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올게.
겔펠 (비승천)
부우-하고 뱃고동이 우는 소리가 게일과 펠의 집 안까지 들어와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는 흩어진다. 이른 아침, 펠은 이불 속에 파묻혀 눈을 떴다. 졸린 눈만 꿈뻑이던 펠은 어쩐지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어 뒤척여 본다. 자신을 꼭 끌어안은 팔이 느껴진다. 어제 끌어안고 잤던가, 아, 게일이 바빠서 내가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 펠은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이느라 흐트러진 머리 사이로 드러난 귀에 게일의 고른 숨소리가 닿는다. 가만히 그 숨소리를 듣는다.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생생한 삶의 소리. 펠은 조심스레 자신을 끌어안은 게일의 팔을 풀어낸다.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숨소리가 조금 달라지는 듯 하면 멈춰 조용히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다가, 다시 움직인다. 펠은 게일을 똑바로 눕히고는 옆에 앉아 잠시 바라본다. 곤히 잠들어 있는 게일의 찌푸려진 미간을 펴 주기 위해 손을 살짝 들었다가, 깰까 싶어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는 발끝을 세워 조심조심 침실을 빠져나간다. 펠이 조심스레 문을 닫는 소리가 깃털이 내려앉는 듯 게일의 귓가에 맴돌다 사라진다.
금새 옷을 갈아입고 온 펠이 침대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게일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이불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길고 빽빽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입을 잠시 우물거리다가,이내 눈썹이 구겨졌다 다시 펴진다. 꿈을 꾸나 봐. 펠이 슬쩍 웃고는 몸을 일으킨다. 한쪽 팔로 껴안듯이 게일의 이불을 끌어당겨 주고, 반대쪽 손으로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허리를 굽혀 게일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다.
한줄기 아침 햇살이 들어와 두 사람을 비춘다. 펠은 게일의 코를 간지럽히던 자신의 머리카락을 걷어올리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게일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다. 짙은 색의 수염이 햇빛을 받아 언뜻 황금색으로 빛난다.
펠은 그 반짝임을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일어나 커튼을 친다. 게일의 잠을 방해하던 햇빛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펠은 살금살금 발을 떼 방문 앞까지 가서 다시 뒤를 돌아본다. 게일은 아직도 편안히 잠들어 있다.
“다녀올게.”
다시 조용히 문이 닫히고, 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이 어떤 날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힘내서 살아갈 것이다. 내일 다시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루의 시작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아주 오랫동안, 평온하고 행복하게.
그림은 혼놀 ( @ coq6lue) 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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