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사람이 말하는 야매 글쓰기 팁
인생의 반 이상을 글 써오는 재미로 살아온 취미글러가 지멋대로 정리한 비표준 노하우
++2020년도 여름 최초 작성, 2023년 12월경 펜슬에 백업합니다.
+(2020 8~9월쯤 첨언) 작성자입니다. 글쓰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페잉 요청이 많았어서 마침 아파서 병가낸 김에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글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글은 일체의 퇴고 없이 이틀 동안 한번에 써내려간 것으로, 돈 받고 강의하시는 분들의 전문적인 작법서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전혀 아닙니다. 그 점을 저도 알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읽고 웃어넘기라는 용도로 가벼이 써서 무료로 공개한 것이구요. 해당 지점을 알아 주시고, 글의 일부분이 재밌다고 하여 함부로 조각내서 퍼뜨리는 일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앞뒤 맥락이 없이 조각난 글의 일부분이 왜곡되어 재생산되는 일이 꽤 보이기 시작해서 조금 마음이 어렵습니다. 이 글은 마지막 부분이 핵심인데 마지막을 읽지 않은 채 앞부분만 잘라내면 좀 이상해지거든요 글이... 즐겁게 웃어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차
서론
*읽기 전에 - 문장과 스토리, 어느 쪽을 볼 것인가
*좀 더 읽히는 글을 쓰자 (문장편)
1) 문장을 잘 만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간결하게 써라.
2) 문장의 소리를 듣고, 리듬감과 호흡을 고려해라.
3) 문장 간 연결성을 계속 유지해라. 논리적인 사고 순서에 맞게 문장을 배치해라.
4) 머릿속에 완벽히 그려낼 수 있는 장면만 쓰자
*좀 더 재밌는 글을 쓰자 (스토리 및 구성편)
0) 달려갈 목적지가 확실하면 글은 멈추지 않는다
1)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건지 확실히 하자
2) 세상에 개연성이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3) 과감히 생략하고 필요한 부분은 끝까지 채워라
4) 쓰기 싫은 부분을 자르지 말고, 영화에서 장면전환이 될 타이밍에 잘라라
5) 정의, 상징, 관념, 도식을 비틀고 바꿔라
*어떻게 연습할 것인가(실전편)
1) 문장 수정 좀 그만하자
2) 완결 좀 내라
3) 귀찮아서 끊지 말자
4) 어차피 하지도 않을 고증을 팔지도 않을 글에서 왜 신경쓰는가
5) 내가 즐거운 글을 쓰자
*그 외의 잡다한 부분들
1) 재능이란?
2) 글쓰기의 목적이란?
3) 내가 잘 쓸 수 있을까요?
마치며
서론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단 한 권의 작법서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창작에 대한 강의를 들어본 적도 전혀 없습니다. 작성자가 살면서 받아본 첨삭이라고는
1) 초등학생 때 일기에 담임선생님이 써준 말들 2) 초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께 받은 조언
3) 대학 입시 때 학원에서 해준 논술 첨삭 4) 대학교 가서 낸 레포트에 교수님이 그어준 빨간 줄
이정도가 전부입니다.
다만 작성자가 약 1n년이 되는 기간동안 취미로 글을 써 왔고, 가끔씩 프로인 친구들이 알려주는 작법 노하우를 들을 때 느끼는 괴리감으로 판단한 바, 어쩌면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만이 가볍게 염두에 두고 조금 더 글을 잘 쓸 수 있는, 정론이라기엔 좀 그렇고 야매라고 해야 좋을법한, 일일이 육수 우리기 귀찮을 때 넣는 미원 수준의 조언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 이 글을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지나치게 지엽적일 것이고, 지나치게 정론에서 벗어나 있거나, 또는 지나치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장점은 오로지 야매로 글쓰는 사람들에게 야매로 글쓰는 사람이 노하우를 공개했다는 동질감뿐입니다. 휘황찬란한 서두도 그럴듯한 학계 이론도 지나치게 어려운 단어도 없습니다. 적당히 글 쓰는 사람들이 적용하기 좋을 만한 구멍 숭숭 뚫린 규칙들만 있습니다. 적당히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세요. 제가 쓴 것이 우연히 원래 있던 이론에 맞아들어갈 수도 있고 이론의 정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 취향에 맞게 걸러보시기 바랍니다.
*읽기 전에 - 문장과 스토리, 어느 쪽을 볼 것인가
문장은 더 세부적인 부분이고 스토리, 서사는 글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이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문장을 쓰는 팁을 먼저 썼지만 (문장이 서사를 구성하고 문장을 완성할 수 있어야 서사도 완성하니까요), 만약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자기 글에 무언가를 적용시키고 싶으신 분이라면 스토리 부분을 더 먼저 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유는 딱 하나에요.
스토리 멋진 글은 문장이 화려하지 않아도 재밌지만, 문장이 멋진 글은 스토리가 없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물론 시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시 역시도 문장이 단순한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취향 차이가 있긴 하겠죠.) 그리고 또한 시 역시도 담고 있는 서사, 전달하고 싶은 주제의식이 확실하지 않다면 단순히 천하제일 문장 메이크업시키기 대회에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문장편부터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서사편이 더 중요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앞으로 밑에 서술하게 될 이유 때문에, 둘 중에 하나만 신경쓴다면 문장과 스토리 중 스토리 쪽을 먼저 신경쓰시는 게 훨씬 더 효율이 좋습니다. 이건 읽으면서 차차 봅시다.
*좀 더 읽히는 글을 쓰자 (문장편)
시작하기 전에 제 문체가 상당히 특이하며 장황한 편임을 미리 밝힙니다. 따라서, 어떤 이들에겐 이 조언이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조언들이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같이 보일 수도 있겠죠. 근데 이 조언들을 염두에 두고, 알고 있으면서, 쓰다 보니 조언들과 반대인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내버린 것과, 이런 포인트들을 모르고 장황하게 쓰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장황한 문장을 구사하는 제가 장황하지 않은 문장 쓰라는 조언을 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은 아 얘보다 내가 낫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1) 문장을 잘 만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간결하게 써라.
서두부터 장황한 문장을 구사했던 사람이 이러니까 신빙성이 없어 보이죠. 그러나 이 조언은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수천만번을 이야기해왔던 내용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어쩌구저쩌구 상을 엄청 많이 탄 모 작가(저는 맨날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식이라서 발언자 이름을 잘 기억 못합니다)가 말했던 법칙에서 나오는
'글의 모든 부사어를 최대한 없애라'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가 다들 이 말을 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느끼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인데
1: 읽던 사람이 읽다가 주어나 앞부분을 까먹는 문장은 존나 쓸모가 없습니다.
- 문장은 읽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읽는 사람을 내가 의도한 서사로, 내가 의도한 감정으로, 내가 의도한 주제의식으로 이끄는 한 발짝 한 발짝이 모두 문장입니다. 그런데 그 한 발짝을 떼는데 다음 스텝, 다음 한 발로 이어지기까지 동작이 너무 느려서 '어라, 내가 왜 걷고 있었더라?'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면 그건 망한 거에요. 모든 문장은 명확히 서사라는 하나의 방향을 향해 가야 하고, 걷는 목적지와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성큼성큼 걷는것보다 종종걸음이 낫습니다. (부디 이 다소 조잡한 비유가 잘 이해되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서사 이야기를 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2: 대부분의 사람은 문장을 못 써요. 문장이 길수록 더 못씁니다. 저와 당신 역시 그렇습니다.
- 간단한 원리입니다. 밥 한 공기 먹는 건 아주 쉽습니다. 근데 밥 다섯 공기 먹는 건 어렵습니다.
짧은 문장 한 줄 쓰는 건 쉽습니다. 철수는 사과를 먹었다. 근데 괜히 여기다 멋내겠다고
기나긴 세월 끝에 자신의 목적도 명분도 잊어버린 철수는 눈물로 얼룩진 매일밤을 보내다가 결국 오랜 세월이 깃들어 손때가 누덕한 냉장고문을 열고는 과거의 죄악이 얽혀있는 사과를 꺼내들어 한 입을 베어물었다
하지 마세요.......................제발.
자취 요리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자취 요리 유투브 영상을 자주 봅니다. 자취 요리 영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뭔가요? 재료가 간단하고, 요리과정이 간단합니다. 자취하는 인간에게 요리 재료를 많이 구비하고 많은 과정을 거쳐 볶고 끓이고 접시에 옮겨담는 과정은 사치입니다. 왜? 그럴 만한 여력이 없거든요. 우리는 야매 글러입니다. (물론 쓰다보면 우리 중에 누군가는 프로가 되겠지요!) 당신이 긴 문장을 구성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쉐프가 아닙니다! 요리하는 자취생입니다! 우리는 존나 복잡하고 멋진 요리를 하고싶은것까진 아니고 그냥 한번에 끓여먹는 원팬파스타면 충분해요!
당신이 문장의 구성 성분(재료)을 충분히 모아 갖추고 적절한 요리과정을 거쳐(배치 및 구성) 플레이팅까지 잘 한 후 (문단 내의 적절한 연결성 부여) 설거지까지 한 후 (주술호응을 체크하고 맞춤법에 맞게 문장을 깔끔히 마무리함) 그 요리에 만족스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지 (읽는 사람이 이해되는 문장을 썼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야매노하우글 안 읽고 그냥 자기 혼자서 알아서 글 쓰고 있지 않을까요.
긴 문장으로 이걸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야매 글러 아니고 일단 프로 데뷔를 고민해보셔야 합니다. 프로들도 대부분 못하는 일입니다.
3: 당신이 긴 문장을 잘 써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존나멋진 긴 문장을 독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당장 인터넷 게시판에도 세줄요약 부탁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긴 문장을 이해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 놔봤자 먹는 사람이 씹는 이빨이 없어서 죽만 먹어야 한다면 고형식을 내놓을 순 없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 시대입니다............물론 애초에 그런 점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지금쯤 저나 읽는 분이나 글쓰기 말고 다른 걸 하셨겠지만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고 어쨌든 글이 좋으니까 글은 써야겠고......어쩔수없이 글이란 것에 온몸이 얽매여서 글 쓰는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다른 건 못하더라도.... 읽히고 싶다면 문장을 간결히 합시다.
물론 여기까지 읽었다면 눈치채셨을 겁니다. 저도 문장이 엄청 깁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바담 풍 해도 읽으시는 분들은 바람 풍 하셔야죠 뭐 어쩌겠어요!
그리고 읽으시면서 위안(?)이 될 것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존나 멋진 문장을 독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가 느끼기에 '못 쓴 문장' 역시 못썼다고 느낄 능력 역시 없습니다. 피아노를 깊게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에서 틀린 음 한 개를 찾아낼 수 없어요. 동네 친구가 연주하는 곡에서 틀린 박자? 못 찾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문장에서 뭐가 틀렸다고 그거 찾아낼 읽는이 없습니다 그거 찾아내고 있을거면 그분은 아마 지금쯤 맞춤법검사기 만드는 팀에 들어가계실 겁니다. (참고로 맞춤법을 잘 아는 것과 문장을 잘 쓰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므로 맞춤법 검사기 만드는 인간도 문장의 이상한 부분을 짚어내지는 못합니다만, 우스갯소리니까 자세히 따지지 맙시다)
2) 문장의 소리를 듣고, 리듬감과 호흡을 고려해라.
속으로 읽어요 제발! 지금부터,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이 문장의 '목소리'가 곧바로 떠올라야 합니다. 제가 지금 어떤 문장을 쓰고 있죠? 보이나요?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톤이 높지 않나요? 뚝뚝 끊어지죠? 계속 추궁하고 묻고 있죠? 좀 화난 것 같나요?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겠죠? ...방금 바로 앞의 문장들을 읽으며 느낀 목소리를, 쓰셨던 글, 쓰셨던 문장들에서도 느껴야 합니다. 꼭 제가 의도한 방식대로 (화나고, 높은 톤) 읽지 않으셨어도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각자의 글과 문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각자가 다 다릅니다. 다만 자신의 글의 목소리를 명백히 듣고 그 리듬을 파악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혹시 글을 읽을 때 그 글이 나레이션처럼 머릿속에서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면, 들려야 합니다. 자기가 쓴 글에서도 실시간으로 들려야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내 머릿속의 누군가가 방금 쓴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주고 있어야 합니다. 글을 육성으로 소리내어 읽었을 때 자연스러워야 실제 문장도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읽기는 목소리(로 대표되는 억양, 어투, 고저)와 리듬(박자)을 동반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시 읽기를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문장을 읽을 때 띄어서 읽습니다.
이렇게v표시를v했었잖아요.vv
기억이v좀v나시나요?vv
여기에v쉼표도,v쓰면v더v쉬는v것v같겠죠?vv
저 띄어 읽는 표시들이 문장의 템포에, 리듬에 분명한 영향을 줍니다. 말로 콕 찝어 설명할 순 없지만 문장마다 호흡을 하는 위치가 있고 그에 따라 리듬감이 달라집니다. 이런 부분들은 규칙이 있다기보단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배치하셔야 합니다. 이렇게요.
느릿하고 차분한 장면에서는 문장을 길고, 꾸준한 템포로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또는 스토리가 급박하게 흘러가는 다급한 상황에서는, 피아노에서 스타카토를 치듯이 문장을 짧게 끊고, 끝없는 단어의 나열들과, 감탄사, 엔터, 띄어쓰기, 의도적인 문장 끊기 등으로, 이렇게, 계속 읽는 사람의 호흡을 의도적으로 끊을 수도 있습니다.
방금 전의 문장을 읽을 때랑, 위의 '느릿하고 차분한 장면에서는~' 문장을 읽을 때의 느낌은 다르실 겁니다. 문장의 리듬감을 조절하는 것은 글의 분위기나 읽는 이의 기분을 조절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위 두 문장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문단 전체가 저렇게 되어 있다면, 그래서 두 문단이 완전히 다르다면 그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집니다. 각각의 문단이 각각 속한 장면 전체가 저렇게 리듬과 템포가 다르게 조절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장면마다 차이는 더 커질 것이구요. 그 장면 내에서 이야기의 내용이 조성하는 분위기와 상황이 합쳐진다면 목소리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많은 책을 읽어보시고 많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쓰면 쓸수록 자신의 문장이 지금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분명해질 것입니다.
3) 문장 간 연결성을 계속 유지해라. 논리적인 사고 순서에 맞게 문장을 배치해라.
이 부분은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며 인터넷에 쓰는 글의 대부분이 이것을 지키고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게 모든 글의 가독성을 좌우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문장 간 연결성과 논리적인 사고 순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이 노래는 모두 다 아실 겁니다. 지금부터 쓰는 모든 문장은 이 노래처럼 연결되어야 합니다.
△방금 전에 쓴 이 문장조차, 앞 문장은 '이 노래는'으로 시작하였고 뒷 문장은 '이 노래처럼'을 중간에 넣어서 연결시켰습니다.
이런 식으로 앞문장과 뒷문장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아니, 당연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나오는 꽤 많은 소설이 이 부분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문장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문단과 문단 간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주인공인 용기사가 데리고 있는 용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가, 그 용의 전설에 대해 설명하다가, 갑자기 "하여간/어쨌든"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 용기사의 헤어스타일과 사랑과 연애에 대해 설명하는 식입니다. 이것은 잘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지멋대로 유턴을 하던 격입니다. 몰입하던 흐름이 뚝 끊긴다구요. 물론 가끔 이런 식의 유턴을 의도적으로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읽는 사람을 이야기 속에서 몰아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문장들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가? 제가 대충 느끼는 바로는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의 예시들을 보시면 조금 더 감이 오실 거에요.
1: 연관성을 지키는 시각적 묘사, 시선의 처리
*여자는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목은 가늘고 곧았지만, 어깨는 탄탄하게 벌어져 있었다. 쭉 편 가슴께에 펜던트 목걸이 하나가 찰랑거렸고, 허리 역시 곧게 서 있었다. 지면을 딛고 선 다리는 어느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린 바 없이 안정적이었다. 거기까지 보고 나서야 철수는 그의 발이 상처투성이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위의 문장은 어떻게 이어져 있습니까? 머리>목>어깨>가슴>허리>다리>발 입니다. 읽는 사람에게 그 장면을 생생히 떠오르게 하려면, 그 사람이 보는 장면이 이어져야 합니다.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카메라가, 화면이 여기저기 순간이동을 해버리면 안 됩니다. 카메라는 천천히 이동해야 하고 장면은 이어져야 합니다. 인물을 묘사할 때 머리를 묘사했다가 그다음 발끝 그다음 허리를 묘사한다면 읽는 사람은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스크린 샷 여러 개를 나열해서 영상인 척 하지 말고,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예시를 봅시다.
2: 논리적인 연관성을 지키는 묘사
*여자는 머리를 흰색 끈으로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여자의 허리께에 둘러진 벨트 역시 흰색이었는데, 벨트에 조여진 옷의 회색 원단은 가볍게 나풀거렸다. 회색 옷자락 밑으로는 그보다 새카만 검정 샌들이 보였고, 그 샌들에 감싸진 여자의 발은 상처투성이었다.
같은 문단을 다르게 썼습니다. 여기서 문장은 어떻게 이어져 있습니까?
흰색 헤어핀>흰색 벨트>'흰색보다 탁한' 회색 옷>'회색보다 새카만'검정구두 로 이어집니다. 어떤 연결성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문장은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문장이 이어지고 장면의 시선이 옮겨가는 과정에서는 하나의 논리적인 연결성이, 맥락이 존재해야 합니다.
3: 심리적인 연관성을 지키는 묘사
*여자는 끈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한 올 삐져나오지 않게 정리된 모습은 그의 성정과도 꼭 닮았다. 그의 몸가짐이 항상 그러했듯이, 벨트 역시 그의 허리 둘레에 딱 맞게 조여져 있었다. 그러나 발만은, 달랐다. 여자의 발은 상처투성이었고 샌들 일부는 낡고 해져서 조금 더러워 보였다.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이 문단에서는 문장의 연결성을 확연히 찾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테마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문장들은 여자가 평소에 단정하고 깔끔하게 행동한다는 특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 특성을 기준으로 묘사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보자면
여자의 머리묶음>묶은 머리처럼 단정함>단정하게 매여진 벨트>단정하지 않은 부위(발)>발에 대한 설명>그래서 단정하지 않음>이것은 특이함
이런 식으로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계속 설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예시들을 보고 나시면 '문장 간의 논리적 연결성'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아실 것이리라 믿습니다. 모든 문단은 철저하게 이렇게 하나의 맥락을 갖고 쓰여져야 합니다. 경험상, 이것만 지켜도 상당히 가독성 좋은 글이 됩니다.
4) 머릿속에 완벽히 그려낼 수 있는 장면만 쓰자
이건 제목이 내용 그대로라서 설명할 게 별로 없습니다. 본인이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라면 텍스트로 쥐어짜지 않는 게 낫습니다. 차라리 그 부분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만약 그 부분이 개연성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면? 축하합니다, 드디어 난관에 부딪치셨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앞에 설명한 1) 2) 3) 모두 오로지 이 4)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부분입니다. 머릿속에 그려내지도 못하는 장면을 1)과 2)와 3)을 지켜나가면서 써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장면을 못 그려내면 어떡하죠?
서사를 잘 짰어야죠. 서사편으로 갑시다! <자연스러웠죠? 이게 3)입니다..
*좀 더 재밌는 글을 쓰자 (스토리 및 구성편)
0) 달려갈 목적지가 확실하면 글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여러분에게 어디까지 가라고 하는 메세지가 옵니다. 서울 홍대 사는 사람에게 합정을 가라고 해봅시다.(지하철역 한 역 차이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합정까지 슬렁슬렁 걸어가겠죠. 그럼 이번엔 그 사람에게 강남까지 가보라고 하면?(지하철역 2호선 정 반대쪽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갈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 홍대 사는 그사람이 가야 할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하루 내로 도착하기 위해 버스, 지하철, KTX등 여러 가지를 타고 더 급하게 열심히 갈 것입니다. 목적지가 미국이라면 어떨까요? 며칠 내로 미국에 도착하기 위해선 쉴 시간이 없습니다. 곧바로 달려가서 비행기 탑니다.
이 사람이 목적지로 향하면서 남긴 발자국, 한 걸음 하나하나가 모두 문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목적지는 쓰던 이야기가 향할 결말입니다.
이 사람이 목적지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이 글의 분량입니다.
일정 시간(정해진 글의 분량) 내에서 목적지(결말)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걷거나 뛰어야 (문장을 써야) 합니다. 즉, 정해진 스토리와 결말이 있다면 문장은 저절로 나옵니다. 결말이 멀수록 마음이 촉박해지니까 문장 하나하나 잡다한 것을 일일이 신경쓰고 퇴고할 시간은 없습니다. 당장 오늘 아침 미국으로 가야할 비행기를 탈 사람이 자신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신경쓰고 모델 워킹을 하려고 하던가요? 아니요, 알아서 걷고 뜁니다. 차라리 그게 낫습니다. 문장을 고칠 필요도 없구요, 분량을 늘리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확실한 서사를, 확실한 목적지를, 확실한 주제의식을 만드세요. 그럼 당신의 글은 알아서 달립니다.
제일 쉬운 것은 확실한 목적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목적지는 꼭 결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관악산을 오른다면, 관악산이 내가 가야 할 정상이라면, 관악산 찍고 나면 알아서 내려가겠죠? 내려간 후 산 밑의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 끓여먹을수도 있겠죠. 그 편의점이 내 글의 결말이 될 수도 있어요. 글이 가야 할 목적지는 결말 그 자체일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 반드시 찍고 가야하는 장소(관악산 정상),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목적지를 정하세요. 글이, 글 내의 인물들이 가야 할 목적지가 필요합니다. 목적지가 있으면 서사는 목적지로 향하기 위한 방법을 모으다 보면 생기는 거고, 주제의식은 그 목적지로 가다 보면 캐릭터들이 뛰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부여되는 법입니다. 여행을 가면 여행중에 그 여행의 즐거운 점이 생기듯이요.
이 내용의 번호가 0)임을 눈치채셨나요? 1이 아닙니다. 이게 가장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1)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건지 확실히 하자
물론 앞에서 문장 간 연결성을 설명하느라고 시각적인 묘사가 영화 장면..카메라 무빙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만, 그건 '움직이는 장면' 이야기입니다. 일러스트처럼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고 싶으신 거라면 그 장면 내에서 하나의 감정선 또는 사건이 확실하게 끝나면 됩니다. 하지만 만화처럼 서사,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앞뒤의 모든 개연성을 확인하고 맥락을 보며 이어질 2),3),4)의 내용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가면 안 됩니다. 저는 단연코 '보여줄 이야기'를 생각해보는 쪽을 추천하지만, 장면만 보여주고 싶으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결정하는 순간,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내야 할지, 대충 감이 옵니다.
2) 세상에 개연성이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캐릭터들이 절대로 이유 없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고 치밀하게, 모든 일은 논리적인 인과관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당신이 글 내의 캐릭터가 움직이는 이유와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찾고 추리하다 보면 자연히 서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서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이야기 내에서 보여줄 모든 사건과 모든 인물의 행동에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하지 않았고, 충분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도 안 나온다구요? 여전히 서사가 좀 부족하다구요? 그렇다면 지금 이미 부여한 개연성이, 인과관계가, 논리가 너무 빈약하지 않은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관찰력이 중요하다고 하는 게 이 지점에서 기인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주변의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관찰해놓지 않으면 개연성을 부여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왜냐? 그럴듯한 도식이나 기존에 있던 패턴 예시를 잘 모르거든요. 그 패턴을 부여해줘야 할 글쓴이 본인이요.
3) 과감히 생략하고 필요한 부분은 끝까지 채워라
2)에 이어지는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든 개연성을 제대로 부여했다면, 이제 어디를 보여주고 어디를 보여주지 않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글의 재미는 적절한 생략에서 비롯됩니다. 왜냐면 2)에서 부여한 인과관계 중 어떤 부분은 읽는 사람들이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는 것들이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글의 어떤 부분은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며 이해하기도 어렵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서 아주 상세하고 치밀하게 설명해줘야만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어떤 것은 삭제하고 어떤 부분은 엄청 공들여 써야 합니다.
구분하는 능력은 어떻게 얻나요? > 책을 많이 읽고 더불어 연출이 뛰어나다고 하는 영화들도 많이 보십시오. 씬만으로 이루어진 연극과 뮤지컬도 좋습니다. 이건 많은 창작물을 통해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이 쓰다보면 본능적으로 자를 부분을 알게 됩니다.
4) 쓰기 싫은 부분을 자르지 말고, 영화에서 장면전환이 될 타이밍에 잘라라
3)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분명히 저는 반드시 치밀하게 써야 할 부분이 있고 재미없어서 생략해야 될 부분이 있다고 말을 하는데 그냥 자기가 쓰기 싫고 어려운 부분을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컵라면에선 물 붓고 기다리는 3분이 제일 귀찮지만 그 3분을 기다리가 싫다고 컵라면을 생으로 씹어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물론 처음부터 생라면 먹고 싶었던 사람 제외.) 쓰기 싫다고 자르지 마세요. 쓰기 싫은데 중요한 부분이면 이 악물고 쓰셔야 합니다.
3)에 이어서, 장면을 자르거나 생략하는 타이밍은 무작정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필요만으로 자르고 붙이고 생략하고 그러면 마치 핑킹가위로 존나 자른 색종이를 이색저색 끝부분 맞지도 않게 갖다붙인 느낌이 들 겁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면 전환이 될 법한 부분에서 장면을 끊고 새롭게 새로운 장면, 문단을 시작하세요. 이 역시 2)에서 말한 많은 창작물을 보라는 부분과 같습니다. 특별히 연극이나 뮤지컬은 정말 장면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원리를 이해하고 체득하기 아주 쉽습니다.
5) 정의, 상징, 관념, 도식을 비틀고 바꿔라
재미있는 스토리를 짜다가 서사의 앞뒤가 충돌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상황을 봅시다.
A가 B를 죽여야 한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을 빌미로 A와 B는 사랑에 빠집니다.
시작부터 너무 재밌습니다. 혐관 최고다. 근데 이게 실제로 완결을 내야 하는 서사라고 생각해봅시다. 처음 쓸 때는 너무 재밌겠죠. 이런 관계에서 시작하는 연인이라니! 그런데 완결을 내야 하려면 예언을 처리해야 합니다. 둘이 백년해로해라! 근데...예언은 어쩌지? <내가 처음에 재밌으라고 뿌려놓은 요소들이 나중에는 방해가 되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이런 딜레마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연성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수습해야 합니다. 단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됩니다. 비록 나중에 생략하느라고 빠지는 부분들이더라도 이 인과관계는 다 해결을 하고 가야 합니다.
여기서 제일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관념 비틀기입니다.
아주 간단한 비틀기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습니다.
'죽인다'라는 말의 의미를 바꾸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생명이 끝난다는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그사람의 권력자로서의 자리가 사라진다거나, 그사람이 기억 상실증에 걸려 이전의 자아를 잃고 새로운 이름의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A는 B를 죽이는 척 하고 신분세탁하여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서사를 완성하고 떡밥을 회수하는 데 가장 쉬운 트릭입니다. 말만 교묘하게 바꾸면 되는 거지요. 야바위 같은데 일단 서사를 차분하고 꼼꼼하게 달성해왔다면 독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만족스러워 할 거에요.
비틀기는 이같이 앞뒤가 안 맞는 서사의 떡밥을 회수하고 완성하는데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소재에도 쓰일 수 있어요. 제가 썼던 글 중에는 클리셰인 'BL 오메가버스 정략결혼' 소재를 가지고 시작한 글이 있습니다. 굉장히 흔한 소재지만 전개가 전혀 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건 읽으신 분들은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그냥, 의문점이 드는 모든 부분을 다 바꿔봤거든요.
-왜 오메가버스의 애들은 맨날 아무데서나 섹스하는가? 걔네는 문명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없는가?
>그래서 안 시켰습니다. (?) 그랬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무미건조한 특이한 분위기가 나왔습니다.
-왜 정략결혼하는게 로맨틱한가? 존나 자존심 상하지 않나?
>그래서 수가 야마돌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이입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왜 도망간 수는 맨날 공에게 잡혀오는가? 공이 인간 GPS 수인인가? 어떻게 찾나?
>그래서 공이 못 찾고 수가 알아서 제발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별 생각 없이 비틀었는데 여기서 인간 대 인간의 동등한 관계라는 주제의식이 생겨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발로 수가 돌아온 시점에서 더이상 공이 수를 자기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수가 자기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지점이 생겨버렸거든요... 딱히 그렇게 거창한 걸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가 알아서 갔습니다. 클리셰들에 대한 제 의문점을 넣어서 야 너 이거 이상하지 않아? 하고 캐릭터들에게 던져줬더니, 걔네가 알아서 움직였어요. 그럼 새로운 주제의식이 알아서 딸려옵니다.
지금 든 예시들은 아주 지엽적입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비틀 수 있는 방법은 한도끝도없이 많으며 그 적용 분야도 시작 소재부터 이야기의 전개와 마지막의 복선 회수 떡밥 처리까지 무궁무진하거든요. 게다가 제가 든 저의 예시들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준이며 이미 많은 창작물에서 쓰였을 수도 있는 정도의 비틀기입니다. 더 많은 걸 하실 수 있어요. 그러나 대충 이 두 가지 정도의 예시만 들어도 어떤 느낌인지 이해는 되시리라 믿습니다. 많이 비트세요.
근데 억지로 일부러 '아 존나 참신한 걸 써야지 뭘 비틀어볼까' <이러고 쓰진 마세요. 티 납니다. 이렇게는 글이 안 나옵니다. 그냥 평소에 자신이 의문을 갖고 있던 것들, 모두가 당연히 여기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하던 부분들의 의문을 꺼내서 그 장면 그 지점을 서사에서 비틀어버리면 알아서 잘 됩니다. 글은 쓰고 싶은 걸 쓰셔야 합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비틀린 시선이나 꼬아진 시선들, 의문들을 거침없이 꺼내보세요. 사람들은 당신의 비틀린 것들을 의외로 굉장히 환영해줄 겁니다. 잘 쓴 글은 자기 이야기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격려거든요.
*어떻게 연습할 것인가(실전편)
1) 문장 수정 좀 그만하자
제가 문장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은 당신 문장의 어디가 틀렸는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뒷이야기를 궁금해합니다.
실전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당신 서사는 갈 길이 먼데 문장만 주구장창 고치고 있으면.. 미국 가야 하는데 그 버스정류장에서 제자리걸음하면 미국은 언제 가나요? 문장이 안 읽히고 이상한 것 같다구요? 이번 글은 망했으니까 쿨하게 잘 끝내고 한 백 편 쯤 더 쓰고 백일편 째의 문장을 봅시다. 확연히 백편 쓰기 전의 문장과는 달라집니다. 문장은 알아서 자기 길 찾게 냅둬주세요 빨리 이 이야기를 자기 갈 길 갈 수 있도록 동행해주세요.. 어차피 수정할 때마다 문장 더 더 더 이상해지는거 다들 알잖아요 (나만 그래요? 젠장...) 어차피 이상해질 것 애쓰지 말고 더 많은 글을 쓰는 데에나 시간을 들입시다.
2) 완결 좀 내라
완결을 내면서 다작하는 것과 안 내면서 다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하나를 완결내야한다는 중압감에 다른 걸 못 쓴다면 그냥 그걸 포기하고 다른 걸 쓰세요. 그게 낫긴 합니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의 '결말'을 본 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일주를, 완주한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야기 전체 구조를 그리기 쉬워집니다. 소위 말하는 대갈치기만 하는 사람들이 인체가 늘 일이 없듯이 결말까지 쓰지 않는 사람들은 서사가 늘 일이 없습니다.
3) 귀찮아서 끊지 말자
당신이 귀찮은 부분에서 그만두지 말고 이야기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부분까지 쓰세요. 당신의 체력과 귀찮음이 이야기의 결말이나 끝부분, 그 편의 마지막 장면을 결정하게 두지 마세요. 이야기가 끝나야 될 곳에서 끝나게 해야 합니다. 이 규칙이 이야기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4) 어차피 하지도 않을 고증을 팔지도 않을 글에서 왜 신경쓰는가
우리는 뭐다? 쉐프가 아니라 자취요리생이다! 자취요리생이 뭐 진정한 일식 돈부리 덮밥은 비벼먹지 말고 떠먹어야 한다...알 게 뭡니까 맛있으면 됐지. 물론 고증을 정말 완벽하게 하시면서 이야기 써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존경해요 그리고 그분들과 저는 종족이 다릅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야기를 잘 끝내지 못하고 자꾸 고증이 신경쓰여서 글이 막힌다면 최소한 기억해주세요.
고증 잘 맞춘 못 끝낸 글보단 고증 개무시한 완결난 글이 백 배 낫습니다!
5) 내가 즐거운 글을 쓰자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쓰세요. 괜히 관심을 받기 위해 남들이 쓰는 소재나 이야기를 무작정 쓸 필요 없습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 미치겠는 걸 써야 글이 잘 갑니다. 재밌는 거 합시다. 그리고, 완결 많이 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쓰다가 재미없어진 게 있고 새로 쓰고싶은 진짜 재밌는게 있다면 후자를 먼저 쓰세요. 그게 낫습니다. 늘 내가 제일 전속력으로 신나서 뜀박질하며 달려가면서 웃을 수 있는 걸 쓰셔야 합니다. 제일 쉽고 지키기 좋은 규칙인데 제일 중요하기까지 합니다.
*그 외의 잡다한 부분들
여기까지 제가 쓸 수 있는 노하우 대부분은 쓴 것 같네요! 사실 작법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게 뭐 정론인지 아닌지 실제 전공학부에서 가르치는거랑 정반대내용인지 아니면 전공학부에서 1학년때 쌈싸먹고 들어가는 너무 쉬운내용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몰라요 그냥 저는 제맘대로 썼거든요.. 글은 원래 이렇게 쓰는 겁니다 존나 누가 뭐래도 자기맘대로 쓰면 되지 뭐.... (미안합니다...) 이런 마인드로 써야 한 십몇년 내내 글 재밌게 쓰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마인드 관련해서 그 외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조금 써보고 가려고 합니다.
1) 재능이란?
많은 사람들이 재능에 대해 말합니다. 나는 재능이 없나봐 부터 시작해서 어떤 글을 쓴 사람은 천재 같고 뭐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더라도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이 부분이 신경쓰입니다. 나는 글을 잘 못쓰는데? 재능이 없지 않나? 굳이 내가 열심히 글 쓸 필요가 있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글쓰기의 재능은 단 한 가지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끝입니다. 예? 그럼 저 사람은 왜 잘 쓰고 나는 왜 못 쓰냐구요? 그거야 그 사람이 당신보다 더 많은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당신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겠죠. 억울하면 오 년간 더 쓰세요. 글에는 재능이 없습니다-물론 이건 프로 작가들 사이에 가면 말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저는 지금 취미로 글쓰는 사람(중에 조금 욕심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고 전제하고 쓰고 있어요. 어지간해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재능이 여실히 차이날만큼 유의미하게 작용하진 않습니다. 보이는 차이는 그저 써온 양과 읽어온 양의 차이일 뿐입니다. 각기 사람마다 쓰는 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쨌든 최소 몇 년은 썼다면 자신만의 색이 나오고 자신만의 길이 보입니다. 다만 오로지 한 가지 재능, '쓰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재능이 있다면 그 몇 년 간 더 많은 이야기를 쓰게 되겠죠. 그리고 더 많은 연습을 하게 되겠죠. 당연한 인과관계입니다.
많이 쓰세요. 즐겁게 쓰세요. 글 쓰는 게 재밌다면 당신은 제일 큰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글쓰기의 천재에요. 자신감을 가집시다.
2) 글쓰기의 목적이란?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니 안 읽으셔도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적이란 내가 재밌어서 글을 쓴다는 부분이 아니라, '글'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에 대해 물으신다면, 사람을 보는 글을 쓰셔야 합니다. 기왕이면 희망을 말하는 글을요.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저는 그 누구보다 배드엔딩의 글을 많이 쓰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희망을 희망으로 밝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절망을 말해도 희망을 반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담든간에 그것은 삶이 되고 사람이 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시고, 가장 쉬운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쓰면 존나 부끄러우니까) 무언가에 투사해서 쓸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당신이 투사한 당신의 그 부분을 회복시키고, 치유하고, 조금 더 자유하게 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단순히 재미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내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방금 쓴 이 문장 되게 영어 원서 번역체 같네요....)
3) 내가 잘 쓸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 생각할 시간에 하나 더 쓰라고 말하고 싶지만(정말 죄송합니다) 진지하게 받자면,
이야기는 자신을 알아봐주고 옮겨적어주는 사람에게 알아서 찾아옵니다. 이것은 정말입니다. 먼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시면, 당신을 찾아온 이야기가 그 다음부터는 당신의 손을 잡고 알아서 달려갑니다. 이건 참 즐거운 경험입니다. 이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이 그런 경험을 해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치며
긴 글을 읽으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정말 글을 잘 쓰고 싶으신 열망이 있으신 분이시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제일 중요한 팁은 지금까지 써 놓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으신 분들을 위한 진짜 노하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 글에 써져 있는 모든 팁을 철저히 잊고 그냥 존나 자기 맘대로 자기 페이스대로 글을 쓰자
2) 이 글에 있는 모든 팁을 적용시키려고 절대 애쓰지 말자
3) 많이 쓰자
입니다. 이 글에 있는 모든 규칙을, '외워야 하는' '해내야 하는' 규칙으로 여기지 마세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서론에서 저는 단 한 번도 작법 강의를 들은 적이 없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이 내용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요? 쓰다 보면 알아서 체득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본인이 체득하지 않으면 규칙은 의미가 없습니다.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자기 마음대로 쓰시길 바랍니다. 규칙을 외우지 마시고 모두 잊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재밌게 쓰는 하루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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