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을 위하여.

적당히 제국가는 이야기

목장 by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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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완결까지의 스포 있습니다. (423화)

*선동과 날조, 적폐의 끝판왕

*적폐 그자체

힐데베르트 탈레브의 특유의 금안이 차갑게 식었다. 평소 보이던 그 부드러운 금안이 아닌 차갑다 못해 얼어버릴듯한 그 눈에 주변이 부러 당황할 정도였다. 물론 종종 힐데가 화날때면 볼 수 있던 풍경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래, 지금의 힐데는 화나지 않았다. …화나지는 않았다.

시작은 포탈의 이상반응이었다.

어느날 포탈의 파동이 이상해졌다. 잠잠하던 파동이 요동치고, 누군가 사용하는 것 마냥 일렁거리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정말 이상한점은 그 포탈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포탈이었다는 것이다. 과학부 연구원들은 평소와 같이 마틴과 놀고있다가 그 사실을 발견했다. 정확히 하자면 마틴이 그들을 운동시키던 것이었지만.

각설하고, 과학부의 연구원들이 가장 먼저 알아낸 그 사실을 윤에게 알렸다. 윤은 스카를 비롯한 수뇌부와 전 총사령관인 예현에게 알렸다. 기실, 그들은 아직까지 포탈의 원리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 아니라 ‘포탈이 이상하다’는 것 외엔 알아낼 것이 없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그것을 어찌 한낯 인간이 이해하겠는가. 인간들은 이해를 포기하고 그저 이용하기로 했다. 이용하지 않기엔 기능적으로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막막하게 포탈의 반응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고있는게 하루, 이틀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에 듣어 수뇌부의 결정이 떨어졌다. 이제 막 자리를 잡은 스카는 위험부담이 큰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포탈의 파기를 결정했다. 물론 대외적으로만 그랬다.

타이탄 측 책사, 요우의 주장이 원인이었다.
타이탄들은 본인들이 이용했던 차원이동진과 비슷한 것 같다는 의혹을 내뱉었다. 물론 제국은 이미 멸망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조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애초에 타이탄들에게 그곳은 고향이었으니까.

요우는 조사를 주장했고, 스카는 거부했다. 그를 설득한 것은 예현이었다. 힐데가 원하던 것을 어떻게 눈치 챈건지, 은퇴 후 적적한 생활이 은근 지루했던 것인진지는 예현만 알겠지만. 전직 총사령관은 논리적이었고 아직 짬이 덜 찬 스카는 그 논리에 승리할 자신이 없엇다.

“ 스카, 어떻게 안될까? ”

논리인지 얼굴인지, 전 상사의 부탁인지는 스카만이 알 것이다.

아무튼간에 예현의 부탁으로 대외적인 파기와 달리 내부에선 조사에 들어갔다. 안그래도 요즘 바쁜데 이런 일까지 시키냐며 투덜거리는 요우에 힐데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말을 번복하진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조사를 원하긴 했던 것 같았다.

포탈에 들어가는 타이탄은 힐데와 카이로스, 인간은 윤과 예현, 아미였다. 고작 5명이지만 공격력만큼은 배저 최고급이었다. 무슨 일이 있던지 전멸은 나지 않게끔 하는 구성이었다. 힐데는 과잉 전력이 아닐까 싶었지만 스카의 고집에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며칠이 지나고도 포탈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들은 포탈 앞에 서있기 시작했다.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그래, 제국에서 온 자들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카이로스와 힐데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으며 그리움을 느꼈다.

“ 그럼, 갈까? ”

“ 1선은 제가 서겠습니다. 예현은 마지막을 지켜줘. ”

“ 오~ 이제 전직 총사령관이라고 반말하는거야? ”

“ 제발, 윤! ”

은퇴한 총사령관이 대부에게 반말을 요구했기에 일어난 헤프닝도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선 존댓말을 쓰겠다는 힐데였지만, 이번 임무는 공적인게 아니라는 예현의 대답이 있었기에 성사된 이상한 호칭관계였다.

“ …들어갑니다. ”

힐데는 조심스럽게 포탈 안으로 발을 옮겼다. 몸이 붕- 하고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그곳은…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 힐데, 괜찮..응..? ”

힐데를 뒤따라 포탈을 통과한 사람은 아미였다. 대답 없는 힐데에 그의 안부를 물으며 넘은 그에게 보인 것들은 어딘가 이상한 풍경이었다.

중세와 현대, 그 중간에 있어보이는 건물들. 옛날에 TV에서 봤던 유럽쪽 국가의 모습이 이랬던가. 리카르도라면 제대로 알 텐데.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보이는 맑은 하늘과 어디선과 불어오는 바람엔 꽃향기가 섞여있었다. 아이들은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뛰어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질적인 자들은 그들 뿐이었다.

아미를 뒤따라 윤, 카이로스, 예현이 나타났다. 카이로스 또한 힐데처럼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 …힐데, 여긴. ”

“ 아아… ”

카이로스는 굳게 닫혀있던 입을 겨우 떼었다. 그들 모두가 이곳에 발을 딛고 몇분이 지났을 참이었다.

카이로스에겐 이곳이 그 어느곳보다 익숙했다. 수십년 전엔 매일 이곳을 그리며 날밤을 지샜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안했다. 희망이라도 품으면 더 가고 싶어질까봐, 그럴까봐 카이로스는 이곳을 마음 한 구석에 박아두었다.

그저 평화롭기만 한 하늘. 그저 평화롭기만 한 아이들. 익숙한 건물, 익숙한 —존재들.

“ —제국. 제국이야. ”

힐데가 작게 읊조린 말에 배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윤 또한 놀란듯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평소의 힐데가 보았더라면 웃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의 힐데에게 그런 여유따윈 없었다. 숨도 못 쉴 만큼 몰려오는 동족들의 기척들. 그리고 그 사이로 작게 올라오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그 나무의, 세계수의 기척까지. 기척을 숨기는 법을 배워와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겨우였다.

“ 잠깐, 확실해? ”

“ —네. 풍경 뿐만 아니라, 동족의 기척까지 전부 느껴집니다. ”

예현의 물음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힐데를 두고 카이로스가 답했다. 그런 그에 예현은 걱정스런 눈으로 힐데를 바라보았다. 아미는 조용히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카이로스는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힐데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 정신차리게, 힐데. 지금 그곳으로 가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야. ”

정적이 흐르던 와중, 홀린듯이 발을 옮기는 힐데를 말린 것은 카이로스였다. 세계수의 자식들은 세계수를 그리워한다. 수십년간 만나지 못한 부모를 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세계수로 끌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카이로스는 세계수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힐데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 알고있어. 하지만… ”

“ [거기 누구냐!!] ”

힐데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말소리가 들리니 일단 내뱉어본 모양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 육감이 없는 자들이 없기에 그저 내뱉어본 외침이겠지만, 혹시 모르니 그들은 급하게 자리를 뜨기로 했다.

“ 우선, 저를 따라오시죠. ”

넓은 평야를 가로질렀다. 이렇게 자연으로만 가득 찬 곳을 달린게 얼마만인지, 배저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가장 후미는 힐데가, 선두는 카이로스가 지켰다. 카이로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 처럼 목적지가 있다는 듯 달려갔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윤, 예현, 아미는 그저 뒤따라고 힐데는 묘한 향기에 젖어들었다.

빠르게 달리던 카이로스가 갑작스래 멈춰섰다. 오두막 앞이었다. 사용되지 않은 지 꽤 된 모양인지 낡은 모양이었지만 관리는 꾸준히 한 모양새였다.

“ 길들이고 싶은 마물이 근처에 있을 때, 가끔 사용하던 곳입니다. ”

“ ..아드레날린 정키… ”

아미는 힐데가 종종 중얼거리곤 했던 말을 이어 받으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벽난로, 바닥에 깔려있는 러그에 부드러워 보이는 소파까지. 아주 어렸을 적에 꿈꾸던 산 속 오두막과 똑 닮은 모양이었다.

“ 나 이런데서 자보고 싶었엉! ”

“ 하하.. 그리 좋은 곳은 아닙니다. ”

아미가 이리저리 오두막을 구경다니는 것을 카이로스가 쫓아다녔다. 그런 두 명을 뒤로하고 나머지는 오두막 한 켠에 놓여있던 테이블에 앉았다.

“ 최아미. 슬슬 앉아. ”

“ 응! ”

아미가 묻고 카이로스가 대답하던 일련의 시간이 끝난 것은 윤이 아미를 부르고 나서였다. 두 명이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뗀 것은 예현이었다.

“ 힐데. ”

“ 네. ”

“ 설명해. ”

총사령관의 얼굴로 말하는 예현에 힐데는 경어를 쓰며 답했다. 예현은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힐데에게 설명을 종용했다.

“ 이곳은 —제국입니다. 생각하시는 그 제국이 맞습니다. 우리들의 고향, 뿌리를 내린 곳입니다. 분명 멸망한 것이 분명한 이곳이 어째서 멀쩡한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곳은 제국이며, 언젠가 멸망할 것이란겁니다. ”

힐데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카이로스는 힐데의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힐데가 하는 말에 무언갈 덧붙이거나 덜어내지 않았다. 그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듯한 행동이었다.

예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그리고 여기, 저와 카이로스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

“ 엥? 힐데랑 잭은 여기 있잖아! ”

“ 아뇨, 아미. 힐데가 하는 말은 여기에 있는 저와 힐데가 아닌, ‘제국에 있는 힐데와 카이로스’의 기척을 말하는 겁니다. ”

카이로스가 덧붙이며 설명한 말에 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악으로 가득 찬 얼굴은 덤이었다. 힐데는 쓰게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제국에서 지구로 넘어가기 10년 전에 죽었던 동료의 기척 또한 느껴집니다. 분명 전투중에 사망했을텐데. ”

힐데가 진중한 얼굴로 꺼낸 말에 카이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명에 윤은 짜증내듯 말을 던졌다.

“ 여기가 과거라도 된다는 뜻이야? ”

“ 아마 그럴겁니다. ”

조심스래 고개를 끄덕거리는 타이탄 두 명에 인간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상한 포탈을 넘었더니 더 이상한 곳으로 와버렸다. 물론, 조사할 가치는 충분했지만 이정도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 돌아갈 방법은… ”

“ 간이 포탈 생성기를 받아왔다. ‘현재’로 좌표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지구로 넘어갈 순 있겠지. ”

힐데가 조심스래 꺼낸 말에 윤이 답했다. 돌아갈 방법이 있냐라고 물은 것 부터가 이곳을 돌아다니고 싶단 뜻이었다. 은퇴식에서의 일을 생각해보면 힐데는 제국에 대해 꽤나 많은 미련을 두고있는 것 같았으니.

“ 예현, 저는… ”

“ 응, 나도 이곳을 조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해. ”

“ 나도 보고싶엉! 힐데와 잭의 고향이잖아? ”

윤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힐데를 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암묵적 포기이자 동의였다. 포탈 탐색조들의 본질이 뒤바뀌는 상황이었다.

“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습니다. 한 번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긴 한데… ”

“ 문제는 우리에겐 육감이 없다는 것이겠지. ”

“ 기척이 없는 존재들은 경계를 사기 마련이니까. 정답은 잠입 뿐인가.. ”

잠입에 자신이 없는 아미가 입을 다물었다. 힐데는 얼굴이 너무 알려져 있는 것은 물론, 가지고 있는 색체 자체가 너무 눈에 띄는 색체였다. 애초에 백발 금안 남성을 한 번 보고 잊는게 더 신기하지 않나. 카이로스 또한 나름 유명한 것은 물론 잠입에 자신 없었다.

예현은 제국어를 모르니.. 할 수 있는 자는 윤 뿐이었다.

“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

“ 하지만 힐데… 기사단장이라면서… ”

“ 잠입엔 자신 있습니다. ”

힐데는 순한 제국인들에게 윤을 던져넣을 수 없었다. 최대한 조용히 다니겠다는 의견을 표출해 겨우 허가를 받았다.

“ 조심히 다녀와, 힐데. ”

“ 신문 한 부 훔쳐오는게 전부인데 뭐. ”

힐데는 오두막을 나서 아까 본 마을로 향했다. 그런 힐데를 지켜보고 있던 인물이 한 명. 저 멀리서 특유의 장발을 휘날리며 그를 보고 있었다. 육감에 기척이 잡히지 않는,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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