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힐] 힐데생일축하해

૮꒰ིྀ˶꜆´˘`꜀˶꒱ིྀა 내가 몰 쓰고 싶었던 건지도 모루갯다

"엄청나네요…."

"예현보다는 덜하지 않아?"

"명단이 대단하다는 거죠."

하긴, 원로들의 이름부터 블랙 배저 본부로 날아온 팬이라는 사람들의 선물까지 총망라하고 나니 제법 그 카테고리가 다양해졌다.

"일단, 정리해야겠죠?"

그렇게 말한 예현은 하나씩 손수 상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상자의 향연과 가끔 나오는 생각지도 못한 고급품에 손이 덜덜 떨리는 힐데와는 사뭇 다른 정갈한 모습이었다. 익숙한가 보다. 힐데는 대자의 모습을 뿌듯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누가 뭘 줬는지도 확인하고 기록해놓는 게 좋습니다. 훗날 비슷하게 돌려줘야 하거든요. 어떤 방식으로든 가치가 비등한 것으로요."

"생일에 선물 받으면 많이 받는 거 힘들지 않아?"

"힘들건 없어요. 어차피 스카도 도와주고, 윤이랑 아미도 도와주니까요. …선물을 다시 보낼 때마다 좀 곤욕이긴 해요."

"정치적인 부분이라 이건가?"

"예. 아무래도 정·재계에서 들락날락하는 것도 많다 보니…. 보통은 명품으로 대체합니다만…. 아, 힐데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거의 다 호의로 온 거니까요."

"그래도 돌려는 줘야지.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해?"

팬들이 주었다는 선물상자는 한 번 개봉이 되었던 흔적이 있었다.

"아, 이런 건 배저들 앞으로 간혹 오는 선물인데 먼저 검수를 해야 해서 오픈했을거예요. 혹시 기분 나쁘실까요…?"

"괜찮아. 알고 있는 걸. 그보다 이런 건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고민이네."

"SNS에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선물 잘 받았습니다. 보통 그 정도로 대체해요."

"아, 공식적으로 하진 않는구나."

"예에. 아무래도요. 그리고 저쪽으로 치워놓은 선물들은 가볍게 되돌려주면 되는 것들입니다. 아마, 직접 담그신 술 정도의 수준이면 될 겁니다."

예현은 선물의 종류를 나누는 방법과, 답장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익히 알고 있는 일들이었지만 낮고 어딘가 탁한 목소리가 상냥하게 말해주니 느낌이 색달랐다. 새로 전출되어 교육받는 기분이었다.

기사단장직에 있을 즈음에 들이닥치던 선물 공세도 이와 비슷했다. 단순한 호의로 오는 것들과, 정치적인 문제로 오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 다행히 콧대만 높은 귀족들은 먼저 선물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상대할 일이 없었다. 그것만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도 그런 일은 비슷한 듯했다. 대체로 한 번쯤 얼굴을 본 사람들의 이름이 목록에 적혔다.

"원로들걸 빼면 신경 쓸 거 없어 보입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는 그가 총사령관으로서 하는 말인지, 대자로서 하는 말인지 헷갈렸다. 뭐, 연인으로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가 정말로 힐데가 이런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힐데에게는 이런 행동이 몹시 귀엽게 느껴졌다.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다우면서도 내밀하게 세심히 굴었다. 시간이 없을 텐데도 시간을 꾸역꾸역 내어 "오늘 반나절, 시간 있습니다." 하고 비장한 얼굴로 쳐들어오지 않았던가.

이유를 묻자 하니, "제가 직접 알려 드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요." 랬다.

알고 있는 것들임에도 처음 배우는 것처럼 구는 이유는, 아마 그가 '연인'처럼 굴기 때문이렷다.

예현은 이따금 과하게 다정해졌는데, 그러다가는 냉큼 '우리 연애할래요?' 라고 물었다.

윤은 그걸 보고 고백공격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보고하러 갔다가 들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예?'

'아니, 아…. 이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시간을.'

'새, 생각해주세요. 그, 생각 없이 뱉은 말은 아니니까.'

아무리 봐도 생각 없이 뱉은 말 같았다. 타이밍이 말이다.

그 뒤로 한참을 다정하게 굴고 머쓱해하고 하기에 귀여워서 냅다 오케이를 날렸다. 사수가 진짜 난데없는 개족보라며 일갈했지만, 대자가 좋다는데야 뭐,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이 맹랑한 연인은 대자와 대부의 관계를 끊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해봐도 정말 개족보였다.

"예현."

"미안해요."

"뭐가?"

"이런 거 다 알고 있잖아요."

"새로 가르쳐주니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뭐."

난 좋아.

귀여우면 끝난 거라는 한국의 속담이 있다고 했다. 누가 아미를 보고 했던 말인데, 힐데는 그걸 예현에게 덧씌웠다.

귀여워보이면 끝났다더니, 나는 끝이 났구나.

대자랑 연애하고 있어… 내 대자랑… 이게 맞아?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자는 연애를 원했고, 제법 어른스럽게 굴며-물론 어른이었다-다가왔다. 그래놓고서 어느 날은 "힐데, 거리감이 너무 없어요!" 라고 외치며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힐데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고, 상자를 물었더니 아미 대신 윤이 몸통과 팔 사이로 손을 쑥 넣으며 힐데를 대롱대롱 들어 올렸다. "이렇게 남이 접촉하는 데에 저항감이 없는걸 말하는 거랍니다, 영감님." 그러더니, "그러니까 성추행이나 당하지."랬다.

억울했다!

남자들끼리 검을 부딪치고 싸우고 뒹굴다 보면 더한 놈들이 많았다! 서로 가슴근육이 어떻다며 주물럭대는 놈들 사이에서 제 나름대로 거리감을 지켰단 말이다!

윤은 이래서 환경이 중요한 거라며 혀를 차고 정강이를 깠다. 그놈의 개족보나 좀 해결하라며.

"무슨 생각 해요?"

"윤이 족보 해결하라고 한 거…."

"… …."

망설인다. 고민한다. 귀여워라.

이런 대자 덕분에 눈칫밥만 늘었다.

그의 말,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예현인지 구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애라는 관계에서도 존댓말을 쓰는 예현덕에 가끔 헷갈렸다. 이런 방면에서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연애라는 건 어려웠다.

힐데는 대개 예현에게 상냥하고 상명하복이 제대로 박혀있는지라 대화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물론 연인으로서 한 말에도 복종한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다. 그래서 앞으로가 걱정됐다.

이 모든 행동이 연애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인데, 예현은 웃기만 했다.

"윤이 당신을 많이 아끼나 봐요…."

라는 말만 했다.

"너를 아끼는 거지."

윤을 알고 힐데를 알면서도 질투하는 것처럼 아랫입술이 조금 삐쭉 나와 있었다.

덕분에 힐데는 파안대소했고 예현은 부끄러워했지만, 웃음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생각보다 선물뜯기가 지루했다. 그 틈으로 작은 질투가 흘렀다.

너희의 관계가 부러웠다. 둘도 없고 익숙한가 보다 갈아질 것 같지 않은 관계. 나 또한 그런 관계가 있었다. 가지고 싶었다.

너와 함께라면 가능할까?

모든 연애는 끝을 고하는 법이라던데, 너와 내가 끝의 끝을 넘어 쪼개지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카일과 레이가 내게서 어떤 것을 가지고 떨어져 나갔듯이, 너 또한 떨어져 나갈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늘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렉시크 누들은 문 닫았는데…."

예현은 애매하게 웃었다.

"몸이 줄어들었다고 힘들어하셨잖아요. 단백질 보충하러 가요."

"힘이 부족한거지 몸을 키우려고 하는게 아니니까 괜찮아. 예현이 고생했으니까 고기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영차영차 선물을 옮기며 말하는데 예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는게 시야끝에 걸렸다. 이내 그는 기록하던걸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도 좋아하고 있어요. 힐데."

"나도 좋아해."

"예현."

"나도 예현이 좋아해."

꼭 이름이 들어간 고백을 받아야만 성에 차는 미소를 짓는 연인을 보고 한숨쉬듯 웃음을 터트린 힐데는 제 사수의 개족보라는 발언은 뇌의 너머로 넘겨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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