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다 못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행이었어.
있지. 나는 훌쩍 떠나고 싶어진 바람에 일상이 시시해졌어. 달고 짜고 심지어는 떫은가 싶은 순간조차 곧잘 와닿지 않아.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고 하루하루를 심심하게 보내. 그래, 맞아. 괴롭지. 어쩐지 전부 다 까마득해. 나는 반짝반짝 충만한 기분만 거머쥐고 그 외 나머지 꾀죄죄한 것들은 모른 체하고 살고 싶은데. 이게 참 생각만 쉽지 막상 실천하기엔 영 내키지가 않더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날 아주 여기저기 내어주고 또 매어놓고 시간 죽이길 좋아하는 바람에 모든 걸 훌훌 털고 일어날 기회가 잘 없어서. 시시하게 바쁜 와중이야.
그래도 너와의 행궁동은 말이야. 매 순간 찬란했던 감상과 이름 모를 수많은 향도 여전히, 사진에 묻어있어. 아직 지나가려면 멀었다는 양 매분 매초 질감이 만져지는 귀한 사흘이야. 웃음과 나태와 낭비의 산물이니 당연한 일일까. 정말 좋다 못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행이었어. 그도 그럴 게 우리 일정은 적당히 무모했고 운도 충분히 따라준데다 모든 것이 아니 뭐든 간에 상당했으니까. 발 내딛는 곳마다 예쁘지 않은 곳 없었지. 문 열자마자 환영받지 못한 때 없고. 알코올과 카페인도 정말 오직 즐기기 위해 마셨잖아. 과연 얼마 만에 허락된 여유였을까. 햇살이 따스했고, 바람이 시원했고, 네가 내 옆에 있었어.
고마워. 그냥 이 말이 하고 싶네. 괜히, 갑자기. 전시장 붙박이가 되어 작품 하나하나 뜯어보는 날 용인해 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여행의 목적이나 다름없던 곳에서 강렬한 실패의 맛을 봐버렸을 때 와본 데에 의의를 두자고 말해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가 하자는 일이라면 큰 고민 없이 함께 해주는 사람은, 내가 가자는 곳이라면 별생각 없이 따라 나와주는 사람은, 내가 먹고 마시고 사고 기념하는 모든 것에 말 얹지 않고 며칠씩이나 쭉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너뿐이지. 너밖에 없지. 애초에 네가 아니라면 떠날 엄두나 낼 수 있었을까?
J, 우리 사이에 좀 간지럽긴 해도 내가 이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니?
2024 / 02 / 13 / 16:37 찍음
2024 / 05 / 16 / 11:13 그림
2024 / 05 / 20 / 12:29 씀
2024 / 09 / 17 / 00:08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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