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Arrogant, Big Shot: No Time To Die 2 (with. everyone)

자캐 커뮤니티 AU 로그



비밀정보부 제3부서 특공팀 사무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걸려 있었다. ‘No time to DIE.’ 이 문장을 본 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빅토리아는 하하 웃으며 그냥 걸어둔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아니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제인은 조심스레 ‘혹시… 여기서 죽은 사람도 있나요?’라고 물었고 빅토리아는 하하하! 웃으며 ‘여기선 없어요, 여기서는.’이라고 답했다. (그럼 다른 데선 있단 말인가? 제인은 다른 방향으로 불안해졌다)

다음으로는 빅토리아가 팀원 한 명 한 명을 불러다 직접 소개해 주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은 사무실 오른쪽 벽에 걸린 조직도의 사진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제3부서 특공팀 팀원은 총 열다섯 명으로 제인이 합류하면 열여섯 명이 될 거라고 했다.

첫 번째는 빅토리아 마치 자신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특공팀의 팀장이자 이제 곧 18년 차를 꽉 채우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라고 했다. 열여덟 살이 되고 바로 특공팀에 들어온 그녀는 이제 자신보다 연차가 높은 사람은 간부진 중에만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인은 그녀의 말이 진짜인지 허풍인지 가릴 방법이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국제특수총국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보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에드워드 마치로 빅토리아 마치의 동생이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빅토리아는 조직도의 두 번째 줄에 위치한 남자를 가리키며, 그가 특공팀의 부팀장으로 이제 곧 10년 차가 될 거라고 했다. 다른 이들보다 경력이 많거나 재능이 특출난 건 아니지만 빅토리아의 뒤처리를 하는 데 도가 터서 부팀장 자리에 올랐다나 뭐라나.

세 번째는 빅토리아 다음으로 연차가 높은 에드거 피츠로이였다. 군인 출신이라는 그는 이제 14년 차 정도가 되었는데 네이비씰 복무 중 정기 검진에서 국제특수총국에 알맞은 ‘체질’을 갖고 있다는 게 발견되어 이곳으로 이동됐다고 했다. 그 또한 자리에 없는 사람 중 한 명이라 (“이 오라버니 또 어디 갔어? 오늘 스케쥴 있었어?” “결막염 걸리셨다는데요.” “결막염이 아니라 도박 중독이겠지!” 빅토리아가 성을 냈다) 빅토리아는 조직도 세 번째 줄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며 그냥 적당히 기억해두라고만 했다.

네 번째는 에드거와 비슷한 연차의 요원 리젤로테. 14년인가 13년인가… 아무튼 13년은 넘을 거라고 했다. 그의 자리에는 두꺼운 책과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누군가 숨어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심지어는 사무실 CCTV에서도 저 자리는 보이지 않을 거라며 빅토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제인은 처음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빅토리아가 ‘어이, 용 도련님!’ 하고 소리쳐 부르자 서류 더미가 조금 들썩이는가 싶더니 그 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눈부신 백금발에 물빛 눈동자를 가진 미인은 등장과 동시에 빅토리아를 불만스럽게 노려보았는데, 아마도 빅토리아가 그를 부를 때 쓴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빅토리아는 부하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리젤로테가 빅토리아를 노려보는 눈이 점점 더 불만스러워졌다─ 응, 얼굴 봤으니 됐어. 이제 돌아가. 하고 그를 곧바로 돌려보냈다. (제인은 순간 리젤로테의 눈에서 레이저 빔이 쏘아져 나오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다섯 번째는 12년 차의 시릴 그레이브즈. 그는 마침 사무실 구석에서 단도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어 (제인은 그가 거기 있는 줄도 몰랐다. 빅토리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제인은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빅토리아의 호명을 듣고 스르르 다가와 제인에게 고개를 꾸벅여 보였다. 빅토리아가 소개하길 그는 쉐도우시프터 종족으로 그림자 속에 녹아들거나 그림자를 이용해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진짜로? 정말로? 말도 안 돼. 제인이 믿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자 빅토리아가 낄낄 웃으며 ‘어이 레인저, 시범 한 번 보여주지 그래?’ 말하고 시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자 휴, 한숨을 내쉰 시릴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림자 속으로.

제인이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동안 크게 웃은 빅토리아가 여섯 번째 사람을 소개했다. 유진 클라르테, 프랑스 출신, 10년 차. 그는 본래 자리에 없었으나 빅토리아가 그를 소개할 즈음 사무실로 돌아왔다. 검은 머리에 훤칠한 키를 가진 그는 스스럼없는 태도로 제인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사람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제인은 유진과 친근하게 악수를 나누고, 유진은 잘 부탁한다며 제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떠났는데….

“야 이 새끼, 이리 안 와?!”

“에헤이… 들켰네.”

빅토리아의 불호령에 샐샐 웃는 얼굴로 돌아온 유진이 제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했던 제인은 유진이 내민 손에 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자신의 왼쪽 손목을 살펴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녀의 손목에 있어야 할 손목시계가 어느 순간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유진이 그 사라진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제인이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흘기며 시계를 탁, 빼앗자 하하 웃은 유진이 말했다.

“멋있죠? 제 특기.”

“처맞고 싶냐? 어? 처맞고 싶어?”

“아, 아, 폭력 반대. 폭력 금지. 팀장님이 사원 때린다!”

“누구는 좋은 인상 남기겠다고 쎄가 빠지게 노력하는데 이눔쉬키가 남의 밥상에 재를 뿌리고 앉았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이나 툭탁대다가, 빅토리아의 빈틈을 포착하고 잽싸게 빠져나간 유진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는 것으로 시시한 전투의 막을 내렸다. 혼자 남은 빅토리아는 유진이 사라진 방향을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으로 노려보면서,

“저 염병할 새끼… 다음에 또 걸리기만 해봐라.”

하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일곱 번째는 이제 막 5년 차가 되었다는 케이시 키츠였다. 훈련장에서 한창 사격 훈련 중이던 그녀는 신입이 왔다는 말에 사무실로 불려왔다. 빅토리아는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으며 ‘여어, 우리 에이스!’ 하고 불렀고, 케이시도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헬로, 캡틴!’ 하고 받아쳤다.

제인은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하는 방식이나 상대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제법 절친한 관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빅토리아는 케이시에게 제인을 소개하고도 그녀를 돌려보내지 않고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낄낄대고 웃었다. 그러다 케이시가 빅토리아에게 귓속말 몇 마디를 했고, 푸하하 웃은 빅토리아는 케이시의 가슴을 툭 치며 ‘내가 안 가면 누가 가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케이시도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팀장님은 공사다망하시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챙길 건 챙겨야지. 밥 안 먹고 날기만 하는 철새 봤어?”

그리곤 둘이 함께 킬킬대며 웃었다. 제인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팀장과 사원 관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격의 없이 대하는 모습이 퍽 보기 좋다고는 느꼈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무려 이집트 왕조 혈통에 ‘마녀’라는 타이틀을 가진 소녀 이소멧. 그녀는 특공팀 소속 교육생으로 일찍이 국제특수총국 근무 ‘자질’이 판명되어 열두 살 때부터 훈련을 받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직 입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교육생 신분에 머물러 있다고. (빅토리아가 이 말을 할 때 이소멧의 입이 닷발쯤 튀어나와, 빅토리아가 깔깔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다음으로는 아까 전 마주쳤던 남매가 있었다. 오빠는 에르체베트 티타니아 오베론, 동생은 에우리디케 라니냐 오베론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무려 ‘요정 혼혈’로 오빠 에르체베트는 제3부서 특공팀 요원이자 행정직원이고 동생 에우리디케는 아직 교육생 신분이라고 했다. 빅토리아는 또 그들 남매가 제3부서 소속이면서 동시에 국제특수총국의 ‘보호’ 아래 있다고 했는데, 요정이라는 종족 자체가 워낙 드문데다 무차별 밀렵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열한 번째는 풍성한 흰 머리칼에 예쁜 연두색 눈을 가진 여성으로 이름은 마리아 앙투아네트 외스터라이히라고 했다. (앙… 뭐요? 제인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이름을 듣고 단두대를 떠올린 사람이 제인만은 아닐 것이다.) 수녀 출신이라는 그녀는 전자동 휠체어에 앉은 채 제인을 맞이했는데 빅토리아는 그녀가 특공팀의 ‘원래’ 에이스였으나 부상을 입고 후방 지원으로 물러나게 됐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제인이 놀라는 한편 두려운 기색을 보이자 여성이 제인의 손을 잡고 웃으며, 자신은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것이고 제인은 사무 요원으로 스카우트된 것이라 자신처럼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대체 여긴 뭐 하는 부서인가요, 제인은 좀 더 현실적으로 무서워졌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사무를 보는 직원들이었다. 정보 조사, 분류, 분석 담당의 조슈아 이스트우드. 각종 보고를 담당하는 뤄칭시안. 각종 사건 사고와 작전 후처리 담당 에냐 리. 이들은 사무실에서 가장 넓은 책상을 쓰고 있었는데 책상의 넓이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양의 서류들이 개인 책장과 서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인은 어쩐지 자신의 미래를 엿본 듯해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진짜 괜찮은 걸까 여기? 나 이런 데서 일해도 될까?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빅토리아가 음흉하게 웃으며 속삭인 연봉을 듣고 씻은 듯 사라졌다….

마지막으로는 제3부서 특공팀 조직도 구석에 따로 떨어져 있는 ‘고문’ 아나스타샤 세바예프. 일신상 사유로 집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 사무실에서 얼굴을 볼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제인의 업무 특성상 그를 따로 찾아갈 일이 많을 거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기억해두라고 했는데, ‘1. 그의 앞에서 절대로 살생하지 말 것 2. 함께 식사를 할 경우 되도록 채식할 것 3. 선물은 반드시 살아있는 생물로 할 것’이라는 세 가지 규칙이었다. 거참 독특한 규칙이다 싶어 ‘환경운동가이신가요?’ 하고 물으니 빅토리아가 박장대소하며 대답했다─ ‘그보다는 박애주의자에 가깝지.’

“규칙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무 일도.”

“네?”

“아아무 일도 없어, 우리한테는.”

“…?”

그럼 규칙은 왜 있는 거지? 의아해하는 제인에게 빅토리아는 그저 만나 보면 알게 될 것이라며 어깨만 으쓱였다. ‘이건 말로 설명 못 해, 겪어 봐야 알지.’ 그녀는 자못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제인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제인이 물었다.

“빅토리아도 그 규칙을 다 지키나요?”

“아니.”

“안 지켜요?”

“아니.”

“…지킨다는 거예요, 안 지킨다는 거예요?”

“안 가.”

“…네?”

“그냥 안 가.”

“….”

나중에야 알았지만 빅토리아는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육식파 인간으로, 그녀와 비슷한 식성을 가진 사람은 에드거 피츠로이와 리젤로테 라 캄파넬라가 있었다. 그 중 빅토리아와 에드거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지언정 아나스타샤 세바예프와는 절대 겸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이유는 순전히 ‘채식이 싫어서’였다. 제인은 무슨 일이 나는 것도 아니람서 까짓 고기 좀 먹으면 어떠냐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듯 빅토리아가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것 같았다) 로 말했다.

“양심이 아파, 양심이….”

“….”

…그런 걸 신경쓰는 타입인가? 의외로군….

만일 빅토리아가 제인의 이 생각까지 알았다면 그런 게 아니라며 퍽 억울해했을 터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독심술사가 아니고, 제인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의 의견에 갑론을박하는 대신 알아서 입 다물기를 택할 수 있었다.

팀원 소개를 마친 빅토리아가 제인을 이끌고 팀장실로 들어갔다. 투명한 유리문에 은색 문패가 달린 팀장실 안은 제법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 왼쪽으로는 각종 서적이 꽂힌 커다란 책장이 천장까지 채우고 있었으며, 책장 옆에는 갈색 원목으로 된 커다란 책상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반대편, 그러니까 방의 왼쪽에는 알 수 없는 표식과 문자가 마구 그려진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가운데에는 손님을 맞기 위한 응접용 테이블과 소파가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로 놓여 있었고.

“앉아, 앉아.”

소파의 상석에 자리 잡은 빅토리아가 제인에게 손짓했다. 제인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빅토리아는 어느새 아주 편한 태도로 제인을 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놓는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제인은 빅토리아가 자신에게 반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제인이 빅토리아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자, 편하게 앉으라며 히죽 웃은 빅토리아가 말했다.

“어때, 일 할만 할 것 같아?”

“…잘 모르겠네요.”

“뭐 그게 당연하지. 겨우 하루 본 걸로 이 일이 나한테 맞을지, 안 맞을지 어떻게 알겠어. 그렇지만 제인 오스몬드 씨, 당신에겐 이제 선택권이 없답니다.”

“…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제인이 두 눈을 크게 홉뜨자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 빅토리아가 설명을 이어갔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국제특수총국의 업무는 첫째도 비밀 유지, 둘째도 비밀 유지, 셋째도 비밀 유지입니다. 외부인에겐 절대 공개되지 않고, 실수로라도 발 들일 수 없는 곳이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제인 씨는 지금 어디에 있지?”

“여… 여기 있잖아요?”

“그렇지. 그 말은 즉 뭐다?”

“뭐… 뭔데요?”

“제인 오스몬드 씨가 이미 국제특수총국의 직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

사기다!!

제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빅토리아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마음을 겨우 겨우 참았다. 하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아니 저는 그냥 한 번 와본 것 뿐인데요? 아직 연봉 협상도 안 했는데요? 근로계약서에 사인은 더더욱 못했구요? 그런데 벌써 직원이라고? 내, 내가 취직을 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판타스틱 쿵짝쿵짝 월드에?

“아마 지금쯤 인사팀에서 수속 끝났을걸. 제인 씨 가족들에게 축하패도 전달 됐을 거야.”

“뭐, 뭐라고요?!”

“걱정 마, 걱정 마. 내 입으로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총국이 사기 실력 하나는 죽여주거든. 아주 멋들어진 이름으로 전해줬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뭐, 뭐, 뭐라고 하는데요?”

“그건 사람마다 다른데. 흠… 누굴 예로 들어야 할까. 아, 그렇지. 조슈아 말이야. 걘 원래 다크웹 해커였거든. 부모님은 조슈아가 날백수인 줄 알고 걱정이 많았었대. 그런데 6년 전에 우리 쪽으로 스카우트 되면서, 걔네 부모님은 이제 조슈아가 CIA 정보부에서 일하고 있는 줄 아셔. 꽤 거창하지?”

…그게 되나? 그걸 믿어? 진짜 믿는다고?

“그, 그럼 저는요?”

“글쎄. 인사팀에서 결정하는 거라 정확히 어떻게 갈진 나도 잘 몰라. 대신 몇 가지 추측은 해볼 수 있지. 제인 오스몬드, 버클리대 고고학과 졸업 맞지? 그럼 대충 그 비슷한 계열로 꾸며줬을 거야. 확인하긴 어렵고, 끝장나게 멋있는 걸로. 오, 그렇지. 뉴욕 도서관 고고학 자문 교수 같은 거 아닐까?”

“…안 속을 거 같은데요.”

“그래? 아무튼 걱정할 필요 없어. 사전처리도 사후처리도 전부 인사팀에서 알아서 할 거니까. 참고로 인사팀은 제2부서 소속이야. 따질 일 있으면 그리로 가면 돼.”

….

제인은 불안했다. 심히 불안했다. 이 밍숭맹숭 대충대충 사기극이 제대로 성공할지도 의문이었고 (물론 그녀 자신은 그 ‘대충대충 사기극’에 걸려들었다마는) 아버지와 오빠가 이들의 거짓말을 순순히 믿어줄 지도 걱정이었다. 괜히 또 비웃음이나 사는 것 아닐까?

이튿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스몬드 가(家)에 전해진 제인의 축하패에는 ‘록산느 해밀턴 후원 고대 이집트 역사·고고학 국제 연구 재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당연히, 제인으로서는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체였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도 이런 이름의 연구 재단은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는 고고학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므로 아무 단체의 이름이나 갖다 붙였다간 단박에 들통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제2부서 인사팀에서는 아예 새로운 연구 재단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후로는 제인의 걱정이 무색하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려나갔다. 국제특수총국에 ‘입사’한 이튿날, 제인은 퀵서비스로 배달된 꽃다발과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와 오빠가 정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제인이 나중에 알게 된 인사팀 직원의 말로는 ‘이미 있는 단체로 위장하는 것보다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는 게 이천 배는 쉽다’더라. 빅토리아가 장담한 대로, 국제특수총국 인사팀은 정말 ‘사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제인은 제3부서 특공팀 팀원들의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국제특수총국에 정식 입사했다. 빅토리아는 제인이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연원과 전승에 대한 분석 업무를 맡게 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제인은 정말이지 ‘기분이 째졌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전설, 그것도 실존하며 현재하는 전설에 대해 분석하면서 월급까지 받는 일이라니. 제인 오스몬드가 꿈꿔 오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어마어마한 훈련 과정과 국제특수총국의 무시무시한 보안 지침 교육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한 번 시동이 걸린 제인 오스몬드는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인은 종이 냄새와 잉크 얼룩으로 뒤덮인 자신의 미래를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도 별 탈 없이 속아 넘어갔으니, 이제 제인의 앞에 남은 건 끔찍하게 오래되고 더럽게 어려운 고고학의 축복과 저주 뿐이었다─

─고 생각했다.

일주일, 열흘, 이주, 삼주… 한 달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러나, 국제특수총국 제3부서 특공팀의 업무란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제3부서 특공팀에 근무한지 정확히 한 달째가 되던 날, 제인은 세상에 쉽고 좋기만 한 일은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주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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