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대만] 제가 소꿉친구 신부(2n세,남자,대학생)의 신랑이라고 합니다만, 중요한 신부가 잊어버렸다?!

6/10에 열린 태섭대만 온리전 OK 패스 보낼게요 에서 낸 신간입니다.

쇼타오니, 짝사랑이 중심된 소재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일독을 삼가하여주세요. 

후기 미포함 23000자 정도. 재판 예정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아해!! 평생 책임질게! 진지하게 생각해 줘!!”

엘리베이터에 탄 동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닫히는 문을 잡으며 열림 버튼을 연타하는 모습이 보인다. 야. 재미있냐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대만의 입에서 절로 엥? 하는 소리가 새었다. 아이고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와하하 웃으며 평소처럼 태섭이의 머리를 헝클리면서 놀리는 반응을 하기에는. 불쑥 마주친 태섭의 얼굴을 보고는 행동이 멈춘다.

붉어진 얼굴, 숨을 씩씩거리는 시선은 옅지만 물기가 고여서, 반질거렸다. 열이 오른 탓인가 눈가가 발갛게 부어 마냥 어린 얼굴이 더 애 같아서. 당장이라도 수건이라도 하나 쥐어 들고 얼굴을 문질러서 닦아줘야 할 거 같았다. 물론 그러면 태섭이 녀석이 아, 하지마. 아냐. 싫어. 하고 따박따박 거부할 테니까 생각으로 그치지만. 아무튼, 눈앞의 태섭이는 울지는 않지만.

어릴 적부터 봐온 사이에 대충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억울한데, 화는 나지 않았고. 오히려 답답해서 꽥하니 소리 지르고 싶은 것 같으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아서 꾸욱 눌러 참는 게 보였다. 난감함에 옅게 앓는 소리가 나오자. 태섭이 도끼눈을 뜨고 본다. 젖살이 아직도 남아서 말랑거리는 뺨이 퉁퉁 부어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은 기쁘게 놀려먹었을 텐데.

이유 없이 죄인이 된 고로. 대만은 요 심내 복잡한 꼬맹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밤에 제대로 잠도 안 올 것 같았다.

※※※

 

태섭이 대만을 처음 본건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태섭의 가족은 커다랗고 재미있는 큰 형 준섭과 태섭과 나이가 얼마 차이 안 나는 동생 아라 그리고 풍채 좋은 아버지와 조금 말수가 적고 행동이 보드라운 어머니 향까지 5인 가족이었다. 

태섭은 궁금한 걸 못 참는 아라나 이리저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준섭의 영향을 받아서 밖을 다니는 건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과 쉽게 친해지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태섭을 잘 알아서 준섭은 대만과 만나기 전날 대만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게 대만이야. 하고 대만의 얼굴을 보여주며 조금이라도 태섭이 낯을 덜 가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하루 내내 앨범을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원래도 낯을 안 가리는 아라는 준섭의 이야기를 듣다가 질려서 엄마를 찾아 나갔고 태섭은 준섭의 말을 꼭꼭 씹어 넘기며 응, 응,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갯짓을 따라서 살랑거리는 곱슬곱슬한 태섭의 머리카락을 준섭이 쓸어 넘기면서 내일 대만이랑 만나면 형이 엄청난 사실을 알려 줄 테니까. 하고 히죽히죽 웃어댔다.

태섭은 준섭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뜨며 웃을 때면 그 몽글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꼭 부모님한테 혼나는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았지만, 태섭의 경험상 그런 준섭이 저지르는 일은 대부분 무척이나 재미있었으므로 준섭의 웃는 얼굴을 보면 늘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들뜬 태섭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그 얼굴을 보면서 준섭은 다른 마음으로 키득거렸다.

얼렁뚱땅 끝내주는 동상이몽이었다.

 

***

 

아라는 집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 놀러 간다는 것만으로 좋았는지 훨훨 뛰어다니면서 차 안을 소란스럽게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앉은 운전석 쪽 좁은 틈에 몸을 비벼 끼워서 앞으로 넘어가려고 한 통에 결국 위험한 짓을 하면 되냐고 크게 아버지에게 혼나버렸다. 준섭은 그 모습을 어딘가 찔리는 얼굴로 본다. 크게 혼난 아라가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엉엉 울기 시작해. 결국 어머니 품에서 다독임을 받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태섭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뚜쟁이마냥 대만의 칭찬을 즐겁게 늘어놓는 준섭을 약간 심술 난 눈으로 본다. 우리 형인데. 나보다 그 형이랑만 재미있게 논 것처럼 굴어서. 그게 나름 속상했던 태섭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준섭이 볼을 꾹 찌르면서 장난을 친다 아,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그런 투닥거림이 잠깐 이어지고 곧 고개를 준섭이 안 보이는 곳으로 팩하니 돌린 태섭이 별다른 전조 없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본 준섭이 태섭의 어깨를 잡아 편하게 눕혀준다. 안 잘 거야. 칭얼거리는 걸, 아 그래? 형아 다리가 추워서 태섭이가 좀 데워줘. 하고 시답잖은 말을 하면서 머리를 토닥거린다. 태섭은 무어라 웅얼웅얼 말을 뱉었지만, 졸음으로 발음이 뭉개져서 하나도 닿는 말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흔드는 움직임에 눈을 뜬 태섭이 눈을 비빈다. 준섭이 그 손을 잡아 말리면서 왜 간지러워? 하면서 한번 보자. 하고 눈가를 샅샅이 살핀다. 태섭이 귀찮다고 형의 얼굴을 밀어내니 준섭이 아이, 하고 태섭의 투정을 귀여워하면서 물티슈를 꺼내 얼굴을 쓱쓱 닦는다. 그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는 허허롭게 웃는다. 준아. 섭이 챙겨서 얼른 들어가라. 섭이도 졸리면 방에 누워서 자라고 하고.

아버지의 말에 잠이 깬건지 태섭이 안 잘 거야. 하고 투덜거렸다. 말 전달 게임도 아닌데 준섭이 안 잔다네요~. 하고 굳이 아버지께 말을 전한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차 다시 해야 하니까 얼른 내리기나 해. 하고 투박이나 날렸다.

준섭이 그 말을 듣고 태섭을 품에 안아 든다. 태섭이 아, 걸을 거야! 하고 바둥거렸고. 준섭이 얌마, 아버지 차는 단이 높아서 너 혼자 못 내려. 하고 종알거린다. 그 말을 들은 태섭이 정말로 화났다는 듯이 표정을 굳힌다. 그리곤 뱉는 말이.

“내가 송아란줄 알아?”

였다. 걔는 안 될지도 몰라도 나는 된단 말야. 형 귀찮아. 저리 가! 하고 준섭의 품에서 빠져나와서는 아버지 승합차에서 쏠랑 뛰어내리곤 준섭을 향해 혀를 쭉 빼고는 숙소로 후다닥 들어갔다.

토다닥 달리는 태섭의 뒤로 준섭의 웃음소리와 승합차의 문닫히는 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 들어간 숙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어머니와 쿠쿠 코 고는 소리를 내면서 자는 송아라만이 있었다. 준섭이 노래를 부르던 정대만이 없어서 제법 토라진 태섭은 흠하고 입을 삐죽거렸다. 오리처럼 튀어나온 입을 언제 다가온 건지 준섭이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우리 둘째 막내 잔다고 막내 노릇 해주네. 하고 장난친다. 태섭이 하지 마! 하고 준섭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퍽 때렸다.

준섭이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풀썩 스러진 꼴이 제법 애틋했다. 큰 소리에 놀라 내다본 향이 바닥을 구르는 준섭과 씩씩 숨을 내쉬는 태섭을 보고 어휴 한숨 쉬고는 둘 다. 방에 자기 짐 옮겨야지. 하고 잠든 아라를 두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

“준아, 대만이 없는데?”

“어엉 대만이네 차가 막혀서 좀 늦는다고 하더라.”

어머니를 따라서 캐리어와 가방에서 옷이나 여기서 신을 신발 등을 꺼내 정리하던 준섭이 설렁설렁 답한다. 그러다가 얌마. 준이 아니라 준섭이 형이지. 하고 잔소리를 하자 혀나 빼꼼 내밀고 자리를 피한다.

야~ 송태섭~ 너도 짐 정리해. 얼른 이리 와 빨리! 열 걸음도 가지 않았는데 들리는 준섭의 말이 싫은 듯 미적거리던 태섭이 이미 열어둔 작은 가방에서 짐을 빼낸다. 잠깐 그 일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곧 흥미가 사라진 건지. 가방 안의 옷을 만지거나 준섭이 꺼내 놓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결국 손에 하날 쥐고 쭈욱 다리를 펴고 앉아서는 똑같이 인중을 쭈욱 빼고는 준섭이 들고 온 농구 잡지에 집중한다.

준섭은 그런 태섭을 흘끔 보고는 재미있어? 하고 묻는다. 태섭은, 응. 하고 심드렁하게 답한다. 아는 말 보다 모르는 말이 더 많을 텐데도 아랑곳 않고 집중한다. 그림을 보는 건지 글을 읽는 건지 싶을 속도로 팔랑팔랑 넘어가는 종이들을 보면서 준섭이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대만이 만나면 알려준다는 엄청난 사실 알려줄까?”

태섭이 아니. 하고 단칼에 거절한다. 그러면 준섭이 왜에? 궁금해했잖아? 하면서 손에 든 아라의 옷을 펼쳐 다시 개킨다. 태섭은 아니이. 하는 말만 반복하고는 다시 농구 잡지에 집중한다. 준섭이 자꾸 재촉하듯 묻는다. 그리고 슥 손을 뻗어서 와락 끌어안는다. 

“에이, 궁금하지? 궁금하잖아?”

“아~! 안 궁금해! 얼른 옷 정리해!”

슬금슬금 간지럽히는 준섭을 손을 뜯어내면서 태섭이 쨍알거렸다. 손톱을 세워서 콱콱 찍어대는 통에 준섭이 진심으로 아파서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냈다. 태섭을 와락 안아 든 준섭이 비밀 이야길 하듯이 소곤거린다.

“사실, 오늘 만나는 대만이는, 태섭이 네 신부야.”

준섭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바둥거리던 태섭이 준섭의 말에 움직임을 멈춘다. 준섭이 태섭의 반응을 기대하며 은근하게 바라보는데 마주친 시선이 참 냉정했다.

“요즘 누가 그런 말에 속아? 나 바보 아니거든?”

정말, 내가 무슨 아기로 보여? 말만 하면 다 속는 줄 알아. 철들어 좀. 하고 고개를 팩 돌렸다. 엥, 이 반응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준섭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냐. 진짜 정말이야.”

우리 아버지랑 대만이네 아버지가 친한데 우리 낳기 전에 그렇게 약속했데.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신랑 탈락이라서, 태섭이가 대만이네 신랑이야. 준섭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하는 말에 순간적으로 태섭의 시선이 흔들린다.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는 투가 약간 어물거린다. 아냐. 진짜 정말 그렇다니까. …진짜? 안 믿기는데. 거짓말 같은데. 그런 말을 하면서 태섭이 불신의 눈으로 준섭을 본다. 준섭은 네가 안 믿어도 어쩔 수 없어. 사실이야. 형아가 너 마음의 준비 하라고 알려주는 거야.

그제야 태섭의 표정이 조금 더 혼란스러워진다. 진짜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얼굴에 보여서 준섭은 잘못해서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입술에 힘을 꾹 줬다.

***

 

준섭이 노래를 부르던 대만은 태섭이네 가족이 짐 정리를 다 마치고 장을 보러 갈지 말지 이야기를 나눌쯤에 도착했다. 커다란 더플백을 맨 대만과 어른 둘이 들어온다. 대만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준섭을 발견하고 형. 하고 웃는 얼굴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대만아. 오랜만이다. 둘이 팔인사를 나눴다. 둘이 비죽 웃음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라가 대만을 보고 안녕! 하고 인사한다. 대만이 안녕~. 하고 더플백을 내리면서 인사를 받는다. 아라는 오빠 뭐 좋아해요? 나는 요즘 티브이에서 하는 인형 기사 좋아하는데. 엄마가 인형을 안 사줘요. 하고 조잘거린다. 대만은 그 말에 아 정말? 속상하겠다. 하며 천연덕스럽게 받는다.

아라가 정말이요. 오빠도 우리 엄마한테 가서 나 인형기사 임형 사주라고 이야기해 줘요. 하고 투덜거린다. 대만은 아라의 말이 재미있는 듯 실실 웃는다. 태섭은 그 세 사람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준섭이 한 말이 자꾸 생각나서 신경 쓰였다. 하지만, 티 내는 건 너무 아이 같아서 태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되었는데. 송아라 처럼 어린애처럼 굴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을 곱씹고 있는 사이에 아라의 손을 잡은 준섭이 대만을 데리고 태섭의 앞에 선다. 나란히 선 거대한 두 사람을 태섭이 삐뚜름한 눈으로 본다. 그런 태섭의 시선을 보고도 준섭이 경쾌하게 뱉는다.

“짠! 형이 알려 줬던 대만이.”

자 태섭아, 신부한테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하는 말에 웃음기가 있다. 그런 목소리에 원래라면 무어라 한마디 할 태섭은 혼란스러운 기분에 입을 다문다. 그러면 말 없는 태섭을 본 준섭이 무슨 선물이라도 주는 거처럼 와아~ 하고 대만의 얼굴 주위에서 손을 흔들며 소란스러운 행동을 한다. 그 모습을 본 대만이 양손을 들어 턱 아래에 손을 괸다. 짜잔~ 하는 의성어는 애교 같았다.

태섭은 사진으로 봐 얼굴이 어느 정도 익숙한 남자를 흘끔거렸다. 형아 만 하다. 정확하게는 아무래도 3살이 많은 준섭이 더 키가 크긴 했지만, 그래도 정대만은 태섭의 기준으로는 큰 편에 속했다.

나랑? 이 형이랑 결혼?

태섭은 준섭의 말이라면 일단 덮어놓고 그럴지도? 하고 따르는 경향이 아주 조금 있었다. 아버지는 늘 바쁘셨고 어머니는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돌 볼 가족이 많았다. 그래서 전부를 책임져 주지는 못했기에 일찍 자라버린 준섭이 어린 태섭과 아라를 도맡아 키우듯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뻔하고 우습지도 않은 거짓말에도 홀라당 속아 넘어 가준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런 농담 정말 우습고, 유치해! 하고 소리를 빽 하니 지르고 싶다가도 막상 마주한 상대의 방긋 웃는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혀서 태섭은 쉽게 버럭 소리칠 수 없었다.

“형아 만 해….”

그래서 이 같은 바보 같은 말이나 겨우 흘렸다. 이런 말을 하면 준섭이 또 놀리려 들 텐데 싶다가도…. 태섭은 괜히 앞머리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손으로 가라진 시야 너머에서 정대만이 이를 보이며 히히 웃는 게 반쪽짜리로 보였다.

예솔이보다 예쁜 거 같아. 태섭은 무심코 그렇게 곱씹다가 자기가 한 생각에 화들짝 놀라서 입술을 가볍게 말아 물었다. 하지만, 저런 얼굴이 예쁜 얼굴이 맞는 거 같아. 만질만질한 머리카락. 웃는 얼굴은 자꾸 보고 싶고, 우리 가족은 아니지만. 준섭이나 아라처럼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면 좋겠어.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렇듯이 시각적 만족감에 예민한 태섭은 형아가 농담으로 했을 게 뻔한 말에 기꺼이 동승하기로 했다. 옆자리는 대만형이고 운전사는 준섭이었다.

“형이 너무 커서 싫어?”

그런 태섭의 앞에 대만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가볍게 쪼그려 앉은 대만이 물었다. 준섭이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가까워서 태섭은 조금 마른침을 삼켰다. 꼴깍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난 거 같아서 태섭은 귀가 화끈거렸다.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어린애 같아서 태섭은 참는다.

“아냐, 형 내 신부 해도 괜찮아. 난 아직 우리 반에서 사귀는 사람 없으니까, 나 방학하기 전에 지영이랑 미주한테 사귀자는 말 들었는데 거절했어. 그래서 사귀는 사람 없으니까, 형이 내 신부 해. 그래도 괜찮아.”

태섭의 말에 준섭이 고개를 모로 돌리고, 대만이 입을 꾹 다물고 양껏 웃는 얼굴을 하곤 부들부들 떨었다. 태섭은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참아주며 입을 꾹 다물고 바라봤다. 태섭은 뚱하고 퉁명스러운 태도와는 다르게 귀여운 얼굴이라서 여자아이들에게 곧잘 고백받곤 했기에 본인 나름의 보고였으나 요 두 형들에게는 잘 전해진 것 같지 않았다.

태섭은 절로 한숨이 튀어나올 거 같았다.

“정마알? 진짜 신부 시켜줄 거야?”

정대만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리는 게 아주 얄미웠다. 하지만 태섭은 마음이 넓은 초등학생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런 대만이 얄미울지언정 준섭처럼 한 대 때려주고 싶지는 않아서 곤란함에 결국 참은 한숨을 토했다.

“어휴. 그래. 형이 내 신부야. 약속해 줄게.”

조막만 한 손이 쑥 하니 올라온다. 대만은 와아, 기쁘다. 형아 꼭 데려가 줘야 해? 꼭 이다? 자그마한 새끼손가락과 대만의 아직 성장 중인 덜 여문 손가락이 얽힌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꼭 약속하며 태섭이 내가 형 책임 져 줄게. 그렇게 말하는 걸 대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으응~. 형아 태섭이만 믿을게~. 하고 긍정했다.

그날 그 시간, 그 순간. 영광스럽게도 송태섭은 사진과는 다르게 생생하고 활기찬 미소를 한껏 머금은 중학교 1학년의 정대만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이건 장난을 저지른 준섭도 생각 못 하고. 거기에 앞으로 친해질 동생 놀린다고 참가한 정대만도 모르는 치명적인 사실이었다.

 

그래서 준섭의 얼렁뚱땅 소개팅(?)부터 태섭은 대만의 껌딱지 비슷한 게 되었다. 왜 비슷한 게 되었냐면 태섭이 대만의 껌딱지가 되었다고 하기에는 태섭이 대만을 끌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대만아. 대만아. 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호칭은 거침없이 정해졌다. 준섭은 그래도 형이라고 불러야지 하고 태섭을 놀리듯 다독였는데 태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만이 난 형이라고 해 주면 좋겠는데. 하고 운을 띄우고 나서야 태섭이 상상도 못 한 말을 들었다는 얼굴로 엄하게 아냐. 하고 표정을 굳혔다.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이 보드라운 능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대만은 준섭이 무슨 반사신경처럼 태섭의 말랑한 볼을 찌르려고 하는 걸 손으로 막고, 아래로 밀어, 말리면서 왜 아니야? 형아 궁금한데 알려 줘 봐. 하고 태섭을 닦달했다.

대만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태섭이 입을 연다. 부부는 원래 이렇게 부르는 거야. 엄마도 아빠도 서로 이름 부른단 말이야. 부부는 원래 그래. 하고 왜 모르냐는 듯 답답해하면서 딱 잘라 답했다.

준섭은 처음엔 어리둥절해 있다가 점점 이어지는 말에 별안간 자기 부모님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기억하고 함박웃음을 터트릴 거 처럼 광대를 올렸다. 흡 하고 숨을 마시는 게 당장이라도 집이 떠나가라 웃고 싶어 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래에 동생을 바락바락 화나게 만들 비장의 놀림거리를 들은 장난꾸러기의 행복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곧 무언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준섭이 대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무언가 말을 작게 속살거렸다. 대만이 귀 기울여 듣는다고 몸을 기울인다. 그러면서 준섭이 대만한테 무어라 속삭이는데 그걸 키득거리면서 듣고 있던 대만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준섭의 허리를 팔꿈치로 툭툭 두드렸다 대만의 행동에 준섭이 말을 하다 말고 태섭을 본다. 그리곤 바로 입술을 감쳐물곤 방긋 웃는 얼굴을 한다.

태섭은 그런 준섭의 얼굴이 짜증 나서 턱 하니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노려봤다.

“준이 너무 붙어 있어. 얼른 떨어져. 송아라한테 가버려.”

거침없이 방금까지는 분명 처음 보는 형아 보다는 더 좋아했을 친형을 내 보냐는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 단칼에 사랑의 방해꾼으로 추락한 준섭이 웃다가 우는 척을 하면서 너무해~ 태섭이. 형아 서럽다. 아라랑 놀 거야~! 하곤 얼굴을 큰 손으로 가리곤 흑흑 우는 척하다가 쏠랑 아라가 놀고 있는 방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거대한 방해꾼을 거침없이 치운 태섭이 귀여워 죽겠다는 눈을 한 대만과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움츠렸다가 편다. 갑자기 둘이 있게 되니 새삼 어색해진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태섭이 손을 내민다. 대만이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태섭은 그 손을 잡아 이끈다.

“엄마가 나눠 먹으라고 과자 사 왔는데 같이 먹어.”

대만이 정말? 좋아 가자! 하고 태섭이 이끄는 거실로 걸음을 바삐 했다. 거실에 마련된 로우 테이블 위엔 아직 포장이 뜯기지 않은 사각형의 캔 곽이 있었다. 태섭이 그걸 가리킨다. 대만은 잠깐 생각하다 아하. 하곤 캔 곽을 포장한 비닐을 뜯고 밀봉용으로 둘러진 테이프도 뜯어냈다. 그 행동을 마치자, 태섭이 손을 뻗어서 캔 뚜껑을 열었다. 대만이 그 모습을 보고 준섭이 형 되게 장난치면서 또 어리광은 엄청 받아주는구나 생각했다.

캔 뚜껑을 로우 테이블 위에 놓은 태섭이 곰곰히 고민하다가 과자 하나를 집는다. 그리곤 그걸 까서 대만을 향해 아~. 하고 내밀었다. 대만이 그대로 내민 과자를 받아먹는다. 그리고 자기도 하나 과자를 뜯어서 이번엔 태섭에게 아-. 하고 내민다. 태섭이 머뭇거리다가 받아먹는다. 그게 마치 아기 새 같았다. 작고 복실거리고 움직이는 게 조그만 게 다르진 않아 보였다. 물론 태섭이 준섭이랑 노는 걸 본 적 없는 대만의 콩깍지에 가깝지만. 

과자를 받아먹은 태섭이 '밥을 먹으면 20번 꼭꼭 씹어서 삼켜요.'를 실천하는거 마냥 오래 씹다가 삼킨다. 물론 대만은 태섭이 넘겨준 과자를 다 먹은 지 한참 오래였다. 대만이 이거 다른 맛도 나눠 먹을까? 그런 물음을 하기도 전에 태섭이 머뭇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면서 이거, 줄까? 하고 내민다. 꼬옥 쥐고 있었는지 사탕 봉지가 제법 꼬깃해져있었다.

“좋아하는 거야?”

응…. 싫어해? 되물어 오는 말에 대만이 웃었다. 

“그런 걸 나 주는 거야? 기쁘네.”

대만이 치사량을 넘는 동생의 예쁜 짓에 그대로 살살 녹는다. 진짜 귀여워. 진짜로. 와 준섭이 형 부럽다. 나도 동생 낳아달라고 하고 싶어, 그런 생각을 감추곤 이거 형아 먹여줄래? 하고 묻는다. 그러면 태섭이 알겠어. 하고 방금까지 부끄러워한 게 언제냐는 듯 봉지를 조심스럽게 까서 내가 먹여줄게 하고 대만의 입술을 잡아서 아. 해. 하고 당긴다. 거침없는 손길에 또 웃겨 숨을 삼킨 대만이 입을 아 벌리고 태섭이 쪼글한 사탕 봉지에서 꺼낸 사탕을 대만의 입에 넣어준다. 치아에 부딪혀 다그락거리는 소리를 낸 사탕을 입안에 굴리면서 대만은 멀뚱히 서 있는 태섭을 꼬옥 끌어안았다.

“아~ 신랑 잘 만났네. 나 계속 예쁘게 봐줘야 한다?”

준섭한테 하는 태도를 보면 붙지 말라고 금방 투덜거리면서 대만의 품에서 빠져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참내. 하는 추임새를 뱉는다. 대만의 옆구리 부근의 티셔츠 천을 꾸욱 부여잡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답을 준다.

“왜 이래, 남사스러워.”

초등학교 1학년이 뱉을 말은 아니었기에 대만은 결국 배를 잡고 태섭의 머리에 머리를 푹 기대고 소리 내서 뱉지 못하는 웃음을 삼키며 몸을 벌벌 떨었다.

태섭만이 그런 대만을 보곤 어디 아파? 하고 서둘러 양팔로 머리를 끌어안아 팡팡 머리를 다독여 줬다. 대만이 웃음으로 푸욱 젖어 잠긴 목소리로 태섭이 완전 상냥하다. 형아 한 번 더 반했어. 하고 빈말을 던졌고 죄 없는 태섭만 그 말에 이 형은 상냥한 사람이 좋구나. 하고 엉뚱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었다.

 

대만의 부모님이 태섭의 부모님과 마당에서 수다로 회포를 푼 뒤 숙소로 돌아와 가장 처음 본 풍경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놀고 있는 네 아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자기 아들과 꼭 붙은 자그만 아이를 보며 어머 대만아 너 태섭이랑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하고 묻는다. 대만은 어머니의 물음에 아이, 내 미래의 신랑님이랑 얼른 친해져야지. 하고 너스레를 떨었고, 갑작스러운 말에 어리둥절하던 대만의 어머니는 곧 상황을 이해한 듯 어머나~. 그럼 우리 친구가 우리 집 사위네~. 하고 맞장구를 친다.

어엉, 엄마 사위 되게 귀엽지. 하고 옆자리에 딱 붙어 앉은 태섭을 한 팔로 끌어안고는 정수리에 가까운 머리에 얼굴을 기댄다. 그 모습을 본 대만의 어머니가 키득키득 웃고는 얘, 네 신랑 오늘 토마토 돼서, 네가 수확해 줘야겠다. 하는 장난을 남기고 여보~. 하며 걸음을 옮긴다.

대만이 엄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한 팔에 담폭 끌어안긴 태섭의 얼굴을 보면 웃는 듯 아닌 듯 알쏭달쏭한 얼굴로 볼을 발그레 붉히고 있었다. 대만은 이게 애기라서 원래 붉은 건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붉어 진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장난처럼 ‘송 사위 울 엄마한테 잘해~.’ 하고 머리를 헝클렸다.

태섭이 대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안타깝게도 태섭의 작은 새의 날갯짓 같은 끄덕임은 대만의 눈에 담기지 못했고, 옷자락을 꾸욱 잡아 오는 태섭의 강한 손길만 티셔츠가 감내했다.

 

***

 

준섭의 소개팅(?)으로 성립된 태섭과 대만의 사이는 놀랍게도 아주 길게 이어졌다. 태섭은 부모님이 대만이 형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다른 일을 모두 팽개쳐 내고도 따라갔고, 대만은 대만대로 어린 동생이 자길 보고 싶다고 놀러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쫄래쫄래 어른 틈을 따라와. 같이 있자고 하는 모습을 외면할 사람은 아니었다.

준섭이 농구를 하듯 태섭도 농구를 했고, 대만도 농구를 했다. 이 말은 두 사람은 모이면 태섭의 얼굴만 한 농구공을 들고 나가서 손이 시꺼매져라 농구를 하고, 배가 고프면 들어와 밥을 먹고 다시 소화시키자! 하고 나가서 이번엔 옷이 흙먼지로 노랗게 물들어 버릴 때 까지 농구를 했다.

두 사람에게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태섭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놀이인 동시에 데이트였다는 거고 대만의 입장에서는 아는 동생과 즐겁게 농구했다~! 란 점이었다.

상냥한 사람이 좋다는 말에 대만의 앞에서는 괜히 행동도 더 어른스럽게 군 태섭의 노력 덕일까. 대만이 느끼기에, 태섭이는 정말 조용하고 수줍고 또 은근히 양보를 잘하는 아이였다. 요즘 애들은 되게 성숙하구나. 아니면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지만 동생이 있어서 그런가? 당장 전날 송아라와 싸워서 울이 화해의 의자에 앉아서 2차전을 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서로가 각자의 평행하는 생각으로 방글 방긋 웃었다. 태섭은 이 재미있는 나날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사람에게 필연적인 시련을 던져준다고 했던가. 태섭이 느끼기에 첫 시련이 소리소문없이 불쑥 찾아들었다.

대만이 먼 곳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되었다는 말에는 놀라지 않았던 태섭이 그래서 만나는 게 어려워진다는 말에는 코를 훌쩍였다. 울지는 않지만 물기가 잔뜩 돌아 발갛게 물든 눈가가 같이 못 논다는 사실에 퍽 서러워 보였다. 야아, 태섭아 너무 그렇게 울지 말고. 안 울거든요. 그렇게 답하는 목소리가 잠겨있다. 으음, 퍽이나. 이 녀석아. 하고 놀리고 싶어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참으며 대만은 야 이, 그래두 우리가 제일 친하잖아. 안 그래? 하고 얄궂게 웃는다.

대만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본 태섭이 멈칫하다가 코를 한번 훌쩍이고는 조금 어색하게 마주 웃으면서 내가 대만이랑 가장 친한 사이니까. 나 말고 다른 가장 친한 사람 만들지 마. 알겠지? 하고 묻는다.

생기면 안 돼? 왜에? 대만이 장난처럼 말을 늘여 묻는다. 태섭은 그런 장난을 치는 대만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보다가도 어휴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거야 내가 대만이 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무튼 나보다 좋아하는 사람 만들지 마. 약속하고 가. 내가 제일 좋다고. 대만의 앞에서는 유독 어린애처럼 구는 태섭에, 옆에서 그 꼴을 보던 준섭이 허탈해서 쩝 입맛을 다셨다. 태섭아, 형아도 대학 간다고 자취 시작했는데. 그때도 좀 그렇게…. 그렇게 안타까워 해보지. 동생 키워서 남는 게 없네. 하고 씁쓸한 마음 반 말썽쟁이 동생의 앙큼한 예쁜 척에 나오는 웃음 반으로 오묘한 표정을 지은 준섭이 점입가경처럼 이어지는 태섭의 행동을 웃으며 구경한다.

아무튼 약속해. 손가락도 걸고 도장도 찍어, 복사도 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다짐을 뜯어내는 태섭에. 대만이 결국 소리 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준섭이 문득 생각한다. 

근데 태섭이가 이런 거짓말을 눈치 못 챌 나이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러고 놀 생각인 거지? 설마, 진짜로…? 일순 미친 생각에 준섭이 입을 살짝 벌린다. 어, 이거 좀 망한 건가? 아, 하하 근데 그냥 이렇게 노는 게 버릇돼서 그러는 걸 수도 있으니까. 아하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음. 내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군! 준섭이 내린 결론은 한 고민에 비해서 짧았다.

 

***

준섭이 태섭이 사실을 이미 아는지 모르는지 은근슬쩍 이야기의 운을 띄우기 시작 할 즘. 준섭이 입을 열 때마다 대놓고 말을 받아주지 않는 태섭의 몸에, 얌마~. 하고 매달렸다. 이미 190에 가까운 준섭을 갓 160의 문턱을 넘은 태섭이 감당하긴 어려워서 아! 좀 떨어져! 하는 비명 소리가 태섭의 집에선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런 태섭의 발버둥을 아랑곳 않은 준섭이 태섭아, 너 알지? 태섭아아~. 했다. 주어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던 태섭은 죽어라 매달리는 준섭의 행동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송가네 누름돌 태섭을 준섭에게 매달리게 만든 대사건이 일어났으니. 고등학교에 들어간 대만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입원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소식에 태섭은 당장이라도 병문안을 가고 싶어서 안절부절하다가 결국은 오랜만에 집에 온 준섭의 다리에 달라붙어서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어난 통곡에 준섭이 뭐, 뭔데? 하고 어리둥절 다리에 들러붙은 태섭을 들어 안았다. 품 안의 태섭을 달래면서 준섭이 상황을 전해 듣는다. 엉 그렇구나. 답하면서 대만에게 연락할 생각을 반 훌쩍거리는 태섭의 깊은 애정에 망했다고 소소하게 절망하기 반으로 심경이 아주 그냥 냉탕과 열탕을 반복해서 오갔다.

 

***

나이를 먹으면 취향이란 게 생긴다. 아이들은 얼굴을 많이 가리고 보편적인 미에 금방 마음을 연다. 하지만 자라면서 취향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런 것들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준섭은 대만이가 정말 태섭에게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취향에 맞았구나. 정말 그랬구나. 하는 사실만 깨달았다.

준섭이 평생 태섭과 갈아오며 느낀 건 태섭은 늘 준섭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집이 강했고 하고자 하는 일에는 정말로 이루어 내는 억척같은 면이 있다는 점이었다. 준섭은 태섭의 그런 면을 같은 코트에 서는 선수로서는 매우 반가운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친동생으로서는 아주 난감하기 짝이 없는 성질이었다. 뭐든지 간에 자기가 납득하지 않으면 따라주지 않으니까.

오죽하면 태섭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배운 말재간들이 요즘은 팀 동료들의 관계 개선이나 증진에 힘을 다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준섭이 느낀 건, 태섭이가 결심했으면 말릴 수 없다.

사실 아직 까지야 결심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친 장난에 반항할 겸 친한 형아랑 같이 오래 있고 싶어 하는 건지 알 길이 요원했지만. 준섭도 슬슬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진짜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준섭은 전화기를 들어, 손에 익은 번호로 연락했다.

대만은 준섭이 병문안을 오는 걸 반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태섭이 울고불고 난리라는 말에는 난감해하면서도 어딘지 기쁜 것 같아 보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평소보단 한 톤 낮았고, 태섭이 병실로 들어간 날에는 평소와 같은 아니 조금 더 밝게 들렸다.

병문안을 다녀온 태섭이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던 열병을 심화시킨 건지 모를 얼굴로 말한다. 나, 역시 진짜 정말로 대만이가 신부였으면 해. 

아~ 역시 농담이고 장난인 거 눈치채고 있었구나. 그냥 즐거우니까 계속 어울린 거고. 근데, 그게, 그게 진짜가 되었구나. 준섭의 머리가 바쁘게 굴렀다.

어떻게 집에 돌아온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병문안을 다녀온 형제가 나란히 심각하니 향이 둘을 보고는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대만이, 많이 심각하다니? 그렇다고 하진 않았는데. 하고 걱정하는 얼굴을 한다. 대만이 그렇게 아픈 거 아냐. 금방 털고 일어난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태섭의 동그란 뒤통수를 준섭은 바라본다. 그날 준섭은 드물게 밤잠을 설친다. 개 망했다. 진짜 어떻게 하지. 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곱씹어도 바뀌는 게 없으니까. 결국 준섭은 눈을 꾸욱 감고 오지 않는 잠에 억지로 뛰어든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일어난 준섭은 결정한다. 일단 태섭이랑 이야기해 보고, 설득이 안 돼면, 대만이를 설득하자. 신부 그거 뭐 어렵냐! 대만아! 시집와라! 남의 집 대를 끊는 발상치고는 가볍고 발랄한 사고였다.

어쩌면 지나친 고민으로 그냥 뇌의 나사를 풀기로 한 걸지도 모르고.

일단 그러려면 부모님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두는 게 맞겟지. 아침을 먹으면서 내내 고민한 탓에 아라와 태섭에게 고기반찬이니 계란말이니 아무튼 맛있는 걸 전부 놓친 준섭은 착잡한 마음으로 설거지거리를 모두 모아서 뒷정리를 한다. 그리고 슬금 거실에서 옷을 개키고 있는 어머니의 옆에 엉덩이를 붙인다. 아라와 태섭이 아기였을 때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바구니 두 개는 기본으로 나오는 빨래 양을 보고 준섭이 으윽 소리를 냈다.

향이 준섭의 행동을 보고 작게 웃는다. 향과 같이 빨래를 정리하면서 준섭은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긍정적으로 생각할지를 끝 없이 고민한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엄마, 우리. 남자 사위 생길지도…?”

준섭의 말에 향이 아라의 옷을 접다 말고 자신의 첫째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슨 의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지금, 본인의 취향을 둘러서 표현하는 건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치운다. 향은 조심스럽게 답한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란다.”

향의 말에 준섭이 어리둥절 나? 하고 되물었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아! 아냐! 나 말고! 하고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손에서 빨래가 형편없이 구겨진다. 향이 아들을 그저 단아한 미소로 바라보고 준섭은 아이, 아 그게 아니라~! 하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비비 틀면서 이마를 짚었다. 아, 그 나 말고, 태섭이 말이야! 하고 반 우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제야 향은 아. 하고 입가를 손으로 가리면서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나는 신부 데려올 거거든…. 그렇게 꿍얼거리는 첫째 아들을 보면서 향이 장난치듯 어머 태섭이도 엄연히 따지자면 신부 데려오는 거잖니. 대만이가 신부니까. 준섭은 향의 답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면서 어깨를 움츠렸다가 푹 떨어트리듯 내렸다. 그런 준섭의 행동을 보던 향이 장난처럼 말한다.

“엄마 놀랐잖니. 태섭이도 남자 신부 데려온다는데 너도…. 싶어서….”

우리 집에 여자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건가. 하고…. 준섭은 입을 열지 못하고 아~ 제발 엄마아. 하고 끄응 않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마가 긍정적이라면 아빠는 엄마가 책임지고 설득하시겠군, 그럼 아빠는 대만이네 아버지를 설득하시는 건가. 무슨 꼬리잡기 놀이도 아니고 하며 이어지는 생각에 준섭은 잠깐 눈을 깜박였다.

뭐 근데 자식들 보면 결혼시키자고 본인들이 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어련히 받아들이시겠지!

준섭은 눈앞에 있는 빨래 정리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엄마 저녁에 뭐 할 거야? 나 오늘 고기반찬 태섭이랑 아라가 다 먹어서 못 먹었는데 또 고기반찬 해 먹자.”

준섭의 말에 향이 웃으면서 그럴까? 하고 되물었다

 

태섭과 대만의 사이에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멀어진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대만은 고등학교 시절을 힘들게 한 부상에서 복귀하자마자 그동안 못 한 농구에 집중하고 싶다는 듯이 거침없이 굴었다. 언제인가는 같은 팀의 사람과 그게 싸울 뻔했다는 거 같기도 하고, 언제 사귄 건지 질이 안 좋아 보이는 무리와 친하게 같이 돌아다니는걸. 본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태섭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농구부에 들어갔지만, 키가 좀처럼 자라지 않아서 공식적인 경기에는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태섭의 드리블 실력이 라던지를 아는 감독이 종종 태섭과 레귤러 선수를 교대시키곤 했지만, 태섭은 그걸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지 의식 없이 늘 입을 오리 부리 마냥 빼고 다니고 있었다.

아라는 원래도 농구에 관심이 없었던지라 농구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구기 종목인 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학교에 들어간 걸로 태섭의 마음이 바뀌었을까 생각했지만, 그 녀석도 어련히 순정파인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일정하게 연락을 하고 부르는 호칭은 대만아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까지 대만과 이야기할 때는 상냥한 척 꼬리를 쳤다.

아라가 대만하고 통화하는 태섭을 볼 때마다 우웩 하고 속 안 좋아지는 소리를 낸다. 그 모습을 본 태섭이 손을 휘휘 저어서 아라를 방으로 보내고 드문드문한 대화가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나긋한 대만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의 톤을 아라는 평생 알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집 가서 송태섭이 겨울연가 찍는 모습 볼 바에야 남아서 운동한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자율연습 덕에 실력이 많이 늘어서 요즘 칭찬을 많이 듣고 있다는 아라의 말에는 솔직히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태섭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멀리 떨어진 대만의 집에 놀러 가는 걸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대만이 놀러 와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대만이 시간이 날 때는 태섭의 시간이 없었고, 태섭이 시간이 날 때는 대만이. 그리고 두사람 전부 시간이 날 때는 보호자 역할을 해 줘야 하는 준섭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평생 나이로 불만을 표현한 적 없는 태섭의 절절한 한마디였다.

그리고 내심 준섭도 동생의 연애 사업을 돕자는 열기가 훨훨 다 타고 이제 숯으로나 남아 있는 수준이었기에 얼른 태섭이 자라서 혼자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가도 괜찮다고 허락받는 날이 다가왔으면 했다.

준섭도, 슬슬 연애를 하고 싶었다. 동기들이 슬슬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당사자 세 명 중 두 명의 의지를 강하게 반영하기라도 한 건지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태섭이 소속된 농구팀이 전국대회에서 좋은 소식을 얻었다던가. 아라네 배구부가 예선에서 탈락해 아라가 엉엉 울었다던가. 그런 좋고 기쁘고 슬프고 서러운 모든 게 모여서, 태섭의 하루는 금처럼 쌓여서 성장한다.

다만 일상의 루틴처럼 이어져 오던 전화의 텀이 길어지고 때때로 짧아지기도 했지만. 그 대화에 남이 섞여 있기도 했지만. 아무튼 태섭은 인내했다. 고등학생만 되어봐라. 빌어먹을. 단속할 거다! 술약속에 너무 참가하지 말라고 할거고. 입이 풀릴 때 까지 마시지도 멀라고 할 거고 늦은 시간에는 집에 얼른 들어가라고 할 거다! 태섭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후우 숨을 뱉으며 진정시킨다.

이게 엄마인지 부모님이 약속한 미래의 부부(仮)중 한쪽의 챙김인지 싶지만. 뭐 그렇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초반에는 연락도 자주 받아주고 놀러 오기도 했던 대만에게 소식이 뚝 하니 끊긴지 세달이 지났다. 태섭은 이해하면서도 아주 조금 외로웠다.

송아라는 오빠 내숭도 3개월을 못 보니까 그립기도 하다. 하는 놀리는지 충격받은 건지 모르겠는 말이나 하고.는 본인이 더 괴로워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있던 태섭의 입장에서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싶었지만, 송아라가 어련히 괴로워 보여서 슬쩍 챙겨 줬더니 이번엔 비명을 지르면서 문을 닫았기에 태섭은 송아라의 뻘짓에 관심을 끊기로 했다.

태섭은 많은 이해를 하려고 했다. 대만은 이제 대학교 3학년으로 주위의 동년배들은 슬슬 취직 준비를 할 시기였다. 대만은 비록 취직을 준비하지 않지만, 프로 선수가 될 예정이고 아무튼 남들만큼 딱 바쁠 시기라고 태섭은 생각했다. 사실 대만의 상황을 준섭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책임감을 느끼는지 귀찮아하면서도 약간 헌신적으로 구는 첫째 형아의 노력으로 쉽게 사실을 알 수 있겠지만, 태섭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태섭도 알곤 있었다.

대만이 어릴 적의 약속 같은 거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하지만 태섭이 장단을 치면 당연하다는 듯이 장단에 맞춰서 그렇게 굴어주니까. 태섭은 그 작은 기만을 쥐어 잡아서 그 그릇을 뒤집어 앞과 뒤를 반대로 만들어 줘 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준섭이 알고 있지 하고 캐물을 때 모른 척한 것도. 괜히 대만의 앞에서 상냥한 척하는 것도 전부 사실은 전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대만을 속이는 것 같아서 태섭은 그게 고민이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나온 결론은 담백했다.

그래 고백하자. 어릴 때의 그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고백해서 사귀자고 하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슬플 거지만, 미련이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얼굴 안 보는 거 아니면 못 떨쳐 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고백한다. 정대만한테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송태섭의 신부가 되어달라고. 그렇게 결심한다.

 

결심했으면 남은 건 실천뿐이었다. 태섭은 먼저 엄마에게 대만을 보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식기 수납장에서 오랫동안 안 씻었던 식기를 씼어 말리던 향이 태섭을 본다. 태섭은 긴장해 입을 꾹 다물고, 향은 조용히 한번, 엄마가 이야기해 볼게. 뭐 하러 갈 생각이니?

태섭은 어쩌면 대만에게 하는 것보다 더 떨리는 말을 뱉는다.

고백이요.

향이 태섭을 본다. 그리고는 그래. 그러면 좀 멋을 내고 가는 게 맞겠네. 하고 오히려 웃음 섞인 농담을 뱉는다. 태섭은 어떠한 불호령을 생각하고 있다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나, 용돈 모아둔 게 있으니까 그거 쓸려구요.”

허락만 해 주시면 알아서 할 거예요. 멋있게도 할거고. 혼자서 대만이 보러 갈 거고. 변명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향이 옅게 쪼개진 숨을 뱉으며 웃는다.

용돈은 다른 데 써야지. 엄마가 돈 줄 테니까 어디 한번 멋 부리고 와. 그 말과 함께 내밀어진 카드를 태섭이 손에 고이 들고 입을 앙 모았다. 작게 감사합니다. 하고 뱉은 태섭이 한시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돌아온 태섭을 본 아라가 와우. 이 한마디만 뱉었다. 준섭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가 이야…. 하곤 마저 반찬을 입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덤덤하게 교칙에 위반되는 게 아니라면 어떤 머리를 하든 좋지. 했다. 태섭은 아무말 없는 향의 시선을 살피다가 늦어서 죄송하는 인사와 같이 자리에 앉았다.

“둘째 오빠, 브로콜리 같아.”

아라의 말에는 정색하고 말았지만. 아무튼, 송태섭,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앞질러서 고교데뷔 비슷한 걸 해 버렸다.

 

대만이 자취를 시작할 당시에 이미 주소를 가르쳐 줬었다. 따로 어디로 다시 이사 갔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아직 그 집에 살고 있을 테였다. 준섭이 이야기 해주는 집에서 태섭의 집까지 가는 길을 듣고 또 메모해서 정리하면 준섭이 또 오묘한 표정으로 태섭을 본다.

“형 진짜 그만 좀 해 징그러워.”

“야, 내가 너 업어 키웠는데 좀 갸륵하게 볼 수도 있지.”

하, 반은 내가 키우고, 남친 소개도 시켜줬는데 박하다 태섭아. 그 말에 입을 꾸욱 다문다. 준섭은 태섭의 얼굴을 보곤 살살 웃으면서, 태섭아 가서 긴장했다고 이상한 실수 하지 마라. 뭐 쩌렁쩌렁하게 고백한다던가. 갑자기 추궁한다던가. 메너 없는 건 절대 하지 마. 사람과 사랑 사이의 예의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해. 알지?

태섭이 떨리는 시선으로 준섭을 바라본다. 눈과 눈을 마주하고 빙긋 웃는 준섭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태섭은 준섭이 하는 말을 곱씹는다.

긴장되고 떨려서 심장 소리가 몸을 흔들더라도 괜찮은 척하는 거야. 알겠지? 평정심을 가진 척 숨을 고르고 상대가 가장 예상하지 못할 방향이니까 음~. 패스하듯이. 알지?

준섭의 장난스런 얼굴에 태섭이 같은 표정을 한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아~ 미용실에서 해온 머리를 망칠 순 없으니까. 하고 양손으로 태섭의 볼만 잡아 늘였다.

 

대만의 자취방에 가기 위해서는 편도 길 2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전철은 3번 정도 갈아타야 했고, 태섭은 사실 이젠 고백이 문제가 아니라 특급이니 준급이니 하는 전철의 종류에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눈앞에 도착한 전철을 타려 했다가 특급이라고 적힌 걸 보고 후다닥 비킨다. 특급전철이 멈추지 않는 역에 대만은 살고 있다.

태섭은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지 끝 없이 고민한다.

좋아해요. 사귀어 주세요. 가장 무난하고 기본적인 말.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그랬다가 어린애처럼 보인다고 하면 어쩌지. 첫 만남이 이미 초등학생 어린이라서 소용없는 고민인데도 자꾸 떠오른다. 대만이 태섭을 어여쁘게 생각하던 건 전부 태섭이 어린 동생이라서였으니까.

아, 이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라고 했어. 태섭은 준섭이 이야기해 준 대로 그냥 고백 멘트나 고민하기로 했다. 생각이 깊어져서인가.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멋있는 고백이라는 행위에 관해 집중한다.

그리고 대만이 사는 학교가 있는 역에 내리고 태섭은 준섭이 그려준 약도를 보면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주위의 풍경보다 약도를 보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된다. 걸음과 별도로 심장 소리가 귀에 둥둥 울린다. 체온이 오르고 손에까지 그 진동이 전해지는 것 갔았다.

그리고 대만의 자취방이 있는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다. 숫자가 천천히 바뀌며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회색으로 된 벽. 숫자판에서 해당하는 숫자를 누르고 움직이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여타의 엘리베이터와 다르지 않은 공간인데도 쿵쿵 심장이 쉬지 않았다.

딩동, 도착 음을 내고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나가면 갑자기 털컹 문이 열린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너 다 챙긴 거 맞아?”

어~ 다 챙겼다. 두고 가는 거 하나 없으니까 안심해. 글고 두고 가면 니가 좀 들고 와. 친밀한 대화에 문 앞에서 나누는 대화 태섭은 세상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낀다. 대만의 방에서 모르는 여자가 나왔다. 이미 하루 묵은 걸까? 입은 옷이 편했다. 어쩌면 진짜 어쩌면, 이미 같이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태섭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아니, 오지 말라고. 너네 집에 틀어박혀라 여기로 오지 말고.”

대만의 어투는 퉁명스러웠지만 태섭은 그런 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자가 자리를 옮긴다. 지나가는 길에 태섭을 흘끔 본다. 순간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그리고, 무어라 더 말을 할 게 있었는지 대만이 더 크게 문을 열고, 야! 하고 부르려다

그 사이에서 태섭을 마주하고 어! 태섭아! 하고 눈을 동그랗게 한다. 그 얼굴이 그대로여서 정말 좋아하던 그 얼굴이라서 태섭은 준섭이 해 준 말을 전부 까먹은 것처럼 휘몰아치는 머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꾸욱 손을 쥔다. 약간 어지러워서 울렁거리는 기분이 든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어엉? 아니, 요즘 그러고 보니 연락 많이 못했네. 그거 때문에 왔어?”

너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우리 집에 놀러 가는 거 허락 안 해준다더니 너 벌써 졸업했어? 아니지 않나? 아님 곧 고등학교 들어갔다고 멋 부린 거야?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게 신호탄이라도 되는 거처럼 태섭은 소리친다.

“좋아해!! 평생 책임질게! 진지하게 생각해 줘!!”

와 미친. 뭐임? 뒤에서 다급하게 탁탁탁탁 버튼을 무수하게 연타하는 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의 희망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와 같이 아 씨발!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만은 자그마한 자취방 복도에서 쩌렁쩌렁하게 소리친 친한 동생을 황망하게 보면서 짧은 순간 스친 수많은 생각을 정리했다. 방금 일어난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여러 가지 망했다는 건 일단 확실했다.

“일단, 들어 와라 태섭아….”

옆집에서 지금 문 여는 소리 들리니까…….

 *** 

“그래서, 그 너어 ……나랑 사귀고 싶다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대만이 사귀자는 거냐는 물음을 뱉는 내내 소태 씹은 얼굴을 했다. 태섭은 섭섭함 반, 기대감 반으로 입술을 오리 부리처럼 삐죽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은 태섭의 그 얼굴을 보자 저절로 으응…, 하고 앓는 소리가 나왔다. 태섭의 얼굴은 대만에게 아주 익숙한 종류의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준섭이 자주 이야기하던, ‘송태섭 절대 고집 안 굽힐 얼굴’ 다른 게 있다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안 돌리고 입만 삐죽 내밀고 있다는 정도. 준섭이 앓으며 그러고 있으면 회유도 잘 안되고…. 꼼짝 없이 죽었다고 생각해야 해. 하고 입술을 일자로 쭉 펴면서 질려하던 게 생각났다.

대만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떠오르는 것 하나 없이 허둥지둥 태섭을 향해 아무 말을 주워섬긴다.

“태섭아, 나 잡혀가….”

“왜요? 재가 좋아서 붙어 다닌다고 할게요.”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더니 본을 잡는다. 싶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그 ‘네. 형.’ 하면서 수줍어하던 태섭이 맞나 싶었다. 되바라지게 들어오는 반박에 아니! 너 그런 타입 아니었잖아! 이런 거 이야기하면 말없이 고개 팩 돌리면서 뭐래요. 같은 거 이야기 했잖…. 아! 설마 그게 다 태섭이 나름의 어떠한 어필이었던 건가! 대만은 뒤늦은 깨달음에 다시 머리를 감싸고 싶어졌다.

“아니 얌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오, 그게 문제가 아니라서 문제야~.”

대만이 안 그래도 큰 손을 모아서 얼굴을 문질렀다. 마른세수를 너 다섯 번은 더 한 거 같은데도 대만은 고통과 괴로움에 번뇌하면서 이게 다 무슨 일이냐 태섭아. 형아 지금 힘들다.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너, 형아 믿음직하지 못 해서 싫다며.”

“싫다고 안 했어요.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한 적은 있지만…. 그건, 그냥. 내가….”

내가 같이 살면서 챙기면 된다는 말을 하려다가 만 거지…. 대만은 뒷말을 듣지 못하는 게 나을 뻔했다고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태섭아. 준섭이 형 울어…. 나름 비장의 카드로 꺼내든 말이었는데. 태섭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면서 그럴 거 같아요? 하고 되려 되물었다. 대만은 그 물음에 입이 턱 막혀서 아닐, 수도 있지만 울 거 같은데…. 하고 말을 어물거렸다. 그리고 문득 자신과 태섭이 같이 붙어있을 때에 늘 아리송한 시선을 보내던 준섭의 얼굴을 떠올렸다.

뒤통수를 쾅 맞은 듯한 충격이 머리를 찌른다.

혹시 형 알고 있었어요? ……그럼 좀 주의하라고 해 줄 수 있잖아.

하지만 어쩌겠는가. ‘송태섭 절대 고집 안 굽힐 얼굴’ 같은 걸 이야기하면서, 대만에게 현실을 알려주려고 하던 준섭의 노력은 전혀 관심이 없는. 대만의 헐렁함으로 인해 흔적도 남지 않고 무용해진 걸, 얌마! 난 할 거 다 했다~! 하고 준섭이 어이없어할 만했지만, 책임 전가 당한 장본인이 당장 여기에 없음으로 대만은 아무거나 다 준섭의 탓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이 애초에 준섭이 친 장난으로 시작된 일이므로. 모든 책임도 전부 준섭에게 있다고 일단 밀어 두자고.

준섭 형, 다음에 만나면 밥 사세요. 날 동생한테 홀라당 넘겨버리다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 아니죠? 무섭다.

“너 성인 되면, 나 노산이야….”

“아, 잇 정말!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요! …그리고 자식 계획은 둘이서 하는 거 몰라요? 몇 명을 낳고 싶은 거야.”

툭 찌르면 오는 반응은 지금이 더 마음에 든다. 예전엔 어쩐지 살살 빼는 느낌이 있었으니까. 뭐라 할지 상황 전부가 엉망진창이라서 오히려 안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대만은 솔직하게 그게 웃겨서 하하 웃었다.

“사귄다고 이야기해요.”

조급하게 되물어 오는 태섭의 얼굴이 유달리 귀엽다. 반질거리는 눈은 똘망하고 상기된 귀와 뺨은 따끈따끈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벌벌 떨리는 몸이라던지 마른침을 자꾸 삼키는 목젖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역시 네가 성인이 된 후에 마저 이야기하자.”

태섭의 숨이 짧게 멈췄다가 약하게 터진다. 대만은 미처 듣지 못하는 일이 없게 태섭의 손을 잡났다. 잘게 떨리는 손 끝이 대만의 손바닥을 타고 들어온다.

“한눈 안 팔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때도 여전히 신부 삼고 싶으면 이야기 해줘.


책에 미처 담지 못 한 후기

이걸 읽고 계시면 제가 마감을 친 거겠죠…. 아 원래 내려는 책이 도저히 마감을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서, 결국 드랍했는데, 하 돌발본을 낸다뇨…. 싶네요 지금, 사실 다 적은 상태가 아니어서 후기가 아니라 전기인데 제 예상은 30페이지쯤 되는 거 같아요. 과연?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온나노코가 마감을 한다고 했으면 마감을 해야죠 호호호 그것이 온나노코의 가오. #mood ㅇㅈㄹ로 생각하면서 마감하고 있습니다.

오네쇼타를 좋아하고 쇼타오니를 좋아해서 걍 나의 김찌를 끓인다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표지 태섭이의 머리가 브로콜리인데, 처음엔 갱얼쥐같은 단발을 생각했는데 표지 그려주는 지인이 브로콜리 헤어의 태섭이가 귀여워서 좋아~ 라고 한 덕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려진 표지를 보고 태섭이가 고교데뷔를 겸해서 본새 쫌 부렸는데 아직 졸업식 전이라서 본새 부린 채로 대만이에게 어깨동무 당하고 기념사진 찍는다고 생각하면서 우효~~ 귀엽다제 최고로 큐트~! 하면서 즐겼답니다.

책 타이틀은 지인이 술 먹고 지어줬는데 단어생략이 너무 많이 되어 있긴 한데 뭐래 라노벨은 뭔 소리야? 같은 제목이 아이덴티티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했어요. 너무 뭔 솔? 싶은가 싶지만…, 참고로 본작 타이틀의 약어는 ‘망각신부’입니다. (귀엽죠)

아 사실 진짜 적으면서 나는 이거 좋은데 너무 주절거리나 하지만 애기 태섭이가 귀여워야 하는 거 아님?! 하면서 버럭버럭했는데 뭔가 적다보니 그냥 정량 지켜서 만드는 요리가 대단하다 이런 생각이나 하게 되더라구요 뭔소리인가 싶지요? 저도 뭔소리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닙니다. 하하.

여기까지가 제가 정시 마감할 거라고 적은 후기였구요. 지금은 행사 전날 아침 11시경…. 기절잠 해버려서 좆댔구요. 탐라에 잠깐 돌던 송꼬추 별명 그대로 가져가겠습니다. 제가 지꼬추입니다. ㅠ

아 좆댔어!!!! 저는 비행기 타고 행사장 가야해서 일어나자마자 준비해도 전철 내에서 작업해도 9시까진 마감이 어려워서 하라님께서 많이 도움 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제 존엄이세요. 

퇴고 겨우 했습니다 오타? 많습니다. 이게 운명입니다. 이런 게 운명이라니 죄송합니다.

땡스 투 적을 시간도 없다! 곧 비행기 뜬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스 혼모노 익명의 지인 파이님 랑쥬님 하라님 토토님 암튼 친구들아 감사합니다!!! 님들이 최고세요!!!!!

저 투머치 토커여서 후기가 너무주절주절하네요 아이 부끄러워.

아무튼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덧 

개인적으로 태섭이네 부모님은 서로를 이름으로 향아~ ㅇㅇ아~ 대만이네 부모님은 여보 당신 한다고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덧의 덧 

대만의 집에서 나온 친구는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그 여자애는 짝녀랑 동거하고 세사람은 같은 건물에 삽니다. 셋은 배달비 메이트로 가끔 대만이가 날아 들어온 벌래 잡아달라고 부르면 꼴값이라면서 죽여주려 오는 대신에 벌래 잡아주고 짝녀의 눈치 없음을 한탄합니다. 대만이는 벌래 죽여준 값이라고 생각해서 듣고있습니다. 근데 솔직히는 벌래만 잡고 얼른 가줬으면 합니다. 처음엔 공감해서 맞장구도 쳤는데, 요즘엔 같은 이야기 너무 들어서 그냥, 고백하면 안 될까? 하고 멍 때리고 있습니다. 

 망각신부의 대력적인 나이차는 준섭과 태섭이 10살차, 준섭과 대만이 3살차로, 태섭이랑 대만이는 6살차 정도입니다~. 태섭과 아라는 연년생이란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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