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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한 갈래길

사박, 사박, 나뭇잎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둘.

앞장서서 걸어가는 제노의 조금 뒤에서, 실버가 따라 걷고 있었다.

배틀의 결과는 당연히 실버의 대참패였다. 실버가 가진 포켓몬 네 마리는 전부 제노의 피카츄에게 당했다. 나머지 포켓몬이 뭔지 보니 마니 했던 것은 별로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제노와의 배틀은 심향이나 체육관 관장들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 비유하자면 스스로가 롱스톤을 깨부수겠다고 덤비는 아라리가 된 느낌이었다. 결국 포켓몬 센터에 들어가게 된 건 실버 쪽이었다.

이후 제 입으로 그러겠노라 해놓고선 꽤나 마뜩잖은 표정으로 제노의 강함을 인정한 실버는 어째서인지 제노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사박사박, 사박사박. 두 사람의 발소리가 겹쳤다가 어긋나길 반복했다. 그 묘한 화음에 제노는 걸음을 멈추었다.

“… 왜 날 따라오는 거야?”

“뭐? 착각하지 마, 가는 길이 같을 뿐이니까.”

“담청시티로 갈 생각인 거 아냐? 난 도라지시티로 향할 거라고."

“… 여긴 38번 도로야. 도라지시티로 가려면 37번 도로로 향했어야지.”

피이. 피카츄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었다.

*

그럴 리가 없다며 제노는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분명 여기가 서쪽이고, 여기가 남쪽…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실버가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너, 포켓기어에 타운맵 안 받아 놨어?”

“아니, 난 종이로 된 지도가 더 편해서…”

“대체 몇 살인데 벌써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스물.”

“….”

“….”

“….”

실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모자 아래 제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딱 봐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 게 반말이나 찍찍해 대고…

“너는 몇 살인데?”

“아, 알아서 뭐 하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실버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새 포켓몬이 도망가면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알기 쉬운 놈 같으니라고.

*

숲의 저녁은 마을에서의 것보다 빨리 찾아왔다. 적당한 자리에 작은 텐트를 친 제노는 그 앞에 자리 잡았다. 옆에는 실버도 함께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 어두운 숲에 얘를 혼자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저녁으론 야채수프에 조금 퍽퍽해진 빵을 나누어 먹었다.

우선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들을 모아 집 모양으로 쌓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론 양이 부족해서 가지를 자르려고 손도끼를 꺼냈더니 실버가 기겁을 했다. 아니, 도끼 처음 보나….

잭나이프로 가지 하나를 깎아 만든 페더스틱에 파이어스틸로 불을 붙인다. 설산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샀는데 편하더라고. 그냥 불 타입 포켓몬을 하나 데리고 다니는 게 낫지 않냐는 난천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난천 씨는 한 마리 가지고 있으신가요, 하고 물으니 당당하게 없다고 답했었지. 쪼그려 앉아서 파이어스틸을 사용해 보곤,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처럼 함께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튼, 불을 피웠다면 그 위 적당한 높이에 냄비를 건다. 감자와 당근, 기타 자투리 채소들을 몽땅 볶다가 수프 분말을 털어 넣고 물을 더한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날이 따뜻한지라 우유나 버터같이 상하는 재료는 챙겨 다닐 수는 없었기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수프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자 식욕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심한 척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실버도 다르진 않은지 그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붉어진 얼굴은 모른척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두 사람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실버도 실버 나름 고민이 있는 듯했고, 제노도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라지시티로 향하는 일이 급한 건 아니었다. 박사님께 연락도 어느 마을에서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노는 성도지방의 배지를 전부 모으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일.

지금이라도 길을 되돌아가서 인주시티로 향해야할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해서 담청시티로 가봐? 근데 그럼 계속해서 쟤랑 동행해야 하는 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제노가 마음속으로 동전을 던졌다. 빙글빙글 허공에서 돌아가던 그것을 잡아챈 건 실버였다.

“강해지고 싶어.”

“뭐?”

“강한 남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어.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강해질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가 제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모닥불의 빛을 담고 일렁였다.

“알려줘.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지?”

실버의 손에 들린 동전은 결국 앞면이었을까, 뒷면이었을까. 제노는 직감했다. 결과가 어떻든 이 녀석을 떼어놓고 갈 순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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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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