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73화

두 갈래 길

“님피아!”

밝은 빛줄기가 고래왕자에게로 쏟아진다. 충격에 날아오른 고래왕자의 몸이 뒤집힌 채로 물 위에 둥실, 떠올랐다.

“치잇… 이렇게 된 이상, 도망이다!”

꼬맹이들만 상대하면 될 줄 알았더니, 저 트레이너, 강하잖아! 마지막 포켓몬을 들여보낸 아쿠아단 조무래기가 타고 있던 고래왕자에게 서둘러 헤엄칠 것을 명령했다.

“놓칠 세냐!”

“잠깐, 휘웅아! 멋대로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언니, 저희도 쫓아가죠!”

“저기….”

제노의 대답은 무시한 채 봄이가 대짱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낮게 대답한 대짱이가 물살을 가르고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등에 타고 있던 제노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실버에게 연락을- 앗, 통화권 이탈이다….

후딘의 예지는 적중했다. 휘웅, 그리고 봄이와 도착한 다이빙 지점에서 아쿠아단 조무래기와 마주친 제노는 결국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사용할 수 있는 포켓몬은 세 마리. 한바이트와 피카츄, 루카리오는 모래사장에 두고 왔고, 레쿠쟈는 당연히 패스. 고로 그때 꺼내지 않았던 가디안과 이상해꽃, 그리고 품에 안은 님피아가 전부였다.

이대로 아쿠아단의 본부로 향할 기회를 놓칠 수도 없고, 애초에 주인공들이 멈춰달란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어질 배틀을 즐기고 싶었다. 아니, 뭐, 애들만 싸우게 둘 순 없잖아? 잠시 고민하던 제노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여차하면 루카리오가 파동으로 찾아주겠지! 세 사람은 조무래기의 뒤를 쫓아 한 동굴의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시각, 호텔 근처의 해변.

양손에 제노와 자신의 몫인 음료를 하나씩 든 실버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제노는 없고 포켓몬들만이 모래사장에 남아있었다. 뭐야, 왜 안 보여. 제노의 모습을 찾는 그에게로 급하게 다가온 후딘이 사이코 파워로 자신이 본 것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렇게 꼬맹이들이랑 바다로 나갔다고?”

끄덕.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 끄덕.

후딘의 고갯짓으로 상황 파악을 완료한 그의 얼굴이 기가 차다는 표정에서, 순식간에 야차와 같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얌전히 있으라고 했더니…!”

터, 터진다, 이거 터진다! 제노가 없는 상황에서 대폭발을 일으킬 것 같은 기세에 후딘이 당황한 사이, 집씹듯 말을 내뱉은 실버가 곧장 몸을 돌려 호텔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기껏 번호를 알아냈더니 이번엔 연락이 안 된다.

우울해하고 있는 성호를 윤진이 달래고 있던 그때, 누군가의 성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실버였다. 윤진이 반가워하며 입을 열었다.

“실버 군, 마침 전화하려고-”

“이봐. 당신 무장조를 좀 꺼내야겠어.”

그 말의 허리를 끊은 실버가 성호에게 말했다. 성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실버가 상황을 설명했다.

“사라졌다고, 그 사람. 꼬맹이들이랑 같이 124번수로 쪽으로 향했대.”

“잠깐, 사라졌다니? 그리고 꼬맹이들은 또 누굴 말하는 거니?”

“해양박물관에서 아쿠아단이 잠수정을 탈취했을 때 마주쳤던 녀석들 말이야!”

윤진의 물음에 날카롭게 대꾸한 실버가 당장 찾아야 한다며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를 붙잡은 윤진이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니?”

“그게, 한… 십 분 전쯤?”

잠시 고민하던 실버가 그렇게 말했다. 그 답에 윤진은 황당하단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니, 저기, 잠깐만….

“제노 양도 성인이고, 보통은 십 분 정도 바다에 놀러 나간 걸로 사라졌다고 하지 않아.”

“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사라졌다고! 분명 또 멋대로 나섰다가 무슨 일에 휘말린 게 분명해.”

“하아…. 성호,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보렴…. 윤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성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장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분리불안 남자가 두 명…. 2대1로 쪽수에서 밀린 윤진이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손에는 밀로틱의 몬스터볼이 들려있었다.

“장크로다일.”

해변에서 실버는 장크로다일을 꺼냈다. 모래사장에 남아있던 제노의 포켓몬들 중 파동으로 주인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루카리오는 실버와 함께 장크로다일의 등에 탔고, 피카츄는 잽싸게 성호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간식을 열심히 먹인 보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성호가 조심스럽게 피카츄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출발하려던 그때, 자리를 잡지 못한 한바이트만이 모래 위에 남아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실버가 말했다.

“넌 남아서 기다려.”

크르릉.

“아니, 장크로다일이 너까지 태우기엔 힘들다니까.”

키웅….

“근처 포켓몬 센터에 맡기는 건-”

성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바이트가 그건 싫다며 발을 마구 굴렀다. 그에 따라 모래 먼지가 일었다. 차라리 여기에 남겠다는 의미 같았다.

실버가 곤란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로 한바이트를 둘 순 없었다. 안 그래도 호연에선 볼 수 없는 포켓몬인 데다, 딥상어동에서 진화하여 덩치까지 크다. 자칫 주인 없는 야생 포켓몬으로 간주되었다간 끌려갈 수도 있었다.

그냥 나도 태워주면 안 돼? 한바이트가 작게 낑낑거리며 울망한 표정으로 실버를 올려다보았다. 실버가 콧방귀를 뀌었다. 덩치도 산만한 녀석의 눈빛 따위에 내가…

페어리 타입도 아닌 녀석의 초롱초롱눈동자 따위에…

불쌍한 표정 좀 짓는다고 내가…!

… 결국 끈질긴 눈빛에 진 실버가 윤진을 바라보았다. 윤진이 제 밀로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태우고 갈게. 그에 한바이트가 폴짝폴짝 윤진에게로 뛰어갔다.

*

다시 해안 동굴.

“이런 곳에 아지트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크다…!”

“….”

세 사람은 물길을 따라 아쿠아단의 아지트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두리번거리며 내부를 감상하기에 바쁜 두 트레이너들에게 가볍게 주의를 준 제노가 조용히 걸어 나갔다. 그 뒤로 휘웅과 봄이가 아차모처럼 졸졸 따라왔다.

“찾아!”

“침입자를 막아라!”

“절대 안으로는 더 못 들어가게 해!”

제노의 신호에 따라 세 사람이 좁은 길로 숨어들자, 아쿠아단 단원들이 우르르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본부라 그런지 그 수가 많다. 이미 침입을 들킨 와중에,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까지 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노가 두 아이들에게 배틀에 대비할 것을 말하자 봄이는 타고 왔던 대짱이를 그대로, 휘웅은 나무킹을 꺼내 들었다.

귀가 밝은 님피아의 지시를 따라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 정면에 철문이 닫히며 길이 막혔다. 동시에 경보음이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조용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네. 휘웅아, 문을 부탁해. 봄이는 나랑 같이 뒤를 맡자.”

“네! 나무킹, 리프블레이드!”

“대짱이, 준비해!”

일자로 난 커다란 복도였기에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제노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두 사람이 움직이고, 곧이어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해치워라!”

“머드숏이야!”

외침에 따라 아쿠아단의 포켓몬들이 이를 드러내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대짱이의 머드숏에 그라에나들이 멈칫한 사이, 님피아의 문포스가 그들에게 적중했다. 캥, 캐앵!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골뱃들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님피아에게로 날아들었다. 님피아가 반사적으로 몸에 기운을 모으던 그때, 묘한 빛에 둘러싸인 골뱃들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일제히 벽에 처박혔다.

님피아가 기술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자, 제노의 옆에 서 있는 가디안이 눈에 들어왔다. 흥,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었거든. 그렇게 말하듯 님피아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애초에 님피아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던 가디안은 그것을 무시했다. 가운데 낀 제노만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같이 지낸 지가 얼만데 너희끼리 협조 좀 해.

“열렸어요!”

“언니, 빨리 가요!”

휘웅의 말에 제노와 그의 포켓몬들을 먼저 앞으로 보낸 봄이가 외쳤다. 대짱이, 파도타기! 순식간에 일어난 파도가 달려드는 아쿠아단을 비명째 집어삼켰다. 이래서 먼저 보낸 거였구나. 휘웅과 함께 달리고 있자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은 봄이가 금세 옆으로 따라붙었다. 제노가 문득 떠오른 것을 물었다.

“탁류는?”

“네? 아, 그게….”

파도타기와 다르게 탁류는 그 위력은 비슷하면서도 범위 조절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따로 뒤떨어질 필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세 사람이 따로 행동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으니까. 그 물음에 잠시 당황한 봄이가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말했다.

“… 아직 기술의 완성도가 부족해서요.”

그렇군. 게임에서도 탁류의 명중률은 85. 애매하게 맞지도 않을 기술을 사용하느니 명중률 100의 파도타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납득한 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휘웅의 참견이 날아왔다.

“네가 칠칠찮으니까 그래.”

“지금 그게 누가 할 소리야!”

위잉위잉, 울려 퍼지는 경보음 사이로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들려왔다. 그래도 겁먹지 않고 싸우는 게 어디야.

이야기는 곧 최종장. 둘의 말다툼을 진정시킨 제노가 달리는 속도를 조금 더 빨리했다. 세 사람의 모습이 어두운 복도 속에 삼켜 들어져 갔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제하시면 보관함에 소장 가능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