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OC] 모카, 데일리, 트와일라잇

천문대 by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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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카는 병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모카를 위한 1인실은 모카에 맞춰져 모든 것이 놓여져 있었다. 그렇기에 데일리가 앉을 자리도 있었다. 데일리는 병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는 몇 권의 책을 함께 가지고 왔다. 데일리가 자리에 앉았지만 모카는 왠지 더 TV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데일리는 뚱한 표정으로 함께 TV를 바라보았다. 모카가 보는 건 뮤지컬이었다. 배우들의 음악이 모카의 귀에 꽂혔다. 그걸 보다 못한 데일리는 투덜대듯이 모카에게 무어라 이야기했다. 보고 싶어서 그래? 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걸 하는 사람들은 무척 멋져 보여서. 나도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데일리는 침묵했다. 보면 되는 거 아냐? 그 물음에 모카가 데일리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렇다. 보러 가면 되는 것이었다. 모카가 입원환자인 상황인 건 맞지만 외출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모카는 중얼거렸다. 그럼 보러 갈까. 엄마한테 말하면 들어주실텐데. 근데 어디를 가야 할까. 모카는 그리 걱정하다가 데일리를 돌아보았다. 데일리는 그새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나 한다. 데일리의 말에 모카가 데일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모레. 이 근처에서 스마일링 티켓이라는 극단이 뮤지컬을 한다네.

모카는 재빠르게 제 휴대폰을 꺼내 그 극단의 이름을 검색했다. 스마일링 티켓. 자신들만의 대본으로 뮤지컬을 이어가는 작은 뮤지컬 팀이었다. 조금만 검색해봐도 극단의 작가 ‘데이브레이크’ 에 대한 극찬이 아주 많았다. 대표작으로는 ‘BitterButter’ 라는 작품이 있었다. 다만 데일리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BitterButter가 아닌 ‘눈의 세계’ 라는 작품이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 작품도 꽤 인기가 있어보였다. 벌써 표가 다 팔리진 않았을까? 모카가 데일리에게 묻자 데일리는 한숨을 내뱉으며 모카를 바라보았다. 보고 싶어? 모카가 고개를 끄덕이면 데일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모카에게 보여주었다. 표를 구매했다는 안내서가 떠 있었다. 모카가 눈을 크게 떴다.

자리가 조금 남아있길래.

두 사람의 자리는 조금 구석이었다. 모카는 그것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니까. 모카는 모레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면서 괜히 칭얼거렸다. 데일리는 그 칭얼거림을 받아주지 않았다. 데일리는 자신이 가져온 몇 권의 책을 꺼내 모카에게 보여주었다. 네가 부탁했던 책들. 구하느라 힘들었어. 데일리가 그리 이야기하긴 했지만 아마 서점에서 전부 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평소의 게을렀던 데일리를 생각하면 무척 고마운 일이긴 했다. 서점까지 가는 것도 무척 귀찮아했을게 뻔했다.

모카는 데일리가 가져온 책들을 읽는 걸 좋아했다. 가끔은 데일리에게 직접 책을 골라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직접 좀 하라면서 불평을 내뱉었던 데일리도 생각났다. 그럼에도 데일리는 책을 늘 구해왔다. 츤데레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냥 투덜거리는 귀차니즘 많은 누군가였다. 데일리는 그런 생각을 하는 모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쨌든 실로 평범한 관계였다. 그래. 너무도.

스마일링 티켓의 데이브레이크. 모카는 그 이름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스스로의 세계를 표현하는 한 작가의 이야기가 모카에게는 너무도 궁금했다. 모카는 한 책을 꼭 끌어안았다. 언젠가의 꿈을 이루길 희망했다. 배우라는 이름의 꿈을 이루기를 그는 간절히 희망했다. 그것이 아주 먼 미래가 되더라도 최소한 이 생의 안쪽에서는 어떻게든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모레가 오겠구나.


모카는 데일리와 함께 병원 바깥으로 나왔다. 병원 바깥은 병실보다도 무척이나 넓었다. 당연했지만 말이다. 극장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작은 뮤지컬 극단이라고 했는데 극장은 꽤 대극장—모카의 기준으로는—이었다. 그만큼 스마일링 티켓이 유명한 극단이라는 걸까. 그런 유명한 극단의 뮤지컬을 볼 수 있다니 행운이다! 그것도 이틀 전에 예매했는데 표도 얻을 수 있었다니 역시 행운이다! 모카는 행운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모카는 즐거움에 차올라 있었고 데일리는 아무 생각 없이 창 밖만 보고 있었다. 데일리. 기대되지. 그치? 뮤지컬이잖아. 데일리는 모카의 말을 무시했다. 모카가 데일리를 콕콕 찔렀다. 데일리? 그리 물어도 데일리는 모카를 바라보지 않았다. 모카는 금방 흥미를 잃고 팔짱을 끼며 다시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버스는 점점 그들이 바라는 종착지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도 모두 공연을 보러 온 걸까? 데일리는 모카의 손목을 붙잡고 극장으로 향했다. 늦기 전에. 그리 이야기하다 데일리는 화장실부터 다녀오라 이야기했다. 여기는 구조가 복잡해서 길을 잃기 쉽다고.

잠깐 다녀올테니까. 먼저 나왔으면 앞에 서 있어.

그러고 모카와 데일리는 각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모카는 여자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줄이 꽤 길었다.

모카가 나왔을 때에 데일리는 아직 나오지 않은 채였다. 모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모카랑 톡 부딪혔다. 그 순간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무언가가 바닥에 우수수 쏟아져있었다. 뭔가 소품처럼 보였다. 모카는 다급히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우면서 이야기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옆에서 누군가가 함께 바닥의 소품들을 줍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금방 소품들은 상자에 들어갔다. 목소리의 주인은 모카를 향해 밝게 웃었다.

눈의 세계 보러 오셨나요?

모카가 고개를 끄덕이면 목소리의 주인이 환히 웃었다. 좋은 선택이에요. 스마일링 티켓은 무척 멋진 극단이거든요! 데일리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모카가 여자화장실 쪽을 힐긋 보자 질문이 들어왔다. 기다리시는 일행이 있으신가요? 네. 친구랑 같이 왔거든요. 그는 소품이 든 상자를 챙기고 이내 손을 흔들흔들 흔들었다. 분명 행복할 거예요. 즐거운 뮤지컬 관람 되시길 빌게요. 그는 금방 어딘가로 향했다.

곧 데일리가 모카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누구랑 얘기하고 있었어? 데일리의 물음에 모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자. 데일리가 모카의 손목을 잡았다.


눈이 내립니다. 짙은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릴 정도의 눈이.

눈의 세계에서 모카가 제일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주인공과 그 조력자가 가면을 쓰고 혹한의 세계를 나아간다는 점이었다. 주인공과 조력자의 목표가 나오지 않은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장면은 눈의 세계의 눈이 더욱 강해져서 결국 두 사람마저도 정체되어버린 장면이었다. 주인공이 제 가면을 내려놓았다. 몸을 돌리고 있었어서 관객석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걸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게 어디 있어. 일어나, 할 수 있잖아.

조력자의 위로에도 주인공은 절망한 것처럼 보였다. 곧 조력자가 관객석 쪽을 돌아보았다. 조력자는 가면을 천천히 내렸다. 데일리가 옆에서 모카에게 속삭였다. 눈의 세계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곳이야. 자세한 건 직접 보라면서 데일리는 다시 무대를 바라보았다. 조력자가 가면을 내리면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력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음악이 되었다. 모카는 그 순간을 바라보면서 조력자에게 그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얼굴 같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익숙한 미소.

분명 화장실 앞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찬란하게 울렸다. 감정이 섞인 외침을 내뱉는 조력자에게 주인공도 용기를 얻은 것 같았다. 음악이 두 사람의 듀엣으로 바뀌어갔다.

눈의 세계라도.

길이 막히더라도.

끝내 우리는 나아갈 거니까.


극이 끝나고 사람들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모카는 자리에 앉아있다가 데일리에게 물었다. 아까 조력자 역 하셨던 배우 분, 어떤 분이야? 데일리는 기억을 되짚었다. 트와일라잇이었을걸. 극단 최고의 연기자. 확실히 그래보였다. 마지막 그 장면에서 무엇보다 찬란하게 퍼져나갔던 그 감정에서 모카는 충분히 느꼈다. 저 사람은 강렬한 연기자구나. 저 사람은 뮤지컬을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무척이나 연기도 잘 하셨고 말야. 모카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무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퇴장 안 해요?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 트와일라잇이 있었다. 모카는 순간 깜짝 놀라 왁, 하고 트와일라잇을 바라보았다. 트와일라잇이 웃음을 내뱉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저 아무짓도 안 했는데. 데일리는 태연하게 종이 한 장과 책 한권을 꺼냈다. 펜과 함께. 데일리는 책 위에 종이를 올려두고 트와일라잇에게 건넸다. 싸인해주세요. 제 친구가 팬이거든요. 모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데일리를 돌아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와일라잇은 웃음을 내뱉었다가 이내 펜을 받아들었다.

이름이?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했다. 모카는 작게 제 이름을 이야기했다. 트와일라잇은 능숙하게 싸인을 해 모카에게 건넸다. 모카의 이름이 그의 글씨체로 적혀져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슬슬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슬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세 사람은 극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실로 돌아오기 전 모카는 데일리의 도움을 받아 싸인을 받은 종이를 코팅했다. 병실 침대에 앉은 채로 모카는 그 종이만을 바라보았다. 이 종이에는 꿈이 새겨져있구나. 모카는 종이를 구겨지지 않도록 끌어안았다. 나도 트와일라잇 님처럼 멋진 배우가 되고 싶어. 그런 꿈을 품으며 모카는 눈을 깜빡이다 침대에 누웠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기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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