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배저 2차

[예현힐데] 산군 - 4

야근햇어요. 방금전까지. 스페이스이름 잠깐보기.

두시전에자자 by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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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은 제 집인 양 방 안에 앉아 있었다. 힐데는 최윤의 앉으라는 손짓에 마주 앉긴 했는데, 그러곤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극도로 어색한 적막함이 방 안을 메웠다. 그 동안 최윤은 시꺼먼 눈동자로 빤히 힐데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힐데는 이게 노려보는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던 최윤이 처음 꺼낸 말은 제법 엉뚱한 축에 속했다.

“사냥꾼이요?”

“예?”

“사냥 다니시냐고.”

“아니… 전혀요. 탁상물림입니다.”

“그런 거 치곤 풀 냄새며 짐승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노려보는 것이 맞았던 모양이다.

“아, 오기 전에 시전엘 좀 들렀습니다. 약재상과 피혁상에 들러서 그런가 봅니다. 냄새가 그렇게 짙습니까?”

“진하다 마다. 품에 가축이라도 품고 온 줄 알았네.”

어느새 상대가 말을 놓았다. 이런 치인가 하여 힐데는 별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의원께서는 이 동네 분은 아닌 듯 한데요. 어디 멀리서 오셨습니까?”

“한양.”

말이 짧아도 이렇게 짧을 수가 없다. 그러고는 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한다.

“뭐 하나 물읍시다.”

이번엔 또 존댓말이다.

“아, 아는거라면야….”

“예현이 저놈이 약 먹는 꼴을 혹시 보았소?”

“예? 어디가 아픕니까?”

“봤냐고.”

음. 재깍재깍 답이 없으면 곧장 말이 짧아지는군.

“전혀… 못 봤습니다. 지병이 있는 겝니까?”

“약재상에 가거나 따로 의원을 본 적도 없단 말이지.”

“예. 적어도 제가 볼 적에는 한 번도….”

그 말을 들은 최윤의 표정은… 힐데베르트는 맹세코 그리 섬뜩하고 사나운 얼굴은 평생에 처음 보았다. 절로 어깨가 좁혀졌다. 의원의 탈을 쓴 야차가 끓는 용암처럼 씹어 말했다.

“약을.”

“예… 예.”

“약을 두고 갈 터이니… 저놈이 하루 한 번 어김 없이 먹도록 감시 좀 하십시오. 저 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아주 용을….“

“윤. 힐데 괴롭히지 마.”

두 남자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소창의 차림의 예현이 문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창백한 낯에 식은땀이 맺힌 모양이 누가 봐도 병자의 상이었다.

“지금 네놈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예현…! 이리 돌아다니면 어찌 해. 어서 들어가 쉬어.”

“이제 좀 살만한 차인데요.”

“그게 살만한 거면 저어기 건넛집 제사는 잔치냐? 까불어, 이게.”

“아냐, 정말로…”

그러나 거기까지 말한 예현은 금세 비틀거렸다. 힐데가 벌떡 일어났으나 의원의 몸놀림이 훨씬 빨랐다. 그는 인상을 잔뜩 쓰고 혀를 차더니 마른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곤 고개만 살짝 돌려 힐데에게 말했다.

“좌우지간 이놈 먹일 약은 행랑어멈에게 맡겨 둘테니 부탁 좀 하겠습니다.”

“그, 그… 무슨 약입니까? 무슨 병이기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

힐데는 아연하여 입을 쩍 벌렸다. 최윤은 그 얼굴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고 덧붙였다.

“홧병이오.”

최윤은 예현을 이부자리에 던져두곤 약재상 구경이나 가야겠다며 훌쩍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예현은 누운 채 눈을 꿈뻑였다. 하도 많이 자서 그런지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 멍하니 천장의 나무 무늬를 그리다 문 밖의 낌새를 눈치챈 예현은 조금 고민하다 목소리를 내었다.

“힐데. 들어오셔도 괜찮아요.”

오락가락하던 인영이 뚝 움직임을 멈췄다. 예현은 샐샐 새는 웃음을 이불 속으로 숨겼다. 힐데는 참 알기 어려운 사람이지만, 이따금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이 된다. 곧 문이 달각 열리고 힐데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으음, 쉬는 데 내가 방해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이틀 넘게 누워만 있었는데요. 잠도 안 옵니다. 차라리 말벗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예현은 일부러 앓는 소리를 내 봤다. 어떨까. 속으로는 조금 조마조마했다. 이내 힐데가 발소리 없이 문지방을 넘어와선 예현의 옆에 앉았다.

“누워 있어.”

힐데가 만류했으나 예현은 굳이 일어나 앉았다. 아까 최윤이 괜한 말을 한 터라 눈치는 보였지만 그렇다고 힐데 앞에서 세상 편하게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미묘한 정적을 깨고 힐데가 예현에게 물었다.

“올해 사또가 몇 살이지?”

“저,,, 스물 넷입니다.”

“허어… 약관을 겨우 넘었는데 어찌….”

왜 물어보나 했더니….

아무래도 힐데는 그 ‘홧병’에 대해 물어보고싶어 근질근질해 보였다. 이대로라면 모든 것을 물어보겠지. 그러면 자신은 모든것을 다 대답할 수밖에 없다. 예현은 그냥 제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힐데. 저 약 먹었었습니다. 힐데가 안 볼 때요.”

“정말이냐? 이런, 의원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 둬야…”

“여기 오고서 일주일 정도지만요.”

힐데의 눈이 홱 가늘어졌다. 그렇지만 힐데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믿어주세요. 괜찮아서 안 먹은 겁니다.”

“괜찮은 걸 네가 판단하면 어찌해? 그건 의원이 판단해야지.”

“진짜예요. 여기 오고 나서 바쁘게 일하다 보니 화든 무어든 다 잊혀지던걸요. 공기도 좋고, 힐데 공도, 음, 많이 도와주시고. 힘든 것이 없습니다.”

“…….”

“굳이 따지자면 지금이 여기 와서 가장 힘든 순간인 것 같긴 한데요… 막 열도 나고. 기운도 없고.”

나름 농담조로 던진 말인데 어째 힐데는 더 시무룩해졌다. 예현은 필사적으로 덧붙였다.

“그, 정말입니다. 열도 이제 다 떨어졌어요.”

“…정말이야?”

“네, 재어 보세요.”

예현은 능청스레 몸을 기울여 이마를 내밀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리사욕이었다. 조금 닿아 보고 싶었다. 늘 상상하던…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금빛 눈동자가 훅 다가왔다.

“그래도 미열은 있는 듯 한데.”

이마가 툭, 닿았다.

“……!!”

온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저항은 커녕 말 한 마디 꺼낼 겨를이 없었다. 손으로 이마 언저리나 짚어볼 줄 알았지, 이렇게, 이렇게….

“얼굴은 아직 붉은데… 사또야?”

고장난 듯 삐걱대던 예현이 겨우 대꾸했다.

“누…가 열을 잴 때 이렇게 재요?”

뱉어놓고도 아차 했다. 역증을 내려던 게 아닌데…! 와중에 힐데는 또 엉뚱한 반응이다.

“원…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었어?!”

먼저 놀란 건 예현인데 힐데가 더 당황한 것 같았다. 예현은 상대의 당황에 숨어 얼른 말했다.

“보통은 손, 손으로 하지요…!”

“손으로? 이, 이렇게?”

힐데가 예현의 얼굴 가까이 두툼한 손을 들더니… 볼을 감쌌다. 이건 더… 아니… 그…!

“이것도 아니야?”

“아까는 이마를 재어 주셨지 않습니까. 이마를 짚으셔야죠….”

목소리가 졸아들었다. 힐데가 쩔쩔매며 사과했다.

“미안해… 그, 몰랐어. 내 열을 재 줬던 사람은 그렇게 했었거든. 이마를 맞대어서….”

누가?

당신을? 당신과?

신경질처럼 물음이 차올랐다. 예현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러나… 바로 코앞의 하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자 그 무엇도 따질 틈이 없었다. 홀린다는 게 이런 것일까.

아름다웠다, 너무도…

“예현.”

눈이 다시 마주쳤다. 여전히 그의 눈빛엔 당황이 있었다.

그러나 확신도 있었다.

“미안.”

왜 자꾸 사과하는 걸까? 당신이 미안할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러나 그 사과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버석한 입술에 여린 살이 맞닿았다.

크게 뜨여진 검은 눈동자에 비친 금빛 눈동자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몇 번 가볍게 부딪친 입술은 착각이 아니라는듯 예현의 입술을 눌렀다.

그러나, 그러나 언젠가 꿈꾸던 상황에 다다른 예현이 가장 먼저 마음에 담은 것은 벅참도 기쁨도 아닌 불신이었다. 그는 의심하고 재차 의심했다. 그 스스로도, 그리고 당신도… 이게, 꿈이 아닌 거야? 열이 너무 올라 환각을 보는 게 아닌가? 서로 같은 마음일리 없는데. 정말 힐데베르트, 당신이 내게?

당신은 이것도 실수라고, 잘 몰랐다고 할 거야?

생각은 길었는데도 접문은 짧았다. 힐데는 천천히 물러났다가, 예현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미안해. 이제 안 할게… 그런데 나는… 네가 어여쁘고 너무 좋은데… 이런 것도 처음이라,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

그런 거였나.

“힐데 공.”

예현은 그래서 저 또한 자신을 조금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미워하지 마….”

“힐데.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힐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얼굴에 점점 환희가 물들었다. 달처럼 밝아진 표정을 보며, 예현은 힐데의 다른 손을 끌어당겨 달리기라도 한 듯 빠르게 뛰는 제 가슴팍에 대었다.

“어느샌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같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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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작은 고래

    둘이 사랑하는 와중에 윤운 제사 드립이 기가막혀서 기절할것 같아요 ㅋㅋㅋ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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