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작법서

단편 소설 어떻게든 완결시키기

내 글이 너무 별로고, 어떻게 해결봐야 할지도 모르겠을 때

人工事件 by go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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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타입에서 이벤트 참여를 위해 올렸던 작법 관련 글입니다. 이벤트를 참여하기 위해 올렸던 글을 또 이벤트를 참여하기 위해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펜슬 에디터가 편하기는 하네요. PC로 보니까…. (라고 쓰자마자,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다는 메시지가 3개나 왔는데요. 아마 문제 없겠죠?)


창작자로서 어느 정도의 자가복제는 피할 길이 없다. 늘 똑같은 것만 쓰는 것이 고민인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은 역시 많이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 많이 완성하면 그만큼 자신이 무엇에 얽매여 있는지 철저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얽매이는 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 틀에서 벗어나 범위를 넓히되, 구심점은 있는 편이 좋다.

그렇다면 소설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글에는 언제나 수정의 여지가 있다. 지금으로서의 최선을 다하고 자신과 어느 정도 타협을 거친 결과물을 완성물이라고 하자. 완성물을 내놓으려면 초고가 필요하다. 완결된 초고가. 그렇지만 단편 소설 하나 완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팁…을 공유한다. 어떻게든 완결하는 데 방점을 둔다. 좋은 글이 나오는지의 여부는 관계없다.

이하의 내용은 학문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의 경험이라는 빈약한 토대 위에 구축된 것임을 미리 밝힌다. (세상이 이렇게 넓고 훌륭한 작가들이 이렇게 많은데 인터넷에 조회수 안 나오는 심심풀이 소설이나 올리는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작법론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세기의 명작보다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쓰레기에게서 더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이 글에서 '~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보게 되면, '이 사람은 이렇게 쓰나 보군.' 하면서 넘어가면 된다.

1. 간단한 전개의 틀을 구상해 놓고 시작한다

결말 정도는 생각해 두는 것이다.

사람마다 플롯을 아주 구체적으로 짜기도 하고 아예 짜지 않기도 한다. 스티븐 킹처럼 인물에서부터 시작해서 장편 소설을 쭉쭉 써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구조를 촘촘하게 계획하든 본능적인 감에 따라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든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어떤 방식에든 장단점이 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목적은 청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것이다. 청자가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해서 다음 내용을 듣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같은 소재로도 재미없고 심심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손에 땀을 쥐고 침을 꼴깍꼴깍 삼키도록 흥미진진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이야기꾼은 이야기의 구조를 본능적(이든 습득적이든)으로 안다. 어디서 끊고 어디서 장면을 바꾸고 어떤 대사가 치고 나와야 하고… 이런 지식이 체화되어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렵게 어렵게 공부해 가면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쪽에 재능이 있다면 남들 다 한다고 해서 굳이 구조적으로 글을 깎아가면서 쓰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의 목적만 달성하면 오케이. 자유분방하고 얽매이지 않는 글에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소설은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하지만 자신이 한 번도 소설을 완결해 본 적이 없다면?

나는 절대로 이야기꾼은 아니다. 몇 년간 완결 나지 않은 수많은 소설들 때문에 머리채 붙잡아 가며 낑낑거리고도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깨달았다. 완결한 소설은 모두 이 구조를 잘 짜놓았던 것들뿐이다. 물론 사람마다 맞는 방법은 다르다. 설계도를 그릴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천성적인 이야기꾼은 아닌 것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마무리 짓는 데 능숙하지는 못한 것 같다, 싶으면 이미 인터넷 도처에 잘 정리되어 있는 구조적 작법 이론을 살살 찍먹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2. 일단 시작한 글을 끝내기 전에는, 다른 글을 시작하지 않는다 (혹은 일단 시작한 글은 반드시 끝낸다는 마음을 먹는다)

개인적인 제안이다. 물론 음침한 분위기의 서스펜스만 붙잡고 있다 보면 저절로 얼마 전 읽은 로맨스 코미디처럼 밝고 통통 튀는 글을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전부터 한컴 켜서 쓰고 있는 이 글은 다음 전개 쓸 생각만 하면 숨이 꽉 막히는데 메모장에 별 생각 없이 적는 이 글은 결말까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며 완성된다면 틀림없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된다. 한 번 버린 글은 머릿속에서 꽤 오랫동안 잊혀 버린다. 몇 개월 지나서 다시 보면 글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원래 뭘 쓰려고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 상황에서 완결된 원고를 퇴고한다면 최적이지만 미완결된 원고를 이어 쓰라면 쉽지 않다.

초고는 부족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글을 쓰는 것일까? 왜 유치하고 내 머릿속 이상에는 오십퍼센트도 미치지 못하는 초고를 피눈물을 흘려가며 붙잡고 있는 것일까?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의 두근거림 때문이다. '~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 당시의 컨디션은 최강이다. 글쓰기는 연애와 같아서 처음 썸탈 때(글쓰기로 따지자면 아이디어 구상할 때), 그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이후의 지지부진한 여정의 동력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대상(신선함, 설렘, 이것만은 반드시 완결할 수 있을 것 같음)과 눈이 맞으면 곤란하다. 몇 개월 뒤에 돌아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설렘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초고를 이끌고 나갈 것인가….

3. 내 글은 무조건 최고다

이른바 내글구려병은 이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도 있었고 이 단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자신을 세뇌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서태웅글쓰기법이라고 정의하는데, 이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센스 있고 리듬감 있는 남의 문장을 보고 나서 내 글을 보고 나면 모니터를 집어던지든 펜대를 꺾든 하고 싶어지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이 이미지 트레이닝법이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서 나는 최고다 다섯 번만 복창해도 괴로운 글쓰기를 지속할 힘이 생긴다. 좋은 독자(작가님 글은 최고예요❤️❤️하고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주는)가 있다면 이런 트레이닝법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독자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 칭찬하고 해야만 된다. 와! 진짜 재밌어~ 내 글 최고다 세상에 다시없을 명작! 이런 글을 읽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건가 나는?!

이렇게 셀프 칭찬 날려준다.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이래서 글을 쓰니까. 내가 글을 정말로 세기에 다시없을 만큼 잘 써서라는 뜻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 나의 섬세한 취향에 딱 들어맞는 글은 나밖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고 취향이 완전히 같은 사람 역시 한 명도 없다. 천성이 예민한 창작자라면 누구나 잘 읽던 소설이나 만화가 어느 시점에서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를 뒤트는 것을 경험해 보았으리라. 나의 경우에는 주인공에게 싸늘한 태도로 일관하던 쿨뷰티 미소녀 히로인이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을 때 절망감을 느꼈다.

나의 --쨩은 이렇지 않아. 이것이 내 창작의 원동력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에도 쿨뷰티 흑발 미소녀는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 미소녀는 메인 히로인이 아니었다. 나는 주인공이 메인 히로인(아마 금발이었던 것 같음)과 하하호호하는 결말에서 얌전히 뒤로 빠져주는 흑발 미소녀를 보면서 창자가 꼬이는 괴로움을 느꼈다. 사촌이 땅을 사도 그렇게 가슴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의 흑발양이 이렇게 버림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뼈아프게 깨달았다. 남이 쓴 소설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를 괴롭게 만드는 전개가 튀어나올 수 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낀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토사구팽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각설하고, 요점은, 개인의 취향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글은 본인이 쓴 것일 수밖에는 없단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쓴 글도 쓰다 보면 재미와 취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오는데. 아무튼 우리의 글은 모두 제각각 최고인 것이다.

물론 퇴고를 할 때는 정반대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우우!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 (최선을 다해 내 글을 야유한다. 왜냐하면 나는 일단 초고를 마무리하고 나면 너무 게을러져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초고를 쓸 때 들던 무지막지한 수정욕—이것보다 더 좋은 단어/문장/장면/구성이 있을 거야!—은 초고를 저장하자마자 빠르게 사그라들고 만다. 미스터리한 현상이다. 지금 이 글도 처음 쓸 때는 고치고 싶은 부분이 무진장 많은데 일단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나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울면서 기껏 쓴 글을 지우고 도대체 어떻게 써야지 상상 속의 독자가 꺅 소리 지르며 재미있게 읽어줄지를 고민한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글을 쓰다가 앞부분이 별로여서 되돌아가 다시 쓰기 시작하고 싶어질 때는 기억하자…. 되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어차피 눈물을 흘리며 고통의 퇴고 시간을 가질 것이다. 다 쓰고 나면 어쨌든 고칠 것인데 굳이? 지금? 글을 다 쓰지도 못한 시점에서 수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럴수록 퇴고의 괴로움만 배가 될 뿐이다.

4. 글이 막히면?

단편 소설 완결을 목적으로 한 작가에게 최악의 상황은 역시 글이 막히는 것이다. 이때 내가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가. 처음으로 돌아간다

글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단편 소설은 크게 이 두 가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1) 보고 싶은 장면 (2) 전하고 싶은 메시지. 소설이 잘 풀리려면 이 두 가지에 대한 욕망이 모두 적절하게 있어야 한다. 소설이 막히는 것은 보통 이 두 가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보고 싶은 장면을 다 썼기 때문에 이제는 쓸 것이 없거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애초에 없었으므로 풀어낼 내용이 없거나, 혹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당초의 목적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 이 글을 왜 쓰기 시작하였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김철수 군과 김영희 양이 석양을 받으며 피 터지게 싸우는 꼴이 보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그러면 당연히 둘이 싸우는 장면 쓰고 나면 글이 막힌다. 목적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고 나아간다고 해도 무의미할 뿐이다. 그러면 다시 목적을 세우면 된다. 이 경우에는 둘이 싸우는 게 재미있어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둘은 언제까지 싸울까? 싸우고 난 후의 각자의 반응은 어떨까? 이 싸움은 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작가 자신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해야 한다. 1번 항목에서 소설의 구조를 짜 놓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이 이 때문이다. 구조를 짜면 어쩔 수 없이 결말까지 나의 등장인물들을 배달하려는 욕망이 생기고 그것이 글쓰기의 동기가 된다.

보고 싶은 장면을 다 썼다면 다른 보고 싶은 장면을 구상한다. 메시지가 없는 경우에도 해결책은 간단하다. 메시지가 없다면 메시지를 만든다. 지금까지 쓴 글을 톺아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찾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예컨대 오늘 당장 길에서 내 어깨를 치고 사과 한마디도 없었던 그 사람에 대해서 할 말이 없겠는가? 학창 시절 좋아했던 그 아이에 대해서 할 말이 없겠는가? 사소해 보이는 생각과 의견이더라도 소설을 지속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글에는 힘이 있으므로, 살만 가지고 쓰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뼈가 자라나 있다. 그 뼈를 발견해서 재구축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나. 마지막 장면을 삭제한다

이것은 그림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강의에서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싶으면 수정하지 말고 지우고 다시 그리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다음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마지막 문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인물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사인 것이 아닌가? 이 지문이 꼭 필요한가? 무의미한 내용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은가? 불필요한 장면을 쓰느라 처음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글을 쓰기 시작한 최초의 목적을 상기하면서 불필요한 내용은 과감히 삭제한다. 그리고 삭제하기 전 내용부터 이어 쓰면 가닥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쓰는 사람은 많은데 읽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하물며 AI조차도 소설을 쓰려고 하지 읽으려고는 하지 않는다(건방진 녀석….). 이런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이 불행할까, 아니면 글자 수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받았기 때문에 길고 긴 문장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불행할까. 모양은 다르지만 글쓰기의 순간에는 불행만 있지는 않고 행복도 있었을 것이며 있을 것이다.

누구나 소설을 쓸 수는 있지만 완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법 키워드가 달린 글만 보면 클릭해서 읽는 정성이라면 어떻게든 '그 글'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글로 써서 비꼬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진심이다. 작법 관련된 글만 보면 다 읽고 자신의 글을 후회하는 사람은 절대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 정도의 열정이 있다면 언젠가는 글을 완성하게 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소설을 내려는 여러분의 노력을 응원하며 (그리고 나의 쿨뷰티 미소녀가 어딘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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