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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79화

두 갈래 길

사이코키네시스는 막힌다, 근접 공격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성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메타그로스, 파괴광선!!”

“솔라빔!!”

양쪽 모두 전력을 다한 공격. 동시에 쏘아진 굵은 빛줄기가 중앙에서 부딪치며 강한 폭발이 일었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으나 눈은 완전히 감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바람이 일고, 침묵과 함께 먼지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필드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네발로 자세를 유지한 이상해꽃과 바닥에 쓰러진 메타그로스였다.

푸릉, 이상해꽃이 먼지를 털어내듯 고개를 털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 자신감 넘치는 자태에 감탄하려던 제노가 문득 생각난 것에 고개를 돌렸다. 실버와 윤진의 포켓몬은?

“….”

“이미 더블 다운된 지 오래란다.”

중간부턴 마치 두 사람만의 배틀인 것처럼 굴고 말이야.

윤진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쓰러진 밀로틱을 볼로 돌려보냈다. 실버 또한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장크로다일을 들여보낸다.

세 마리가 다운, 남은 것은 이상해꽃뿐. 결정 난 승부에 제노가 폴짝 뛰어 필드로 내려갔다. 아직 남아있는 물기에 바짓자락이 젖어 들어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상해꽃에게로 달려간다. 팔을 활짝 벌리고 넘어지듯 안기는 제노를 이상해꽃이 머리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역시 네가 최고야, 이상해꽃!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강한 풀 포켓몬이야!”

쏟아지는 쓰다듬음과 칭찬 세례에 기분이 좋아진 이상해꽃이 덩굴로 제노의 허리를 칭칭 감곤 둥개둥개 안아 들었다. 그 모습에 실버가 기가 막히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누가 보면 제노가 포켓몬이고 이상해꽃이 트레이너인 줄 알겠네.

멍하니 제노와 이상해꽃을 바라보는 성호에게 윤진이 나직이 말했다.

“져버렸네.”

“… 응.”

질문에 반사적으로 답하고는 있지만, 그의 정신은 온통 제노가 보여주었던 미소를 되감고 있었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마치 어두운 동굴 안에서 홀로 고고히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얼굴.

그 성의 없는 대답에 윤진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성호,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서 어떻게 회사의 일로 잡아두겠다는 거야.

기나긴 세레머니 끝에 제노가 이상해꽃을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실버의 도움을 받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올라선 그가 외쳤다.

“이겼으니까 약속은 지켜주시는 거죠?”

“물론이지. 하지만 그 전에 포켓몬 센터부터 들를까?”

옷도 좀 갈아입고 말이야. 격한 싸움의 여파로 젖은 제 옷을 가리키며 윤진이 답했다. 그러고 보니 비바라기에 파도타기에, 물 타입 공격이 가득했지. 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필드를 빙 둘러 다시 모인 네 사람이 방금 있었던 배틀에 대한 감상을 남기며 바깥을 향했다.

심판을 맡고 있던 짐 트레이너가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돌아본 윤진이 상큼하게 말했다.

“일단 필드가 복구될 때까지 체육관 도전은 다시 막을까? 난 개인적인 일로 잠시 나갔다가 올게.”

그렇게 말하곤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짐 트레이너가 난장판 한가운데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가지 마세요 관장님….

*

“어때?”

윤진의 물음에 제노는 조용히 상자 안을 살폈다.

확실히 피리는 맞았지만 찾고 있던 것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제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윤진이 다시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성호가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쉽게 됐네요.”

“그래도 감사해요. 성호 씨가 아니었다면 확인할 기회도 얻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답한 제노는 밋밋한 평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핑계로 윤진이 인형 놀이를 하듯 이것저것 입혀주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소재의 셔츠에 허리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반바지. 일루전(이제는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음.)을 추구하는 그와 최대한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제노의 치열한 공방 끝에 선택된 옷이었다.

포인트가 되는 커다란 리본 타이를 성호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 그 빤한 눈빛에 고개를 들어 올린 제노가 문득 떠오른 것을 물었다.

“저, 그러고 보니 왜 배틀에서 메타그로스를 메가진화시키지 않으셨어요?”

“음… 상대가 진심이 아닌데 메가진화를 사용하고 싶진 않았어요.”

마지막에는 제법 진지하게 되신 것 같았지만요.

리본 타이에서 시선을 옮겨 제노와 눈을 마주한 그가 그렇게 답하며 빙긋, 웃었다. 그 정확한 분석에 제노가 움찔했다. 가능하면 모든 일을 설렁설렁 넘기고 싶다는 속내를 이미 들킨 것만 같았다.

뜨끔한 제노가 입을 다물자, 성호가 손을 뻗어 리본을 매만졌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 끝을 잡고 문지르던 그가 말했다.

“그냥, 잘 어울려서요.”

“….”

그리곤 지어 보이는 눈웃음에 제노가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닌 것 같은데. 또 예쁘게 웃는 척, 불순한 눈빛을 하는 것 같은데.

허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그 묘한 긴장감과 달리 멀리서 본 두 사람은 화기애애해 보였다. 늘 정장 차림인 성호의 옆에 제노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서자 퍽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우왁,”

순간 무언가가 제노의 머리를 덮쳤다. 윤진이 압수했던 검은 모자를 보관하고 있던 실버가, 그 캡 부분을 잡고 무슨 포충망으로 벌레 포켓몬을 채집하듯 모자를 씌우곤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제노가 맥없이 그에게로 끌려갔다. 실버가 말했다.

“닥트리온지 뭔지도 막았겠다, 피리도 확인했겠다, 이제 더 이상 호연에서의 볼일은 없지?”

“닥트리오가 아니고 가이오가….”

“아무튼.”

모자가 치워지고 그의 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실버군. 조금 더 호연의 바다를 즐기다가는 건 어때?”

“아쿠아단을 막으면서 온몸으로 실컷 즐겼어.”

“난 바다 좋은데엡.”

실버에게 입이 붙들리며 제노의 말이 엉망으로 끝났다. 제노가 눈만 굴려 그를 노려보았으나, 아랑곳하지 않은 실버는 성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낼 곳이 걱정이라면 우리 집에서 원하는 만큼 더 지내도 좋아.”

“필요 없어. 당장 호연을 떠날 거니까.”

그 살벌한 눈빛을 확인한 제노가 도르르, 다시 눈동자를 굴려 이번에는 성호를 바라보았다.

“섭섭하네. 실버 군과 제법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겠지.”

“그런가? 혼자 생각하는 건 내가 아니라 실버 군 같은데. 제노 씨가 실버 군과 같이 간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나?”

환하게 웃는 성호와 달리 실버의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기괴한 분위기 속 제노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의 거취가 고민이다. 신오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무난하겠지만, 실버가 딸려 오는 것은 이래저래 곤란했다.

묘한 대치 상태를 깬 것은 상자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온 윤진이었다. 뭐 하는 거니, 다들. 그 말에 성호가 먼저 윤진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실버 또한 제노를 놓아주었다.

*

그리고 며칠 뒤, 제노는 여전히 호연에 남아있게 된다. 이유는 간단했다. 호연을 지켜내는 데 큰 공헌을 한 두 사람에게 포켓몬 협회에서 성호를 통해 정식으로 초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요청에 결국 제노와 실버는 정해진 날짜까지 성호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 저번에 나에게 부탁했던 일 기억해? ] 오후 07:43

[ 찾았어. 공신의피리. ] 오후 07:43

그리고 협회의 의사가 전해진 같은 날, 난천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피카츄를 쓰다듬으며 나른하게 시간을 보내던 제노가 화면에 뜬 글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품에 안겨있던 피카츄는 반 바퀴 정도 굴렀다. 피? 피카츄가 뒤집어진 채로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제노를 올려다보았다.

“여보세요? 네, 문자 보내신 거 받았어요. 그-“

급하게 테라스로 나간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피카츄가 따라 발걸음을 옮겼지만, 완전히 닫힌 유리문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랑 뭔가 또 협상을 하는 중인가 보지. 피카츄가 느긋하게 유리문에 등을 기댔다. 통화 내용을 엿듣는 귀가 바쁘게 쫑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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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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