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세계관 펠에 조각글
에투아르는 자신의 적에게서 장점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서는 결점을 발견하는 걸 인생 최고의 재미로 삼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정혼자’ 의 장점을, 그리고 지금은 정혼자의 단점을 찾아내는 것이 취미가 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 펠릭스 씨는 뚫어져라 자신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에투아르의 따가운 시선을 몇 번은 느꼈을 것이다. 별로 신경은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는 그런 시선이 익숙했던 걸까?
“베를리오즈 양.”
어느 날이었더라, 그가 온화하게 웃으면서 책장에서 ‘나귀 가죽’ 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따뜻한 시선이 자신의 표면을 쓱 훑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요?”
“제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아니면, 저에 대한 어떤 평가를 내리는 데 성공하셨나요?”
아, 맹세코 평가를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랑은 나름 다름 시선으로 그를 관찰하고 있던 것 같은데.
“결점을 찾으려고 하고 있긴 했어요.”
에투아르는 등받이 위에 팔을 올리고 그 위에 자신의 턱을 괴었다. ‘결점을 찾고 있었다’ 는 말을 들은 그는, 다시 말해 자신이 그를 결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임을 깨달았을까?
못 깨달았군. 순간적으로 굳어버리며 움찔, 하는 어깨를 보고 에투아르는 눈을 살짝 굴렸다. 눈치가 없는 건가? 예민한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말을 오해의 소지가 있게 했나. 펠릭스 씨는 거의 반사적이다 싶은 움직임으로 입가에 장갑 낀 손을 가져갔다가 바로 주먹을 꽉 쥐고 다시 아래로 주먹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제게 재미있는 결점이 있던가요?”
한 박자 늦은 대답. 한 톤 높은 목소리. 그는 분명히 긴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게-재미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신기한 건 하나 있어요.”
“어떤 결점일까요?”
“그거, 장갑 잠깐 벗어 주면 안 돼요? 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는 순순히 염소가죽 장갑을 벗었고, 하얗고 매끈한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에투아르는 의자에서 내려와 그의 손을 잡고 앞뒤로 돌려봤다. 가늘고 곱다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특이할 건 없는 손이었다. 다만, 언제 봐도 새로 깎은 듯이 짧은 손톱이 조금 신경쓰인달까. (에투아르가 언젠가 본 책에서는, 여자들끼리 동성애를 할 때는 손톱을 꼭 짧게 다듬는다며 정숙한 여자를 구분하는 법을 적어 놓았었는데 그가 손톱을 짧게 다듬는 까닭이 그런 이유일 리는 없지 않은가.) 에투아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그의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손톱을 매일 깎아요?”
“매일은 아니죠. 그럴 리가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다듬는다’ 는 표현이 더 정확하려나요.”
“일주일에 두 번? 엄청 자주 깎네요. 평균적으로 자라는 속도를 감안해 보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깎는 게 보통일 텐데. 손톱이 그렇게 빨리 자라요? 흠, 뭘 하면 손톱이 빨리 자라더라?”
“아뇨, 그런 건 딱히 아녜요. 그건…”
에투아르는 눈썹 한쪽을 끌어올리며 장난스레 미소지었다. 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었다. 에투아르가 찾은 그의 아주 나쁜 버릇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다.
“…부끄럽고 신사답지 못한 일이지만 어릴 때 나쁜 습관이 있었거든요.”
“괜찮아요. 나도 집에 들어올 때 발을 제대로 안 털고 들어오는 나쁜 습관이 있었고 사실 지금도 완전히 고치진 못했으니까요. 그것보다 숙녀든 신사든, 암튼 사람답지 못해요?”
“그건… 이야기해주면 당신이 제게 실망할 것 같은데요.”
동그란 갈색 눈에 순간 검은빛이 스쳤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포근한 검은색이 아니라 불길하고 혼탁한 전형적 검정이었다. 에투아르는 잠깐 멈춰서 그의 손을 놓았다. 손톱,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손톱을 물어뜯는 건 어떨 때 나타나는 버릇이지?
그는 두려운 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몇 마디로 결점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에투아르는 다시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디로 봐도 흠잡을 곳이 하나 없는 신사다. 남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맬 수 없는 복잡한 모양의 세련된 크라바트, 완벽하게 재단된 바지, 하인의 손길이 몇 번은 들어갔을 결 곱게 맞춘 프록 코트.
에투아르는 손을 뻗어 그의 크라바트와 그의 목 사이 공간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자신 쪽으로 당겼다. 크라바트가 확 당겨지며 서서히 풀어졌다. 펠릭스 씨의 눈이 보름달처럼 둥그래졌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신사들의 세계에서 크라바트를 잡아당기는 건 최고의 모욕이라던가? 에투아르는 이번에는 천 끄트머리를 잡고 세게 당긴다. 크라바트가 손쉽게 풀렸다. 실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검은 테두리로 장식된 금빛 천이었다.
“결투를 신청하려는 건 아녜요. 그냥, 뭐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요.”
펠릭스 씨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천을 집어들었다.
“절 시험하시는 거로군요.”
“시험이요? 아뇨. 펠릭스 씨를 왜 시험해요?”
펠릭스 씨는 에투아르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실크를 집어들고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그에게서는 거의 받아본 적 없는 눈초리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애써 숨기는 눈빛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에투아르를 바라보았다.
“그 크라바트, 아까 그 모양 그대로 다시 묶어봐요.”
“절 시험하시는 게 분명하세요.”
살짝 이로 깨물었다가 놓은 아랫입술, 긴장한 안면근육,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 그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하기사, 갑자기 냅다 크라바트를 잡아당겼는데 안 당혹스럽게 생겼나? 물론 에투아르의 의심은 점점 증폭되고 있었지만.
“왜요? 어려운 모양인가요?”
어려운 모양인 건 뻔히 안다. 그냥 하나 궁금한 게 있었던 거다.
펠릭스 씨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고, 목 주위에 천을 두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한 오 분 정도 어설픈 리본을 만들던 그는 결국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 크라바트를 마치 그녀에게 바치듯 두 손으로 내밀었다.
“전…아까 그 모양으로는 묶는 법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빠른 인정은 그의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에투아르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서 황금빛 실크를 받아들었다.
“꽤나 멋들어진 모양이었는데, 아쉽게 됐네요.”
“그건 제 하인의 작품이었어요.”
또 다른 실토에 에투아르는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와 정반대로, 펠릭스 씨는 가엾을 정도로 여전히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에투아르는 천을 그의 목 뒤에 두른 뒤, 양쪽 끝을 당겨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게 한다. 재미있는 표정이다. 자주는 아닌데, 가끔, 특히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면 보이는 그의 표정이다. 그리고 그가 짓는 표정 가운데 에투아르가 유일하게 재미있어 하면서도 자주 보고 싶지는 않아 하는 표정이다.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건 두려움이다. 자고로 연인 사이에서 볼 표정은 아닌 법.
“…당신이 분명한 내 결점을 찾았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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