 창작자로서 어느 정도의 자가복제는 피할 길이 없다. 늘
첫 포스트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도 괜찮지 않아? 라고 해서 끄적이는 이야기. 이사를 하고 있습니다. 종전의 다른 블로그 서비스들이 문을 닫고, 기존에 쓰고 있던 모처에서 펜슬이 에디터 쓰기 괜찮다는 추천을 많이 받아서 귀가 팔랑여서 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사 말고! 현실 리얼 이사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이번에는
타인의 부정과 부당과 불의와 마주했을 때, 그것에 맞서지 아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우리는 사회에게 무엇을 배우는가. 옳지 않은 일에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다. 외면과 방관은 동조와 같은 말이다. 우리는 모두 동등하며, 평등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타인의 권리를 박탈할 자격은 없다
펜슬이 300자 이상 게시글을 작성하면 2000P를 준다고 해서, 업로드할 만한 글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실 그건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핑계다. 그것 때문에 글을 읽은 것은 아니다. 어제, 이벤트 공지가 올라오기 전, 그냥 심심해서 과거에 쓴 글을 읽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예전 글을 읽었더니 그때 좋아한 것이 어떤 점이었는지 기억났고 아직 해소하
글이 안 써진다. 나는 이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매일 글을 쓰던 때도 있었다. 매일 만화를 보던 때도 있었다.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글을 쓰지 않게 된 지도 삼 년이 넘었다. 만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면 되는 일임에도 막연히 지치고 피곤하게만 느껴진다.
[독서] 독서는 고양이의 마음을... 음냐음냐.서점에 ’책 읽는 강아지만 출입가능‘이라는 문구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저는 그 문구를 보면서 항상 생각해요..진짜 있으면 어떡하지? - 아래는 후원용으로 아무 내용도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보스는 말이다 맨날 간식을 준다냐.영화 속 악당 보스들은 꼭 고양이를 키우잖아요.그래서 어릴땐 악당 보스가 되고 싶었어요..그리다보니 할아버지가 안계신데내조하시느라 바쁘십니다.(?) 아래는 후원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