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을 벗어나, 오늘을 살아요

제목은 김수예, 《피어나 블루블루》. 시인의 말 중 일부를 발췌

* 8차시 에세이 합평 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인간은 촘촘하게 변한다. 시간을 비껴가지 않는 한,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인생에 영원불멸은 없다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지금이 볼품없고 모자라더라도 훗날은 나아질 수 있겠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답이 나올 물음표는 <혁명 전날>의 화자인 라이아 아시에오 오도(이하 라이아)에게도 어김없이 들이닥친다.

라이아는 시간의 물결에 떠밀려 인생 종반에 이른 사람이다. 그는 글 내도록, 과거 활기가 넘쳐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던 싱그러운 젊은 날의 자신과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여도 꼭 들어맞는 말년의 자신 사이를 방황한다. 그 밖에 여러 모순이 그를 괴롭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라이아는 과거와 현재의 틈에서 신경 줄이 닳아버린 걸로 보였다.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건강, 잃어버린 열정…. 너무 멀리 떠내려와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상류를 그리워하듯이.

글 곳곳에 묻어나오는 라이아의 삶은 틀림없이 치열했고 정열적이었고 노도怒濤 같았다. 그 결과로 그는 누군가의 깃발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떠받들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고 내켜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업적도 경력도 주렁주렁 달고 있지 않나. 명예욕 충만한 사람이었다면 만족했을 삶이다. 그런 위대한 삶을 살았음에도 라이아는 후회하고 스스로 연민한다.

후회와 자기연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엔 없었다. 나도 정신 차려보니 이편에서 저편으로 떠밀려 옮겨졌다고 느낀 적이 있어서다. 못해도 두 번. 얼마 살아보지도 않은 서른 언저리가 무슨 소리냐며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경험이란 게 원래 번호표 받듯이 순서대로 오는 놈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내 감정과 똑같지는 않을지언정 라이아가 느꼈을 좌절감과 당혹스러움이 얼마나 깊고 축축하고 역겨웠을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걸어왔던 삶이 틀렸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고, 썩은 식재료처럼 더는 구제할 길이 없다고 철저히 믿게 되는 자기 부정.

자, 여기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변화를 일으키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서 너무 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틀린 걸까 아니면 맞는 걸까. 좌절 앞에서는 완전히 글러 먹었다고밖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정답이 있는 물음이기는 했을까?

인생은 동전처럼 양면이 있다. 늘 그렇다. 불행이라 여겼던 사건은 돌고 돌아 놀라운 기적을 만들기도 하고, 운이 좋다고 여겼던 일이 까보니 최악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단언할 수 있다. 지금 후회하고 연민하고 절망한다면 이전에 열과 성을 다했기 때문이고, 그 나날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후회하는 자신을 자책하지 말자. 당신이 열렬히 타오르며 버텨왔기에, 결과가 좋지 못했을지라도 지금이 있다. 경험은 쌓여 언젠가 다른 기회로 찾아오지 않겠는가.

언제 숨이 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젠 추락할 일밖에 없다고 여기는 라이아가 하얀 잡초를 하얀 이름 모를 꽃이라고 무의식중에 다시 인식한 것처럼, 끝은 실제로 그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 오지 않는다. 단지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 긍정과 부정을 통째로 끌어안아 경계를 흐린 우리 삶에 정답은 어디에도 없고 다만 살아온 지층이, 길의 방향만이 있다. 어제의 내가 싫었다면 오늘의 내가 좀 더 낫기를 바라며, 오늘의 내가 맘에 들었다면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라며, 그저 지금을 쌓아 살아가자. 오늘을 벗어나,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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