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브아스]

루스아스

*가내 타브아스 BL

*검은 미사를 돕고 맹세파기자가 된 팔라딘(스폰) X 의식을 마치고 초월체가 된 아스타리온

*아스타리온 지키겠다고 나서서 다치고 온 루스와 그게 속상한 아스타리온 얘기

연회란 주최하는 쪽이 가장 즐겁겠지만, 가끔은 남의 잔치에 어울려주기도 하는 것이 사교계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비결이리라. 뭐, 그래도 와인을 고르는 안목 정도는 인정해주지. 잔에 든 와인을 흔들어 빛깔을 보며 아스타리온은 주변을 살폈다. 자르 성을 물려받아 안쿠닌 성으로 새롭게 꾸미고, 이전 주인보다 더 활발하게 사교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귀족으로서의 아스타리온은 평가가 높았다. 덕분에 이렇게 연회에 참석하여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면 저를 향한―다소 건전하지 못한―눈빛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스타리온은 피하지 않고 일일이 눈짓을 주며 그것을 즐겼다. 자신의 발 밑에 모든 것을 두기 위해서 필요한 인물들이니 나쁘게 보여서 좋을 것이 없다.

와인을 홀짝이던 그의 귀에 속삭임이 들렸다. 요즘 부쩍 그림자의 속삭임이 늘었다. 차츰 영향력을 키워가는 신흥 귀족을 견제하는 움직임이야 예상한 일이고, 그들의 수작질은 초월체의 명성에 아무 흠집도 내지 못한다. 그림자를 전보다 더 많이 활용하는 이유는 겨우 그깟 놈들 때문이 아니다. 가만히 보고의 속삭임을 듣던 아스타리온의 눈썹이 누군가의 이름을 듣고는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금방 표정을 바꾼 아스타리온은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연기력을 끌어올려 미소를 지으며 아스타리온이 연회 주최자에게 아쉽다는 듯 작별 인사를 건넨다.

“즐거웠습니다. 아, 더 머물고 싶지만. …요새 강아지가 말썽을 부려서 말이죠….”

대리석이 깔린 긴 복도. 담소를 나누던 이들이 불현듯 두리번거린다. 무언가를 감지한 표정으로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빠르게 흩어지는 공기 사이에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복도가 고요해지고 곧 또각이는 구둣발 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흰 머리카락이 거슬렸는지, 고성의 주인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주인의 뒤에서 시종 하나가 발소리를 내지 않고 잔걸음으로 따랐다. 벽에 붙다시피 서있는 하인 하나가 주인을 힐끔거렸다. 아, 기분이 좋지 않으시군. 그럴 만도 하지…. 애석하게도 성 안 가득 깔린 그림자가 주인에게 속삭이고 말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인 앞에 주인이 섰다. 하인은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잘 닦인 고급 구두의 끝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사시나무처럼 어깨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이름.”

“제, 제임스, 입니다….”

좋지 않은 직감이 들었는지 제임스는 어깨를 더욱 움츠렸다. 바닥에 고정된 시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주인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내 이름은?”

“아, 아스, 타리온…님.”

별안간 하인의 얼굴이 하늘을 바라봤다. 머리채를 잡힌 제임스가 벌벌 떨며 눈동자를 굴렸다. 주인의 눈과 시선이 맞닿은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히익, 하는 소리를 냈다. 아스타리온은 그것이 재미있는지 목을 울리며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 난 이 성과 너의 주인이야…. 누가 주인을 힐끔거려도 좋다고 했지?”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임스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 찼다. 아스타리온은 그 눈을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질리지도 않고 재미있다. 제 작은 동작 하나에도 어쩔 줄 모르고 가련하게 떠는 이들이란.

복도의 너머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스타리온은 손에 힘을 풀고 손아귀에 있던 남자의 머리를 툭 밀었다. 제임스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질로 주인의 시야를 벗어났다. 작게 들리는 흐느낌을 등지고 아스타리온이 복도의 끝을 향해 걸었다. 코너를 돌면 통로를 가린 긴 커튼을 손으로 밀며 걸어나오는 덩치 큰 남자가 보인다. 아스타리온은 인영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스타리온이 제자리에 서서 손을 까딱 움직이면 그 남자는 망설이지도 않고 고성의 주인 앞에 우뚝 선다.

“어서 와, 아스타리온.”

“다녀왔어…, 루스.”

아스타리온은 뒷짐을 지고 제 키를 훌쩍 뛰어남는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루스는 행동도 말도 없이 아스타리온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아스타리온이 손을 뻗어 루스의 옆구리를 건드리자 루스의 눈썹이 들썩였다. 아스타리온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갔다 왔다고 들었는데.”

“….”

“…또 다쳐서 왔어?”

손바닥에서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손끝으로. 단정한 흰 셔츠 위에서 아스타리온의 긴 손가락이 움직였다. 루스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마침내 손가락이 옆구리를 강하게 누르자 흰 셔츠에 피가 조금 배어나왔다. 아스타리온은 천천히 손을 거두고 시종에게 고갯짓을 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있던 시종이 루스에게 가까이 다가가 셔츠를 벗겨내자 붕대로 칭칭 감긴 허리가 드러났다. 루스는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시종은 익숙하게 붕대를 벗겨내고 새 붕대를 감았다. 잘 잡힌 근육 위로 보이는 흉터들을 눈으로 훑으며 아스타리온이 팔짱을 꼈다.

“어차피 들킬 텐데 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지?”

“네가 신경쓰잖아.”

“'내 것에 신경을 쓰면 안될 이유라도?”

루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붕대를 다 감은 시종이 아스타리온의 뒤에 자리하자 아스타리온이 손짓으로 시종을 물렸다. 잔걸음소리가 멀어지고 둘만 남은 것이 확실해지자 아스타리온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이제 나는 쉽게 위협당하지 않는다고.”

“….”

“입 닫고 있지 마, puppy.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너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야.”

“하.”

아스타리온이 걸음을 옮겨 루스를 지나쳤다. 루스는 그가 통로를 지나갈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뻗어 커튼을 올렸다. 아스타리온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런 건 잘 하면서 왜 쉬운 말 하나를 못 지켜?”

아스타리온은 계속해서 걸었다. 루스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아스타리온의 발걸음은 그들이 동침하는 침실의 문 앞에서 멈췄고 루스는 익숙하게 방문을 열었다. 깔끔한 침구와 다르게 방 안에 피 냄새가 가득해서 아스타리온이 표정을 구겼다. 온갖 것의 냄새가 섞였다. 전투를 위해 피를 마셨고 그 피를 고스란히 흘려왔겠지. 아스타리온은 고개를 홱 돌려 루스를 노려봤다. 루스는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암살 시도가 있을 거라고 들었어. 물론, 일가를 통째로 다 처리했어. …실제로 행해졌다고 한들 널 해치지는 못했겠지만….”

“알면서 왜 매번 나서는 거지? 난 내 것을 망치는 게 싫어.”

아스타리온이 침대로 다가가 풀썩 앉았다. 루스를 바라보지도 않고 손을 까딱 움직이면 루스는 아스타리온의 앞으로 다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아스타리온은 한숨을 한 번 쉬고 제 앞에 무릎 꿇은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든 채로 아스타리온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는, 이 강아지는 제 신념 앞에서는 아주 제멋대로다.

“나는 초월체야, 자기. 네가 나에게 쥐어준 힘이잖아.”

“…응.”

“너와 나를 지키려고 얻은 힘이야…. 우리 강아지는, 내가 널 지키지도 못하게 만드네.”

“아니야.”

“네 꼴을 봐.”

부루퉁한 말씨에 루스는 아스타리온의 손에 제 얼굴을 부볐다. 아스타리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어둠의 반려, 오른팔, 가장 사랑하는 스폰. 루스는 제 피를 모두 내어준 밤부터 한결같이 아스타리온에게 헌신적이다. 신에게 했던 헌신의 맹세를 깡그리 바닥에 내던지고 초월체를 제 신으로 삼은 자의 사랑이란 얼마나 어둡고도 깊은지…. 아스타리온은 배어나오는 미소를 참으려 애쓰며 짐짓 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안 그럴게. …노력해볼게.”

“뒷말은 굳이 안해도 됐을 텐데.”

아스타리온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의중을 알아챈 루스가 몸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잠시 기다렸다가, 아스타리온이 뒤로 빼지 않으면 그제야 혀를 내어 입술을 핥는다. 장하지, 우리 강아지. 아스타리온은 그것이 만족스러워서 입꼬리를 올렸다. 상이라도 주듯 루스의 두 뺨을 손으로 잡고 키스를 퍼붓자 루스는 얌전한 개처럼 눈을 감고 그것을 즐긴다. 본인이 만족할만큼 입을 맞춘 아스타리온이 다시 몸을 세웠다.

“흠,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

“다행이네.”

“누가 말만 잘 들으면 나쁠 일도 없었을 것을.”

“…알았어.”

그 대답에 조금 더 곁을 내어줄 마음이 생겼는지 아스타리온의 몸이 완전히 침대로 올라갔다. 옆에 누우라는 것처럼 침대를 통통 두드리면 루스가 일어나서 침대에 등을 대고 눕는다. 아스타리온은 그 옆에 누워서 루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팔을 만지작거렸다. 루스가 눈을 끔뻑였다. 아스타리온이 쓰읍, 하고 소리를 냈다.

“나을 때까지는 안 돼.”

“흠.”

“나으려면 내 말도 잘 들어야지. 그렇지?”

아스타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는 루스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얌전히 쉬어, 속삭이며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아스타리온은 방을 빠져나왔다. 그림자의 속삭임이 들린다. 아, 그래. 한 놈이 살아있다고…. 흠…. 그 녀석의 칼이 몸을 스쳤단 말이지….

고성의 주인이 다시 성을 나섰다. 이미 쓰러진 놈들은 나 말고 우리 강아지를 먼저 만난 것을 기뻐해야 할 테지. 나는 별로 자비롭지 못하니까. 아스타리온의 입술이 곡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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