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타인의 부정과 부당과 불의와 마주했을 때, 그것에 맞서지 아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우리는 사회에게 무엇을 배우는가. 옳지 않은 일에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다. 외면과 방관은 동조와 같은 말이다. 우리는 모두 동등하며, 평등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타인의 권리를 박탈할 자격은 없다. 침묵의 결과는 내가 다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선과 악은 인류가 발명한 개념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선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인간에게는 악의가 다수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 5. 20.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