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의 영화를 졸업하는 나이
스물넷
왕가위의 영화는 19살부터 24살 때 제철이란 글을 봤다. 틀린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로 스물네 살이 끝났고 예전만큼 그의 영화가 미친듯이 좋진 않다.
생각하건데 젊은 치기와 용기는 지금껏 몇 번 경험한 적 없기에 나오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인간관계가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해피투게더’ (원제, 춘광사설)
어느새 현실에 타협하며 비굴해지고 나면 그제야 언니들이 한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는 딱 지금 네 나이때 제철이라고.
완전히 이해했다. 젊은 것과 별개로 전심전력으로 온 몸을 내던질 용기는 없다. 그런주제에 비겁하게도 그가 그려낸 홍콩이 항상 그립다.
외로울 땐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였으며, 파인애플의 유통기한을 따지고, 나무 구멍에조차 외치지 못해 묻어버릴 낭만이 너무너무 부럽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 시간은 과거가 되어버렸고 지울 수 없는 것을.
나도 어느 순간부터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도 레인코트를 입고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쏘면서도 겁이 많아졌다며
비가 오지 않는 날도 레인코트를 입는 여자가 나오던 ‘중경삼림’
스물중반 언니들이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저를 보면서 했던 좋을때다~ㅋㅋ는 마냥 놀리는 게 아니었다.
진짜 지나가버린 좋을 때라 그랬던거였음........... 왜 그렇게 놀리는 것 같았을까.....................
'현실적이다'는 결국 예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능성의 미래 중 최고의 효율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낭만적이다'는 예상할 수 있는 미래에서 효율이 아닌 감정의 가치를 높게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가끔 가능성이 낮은 미래의 최고 효율을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감정에 더 치중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현실과 낭만은 여력의 차이일 뿐이다. 달려나가려면 뒤에 놓여있는 일들을 나중에 처리해버린다고 하고 모른 척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건 어찌보면 자신의 감정을 못본 체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사람은 현실과 맞서싸우는 게 아니라 자신과 맞서 싸우는 걸지도 모른다.
낭만적인 사람이 오히려 현실과 싸운다.
나무구멍에나 말할 수 있는 사랑을 했던 ‘화양연화’
1분 앞 미래조차 알 수 없기에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있고,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일 일을 전부 제쳐두고 달려나가는 사람은 분명 어른스럽다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에서도 모든 등장인물이 낭만적인 건 아니다. 어떤 인물들은 최고 효율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것을 낭만적이라 여길 수 있는 건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죽이다 스스로의 영혼마저 죽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왕가위는 지독하게 낭만적인 세상을 찍었다.
나는 여전히 그가 그린 홍콩을 사랑한다. 이제 그 시절의 홍콩은 더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노스텔지어를 지독하게 느낀다.
만약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100년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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