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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로, 2년 후 우리

커미션 4000자 / BL 2차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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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은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있나. 있는데 없어 보이는 걸까. 조로는 가만히 상디를 살폈다. 어인섬에서 한바탕 일어난 싸움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우리 선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티를 열었으며 제 연인은 뚝딱뚝딱 많은 수의 음식을 만들어냈다. 예전이랑 똑같다, 이런 건. 아무리 자세히 봐도 여자를 보며 더 넋이 빠져 있다는 점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저 뱅글뱅글한 눈썹도 그대로이고.. 아, 가르마가 바뀌었나. 수염도 더 난 것 같고.

 키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더 큰 거 같기는 한데 기분 탓인가.. 어인섬을 오기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면 꽤 실력도 늘어난 것 같고. 그런데 저렇게 헤픈 웃음 흘리면서 인어들에게 맛있는 음식 대접하는 걸 보면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가 또.. 느긋하게 입술 끝만 올려서 웃는 걸 보면 새삼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 헤벌쭉 웃는 것보다 나른하게 웃는 게 더 잘생겼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는 그렇게 웃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벙쪘었다. 그런 미소를 보고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러웠다. 이래서 그렇게 레스토랑에 여자들이 많았나. 이 자식 보려고 온 여자들이었나. 가끔 사내새끼들도 힐끔거리고 쳐다보는 것 같던데. 그가 일하던 레스토랑에는 짧게 머물렀지만 저는 주위를 읽고 생각하고 경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바글바글했던 손님들이 전부 어떤 시선으로 그를 훔쳐보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인기 많네,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뭘 그렇게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남의 남자를..

 그때는 아니었으니까 됐다, 하고 넘어가기에는 영 마음에 걸렸다. 저거 평생 해적 시켜서 레스토랑에서 일 못하게 만들어야지. 저렇게 입을 벌리고 히죽히죽 웃는 거는 괜찮은데.. 슬그머니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옷을 벗기고 보면 은근히 근육이 단단하게 잡힌 허리 아래로 뚫어져라. 이렇게 보니까 다리가 더 두꺼워진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허벅지가.

 솔직히 이렇게 자세히 뜯어볼 기회는 없었다. 2년 전 저는 한심하게도 거의 죽기 직전의 수준이었고, 그가 동요하면서 마음을 뱉어내지 않았더라면 서로를 어떻게 불렀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냥 동료 정도 됐겠지. 고백을 받기 전에는 그를 똑바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렇게 훑어보는 건 제 마음이 들킬까봐 걱정이 들었다. 뭐든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게 생각하려 하는 내가 그런 생각도 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저 남자는.

 어쨌거나 서로 마음을 확인한 상태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찢어지고 말았다. 저는 참 그가 그리웠는데, 그도 제가 그리웠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자신은 없었다. 정확하게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너무 바빴고 모든 것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말 한 마디 진지하게 붙여볼 틈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걸 묻고 싶었다. 너 그때 고백한 거, 아직도 유효하냐? 우리 사귀는 거 맞냐?

 상디가 내미는 음료를 받아서 한 모금 마신 나미는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티를 내는 정도가 아니네.. 하고 중얼거리니까 옆에 있던 로빈은 쿡쿡 웃으면서 그러게. 하고 대답을 했다. 애써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저쪽으로는 시선을 주지도 않는 남자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상디, 이만 가보는 게 어때?”

 “네? 나미씨?”

 “조로가 너를 눈으로 핥아 먹고 있잖아.”

 “..아.”

 상디는 눈썹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웃고 있던 게 다 거짓이었던 것처럼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약간 난감하다는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멀리 있는 조로는 그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생각했다. 눈썹 찡그리는 거 보니까 좀 귀엽네.

 쟁반을 제자리에 두고, 주변에 신난 어인들 사이를 넘어서 다가온 그는 저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약간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심장이 울컥 목 위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쿵쾅쿵쾅 거려서 옷을 입지 않은 피부 위로 그 모습이 보일까봐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뭐야.”

 “뭐.”

 “왜 이렇게 쳐다보냐고 묻잖아.”

 “내가 언제 쳐다봤다고 그래.”

 “지금 쳐다보고 있잖아!”

 제 앞에 서 있는 이는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가라앉혔다. 누가 쳐다볼까봐 걱정이 됐는지, 주변을 힐끔거리면서 살피더니 허리를 숙여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가까이 다가오니까 향수 냄새가 났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고 언제 저렇게 몸을 단정하게 했을까. 넥타이핀으로 고정된 넥타이는 그의 가슴근육을 따라 살짝 구겨져 있었고, 단추가 하나만 잠긴 자켓 안쪽 와이셔츠는 핏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맞았다.

 중얼거리면서 말을 하는데 술 냄새도 나지 않고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도 예쁘게 생겼다. 2년 동안 달라진 건 더 예쁘고 잘생겨진 얼굴.. 그런 건가.

 “야.”

 “.....”

 “마리모, 듣고 있냐?”

 “어?”

 “어디 아픈 거면 쵸파한테 가보라고. 미련하게 참지 말고.”

 속닥거리는 목소리에는 걱정이 스며있었다. 아마도 2년 전, 그가 혼자 발견했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겠지. 그건 참 몹쓸 짓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역시.. 믿고 맡길 수 있는 게 너 하나뿐이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가만히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참 그리웠다. 갑자기 헤어지게 되고 나서 루피의 연락을 받은 다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네 생사여부였다. 어쨌거나 죽을 놈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면 된 거다. 믿고 있었다. 그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숨을 쉬면서 살아있을 거라고. 반드시.

 힘든 건 그리움이었다. 혼자 좋아하던 시절에도 매일 붙어 있었으니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을, 서로의 마음이 같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 느끼게 되니까 거의 죽을 것 같은 지경이었다. 말은 못하겠지만 눈물도 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별을 봤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야.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게 꼭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아서 울었다고 하면 너는 나를 비웃을까.

 입술 끝에 손날을 가져다 대고 속닥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멱살을 잡았다. 무, 뭐.. 하고 당황하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저는 그를 질질 끌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아, 솔직히 이대로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혹시라도 싸움이 날까봐 걱정을 했는지, 저쪽에서 계속 지켜보던 우솝이 히익..! 하고 놀라는 소리를 내서 정신을 번쩍 차렸다. 적어도 여기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질질 끌고 가는데, 그는 뭐야, 뭔데, 왜 이래 하고 말을 하면서 저를 잘 따라왔다.

 쳐내려면 쉽게 쳐낼 수 있는 힘이었다. 휘청거리면서도 잘 따라오는 걸 보면 본인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거까지 신경 써서 생각해줄 겨를은 없었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면 되고 일단은 입을 한 번 맞춰야겠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곳에 와서 잡았던 그의 멱살을 놔주었다. 오는 동안 찬바람이 불었는데 손으로는 그의 온기를 느끼면서 걸어오다 보니 우습게도 머리가 조금 식은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제 연인은, 아니 일단.. 마음이 같다고 2년 전에 고백을 했던 남자는 제 손에 꽉 잡혀서 우글우글하게 구겨진 옷을 탁탁 털어 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망설이는지 시선을 옆으로 피하면서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이런 게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가 너무 귀여워보였다. 솔직히 어인섬에 내려오면서도 할 수만 있다면 동료들의 눈을 피해 방으로 가고 싶었다. 당연히 그를 끌고. 정신없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으나 상황은 제가 좋은 쪽으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우리 선장은 또 사고를 쳤고, 결국 우리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야 했고, 어인섬으로 들어가자마자 사고가 터지고..

 막상 둘만 남아 있는 상황이 되니까 할 말이 없어졌다. 뭐, 술 더 없냐? 하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게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아까 그거 말 한 번 꺼내볼까. 우리 사이 유효한 거 맞지? 그런데 그렇게 물어서 아니라고 대답하면 어떡하지.

 그러게, 아니라고 대답하는 순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너무 정신없고 놀라서 그렇게 말을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아닌 것 같더라 미안하다 하는 말을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지어줘야 하지. 어, 새끼야 나도. 이래야 하나. 아니면 그런 고리타분한 옛날 일을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었냐고 해야 하나. 어떡하지.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에 일단 달싹거리는 그의 입술을 제 손으로 막았다. 그러자 뱅글뱅글 말린 눈썹을 꿈틀거린 그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다. 아, 기다려봐. 생각 좀 하게.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해야 하지. 하.. 모르겠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면 뺨이라도 한 대 갈겨야지. 그래도 지금까지 동료로 지내온 정을 생각해서 살짝 때려준다.

 손을 내리고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옮겼다. 마주볼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시선을 피한 걸 알면 비웃겠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마주볼 자신이 없는 걸.

 “야, 마리모. 어디 보고 있냐?”

 “시끄러워, 뱅글 눈썹.”

 “여기.. 하. 됐다. 그냥 대답이나 잘 해줘라.”

 무슨 대답?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힐끔 바라 보니 뭐 마려운 개처럼 낑낑거리고 있기는 한데 저 달싹거리는 입술 사이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조금 두려워서 닦달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꾸만 철썩대면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정말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아까부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대는 게 자꾸 신경 쓰였다.

 상디는 마르는 입술을 혀끝으로 살짝 핥으면서 제게서 시선을 피하는 조로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또한 마주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아, 연인이라는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끝이 났구나. 우리가 다질 수 있었던 시간은 2년 전이어야 했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잡아먹는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기회도 그 중 하나였을까. 결국 시간에 잡아먹히고 말아버릴 그런 것이었을까.

 그러나 입술을 깨물었다가 핥았다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잘.. 지냈냐?”

 “뭐?”

 “나 안 보고 싶었냐고..”

 멍하니 벌어지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는 말을 하고도 민망했는지 귀가 새빨개진 상태로 젠장.. 하고 중얼거리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이거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모르겠다. 저는 이런 거 깊게 생각 못하니까 하지 않기로 했다. 우물우물하던 입술 끝이 씨익 올라가고 이가 환하게 드러나도록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안 보고 싶었겠냐?”

 허.. 참나. 하고 중얼거린 그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나른하게 미소를 지었다. 눈웃음을 슬쩍 치는 것 같은 저 미소. 은근히 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면서도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그 미소. 그래, 어디 가서 그렇게 잘생기게 웃지 말라고 정말 재수 없고 나만 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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