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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젠유하, 당신은 언제나 해바라기처럼

커미션 12000자 / BL 2차 / 퀸시 승리 au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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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마치.. 우라하라는 순간적으로 찡그리려는 인상을 바로 폈다. 묘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부터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서 표정관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나 하는 일이다. 나이가 찰만큼 찬 지금은 쉽게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일에 능해졌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농락을 당하는 기분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젠은 유하바하의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저는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시선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문으로 향했다. 얼마나 반질반질하게 닦아놨는지 앞에 있는 이의 모습이 다 비추는 거울 같았다.

 커다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쓸어내리면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팔락팔락 빠져나가는데 간지럽다는 시늉도 안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개를 돌리며 피했는데 지금은 굵은 손가락이 본인의 볼을 지나 눈썹과 이마를 만지작거리는데도 가만히 있는다.

 사실 거기까지는 상관이 없었다. 피곤한가보지 하고 생각하며 넘길 수도 있었다. 거슬리는 것은 그의 입술 끝이 조금은 말려 올라가 있다는 점이었다. 제게는 늘 보여주는 얼굴이었다. 어쩌다가 시선만 스쳐도 그는 웃었다. 저는 자주 봤지만 아마 유하바하는 처음이지 않을까.

 그런 예상에 확신을 더하는 것처럼 몸이 굳은 게 확실하게 눈에 보였다. 반질반질 잘 닦인 문을 보다가 앉아있는 유하바하에게로 힐끔 시선을 던졌다. 늘 유연하고 아이젠을 인형처럼 이리저리 잘도 만져대던 손가락은 뻣뻣해져서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 모양이지. 빈정거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혀 밑으로 고이는 타액과 함께 삼키고 숨을 길게 뱉어냈다. 그들은 제가 무슨 행동을 하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유하바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이젠의 반응이 약간 충격이었다. 바람에 옷자락만 휘날려도 관심을 가지는 이가 이렇게 갑자기?

 아니, 생각해보면 갑자기는 아니다. 최근 들어서 그는 저를 피하는 눈치를 보였다. 손을 잡거나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밀면 눈에 보일 정도로 거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마구 흔들리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재미없게.

 단정한 갈색 뒤통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두툼한 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제 팔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더 이상 기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약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이 다행이었다.

 그게 다행인가? 아이젠의 시선이 제게 닿지 않는다는 뜻인데?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찡그린 미간 주름을 곱게 폈다. 아주 찰나였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다른 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알아챌 수 있는 두 명은 제 앞에서 조잘거리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유하바하가 아이젠에게 끊임없이 속닥거렸다. 작은 목소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게 잘 들리기만 했어도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까. 귓가에 속닥거리니까 그것을 들은 아이젠의 미소는 약간 더 깊어졌다. 허, 하고 헛숨이 혀 아래로 차올랐다. 저런 얼굴은 제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좀처럼 가지고 있는 것을 겉으로 내보이기를 꺼리는 저였다. 굳이 숨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제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남과 나눠가지는 것을 싫어했다. 게다가 지금은 저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던 사신들이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뭐하러 마음을 써서 제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눈다는 것인가. 제가 버린 것도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도 아닌데 공유를 해야 한다는 것은 기분이 나쁜 일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딱 그랬다. 아이젠의 입술 끝이 약간 말려 올라간 미소는 언제나 제 것이었다. 제게만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소가 완전하지 못하고 바르르 떨리다가 무너지는 일은 있어도 한 번도 그 얼굴을 남에게 보이거나 제게 보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이라고 봐야 하는 거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속부터 꼬여드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데 그걸 입밖으로 내어 표현을 하기에는 약간 복잡하고.

 단순히 그가 유하바하를 향해 웃어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저건 저를 향한 것이었는데 감히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는..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명치 밑바닥부터 꼬이기 시작하는 심기가 제대로 뒤틀리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젠은 또각거리는 발소리를 냈다. 저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유하바하를 내려다보고 뒤에 서 있는 저를 한 번 바라본 다음 밖으로 향했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폐하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멀어지는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붙었다. 문이 열리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름 모를 퀸시 몇 명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를 막는 이는 없었다. 그건 곧 유하바하가 지금 제가 아이젠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쓸데없는 말로 저를 붙잡았을 텐데. 오늘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서 그런가. 자신감이 꽤 붙었군.

 손을 휘적이자 천장까지 닿았던 문이 스르륵 닫혔다. 쿵 하는 소리와 동시에 히죽 웃었다. 어차피 그래봤자인 것을.


 천천히 걸어가는 제 발소리를 들었는지 앞서가던 이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내 아래를 바라보고 걸었는지 돌아서는 몸짓이 삐뚤어져 있었다. 불안하게 느낄 필요는 없었다. 저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은 여전했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고 여전히 흔들렸으며 여전히 그 안에서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었다. 저것은 제게 지독할 정도로 보내오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본인을 한 번만 봐달라는 신호. 어쩌겠는가. 사랑에 빠지면 다 그렇다는데.

 우라하라는 아까 유하바하가 했던 것처럼 손을 뻗었다.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손가락으로 차분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꾸욱 다물렸다. 마치 뱉으면 안 될 이야기가 혀끝에 걸려있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저는 희게 힘주어 다물린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가볍게 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째가 되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기껏 날린 뽀뽀가 허공에서 멈췄다. 뭐, 상관 없었다. 가끔은 이렇게 앙탈을 부리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지.

 언제나 그에 대한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했다.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 영압을 보면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제 앞에서만 보이는 망설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젠 소스케를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저는 괜찮다는 의미로 다시 입술을 내렸다. 그의 입술 옆을 꾸욱 짓누르고 아래로 내려가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가슴에 손을 얹으면 화들짝 놀라서 몸을 뒤로 물릴 것이 분명했다.

 그건 싫으니까..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가 고개를 들었다 코끝에서 맑은 새벽공기 같은 영압의 향이 맴돌았다. 뿌듯한 마음에 팔을 뻗어 그를 품에 한가득 안았다. 맞닿은 가슴이 터질 정도로 뛰고 있었다. 이러다가 심장만 밖으로 튀어 나오면 어떡하려고요.

 분명 장난스럽게 말을 걸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보다 빠르게 제 손목을 감싸 치워내는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잔잔하게 일렁거리면서 손톱 옆에 일어난 거스러미처럼 불편하던 감정이 일순간 머리 끝을 치받았다. 저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결국 와락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는 그의 눈동자는 끝까지 덤덤했다. 그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게 아니었다. 있었으나 제법 잘 숨겼다. 얼핏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뒤에서 누군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제 어깨너머로 시선을 던지지 않았어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유하바하의 존재감은 컸다.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약간 숙이는 모습을 보다가 불쾌한 감정을 얼굴 위에서 걷어냈다.

 자세히 보니 생각에 잠긴 게 아니라 무언가 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는 표정이었다. 다물렸다가 달싹거리기를 반복하던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너는..”

 “.....”

 “끝까지 나를 조롱하는군..”


 아마도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는 유하바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가까이 서 있는 제가 아주 깊게 귀를 기울여야 할 정도로 작았다. 제 귀에만 겨우 들어오도록 낸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는 것을 보면 아직 그런 배려를 할 만큼은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아이젠은 잡고 있던 우라하라의 손을 뿌리치고 걸어가는 유하바하의 뒤를 따랐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손가락 끝으로 남은 온기를 가늠하는 것처럼 잡혔던 손목을 살짝 잡았다. 어찌저찌 균형을 잘 잡아가는 것 같던 속이 훌렁 뒤집혔다. 어딘지 모를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에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다. 어쨌거나 아이젠은 저를 사랑하고 있고 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신이니까. 원래 사랑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거부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것.

 그는 언제나 기본에 충실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니, 내심 그것을 잘 지켰다. 그어진 선이라고 밟지 않았고 놓여진 길이라고 똑바로 걸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속에 병이 안 생길리가 없었다.

 아닌 척하면서 정석을 지키는 사신이 사랑을 삐뚤어지게 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제가 생각해도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고개를 기울이게 되는 일에도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 행동을 감쌌다. 그리고 그 영역을 점점 더 키워갔다. 제게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었다. 사랑을 달라고 갈구하지도 않고 질질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가진 것을 품었고 숨을 죽였다. 가끔 드러나는 부분은 아무리 누르고 눌러도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물방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저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고작 조롱한다는 말을 듣거나 손목을 뿌리친다고 해서 꺼지는 불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울렁거리는 이 기분은 뭐지.

 쥐고 있던 유리컵이 사정없이 깨졌다. 챙강챙강 떨어져 나가는 조각이 제 손바닥에 박히고 흉이 남도록 만들었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팔꿈치까지 저릿하게 통증이 퍼졌다. 피가 뚝뚝 떨어져 하얀 연구실 바닥을 적셨지만 인상을 찌푸렸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저는 늘 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저를 바라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해가 뜨면 해바라기가 고개를 드는 것처럼 말이다. 매번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던 일이 자꾸만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면 그것은 다른 쪽에 고통을 주어서라도 더 깊게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맞다.

 유리컵에 담겨있던 액체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아주 위험한 약물은 아니었지만 겉피부를 녹일 정도는 됐다. 따끔거리고 아팠지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거 약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쇠붙이가 부식되는 것처럼 녹아 떨어지는 살덩이를 보다가 대충 손을 털었다.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 근육 일부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넘어갔다가는 오래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회도로 고칠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늦지 않게 욕실로 들어갔다. 일단은 보이는대로 차가운 물을 틀고 그 안에 손을 넣었다. 저릿한 감각에 정수리까지 흠씬 떨리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동시에 울렁거리던 속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거의 지옥 밑바닥으로 빠졌다고 표현해도 될까.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이 차분해지고 통증이 스치고 간 머릿속이 비워지자 자연스럽게 오늘 보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유하바하의 무릎에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젠.

 …

 차가운 물을 맞고 있는 손바닥을 뒤집었다. 피와 섞인 물이 줄줄 떨어졌다. 하얀 세면대를 적시고 몇 방울씩 주변으로 탁탁 튀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분명 차분했다. 지금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숨이 모자란 미꾸라지 같은게 제 명치 근처에서 마구 흔들렸다.

 주먹을 쥐고 세게 내리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주먹을 꽉 쥐었지만 굽혀진 제 손가락에 맞고 튕긴 물줄기가 얼굴을 순식간에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야 하는 건 자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 상태로 그를 찾아간다면 충분히 쓰다듬을 받고 걱정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틈을 노려서 잉잉 울면서 너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의 무릎에 누워서 토닥여주는 손길을 느끼다가 은근슬쩍 손목에 키스하면서 침대로 넘어가는 그런 여유는 필요없다. 그럼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이 뭐지?

 그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얼굴을 봐야할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제 눈앞에 두고 손을 뻗어서 만질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구별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상태여야 했다. 그러려면 중요한 것은..

 신경질적으로 물이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닫았다. 괜한 오기를 부려서 치료하는 일에 시간을 쏟아버리게 생겼군. 왼손으로 이마를 벅벅 긁으면서 너덜너덜해진 오른손을 들고 대충 보이는 붕대를 잡아 끌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야 하는 일은 전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적힌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글자는 머릿속에 들어오자마자 사라졌고 결국 잡고 있던 종이를 바닥에 철퍽 내팽개쳤다.

 어느 정도 회도로 고쳐놓기는 했지만 바로 완벽하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과 휴식이 필요했다. 저는 몸을 뒤로 벌러덩 누웠다. 멍하니 방에 켜진 조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유하바하는 늘 제 앞에서 아이젠의 귓가에 속닥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봤자 제게만 향할 눈빛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 가득 담아 그를 쳐다보았고 이건 짐작이지만 언젠가부터 그를 압박하거나 억지로 관계를 맺는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제게 닫힌 문 앞에 서있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들리던 고통섞인 신음이 제법 간드러지는 것이 꼭 저랑..

 우라하라는 한쪽 눈썹을 약간 들어올렸다. 그래, 그건 제게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간 웃음, 손길을 피하지 않는 행동, 그리고 울먹거리는 그 소리. 오른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손목이 꺾이면서 너덜해진 손에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것보다는 이 거슬리는 생각을 뜯어내는 것이 먼저였다.

 이유가 뭐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것 같은데 알면 안 될 것도 같았다. 그저 치밀어 오르는 건 짜증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뭘까. 울렁거리는 게 꼭 멀미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외에는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최근 유하바하와 아이젠의 행동을 곱씹을수록 약간의 초조함이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다. 참지 못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어지러웠던 머리가 순식간에 앞으로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우습게도 몸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아직 손이 다 안 나아서 그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릴 수도 있지만 어쩐지 점점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닫힌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힘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문을 여는데 손잡이가 약간 휘어지는 게 느껴졌다.

 발로 차거나 문을 부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화가 나지 않기도 했고 그렇게 화를 내서 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만져지는 피부는 차가운데 속은 절절 끓었다. 불이 난 것처럼 정수리가 지글거렸다.

 그 정도 되니까 지금 빨리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주 놀랍게도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차분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지나가던 퀸시들이 꾸벅거리면서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제 기분이 영압으로 그렇게 티가 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제 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소용돌이를 치고 있는데, 모든 것이 다 뒤바뀌고 말 것 같은 바람이 자꾸만 휘몰아치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니.

 이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데. 하지만 이것은 그 어느 일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확실하게 뒤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딘가 꼬여있다. 이것을 풀어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느 부분이 꼬였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수로 풀어내겠다는 것인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은 팔팔 끓었다. 이 상황에 대한 짧은 가닥 하나도 찾지 못한 채 저는 눈앞에 보이는 방문을 확 밀어 열었다.

 노크 한 번 없이 무례한 방식으로 들어갔음에도 방의 주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젠은 가만히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라하라가 들어올 때마다 보이던 반응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들썩거리는 멀미 같았던 것이 점점 심해졌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정한 옆모습에서는 평화로움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 기분. 주먹을 꾸욱 쥐었다가 폈다.

 가까이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다시 다물고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처럼 와서 애걸복걸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 남자에게 그럴 이유는 없다. 당연히 제 것이니까.

 아, 그리고 그 순간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았다. 불안. 이것은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명치 가운데에서 넘실거리는 물이 바닥으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당연한 지금, 저는 늘 안정감을 느끼고 살았다.

 그런데 그것이 밑바닥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부터였지. 이 불안감은 언제부터 싹이 튼 거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입술이 열리는 것이 더 빨랐다. 달싹거리다가 겨우 한 마디 뱉어냈을 때 그 목소리는 제 심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덤덤하고 느릿하고 능글맞았다.


 “이제는.. 제가 싫어졌어요?”


 고개를 들었다. 바닥을 보고 있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분명하게 제 시선을 피했다. 울컥 하고 무언가 올라왔는데 어찌나 뜨끈뜨끈한지 목이 아리고 눈 주위가 시릴 정도였다. 혀끝으로 밀어내고 또 밀어내서 올라온 것을 삼키고 다시 한 번 더 후우.. 하고 숨을 뱉었다.

 아마 그가 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면,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생각을 했다면, 아니, 평소와 같이 저를 사랑했다면 당연히 그 숨소리가 약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허한 눈동자는 천천히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질끈 감은 눈 때문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되었다.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고 지금 이 상황을 당황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이건 아니었다. 확실한 대답이 필요했고, 그것이 정확하게 그의 입술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대답이 필요한 것인지.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눈길만 스쳐도 그가 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안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닿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문제될 건 없다.

 당연히 그도 알겠지. 저 또한 그를 사랑했다. 가슴 절절하게 무너져 내리면서까지 애를 태우는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 그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말을 했다면 기꺼이 연기를 해줄 수도 있었는데. 저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눈을 질끈 감고 제 시선을 피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싹을 튼 불안이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조금 더 다른 반응을 보여줘야만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데.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덜덜 떨리려는 턱에 힘을 주고 목 언저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울음을 꾸욱 누르는 것처럼 혀밑에 고이는 타액을 삼켰다. 자꾸 신물이 올라왔다. 이건 아닌데.. 이게 아니었는데.


 “정말로 저 안 볼 거예요?”


 제가 뱉은 말이 귀에 명확하게 꽂혔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건 정말 아니었다. 감긴 그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방향도 제가 있는 쪽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잘근잘근 아랫입술을 씹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애써 눌러 참았던 것이 다시금 올라왔다. 울음이었다.

 순식간에 흐려지는 시야.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빠르게 차오르는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그의 다리에 턱을 올려놓기 전에 손을 먼저 올릴 것을. 그랬다면 제 눈물을 받아서 보이지 않는 곳에 털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눈물은 손으로 주워 담을 수 없을 만큼 넘쳐흘렀다. 애써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저를 외면하고 있던 이는 감았던 그 순간만큼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드디어 제게 닿은 시선.

 눈동자 안에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을 하면서도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저를 외면하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엉켜드는 감정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머릿속에서 뜨겁게 달궈진 쇳줄이 녹아버리는 것처럼 엉켜들었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했으니까 아직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는데. 원망스러운 마음이 더 컸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불안감이 차올랐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던 것일까?

 울음은 더욱 커졌다. 훌쩍거리며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질끈 감아보아도 떨어지는 눈물의 속도가 줄어들기는 커녕 더 세차게 몰아쳤다.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이럴 때 말을 하면 참 형편없는 목소리가 나와서 듣기 싫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저는 젖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 진짜 소스케씨 좋아해요..”


 어물어물 뭉개진 말을 뱉어냈다.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저에 대한 안타까움을 읽지 못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분명히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러워졌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깨를 떨었다. 울음소리를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보아도 소용없었다. 훌쩍거리고 있는 제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아니,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그는 차갑게 말을 뱉었다.


 “웃기는군, 우라하라. 뒤늦게 잠자리를 함께 할 누군가라도 찾나보지?”

 “.....”

 “아무나 붙잡지 그래. 여기서는 그 잘난 얼굴도 통하지 않나?”


 물론 그 말투에서 느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가 다른 누군가를 붙잡아 침대로 끌고 간다면 정말로 상처를 받을 테니까 꿈도 꾸지 말라고 속닥거리는 미련함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고 조금 더 명확하게, 누가 들어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헷갈리지 않도록, 제가 불안에 휩쓸려 흔들리지 않도록 저를 단단하게 잡아줄 말이 필요했다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하고 물어보면 정말로 안 될 것 같아서 저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니 익숙하고 단정한 향기가 났다.

 언제나 맡았던 그 향이었다. 부르면 언제나 곁으로 가까이 오던 향. 가끔 귀찮고 지겨워서 밀어내기도 했던 그 향. 숲 속 맑은 호수 위에 톡 떨어진 나뭇잎이 그려내는 일정한 파동. 그의 호수에 떨어질 수 있는 나뭇잎은 오로지 저 하나뿐이었다.

 말했지만 저는 제 것을 남과 나눠가지는 취미는 없었다. 제 것은 오로지 제 것이었다. 그는, 아이젠 소스케는 제가 알던 그 순간부터 오로지 저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우라하라는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계속 멈추지 않는 울음에 금방 무너져버릴 정도로 찰나에 지은 표정이었다. 알고 있는 그 단정한 향기 위로 무언가 거슬리는게 자꾸만 끼어들었다.

 분명 소울 소사이어티에서 살았을 때는 없었던 것. 그가 사신들을 배신하면서 웨코문도로 향하고 나서는 가끔 호로의 향이 섞여들었다. 뭐, 그건 나쁘지 않았다. 색다른 느낌? 그는 그것을 냄새라고 생각하고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 애썼다.

 그런 노력이 보이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오히려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섞여드는 향은, 아니, 냄새는 자꾸만 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유하바하의 영압이 느껴졌다. 아주 약하고 가늘어서 저처럼 예민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절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양이었지만 확실하게 났다. 유하바하의 냄새. 제가 아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분명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제 영압도 느꼈을 텐데.

 호로 냄새는 그렇게 지우려고 애썼으면서 유하바하의 냄새는 그대로 놔둔다. 그래도 전에는 지우려는 노력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그래도 되는 건가? 그렇게 행동해도 상관 없는 사신이 되어 버린 걸까?

 더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만큼 강한 서러움이 차올랐다. 제가 울고 있으면 저를 안고 토닥이다가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사신이 저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아니, 마음에 있는 것일까? 이제는 저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냄새를 지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 계산 속에 전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저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랑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니. 그런 것은 계획에 없었다. 어떡하지. 계획에 없다고 해서 당황하는 사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모든 생각을 정리해 그 다음을 찾는 게 저였다.

 하지만 이건.. 이건, 이럴 수가 있는 일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펄펄 끓고 있는 머리는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다. 분명 무언가 생각을 하려고 하면 그 뒤를 이어 줄줄 떠올라야 하는데 자꾸만 버벅거리고 멈칫하고 끝내 사라져버렸다.

 이런 일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만약 정말로 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심장은 계속 쿵쿵 가라앉는데 머릿속은 멍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신이 된 것 같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꾸욱 잡았다. 이제는 제 손에 감긴 붕대도 봤을텐데 반응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당신이 어떻게 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꾸역꾸역 차오르는 말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콧물에 코가 막히고 눈 주변이 짓물리는 게 느껴졌다. 손등으로 벅벅 닦았다. 대충 감은 붕대가 젖어서 손등과 손가락이 따가웠지만 그보다는 서러움이 더 컸다.

 그가 헛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정말이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저의 모든 것들이.. 언제부터 이 남자가 저의 모든 것이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야 했다. 그냥 당연한 거잖아. 해가 저물고 떠오르는 일처럼 자연스럽고 이상하지 않은 것.

 어깨가 움찔 떨렸다. 잠시 굳었던 몸이 느슨하게 풀리면서 뱃속에서 뭉친 서러움이 타고 올라왔다. 저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시야가 일렁거렸다.

 당연히 저를 바라보고 있는 이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실이 얼마나 서러운지 꺼억꺼억 목 뒤로 숨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당신은, 당신은 언제나.. 언제나 절 사랑해야 하는 거잖아요.”

 “.....”

 “..언제나.. 언제나 저를..”


 헐떡거리며 숨을 뱉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잖아. 당연히 제 거여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데.

 유하바하 앞에서 종종 보이는 그 미소. 그거 제 거잖아요. 감히 다른 이들 앞에서 보여주는 그런 거 아니었잖아요. 오로지 저만을 위한 그런 거였는데. 이, 이 냄새도 지금 저를 위해 준비한 게 아니잖아요. 왜 저를 위하지 않아요?


 “정말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

 “왜요? 당신은.. 당신은 당연히 내껀데, 당연히.. 저를 사랑해야 하는데.”


 훌쩍훌쩍거리면서 뱉은 말이 툭툭 끊어졌다. 서러움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끓어오르는 머리에서 자꾸만 그의 미소가 반복되었다. 본인을 끝까지 조롱한다는 그 말.

 그런 적 없는데. 제가 언제 당신을 조롱했어요? 저는 늘 진심이었다. 충분히 사랑을 보였잖아요. 그걸 알아보는 건 당신의 몫이 아니었나요.

 말 그대로 엉엉 울었다. 아직까지도 제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이 너무 괴로웠다. 이제 우는 제가 불쌍해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도 가슴이 아프지 않은 거지. 그럴 수는 없었다. 안 된다. 그런데 안 된다고 하면 뭐라도 해결이 되는 건가?

 냉정하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명치까지 아파왔다. 눈썹이 일그러지도록 인상을 썼다가 다시 꺼억꺼억 넘어가는 숨을 어쩌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다가.. 그러다가 문득 제가 그의 바지를 꽤 세게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걸 놓쳐버린다면 마치 어디로 떠나기라도 하는 사신을 붙잡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 정도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목이 너무 아팠다. 눈 주변도 따가웠고 아직 힘을 주면 안 되는 손으로 강하게 쥐어서 그런지 붕대에 피가 맺혀있다 못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내 한숨이 들리고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다시 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유하바하의 냄새가 거슬렸다. 한 번 신경을 쓰고 나니까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대로 피해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너무 울어서 어지러웠고 괴로웠고 목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가슴도 아팠다.

 그런 저의 뒷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손길은 마치 신의 것과도 같았다. 얼른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고 이번에는 무릎에 제법 닦인 눈물 탓인지 그의 얼굴이 꽤 잘 보였다.

 그는 잔잔하게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눈썹이 약간 올라가 있고 눈동자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사랑인지 동정인지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은 서러움에 물들어 있었다. 쉽지 않았다.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동정이라면 제게 남은 길은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좋지. 저를 버린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제 너 같은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저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제가 고개를 들자 그는 머뭇거리면서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가까이 손을 대려다가 멈칫거렸다.

 안 된다. 내내 어지럽고 덥기만 하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지금 이것을 잡아야 한다. 어정쩡하게 펴진 손바닥 위로 볼을 올렸다. 그리고 푸욱 기댔다. 그는 잠시 손을 내리는 것처럼 굴다가 단단하게 제 얼굴을 지탱해주었다.

 정확한 대답을 원한다고 안절부절했지만 그래도 오래된 습관은 버릴 수 없는 법이었다. 이런 식의 행동 하나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서러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이거 봐. 아직도 저를 사랑하면서 왜 가슴 졸이게 만들어요. 얼른 저밖에 없다고, 당신이 보는 건 오로지 저 하나뿐이라고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의 손바닥으로 눈물이 차고 넘쳤다. 저는 눈을 감으면서 젖어있는 손바닥 위로 얼굴을 문질문질거렸다. 움찔거리는 손가락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손등을 감싸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물론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자꾸만 헛숨을 들이키고 울음 때문에 흐으.. 하고 우는 소리도 새어나가고 어깨가 들썩거려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안정을 찾을 때까지 그의 손을 붙잡고 있을 생각이었다.


 “저 진짜.. 소스케씨 좋아해요. 어디 가지 말아요.. 제발.”


 애원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 없었다. 다만 저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그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을 느꼈다.

 붕대 감은 손등으로 마구 문질렀던 부분이었다. 붉게 달아올랐을 부분을 차마 세게 문지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눈물만 훔쳐 달아나는 손길이 아쉬웠다. 감은 눈꺼풀 밖으로 줄줄 흘러나오는 눈물을 다시 손등으로 문지르려고 하자 그는 오래 다물었던 입술을 달싹거리며 작게 말했다. 이러다 눈이 다 붓겠군.

 어쩐지 너무 오랫동안 들은 적이 없는 목소리 같았다. 그래도 결국은 제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말투로 느껴졌다. 언제 힘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근육에서 긴장이 풀렸다. 저는 더듬더듬 팔을 뻗어서 그의 허리를 안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입술을 달싹여봐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우라하라는 평소와 다르게 금방 포기했다. 그리고 아이젠의 품에 푹 안겨들었다. 부족한 무언가를 찾는 사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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