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ogant, Big Shot: No Time To Die 3 (with. Edgar & Cyril)
자캐 커뮤니티 AU 로그
제인 오스몬드가 제3부서 특공팀에 입사하고 열흘째가 되던 날.
특공팀에 새 지령이 내려왔다.
그간 제인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국제특수총국은 제1부서의 첩보팀과 정보팀, 제2부서의 행정팀, 인사팀, 지원팀, 제3부서의 작전팀, 특공팀, 선후팀, 제4부서의 환상동물관리팀과 환상식물관리팀, 제5부서의 연구팀, 기술팀, 제6부서의 감찰팀까지 총 6부서 13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중 특공팀은 ‘인간’과 관련된 임무를 주로 맡는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위험 물질 밀수 조직 소탕, 지하 블랙마켓 잠입 작전, 이계 마피아 단속·체포·검거 작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특공팀이 맡게 된 임무는 이전에 하던 일들과 내용이 조금 달랐다. 임무를 받은 빅토리아는 정보팀에서 온 직원에게 “이걸 왜 우리가 해?”라고 물었는데, 정보팀 직원은 본래 환상동물관리팀에 할당된 사건이었으나 그쪽에서 계획된 여섯 번의 포획 작전을 모두 실패해 특공팀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얘기를 들은 빅토리아가 쯧쯧 혀를 찼다. 그녀가 귀찮은 듯 손을 휘젓자 정보팀 직원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사람들을 불러모은 빅토리아는 그대로 제3부서 특공팀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선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맨해튼 이스트 하우스턴 스트릿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집 안의 물건이 사라졌다는 절도 신고가 이어졌다. 경찰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연쇄 절도 사건인 줄 알고 근처의 좀도둑들과 절도 전과자들을 조사했다. 하지만 혐의점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다 할 증거도 없어 수사가 난항에 빠져 있을 무렵, 길거리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 맨홀 뚜껑이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보행자 도로의 난간이 거기만 도려낸 듯 없어지거나, 공원의 스프링클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도로의 소화전이 없어져 일대가 물바다가 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자 국제특수총국 첩보팀은 자연스레 이 기이한 ‘절도’ 사건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보팀과 연구팀의 협력 조사를 통해 이것이 한 ‘환상동물’의 행적이란 사실을 금세 알아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본래 제4부서 환상동물관리팀에게 전달됐었다. 그러나 이 환상동물이란 게 얼마나 잽싼지 환상동물관리팀 요원들은 이 녀석을 잡으러 나서는 족족 골탕만 잔뜩 먹고 놓쳐버렸다. 이렇게 총 여섯 번의 실패가 이어지자 다시 제1부서 정보팀을 통해 제3부서 특공팀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그렇다고 제4부서 환상동물관리팀이 앉아서 죽만 쑨 것은 아니었다. 여섯 번의 출동을 통해 그들은 ‘목표’의 정체와 특성을 파악했다. 그것의 명칭은 (임시) 그림자 먹이 어둠 도마뱀으로 사물과 그 그림자를 먹어 성장하고 (이 대목에서 빅토리아가 시릴을 보며 “친척이냐?”고 물었다) 그림자와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친척 같은데….” 빅토리아가 중얼거렸다) 사람보다 세 배는 재빠르고 곱절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특공팀으로서도 충분히 애를 먹을 만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당장 특공팀 외 다른 대안도 없거니와 특공팀 요원 중 ‘이런 일’에 적합한 인재가 있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임무 설명이 끝났으니 작전 참여 요원을 호명할 차례였다. 빅토리아가 느리고 명료한 영국식 발음으로 몇몇 팀원의 이름을 불렀다. 빅토리아 마치, 리젤로테 라 캄파넬라, 시릴 그레이브즈, 마리아 외스터라이히….
그때였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커다랗고 훤칠한 남자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들어섰다. 그를 본 빅토리아의 눈이 순간 불을 뿜었는데, 사내는 그것도 모른 채 (모르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느긋하게 도넛을 뜯다 화이트보드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는,
“오. 무슨 일 있나? 아침부터 한 자리에 모여 있고.”
라고 했다. 그러자 빙그레 웃은 빅토리아가,
“…에드거 피츠로이 추가.”
“엉?”
“사유는 괘씸죄. 이상.”
“어어엉?!”
…자업자득이다. 빅토리아의 위계를 이용한 사적 보복에 사무실의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출근한 사내만이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황당해했을 뿐이다. 제인 또한 그를 보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내의 이름은 에드거 피츠로이로 빅토리아가 첫날 소개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특공팀의 베테랑이자 가장 대표적인 문제아로 그의 비행 목록에는 상습 지각, 도박 중독, 술병으로 인한 잦은 병가, ‘자칭’ 결막염, 갑작스러운 실종, 무단 외출 후 경찰서에서 발견되기 등이 있었다.
제인이 특공팀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이제 갓 열흘. 그 열흘 동안 에드거는 다채로운 방법으로 빅토리아의 혈압을 올리며 제인에게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그가 특공팀 조직도에서 에드워드 마치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작전 성공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덕이었다.
남은 도넛을 한입에 꿀꺽 삼킨 에드거가 항의했다.
“아니 무슨 작전인지는 설명해주고 일을 시키지?!”
“지각은 왜 했는데? 사유 듣고 판단해주지.”
“늦잠 잤다!”
“염병하네. 기각!”
당당한 대답과 단호한 거절. 다른 팀원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눈을 딱 감고 두 사람의 격렬한 논쟁을 외면하려 애썼다. 그들이 한숨과 웃음과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동안 빅토리아와 에드거의 다툼은 논점이 산으로 가다 못해 점점 지구를 떠나려 했다. 특공팀에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스킬이 숙련되지 못한 제인은 웃겨 죽겠다는 심정과 울고 싶다는 심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했다. 제발 누가 저 시트콤을 멈춰줘…. 참지 못한 그녀가 두 손 모아 하늘에 기도하려던 그때.
콰지직!
“일 해.”
“….”
“….”
미친 용대가리….
리젤로테가 집어던진 검이 그대로 빅토리아와 에드거의 사이를 가르고 벽에 꽂혔다. 모양을 보아 한 30 센티미터 쯤? 다소 과격한 방식이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에드거와 빅토리아가 리젤로테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외면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작전 실행 시간은 타겟의 활동 시간으로 예상되는 새벽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작전팀의 지시에 맞추어 준비를 마친 특공팀 요원들은 각자 배정된 위치에서 시작 신호를 기다렸다. 새벽 1시 45분, 작전 실행 직전 제인은 마리아 외스터라이히와 함께 ‘지휘실’로 이동했다. 지휘실은 제3부서가 있는 곳에서 두 층을 더 올라가야 했는데, 제인은 최근 열흘 동안 이곳을 총 세 번 와봤다.
사실 지휘실에서 제인이 할 일은 딱히 (전혀) 없었다. 그녀는 그냥 마리아나 빅토리아, 에드워드의 옆에 서서 특공팀의 ‘임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만 했다. 제인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빅토리아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과정이고 특공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각 요원들에게 어떤 특성이 있는지 파악할 기회라고 했다. 그런 건 빅토리아 같은 지휘관에게 필요한 능력 아닐까요… 저는 그냥 사건 기록이나 한 부 더 읽어보고 싶은데요…. 제인은 그녀의 작은 항의를 마음속에 감추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지휘실은 국제특수총국의 한 층을 통째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주 넓었다. 입구 맞은편 벽에는 요원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 여러 개와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었고 방안은 계단식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입구에서 가까울수록 높고, 멀어질수록 낮아졌다. 가장 높은 자리 (입구 바로 앞자리) 에서는 앞에 앉은 직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마리아의 말에 의하면, 첩보부나 정보부는 인원이 아주 많아서 그들이 작전을 할 땐 이 지휘실이 꽉 찬다고 했다.
지휘실의 가장 높은 자리, 그러니까 최고 지휘관의 자리에는 커다란 홀로그램 지도도 설치되어 있었다. 손으로 줌인, 줌아웃이 가능한 이 지도는 최소 세계지도부터 최대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의 어느 골목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물건이었다. 다만 사용법이 몹시 어려워 빅토리아는 ‘어느 도시’까지, 에드워드는 ‘어느 마을’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제인의 옆에 있는 마리아 외스터라이히는, 어느 골목의 담벼락의 벽돌의 흠집까지 확대할 수 있는 ‘지도의 달인’이었다.
1시 55분, 작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지휘실의 천장에 5:00이라는 붉은색 숫자가 뜨더니 점차 4:59, 4:58, 4:57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리아가 지도의 어느 지점을 손가락으로 잡은 뒤 양손을 벌리며 확대하자 지도 테이블 위로 이스트 하우스턴 스트릿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위로 마리아가 손가락을 하나, 둘, 셋, 넷 짚으니 그녀가 짚은 곳을 기준으로 빛나는 기둥이 솟아올랐다. 뒤이어 그 기둥들이 천천히 이어지더니 이스트 하우스턴 스트릿의 거리 위로 거대한 직육면체의 장벽이 생겼다.
마리아가 말했다.
“결계 생성 완료. 목표 위치로부터 주변 3km 범위입니다.”
[오케이─]
[라져.]
[알겠습니다.]
[….]
천장의 스피커로부터 현장에 투입된 요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 요원의 수신 상태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천장의 카운트 다운을 확인했다. 2:38, 2:37, 2:36… 1:24, 1:23, 1:22, 1:21… 0:55, 0:54, 0:53, 0:52, 0:51….
5,
4,
3,
2,
1─.
[미션 시작합니다!]
초소형 무전기를 통해 마리아의 지시가 하달되었다. 동시에 담장 위에 서 있던 빅토리아가 땅으로 뛰어내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디바이스 화면에는 이스트 하우스턴 스트릿의 지도와, 반짝이는 붉은 점 하나, 네 개의 하얀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얀 점 네 개는 빅토리아를 비롯한 특공팀 요원들을 표시하는 것이고, 반짝이는 붉은 점이 바로 그들이 포획해야 할 ‘타겟’의 위치였다.
빅토리아는 목표를 향해 곧바로 질주했다. 담벼락과 울타리는 뛰어넘고, 도로는 가로지르고, 자동차는 한 걸음에 뛰어올라 두 걸음 세 걸음에 뛰어내리고, 계단은 난간을 타고 단숨에 미끄러져 내려, 하여간 온갖 방법을 써서 가장 직선에 가까운 최단 거리로 주파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그녀의 눈앞에 온몸이 새카맣고 눈은 샛노란 도마뱀 한 마리가 보였다. 잡았다 요놈! 빅토리아가 도마뱀을 향해 냅다 몸을 날렸을 때였다.
“아이씨 깜짝이야!”
놀란 빅토리아가 급제동을 걸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멈춘 순간, 반짝이는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십년감수했네! 펄떡이는 심장을 손으로 꾹 눌러 멈춘 빅토리아가 건물 위의 에드거를 향해 바락 외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내가 쟬 잡으랬지 언제 사냥하랬어?!”
“그게 그거 아냐?”
“생포하라고, 생포!”
“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멍청한 소리를 낸 에드거가 ‘음….’ 하며 이마를 긁적였다. 그는 마치 ‘선풍기로 산소를 분해해 수소와 질소를 만들어라’는 명령을 들은 사람처럼 난감해하더니 잠시 후 어깨를 으쓱이며,
“그건 어려운데.”
라고 말했다.
“환장하겠네 정말.”
네가 무슨 존윅이냐, 살려서 잡는 게 어렵게? 빅토리아가 어깨를 툭 떨어뜨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도마뱀은 두 사람의 시야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렸다. 왓 더 퍽…. 괴로워하며 얼굴을 쥐어뜯은 빅토리아가 후, 한숨을 내쉬고 에드거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됐고, 뛰기나 하쇼.”
“허… 이 나이에 달리면 관절염 생기는데.”
“관절 브레이크 당하고 싶냐?”
빅토리아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의 열렬한 반응에 만족한 에드거가 낄낄 웃으며 빅토리아의 옆에 나란히 섰고, 두 사람은 그렇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튀어 나갔다. 반 발짝 앞선 빅토리아가 디바이스의 지도를 틈틈이 확인하며 왼쪽, 오른쪽, 직진, 다시 오른쪽… 하고 지시했다. 시간이 흘러도 두 사람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고 빅토리아의 정확한 방향 지시로 오래지 않아 다시 도마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검고 윤기 흐르는 도마뱀이 건물 벽을 기어 오르고 있었다. 지금이다! 빅토리아가 외쳤다.
“시릴, 쏴!”
피유우웅!
바람을 할퀴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도마뱀을 향해 날아갔다. 끝이 뭉툭하고 시위가 두꺼운 화살은 도마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펑 하는 소리를 내며 그물로 변했다. 동그랗고 새카만 그물이 도마뱀을 감쌌다… 건물 벽에서 떨어진 도마뱀이 잠시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아 염병하고 자빠졌네 진짜!”
“와우.”
쑤우웁! 소리가 나더니 도마뱀이 시릴의 그물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빌딩 옥상에서 천천히 뛰어내리던 시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다급하게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배불리 포식한 도마뱀은 이미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당황한 시릴에게 빅토리아가 물었다.
“너 설마….”
“….”
“그 그물… 그림자로 만들었냐?”
“….”
시릴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빅토리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왜 그랬어…. 빅토리아의 장탄식에 시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림자 먹이 도마뱀에게 그림자로 된 그물을 쏘았으니….
“우리가 걜 잡으러 왔지… 먹이 주러 왔냐….”
“….”
상심한 빅토리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물론, 그런다고 도망친 도마뱀이 제 발로 돌아올 리 없으니 그녀는 오래 괴로워하지도 못하고 다시 달려야 했다. 이번에는 시릴도 함께였다. 두 번이나 목표를 놓친 빅토리아는 조금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목표물의 뒤로 접근해 셋이 퇴로를 차단하고 한꺼번에 덮친다! 이래도 못 잡으면 우린 내일부터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다!
빅토리아의 선언에 덩달아 원숭이가 될 위기에 처한 에드거와 시릴이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이 세 번째로 도마뱀을 목전에 두었을 때, 빅토리아는 이전의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한 희망의 빛을 보았다. 검은색 도마뱀과 그 앞에 선 백금발의 미남자. 리젤로테 라 캄파넬라가 도마뱀과 마주 보고 있었다.
‘용 도련님’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 리젤로테는 본래 북유럽 일대에 둥지를 튼 용의 새끼다. 용. DRAGON. 동화 속 공주를 납치하고 온 세계에 저주를 흩뿌리며 성탑을 진흙처럼 짓뭉개버리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맹수 중의 맹수이자 마수의 왕! (이라고 리젤로테 앞에서 얘기했다간 뼈도 못 추리고 땅에 파묻힐 것이다)
과연 빅토리아와 에드거, 시릴을 차례로 애먹인 그 도마뱀은 리젤로테의 앞에서 꼼짝도 못한 채 발발 떨고 있었다. 리젤로테의 물색 눈이 사느란 빛으로 도마뱀을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덮치기만 하면 된다! 빅토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살금, 살금, 도마뱀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야 이 미친 도마뱀 새끼야!”
“….”
‘미친 도마뱀’은 과연 그림자 먹이 도마뱀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리젤로테를 말하는 것인가.
에드거는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답을 알 방도가 없었다. 그는 다만 눈앞에서 펼쳐졌던 광경을 곰곰이 곱씹었다. 도마뱀이 리젤로테에게 겁을 먹었고, 빅토리아가 도마뱀을 향해 냅다 몸을 날렸다. 그런데 하필 그때 있는 대로 겁을 집어 먹은 도마뱀이 그동안 삼킨 것을 전부 게워내고는 냅다 도망쳐 버렸다.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빨리. 덕분에 빅토리아는 도마뱀이 뱉어낸 물건들에 마구잡이로 얻어맞고서 바닥을 굴렀다. 그 와중에 도마뱀을 놓친 건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도마뱀은 리젤로테가 자신을 잡아먹으려 (….)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리젤로테로서는 몹시 억울한 일이었지만, 눈앞에서 목표물을 (세 번이나) 놓친 데다 이제 원숭이가 될 처지에 놓인 빅토리아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도마뱀을 쫓아 달려가며 외쳤다.
“너, 너 그러게 내가 눈에 힘 좀 빼고 살랬지!”
“….”
리젤로테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도마뱀을 볼 때와 같은 눈으로 빅토리아를 바라보았고, 시릴은 빅토리아의 뒤를 쫓아 달려가며 리젤로테에게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에드거는 슬렁슬렁 느린 걸음으로 리젤로테에게 걸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달려라, 올리브.”
“….”
볼을 부풀린 리젤로테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에드거도 그의 뒤를 따라 느릿느릿 ─그가 보기에 그들이 도마뱀을 못 잡는 이유는, 그들이 느리거나 그게 빨라서가 아니라 행운의 여신이 완전히 도마뱀의 편을 들어주고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달리거나 걷거나 도마뱀을 잡는 데에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다─ 걸었다.
달리고 멈추고,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새벽 3시 30분.
동쪽 먼 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며, 이 추격전이 막을 내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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