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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켄+우라젠, 애인 대결

커미션 7000자 / BL 2차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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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주변 공기가 사나웠다. 그럴 수밖에. 이 공터를 지나가야 하는 대원들은 다가오다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돌렸다. 우라하라는 팔짱을 끼고 앞에 서 있는 두 사신을 바라보았다. 아이젠은 대답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자라키는 인상을 쓰면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싸움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걸.”

 “질 것 같나?”

 “마음대로 생각하시게.”


 흥 하고 콧방귀를 낀 제 연인은 제게 눈짓을 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는 뜻이었다. 그야, 제가 이야기를 다 끝낼 때까지 입니다.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니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아이 참 냉정도 하셔라. 그런 모습까지 귀여워 보이지만.

 소울 소사이어티의 공기는 맑았다. 현세는 비가 와서 날씨가 축축하고 추웠지만 여기는 먹구름 하나 끼지 않은 상태였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조곤조곤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날씨 참 좋지 않아요? 이런 날에는 집에만 있기 아쉽잖아요. 방금 전까지 이불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말은 잘 하는군. 그건 아이젠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느긋하기는 하셔도 늘어지지는 않으시는 분이.. 왜요, 어제 힘들었어요? 시끄러워.

 인상을 구기며 짜증을 내는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총대장인 쿄라쿠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잘 봐줘도 가석방된 죄인에 불과했다. 원래는 지정된 장소에서 한 걸음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제가 만든 물건을 잘 착용하고 있겠다는 약속 덕분에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는 걸려있는 목걸이를 빼내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보석을 달아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일단 기술개발국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총대장을 만나기 전에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1번대를 들어설 수도 없다고. 그러니 일단은 12번대에 가서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해봐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가는 도중에 그들을 만난 것이다. 쿠로츠치는 제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구겼는데, 그때 슬쩍 자라키의 손을 놓는 것을 보고 말았다. 아니, 왜요? 두 분 잘 어울리시는데. 저는 키득거리면서 제 연인의 손을 더욱 꽉 잡았는데 그는 유치하군.. 하고 중얼거리면서 내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기는 공식 천계문에서 12번대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길에 있는 공터로, 평소 다른 사신들의 이동이 많은 곳이다. 이 가운데에 대장 두 명과 전 대장 두 명이 서 있으니 다들 공기와 분위기와 영압에 짓눌려서 슬슬 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저는 자리를 옮기자고 할 생각이 없었고, 그것은 저와 조금 떨어져서 옆에 서 있는 쿠로츠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흥, 여전하군, 우라하라 키스케.

 ‘네?’ 

 ‘그 독특한 취향 말이야. 어떻게 저런 사내를 좋아할 수가 있지?’

 ‘아, 그건 저도 하고 싶은 말인데요.’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물론 실수라고 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저는 늘 그가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으니까. 상대가 누구라는 것은 상관없이, 이 남자가 과학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게 사랑이라면 다들 기절해서 자빠지는 거 아닌가. 실제로 조금 놀라기는 했다고 히라코 대장에게 들었으니 일반 대원들은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수군거리기 바빴을 것이다.

 그런 사신들의 눈을 신경 쓰는 이들은 아니었다. 둘 다 그랬다. 아무리 떠들고 손가락질을 해도 귀 한 번 파내고 말 사신들이기에 그들의 연애는 꽤 오래 갔다. 그러니까 제 예상보다는 오래 갔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저는 하루도 지나지 못해서 싸우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이건 저와 제 연인에게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사귀기로 하고 바로 싸우기는 했다.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그들의 관계가 아주 오래 가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이런 반응 또한 저도 들어본 적이 있다).

 제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쿠로츠치의 얼굴이 크게 구겨졌다. 아이젠은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손을 빼더니 옆으로 물러섰다. 어, 하고 당황하는 순간 그는 검지를 들어서 우라하라의 가슴을 콕콕 찍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다는 거지?’

 ‘아, 그게..’

 ‘독특한 취향 말하는 건가? 그러는 자네는 뭘 그렇게 멀쩡한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뇨,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요.’

 ‘내가 자라키 켄파치를 만나는 일이 자네한테 무슨 안 좋은 영향이라도 끼쳤나?’

 ‘아니, 그럴리가요. 근데 좀 아프네요, 그만 찌르시면 안 되나요?’

 ‘흥. 아니면 왜 그렇게 비꼬듯이 말을 하는 거지? 기분 나쁘군.’

 ‘제가 언제, 아야..’


 가슴을 쿡쿡쿡 세 번 찌르고 나서 손을 내린 이는 여전히 인상을 찡그린 채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약간 도움을 청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서 고개를 돌렸더니 아이젠은 먼저 걸어가려다가 자라키의 앞에 막혀 있었다. 이건 또.. 음, 위험한 상태였다. 둘이 부딪혀서 싸우면 서로에게 좋을 게 없을 텐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던 쿠로츠치도 우라하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살짝 놀라는 눈치를 보였다. 어쩐지 저 멍청이가 일을 키울 생각인가보지. 하는 생각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게 옆으로 지나가려는 아이젠의 손목을 꽉 잡은 자라키가 정말 환한 얼굴로 미소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미소는 저도 아는 미소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싸움을 걸기 직전에만 보이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잡혀서 불쾌하다는 식으로 상대를 쳐다보는 아이젠의 얼굴은 살짝만 구겨져 있었다. 아직까지는.


 ‘뭐하는 짓이지, 자라키 켄파치.’

 ‘여어, 오랜만이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본인의 영압을 조금 분사했고, 아이젠은 거기에 지지 않고 본인의 영압을 조금 흘렸다. 분명 맑았던 하늘이 살짝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음, 아마도.


 쿠로츠치가 먼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라하라는 하오리를 걷어내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넌시지 그들에게, 우리의 연인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 둘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신들이었다. 함부로 건드리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호정 13대 대원들은 다들 흠칫흠칫 어깨를 떨면서 뒤돌아 떠났다. 누군가는 어.. 하고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을 쳤고 누군가는 원래 가야했던 방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돌아서 사라졌다.

 그들이 약하게 뿜어내는 영압을 느끼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혹 싸움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바로 사이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제 몸이 조금 다친다고 해도, 아니, 어쩌면 다치기 때문에 아이젠은 하던 공격을 멈출지도 모른다. 자라키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싸움을 하기 때문에 살짝 옆으로만 움직이면 끝날 일이었다.

 제 얼굴을 힐끔 바라본 쿠로츠치는 콧방귀를 내뿜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를 함부로 비웃는 건 여전하군.”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요?”

 “네 생각은 잘 알고 있다. 얼굴에 다 드러났으니까 말이야. 답지 않게 숨기지를 않는군, 우라하라.”

 “아, 티가 났나요? 하지만 사실이지 않은가요. 자라키 대장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하니까요.”

 “바로 그 버릇이 좋지 않다는 거야. 하긴, 자네라고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런 말씀 너무 당당하게 하시면 저도 상처 받는다고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가 저를 싫어하는 건 아마 이 정령정 내에 있는 사신이라면 어린 아이도 알 만큼 공공연하게 알려진 일이었다. 그런 걸로 새삼스럽게 슬퍼하는 척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조금 웃겼다. 아직도 그렇게 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숨길 줄도 알아야죠, 너무 본인을 드러내고 사시면 좋지 않다고요.

 어쨌거나 자라키 대장이 단순하다는 것은 쿠로츠치가 저를 싫어한다는 사실만큼 다들 아는 것이었다. 그의 싸움은 머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쪽에 더 가깝다. 뭐, 그것도 잘 생각해보면 머리를 쓰는 거라고는 할 수 있겠다. 본인이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거라면..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음.

 물론 이렇게 상대를 저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앞을 바라보고 예상할 때 가장 크게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겉으로만 보고 평가한다면 크게 다치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꼭 아이젠과 연결이 되어 있는 일을 찔린다면 이런 식으로 격한 반응이 나왔다. 이것도 잘 조절해야지, 나중에 누군가에게 약점이 되지 않을텐데.. 물론 그가 약점이 될 만한 사신은 아니지만.

 속으로 조금 반성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이젠의 영압이 강하게 느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니 걸려있는 목걸이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는 본인의 한계를 잘 알았다. 더 뿜어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자제를 한다는 건 일단은 이쪽의 뜻에 따르고 있다는 증거이면서 또.. 위험하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지금 화났다고 칭얼거리는 거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달래줬을 것이다. 그러니까 옆에 쿠로츠치가 없거나, 그거 참 재미있군,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함께 영압을 높이는 자라키가 없었다면 말이다.


 “건방을 떠는군, 자라키 켄파치.”

 “너야말로 건방지구나, 아이젠. 영압이 묶여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고작 영압 하나 묶어놨다고 해서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분명 방금 전까지는 시비를 걸어도 모르는 척을 하시더니? 잠시 쿠로츠치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두 사신이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연인도 제법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대체 뭐라고 했길래? 그의 미간에 진 주름은 짜증과 예민한 성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왜 그러는 걸까. 어쨌거나 저걸 말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쿠로츠치의 입술이 먼저 달싹거렸다.


 “역시 지지 않는군.”

 “.....”

 “호정의 대장이란 이런 능력을 가지는 법이지. 뭐, 그중에서도 자라키 저 자가 좀 특별하기는 해. 대장의 마음가짐, 자네도 조금은 알고 있지 않나? 물론 아이젠 소스케도 알고 있겠고.”

 “..예, 그렇겠죠?”


 말투가 살짝 비틀린 것 같은 건 느낌 탓인가, 제 착각인가.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살짝 핥았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표정이었다. 제게 엿을 먹일 때 하는 표정. 그러니까 본인이 가진 무언가가 제가 가진 것보다 앞선다고 생각할 때나 보여주는 얼굴. 이런 경우에는 뻔했다. 자라키 대장에 대해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호정의 대장이 어쩌고 저쩌고. 적어도 저보다는 아이젠씨가 더 잘 알 것 같기는 하네요. 그는 오랜 세월 대장직에 머물러왔으니까.

 이렇게 유치하게 받아쳐도 되는 건가. 우라하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거 모르는 사신 여기에 없죠. 안 그래요?”


 아, 유치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반응이었는데, 다시 주워담고 싶을 정도로 유치했다. 눈 주변을 가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질 수는 없었다.


 “호오, 웃기는군. 우라하라 네 녀석도 아이젠에 관련된 일이라면 이를 악 물고 덤벼드는 꼴이 웃겨서 못 봐줄 지경이야.”

 “방금 하신 그 말씀,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을 정도인 건 아시죠?”

 “나는 연인이 무슨 말을 듣는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아.”

 “농담이시죠? 지금 엄청 흔들리고 계시는데.”


 눈에 불이 붙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저는 품에서 부채를 꺼내 입을 가렸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았다. 으르렁거리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저를 물어뜯을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쪽만 이빨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를 악 물고 저를 쳐다보던 쿠로츠치는 금방 욕이라도 뱉어낼 기세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오는 말은 의외로 굉장히 부드러웠다.


 “흔들리기는 누가 흔들린다는 거야.”

 “누구긴요. 쿠로츠치 대장, 당신이죠. 자라키 대장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흔들리는데 못 느끼셨어요?”


 스스로를 그렇게 드러내면 못 쓴다고 알려줬던 것 같은데, 과거의 제 이야기는 다 잊으셨나보죠? 눈을 예쁘게 휘어가며 웃었다.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와글와글 흔들리다가 이내 주먹을 쥐었다.


 “일단 가서 아이젠 소스케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영압이 차단당한 상태에서 자라키한테 맞으면 뼈도 못 추릴 텐데.”

 “설마요. 그 반대가 아닐까요? 아이젠씨가 그렇게 만만한 사신은 아니라서.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을 때 사이에 껴보시는 건 어때요? 그래도 자라키 대장이 쿠로츠치 대장 말은 잘 듣는 것 같으니까.”


 하늘이 우릉우릉하고 울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구름들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맑았던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압이 위로 솟아올라서 하늘을 가르고 사방을 뒤흔들고 있었다. 느릿하게 일어나는 총대장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아마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이쪽으로 향할 것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먼저 고개를 돌렸다.


 “됐습니다. 그만 하죠, 이런 유치한 짓.”

 “..동감일세. 저대로 두면 아이젠이..”

 “저대로 두면 자라키 대장이..”


 …

 우라하라와 쿠로츠치는 눈을 마주쳤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참는 눈치였다.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을 하는 대신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둘 다 총대장에게 혼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참았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기분이었다. 자라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아이젠의 머리는 이기지 못한다. 물론 순수하게 영압으로 붙어도 제 연인은 질 사신이 아니었다. 아무리 지금 영압이 묶여있는 상태라고 해도 말이다.

 싸운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여러모로. 일단 이 공간이 박살나겠지? 그것부터가 문제다. 아이젠의 가석방은 소울 소사이어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쩌면 그가 다시 무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은 자라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장이 말리기는커녕 죄인과 함께 칼을 휘둘러 피해를 줬다는 걸 알면.. 그 깐깐한 46실의 성격상 자리에서 쫓아낼지도 모르고. 그는 꽤 인기가 많은 대장이었다. 무엇보다도 11번대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화를 내는 것을 받아줄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않을 이는 또 있었다. 지금 저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 이 남자. 아마 절대로 저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제가 귀찮아서 죽기 직전까지 이 일을 들먹이겠지. 벌써 귀가 아팠다. 저는 먼저 시선을 거두고 아이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영압을 느끼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한 걸음 물러났다.

 쿠로츠치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앞으로 가려던 발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아이젠과 자라키 사이로 쿄라쿠가 나타났다. 순보로 몰고 온 바람이 뒤늦게 그를 따라왔다.


 “이봐, 이렇게 굴면 곤란하다고..”


 여유로운 말투와 달리 그는 양손으로 자라키의 손목과 아이젠의 손목을 꽈악 잡고 있었다. 먼저 떨쳐낸 건 제 연인이었다. 손이 닿아서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표정으로 탁 쳐내더니 뿜어내던 영압을 조금 잠재웠다. 원래 자잘한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는 사신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은근슬쩍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불똥이 튈까봐 조용히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뒤이어 쳇..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라키 또한 달려온 쿄라쿠의 손을 탁 쳐냈다. 총대장은 가만히 여기에 있는 사신들을 한 번씩 보고 저에게 말을 했다.


 “이렇게 하면 곤란한데, 우라하라 점장.”

 “예, 알고 있어요.”

 “그럼 조심 좀 해줘. 정령정 한복판에서 싸움이 나면 내가 곤란해진다고.”


 간절한 말투와는 다르게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보면 그도 이 상황을 굳이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 총대장이라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뛰쳐나와서 당장 구경을 했을 거라는 속내가 고스란히 얼굴 위로 드러났다.

 제게 부탁을 한 것은 아마 이 사신들 중에서는 가장 말이 통하는 쪽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싸움이 나면 제가 가장 곤란해지고(아이젠이 다시 무간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오는 게 싫으면 알아서 잘 하라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고 빙빙 돌려서.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야지. 알겠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아이젠의 손을 잡은 우라하라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 연인은 방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평화가 가득했고, 걸려있는 목걸이는 빛나는 하늘에 반짝였다.

 아, 그러고 보니 구름이 물러갔다. 우물쭈물하던 대원들은 아직도 길을 지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어, 괜찮아 괜찮다고. 하고 말하는 쿄라쿠가 손짓을 하자 뒤늦게 조금씩 걸음을 옮겼고, 천계문에서 12번대로 가는 가장 빠른 공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럼 나는 이제 가봐도 되겠나?”

 “그럼요.”

 “부탁 좀 할게, 잘 좀 봐줘.”


 팔이 보일 정도로 높게 손을 들고 휘적휘적 흔드는 그는 왔을 때와는 다르게 아주 느긋한 걸음으로 이곳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어지던 침묵은 자라키가 뒤를 돌아서 걸어가면서 끝이 났다. 마치 김이 팍 식어버려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식의 행동으로 보였으나, 쿠로츠치의 시선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고, 하필 저와 제 연인은 그 말을 들었다.


 “오늘도 투정을 부리는군..”

 “미쳤..”

 “저기, 아이젠씨 저희도 이만 갈까요?”


 급하게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눈동자를 굴려 저를 노려보던 이는 얌전히 제 손목을 잡아 내렸다. 아까 쿄라쿠의 손을 쳐낼 때와는 조금 다른 행동이었다. 이런 부분이 만족스럽다는 말이지. 얌전히 제 손아귀에서 살살 굴러주는 느낌이라서 귀엽기도 하고.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몸을 약간 더 붙였다. 쿠로츠치는 으. 하고 써있는 것 같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먼저 가는 자라키 대장의 뒤를 따라갔다.

 뚜벅뚜벅 멀어지는 그들을 보다가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들은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이고, 우리는 기술개발국에 갈 일이 없어졌다. 어쨌거나 총대장이 와서 확인을 하고 갔으니까 굳이 1번대로 가야 할 일도 사라졌다.


 “그럼 저희도 데이트나 할까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다시 현세로 돌아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이 참, 그리운 소울 소사이어티의 공기를 맡으면서 하시고 싶은 것도 없으세요?”

 “없어.”


 아이젠은 냉정하게 돌아섰다. 쿠로츠치와 자라키가 사라진 반대방향이었다. 그나저나 나를 두고 무슨 말을 했기에 싸움이 난 거지? 하고 물은 그는 저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라하라는 그 눈빛을 가늠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수준의 질문이었다. 뭐, 그냥.. 대결이나 했다고 치죠. 애인 대결. 입 밖으로 말을 내는 대신 그의 옆으로 졸졸 따라가 걸었다. 늘 거슬린다고 짜증내던 제 나막신 소리도 잘 넘어가주는 걸 보면 은근히 데이트 하자고 꼬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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