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한 갈래 길
“가라, 이번엔 너다!”
리자몽의 울음소리가 동굴 전체를 울렸다. 그 진동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포푸니.”
실버의 몬스터볼에서 나온 포푸니가 높은 소리로 울었다. 리자몽에 비해 그 기세는 약했지만, 전혀 겁먹지 않은 모습이었다. 실버가 바닥을 축축하게 적신 바닥을 한번 보곤, 포푸니에게 작게 신호를 보냈다. 실버를 슬쩍 돌아본 포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제노가 먼저 외쳤다.
“피카츄!”
“피카피카!”
기운차게 답한 피카츄가 다시 한번 파도를 일으켰다. 그에 맞춰 튀어 오른 포푸니가 차가운 냉기를 뿜었다. 밀려나는 모양 그대로 얼어붙은 파도가 날카로운 창이 되어 이향과 목호의 포켓몬을 밀어붙였다. 리자몽은 순간 높게 날아올라 피했으나, 신뇽은 그대로 얼음 파도에 부딪혔다. 이향이 혀를 차며 신뇽을 볼로 돌려보냈다.
“부탁한다, 킹드라!”
킹드라가 필드에 자리 잡았다. 실버에게 한 번 당한 걸 기억하는지 킹드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포푸니에게 유리한 필드. 목호가 팔을 뻗었다.
“리자몽, 얼음을 녹여!”
“피카츄, 지금이야!”
리자몽이 아래로 강하하며 입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가까이 다가온 지금이 기회였다. 화끈한 열기를 피한 피카츄가 리자몽에게 올라탔다.
“방출해!”
숨을 크게 들이켠 피카츄가 리자몽과 접촉한 상태로 강한 전격을 뿜어냈다. 리자몽이 고통에 신음했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장기전으로 이어지기 전, 목호가 망토를 펄럭이며 외쳤다.
“그대로 플레어드라이브다!”
“포푸니, 피해!”
피카츄를 몸에 매단 채로 온몸에 불꽃을 두른 리자몽이 향한 방향에는 포푸니가 있었다. 이런 미친,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상당히 막무가내인 전략을 사용하는 목호에 제노가 당황하는 사이, 포푸니를 들이받은 리자몽이 그대로 직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네 사람의 시선이 모두 높게 출렁이는 물살로 향했다. 이내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쓰러진 포켓몬 세 마리였다.
“피카츄, 괜찮아?”
“피카피….”
둥실, 떠오른 피카츄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제노가 피카츄를 볼로 돌려보냈다. 어차피 목호의 마지막 포켓몬이 망나뇽일 테니 교체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노가 다음 몬스터볼을 던졌다.
“부탁할게.”
볼에서 나온 가디안이 하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살포시 필드 위에 섰다. 페어리 타입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가디안은 드래곤 타입 전문인 이향과 목호의 카운터. 하지만 실버에게 맞추겠다고 한 이상 최대한 그를 보조하는 방향으로 운용할 생각이다. 가디안에겐 조금 답답한 대결이 되겠지만….
그런 제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가디안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사이 실버가 마지막 포켓몬인 고우스트를 내보냈다.
“고스트 타입과 에스퍼 타입의 조합이라. 어떤 작전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걸?”
“….”
미안해요, 목호 씨. 단일 에스퍼 타입이 아니라 에스퍼/페어리 타입이에요. 제노는 침묵했다. 대신해서 실버가 외쳤다.
“고우스트, 섀도볼!”
“킹드라, 피해!”
그러나 킹드라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이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이코 에너지를 사용하느라 빛나는 가디안의 눈이었다.
“망나뇽, 막아!”
망나뇽이 순식간에 킹드라의 앞에 서 섀도볼을 대신 맞는다. 그다지 큰 데미지를 입지 않은 듯한 모습. 하지만 진짜는 지금이었다. 망나뇽의 뒤에 있던 킹드라의 몸이 공격을 받고 허공에 떠오른다.
“킹드라!”
쿵. 큰 소리와 함께 다시 바닥에 떨어진 킹드라가 그대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섀도볼로 시선을 끌고, 모습을 숨긴 고우스트가 킹드라의 아래에서 나타나며 거세게 쳐올린 것이었다. 이향이 분한 표정으로 마지막 포켓몬을 꺼낸다. 아마도 갸라도스-
“가라, 망나뇽!”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두 마리의 망나뇽에 제노가 잠시 눈만 끔뻑인다. 쌍나뇽 이거 뭔데. 제노가 멍을 때리는 사이, 이향과 목호가 동시에 외쳤다. 화염방사!
무시무시한 불꽃이 고우스트에게로 쏟아진다. 피해! 실버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이걸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때,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
분명 쓰러진 고우스트가 있어야 할 곳에 가디안이 서 있었다. 화염방사를 정통으로 맞은 가디안이 조금 비틀거렸다. 반대로 고우스트는 가디안이 있던 자리로 옮겨져 공격을 피한 상태였다.
“이게 대체….”
“지금 그럴 때야?”
“… 고우스트!”
제노의 타박에 정신을 차린 실버가 다시 지시를 내렸다. 상대 또한 예상치 못한 풍경에 당황한 상태. 지금이 기회였다.
“두 번은 안 당하지, 방어!”
그러나 이향의 망나뇽이 뒤에서 튀어나온 고우스트의 공격을 막아냈다. 방어를 배우고 있을 줄이야. 오직 공격, 공격, 그리고 공격뿐인 목호의 망나뇽과 다른 기술 배치에 제노가 속으로 혀를 찼다. 가디안의 특수방어가 높아서 다행이었다. 그가 실버에게 말했다.
“계속해서 몰아붙여!”
“알고 있어! 고우스트!”
“망나뇽!”
고우스트가 손아귀에 모은 기운을 날렸다. 불꽃을 두른 주먹으로 그것을 날려버린 망나뇽이 그대로 고우스트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가디안의 리플렉터가 막아낸다.
“귀찮은 기술을 쓰긴! 망나뇽, 용의숨결이야!”
“실버, 내 가디안은 샌드백이 아니야.”
“알고 있대도!”
방어를 쓴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을 외친 이향의 지시에 따라 용의숨결이 고우스트에게로 쏟아졌다. 이번에도 가디안과 고우스트의 위치가 바뀌고, 공격을 피한 고우스트가 모아둔 기운을 이용해 이향의 망나뇽을 공격했다.
제법 세게 들어간 보복에 이향의 망나뇽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우스트가 근거리에서 섀도볼을 날렸다. 그 궤적을 따라 날아간 이향의 망나뇽이 쓰러졌다.
“이럴 수가, 내 망나뇽이…!”
이향이 분한 얼굴로 망나뇽을 볼로 들여보냈다. 그가 이번에도 제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대체 뭐야! 이상한 피카츄 다음은 이상한 가디안이야?! 어떻게 용의숨결을 정통으로 맞고도 아직 쓰러지지 않은 거냐고!”
유일하게 이유를 아는 제노가 침묵했다. 이향이 분에 못 이겨 제자리에서 발을 굴렸다. 이걸로 2대1. 어떻게 보면 우리가 유리해 보이지만….
“망나뇽, 용성군이다.”
“가디안!”
위에서 운석이 떨어진다. 드래곤 타입 기술이 소용없는 건 가디안뿐. 제노의 부름에 가디안이 사이코키네시스로 고우스트에게 향하는 운석 몇 개의 궤도를 바꾸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드래곤 타입의 가장 강한 특수공격을 맞은 고우스트가 비틀거리더니, 쓰러진다. 실버는 덤덤하게 고우스트를 볼로 돌려보냈다.
“이걸로 너와 나만 남았구나.”
죄송한데 왜 즐거워 보이시는 거죠. 묘하게 들뜬 목호가 망나뇽에게 불꽃펀치를 지시했다. 순식간에 가디안에게 다가온 망나뇽이 연속해서 가디안이 펼친 리플렉터를 세차게 두드렸다.
가디안은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원거리공격을 사용한다. 목호도 그걸 잘 알기에 틈을 주지 않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아까보다 배는 강해진 기술의 위력에, 제노가 제 입술을 살짝 물었다. 이 사람, 이향과 실버가 빠지자마자 바로 진심이 됐잖아…!
“이걸로 끝이다!”
카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가디안의 리플렉터가 깨지고, 가디안이 뒤로 밀려난다. 이미 화염방사를 맞아 체력이 닳은 상황. 가디안이 조금 휘청이자, 목호가 외쳤다.
“망나뇽, 마무리를 지어라!”
목호의 망나뇽이 고개를 치켜들고 위협적으로 울었다. 그리고 이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 그러니까, 목호의 망나뇽이.
이향, 목호, 그리고 제노 세 사람 모두 당황하여 기절한 망나뇽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실버만이 홀로 태연했다. 흥, 가볍게 콧방귀를 뀐 그를 제노가 돌아보자, 그가 말했다.
“당신이 그랬잖아? 당신 가디안은 샌드백이 아니라고.”
그리곤 악동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이었다.
제노는 자신도 모르게 푸, 하고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알았다. 실버의 고우스트가 쓰러진 건, 용성군이 강해서가 아니라 저주로 이미 체력이 반 닳아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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