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자발라른

[케발라] 일그러진 거울 - 2

케이드 x 자발라

* 케이드x자발라 

* 공미포 2700여자 

* 비공계 계정에서 풀었던 썰 이용 

* 지나간 시즌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 데가 설정에 대해 아는 게 없음: 오류 발견 시 수정 

* 개인적인 설정 다수 추가 

 부르지 않은 타르지가 귀와 어깨 사이에서 둥둥 떠다닌다. 직접 말을 거는 대신 간접적인 행동으로도 충분히 제 뜻을 전한 고스트를 향해 자발라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의체 끝으로 이마를 가벼이 건드린다. 벅찬 상냥함이 닿는다. 다시 모습을 감춘 타르지의 시선이 향했을 곳을 바라보았다. 두어 걸음 앞, 바닥에 새긴 스페이드 에이스가 둔탁하게 빛난다. 자발라의 시선이 닿는 곳에 남아 영원히 탑에 갇혀버린 상징.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가 가장 원하지 않았을 기억 방법이다. 그리고 동시에…….

“참 자발라, 너다운 방식이야.”

 라고 말했으리라.

 익숙한 신발 코가 스페이드 에이스를 톡, 밟는다. 살랑이지 않는 발걸음을 바라보던 자발라가 고개를 들었다. 탑을 오가는 수호자들을 뒤로 둔 엑소의 형상이 상냥한 척 웃는다.

“그렇게나 케이드를 가두고 싶었어?”

 지금 이 곳에서 대답하면 많은 이들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령관을 쳐다볼 것이다. 평상시에 하던 다짐, 후회, 초조함, 그 어떤 것도 아닌 상대를 상정한 대화의 내용을 들었다면 아이코라를 비롯한 여러 이들이 달려올 것이다. 자발라는 대답을 참았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이 무어라 대답할 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케이드가 탑에 머무르길 바랐다. 어째서? 그가 생기를 잃어가더라도 곁에 있기를 바라서? 아니면 헌터 선봉대장에게 최소한의 책임감을 적당히 요구하기 위해? 알 수 없다. 자발라는 가끔 케이드가 탑을 떠나는 상상을 했었다. 돌아보지 않고 시원스레 참새를 몰아 질주하는 뒷모습은 선연하여 상상이 아닌 어떠한 과거나 미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가 그렇게 무책임한 이가 아닌 걸 알면서도.

“놓아줘, 알잖아. 케이드는 이런 방식을 원하지 않았을 거야.”

 쾅 짓밟는 발길에도 바닥은 그대로다. 자발라는 신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제가 만든 케이드의 묘비를 바라보다 고개를 느릿하게 돌렸다. 엑소의 형상을 외면하고 바라보는 여행자는 오늘도 고요하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너도 가끔은 나가고 싶어했잖아. 나가서, 최후의 도시를 둘러본다는 명목으로 케이드랑 탑을 벗어나서 걷고 싶었으면서. 도시는 못 벗어나도, 최소한 케이드가 그렇게 답답해하는 탑이라도 한 번쯤 나가고 싶어했는데, 왜 이젠 네가 처박아둔 케이드의 흔적을 등지고 여행자만 눈에 담아? 케이드의 상징이 이젠 그에 대해 모르는 수호자들의 발 아래 짓밟히길 원해?”

 자발라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 형상을 향해 몸을 돌려 지친 눈길을 보냈다. 발을 두어 번 구른 형상이 뒤돌아 멀어진다. 너덜너덜한 망토가 흔들리고 망설임 없는 걸음은 모든 수호자들을 그대로 통과하고 스쳐 지난다. 저도 모르게 들어올릴 뻔한 손을 내렸다. 주먹 쥔 손아귀는 잠시 후 다가온 어느 화력팀의 보고서를 받아들 때까지 펴지지 않았다.

“사령관님.”  

"수고했네.”

“그래, 수고했어. 우리 수호자들.”

 스쳐 지난 수호자들을 돌아본 형상이 손을 명랑하게 흔든다. 짐짓 쾌활한 목소리에 돌아갈 뻔한 시선을 단단히 굳힌다. 인사를 건넨 수호자들이 현상금을 확인하고 떠날 때까지 뿌리박고 있던 자발라가 고개를 들었을 때, 역시 그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 우리 나중에 데이트하자. 우주는 아직 미지의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무서워만 할 대상도 아니야! 그냥 별 가득한 밤 하늘 아래도 좀 걸어보고, 어? 나랑 참새도 한 번 몰고. 내가 살살 해 줄게.

 왼 쪽 난간에 걸터앉은 케이드가 재잘재잘 말을 건다.

- 너랑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 지 넌 모를 거야. 다 말하면 아마 사흘은 걸리겠지?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이야기해도. 여기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도 엄청 많아.

 그리고 웃는다.

 그 쏟아지는 말 속에서 단어들을 분류하는 건 꽤 재미있었다. 자발라는 케이드가 제 화력팀원으로 말할 때, 헌터 선봉 대장으로 말할 때, 친구로 말할 때, 애인으로 말할 때, 그 모든 순간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한 문장 뒤 바로 다른 대상을 대하며 이야기해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자발라가 화법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진 뒤 케이드는 마치 모든 문장을 서로 다른 색의 실로 엮어버린 것처럼 섞어버렸고, 자발라는 그 또한 기꺼이 달갑게 받아들였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그 모든 말의 색채들은 다채롭고 눈부셔서 고왔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달게 속삭이는 모든 글자들은 또 얼마나 선연했던가. 아직까지 남아 추억이란 이름으로 자발라의 곁을 맴돈다. 몸을 왼 편으로 조금 숙였다. 케이드가 앉은 그대로 상체만 조금 젖혀 물러난다.

- 아무리 그래도 뽀뽀는 곤란하지.

 그리곤 웃는다. 이 때 자신은 분명히, 케이드의 후드에 붙어 있던 정체 모를 얼룩을 털고 물러날 생각이었다. 때맞춰 찌르고 들어온 장난스러운 말에 후다닥 떨어진 자신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그대로 난간에서 뒤로 넘어갈 뻔 했었고. 자발라는 한 걸음 더 내딛었다. 건드리지도 않은 얼룩은 여전한데, 케이드는 자발라가 오건 말곤 그저 크게 웃는다. 그러다 케이드의 몸이 기울어지려는 순간, 자발라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내딛었다. 그리고, 이미 기울어진 몸을 잊어버리고-

“자발라.”

 차가운 케이드의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뒤에 선 케이드의 목소리에 난간을 짚고 눈을 깜빡인 자발라가 고개를 돌렸을 때, 엑소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힐끗 보곤 다가온 한 수호자가 어지러운 것이냐고 묻는다. 자발라는 느리게 고개를 젓고 그 수호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 핑계로 가져온 패드 위 글자들을 읽었다. 큰 문제는 없어 고개를 끄덕여 돌려보냈다.

 그러면 이제 누가 큰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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